재생산

국제인권규약에서 ‘재생산 권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8년 테헤란 국제인권회의에서였지만, 본격적으로 ‘재생산’이 인구문제에서 ‘권리’와 ‘건강’의 프레임으로 전환된 시기는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와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를 그 기점으로 봅니다. 이에 따르면 ‘재생산 건강’은 재생산 능력과, 정보에 입각한 자유롭고 책임있는 결정을 내릴 자유로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보와 물품, 시설, 서비스에 대해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확장된 ‘재생산 권리’ 개념은 여성의 출산력에만 집중하는 인구정책에서 끊임없는 인권 침해적 상황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확립된 것으로, 무엇보다 모든 국가정책이 개인의 재생산 권리와 건강에 기반해야 한다는 국제적 합의에 도달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 가족계획사업 아래 피임과 임신중지를 적극 장려하던 분위기에서 이제 ‘저출산’을 ‘위기’로 의식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개인의 재생산에 대한 다양한 욕망과 권리는 무시되고 오로지 출산이 인구조절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4시간 지속되는 특수한 노동인 임신과 출산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되며, 출산과 양육에 대한 수당과 휴가 등 개별 정책에만 치중하여 오랫동안 여성들이 수행해온 돌봄과 같은 재생산 노동의 가치를 오히려 보이지 않게 만들고 개인의 특수한 욕망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또한 ‘저출산 위기 대응’은 이성애중심, 혼인중심, 혈족중심, 정상성을 특권화하여 끊임없이 규범 밖의 자리를 생산해냅니다. 국가는 이성애 커플에게만 혼인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부터 혼인한 이성애 커플에게만 보조생식기술의 혜택을 부여하고, 트랜스젠더의 양육 권리는 물론 생식능력조차 박탈하고 있습니다. 산전검사로 유전적, 신체적 장애아를 선별해내고 장애를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사회에 대해 침묵한 채, 여성 장애인에게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 양육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주 여성에게는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의 출산과 가정에서의 무급노동을 조건으로 ‘결혼이민’ 비자를 발급하고, 정작 태어난 미등록, 무국적인 아동의 삶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재생산 권리의 하나인 임신중지에 대한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그나마 견고한 인구정책의 틀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됩니다.

임신하여 출산하면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자연적’이라는 착각은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이미 재생산 기술의 개입으로 안전하게 임신을 예방하고 중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신이 출산이나 양육 경험과 단절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피임약과 수술뿐만 아니라 유산유도약은 사회정치적인 복잡한 맥락 속에서 국경을 넘어 확산됩니다. 생명공학기술과 긴밀하게 연결된 보조생식기술은 재생산 영역을 확장시켜 새로운 재생산 정치의 지형을 만들어 냅니다. ‘자연적’인 재생산 개념을 넘어야만 현존하는 재생산의 다양한 형상을 드러낼 수 있고, 여성을 출산을 위한 몸으로 만들어 모성을 자연화하여 이성애중심 정상성을 강화하는 현실에 균열을 낼 수 있습니다. 재생산은 개인의 몸을 매개로 성적 실천, 노동, 기술이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인 영역입니다. 개인의 성적 욕망과 재생산 욕망은 특수하고 다양하며, 삶과 미래를 재구성하는 재생산 정치의 동력이 되고 법과 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평등과 정의를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냅니다. 강제와 폭력,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고, 객관적인 정보에 근거한 자율성 있는 결정과 책임에 대한 권리를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재생산 정치는 가능할 수 있을까요?

셰어는 ‘재생산’ 카테고리에서 피임, 임신, 임신중지, 임신유지, 보조생식기술이라는 다섯 개의 하위 항목을 통해 의학적 가이드라인과 이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보 제공으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물론 재생산과 관련한 새로운 논의와 질문들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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