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산] 재생산의료 영역에서의 남성: 한국의 보조생식기술과 난임남성의 비가시화

김선혜 1)

인간은 유성생식을 통해서 재생산을 한다는 과학적 사실과 상관없이, 남성은 재생산의 주체로 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1980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전국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서 기혼남성은 조사대상이 아니며, 재생산 건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유일한 법은 <모자보건법>으로서 부성건강은 다루지 않습니다. 여성은 ‘가임여성’으로도 혹은 ‘난임여성’으로도 쉽게 분류되고 호명되는 반면, 남성은 이러한 분류체계로부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여성에게 가임기가 있는 것과는 달리 남성에게는 이러한 연령에 의한 제한이 없다고 믿는 남성 재생산에 대한 신화와 함께 재생산은 여성의 일차적이고 최종적인 책무로 여겨져 온 사회문화적 배경 때문입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남성 역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남성의 몸 역시 역시 ‘재생산의 의료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남성 난임은 남성의 재생산 건강 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 건강에도 밀접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재생산 주체로서 남성의 위치에 대해서 보다 많은 관심과 개입이 요청됩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난임은 더 이상 특별한 문제가 아닙니다. 매년 20만 명의 사람들이 난임 진단을 받고 있으며, 체외수정(IVF, in vitro fertilization)을 비롯한 보조생식기술(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ies)은 난임 시술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체외수정은 2005년도 한 해 21,154건이 이루어졌는데, 이 숫자는 2016년 80,068건으로 약 4배 가까이 증가하였습니다. 난임의 요인은 크게 여성요인, 남성요인, 여성과 남성 복합요인, 원인불명등으로 분류됩니다. 남성요인의 경우 무정자증 (azoospermia)이 주요한 원인인데, 무정자증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으로는 내분비질환이 주를 이루는 고환전 원인, 염색체 이상이나 음낭 질환에 의한 고환원인, 그리고 정로 폐쇄나 부성선 이상인 고환후 원인으로 구분되며, 이러한 남성난임은 전체 난임의 50%를 차지한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남성난임은 ‘남성난임’으로 인정받기 보다는 ‘남성요인과 관련된 여성난임’으로서만 인정되며, 남성난임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고 여성난임을 야기하는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정부의 난임지원시술사업 속에서 보조생식기술의 사용이 보다 제도화되어 정착되는 과정에서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난임 원인의 절반이 남성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으며, 남성은 여성과 함께 체외수정시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성의 경험만이 대표적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대표적인 남성난임시술인 ‘난자 세포질내 정자주입술 (ICSI, intracytoplasic sperm injection)’은 하나의 정자를 선택하여 미세조작기를 이용해 난자의 세포질 내로 주입하는 기술로서 희소정자증, 무력정자증, 기형정자증, 희소무력정자, 희소무운동성기형정자증의 경우 효과적인 난임 극복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자주입술 사용의 증가는 실제 남성의 난임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주는 것은 아니면서, 오히려 체외수정시술을 할 필요가 없는 여성들까지 난임환자로 만들어 내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자주입술처럼 보조적인 방식으로 남성난임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들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남성난임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는 연구들은 줄어들고, 반대로 정자주입술의 성공률에 영향을 끼치는 난자나 자궁내막에 관한 연구들이 증가하는 등 다시 그 관심이 체외수정과 여성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처럼 남성 난임에 대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체외수정의 사용만 확산되어 가는 상황은 여성의 재생산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난임부부지원사업> 실시된 이후 보조생식기술 사용이 가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와 함께 급속도로 증가한 질병항목이 “인공수정과 관련된 합병증(N98)”입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비뇨기과 의사들도 체외수정의 실시 이전에 수술적 치료가 가능한 경우 우선적으로 치료가 먼저 이루어져야함을 권고하고 있지만 그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 상황은 남성을 재생산의 주체로 여기지 않아온 사회적 인식과 구조가 빚어낸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이미지 출처 : 아시아투데이 [카드뉴스] 남성 난임, 극복 “괜히 혼자 고민했네요”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90722001042486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난임여성은 ‘여성요인 난임’과 ‘남성요인 난임’을 모두 해결해야하는 이중의 과제를 부여받게 됩니다. 난임 요인에 따른 고독감에 대한 연구를 보면, 난임여성은 난임의 원인이 남성에게 있는 경우 가장 높은 고독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남성의 경우 자신에게 원인이 있을 때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 결과와 대비됩니다. 보조생식기술을 통해서 아이를 낳고자 시도하는 난임여성의 경우 난임의 요인과 상관없이 높은 신체적, 정신적,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고 있는데 남편이 난임인 경우 추가적으로 더 많은 노동과 수고를 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 여성들은 남성 파트너가 보조생식기술의 사용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독려하고, 위로하는 역할까지 담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재생산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재생산 건강은 모자건강과 동의어로 통용되고 있으며 재생산 건강과 관련된 모든 정책은 <모자보건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모자보건법>은 “모성(母性) 및 영유아(嬰幼兒)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도모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며, “모성”이란 임산부와 가임기(可姙期) 여성”을 말합니다. 또한 “모성은 임신ㆍ분만ㆍ수유 및 생식과 관련하여 자신의 건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그 건강관리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모성 의무 조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은 여성 단독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부성” 건강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모성” 건강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과연 현재의 모자보건법이 재생산 건강과 관련된 정책들의 바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재생산 건강과 관련된 연구 중 한 분야는 부성 건강의 문제입니다. 이제까지 모든 재생산 건강에 관한 연구들은 어머니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상태와 위치가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최근에는 아버지 역시 동등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임능력에 대한 남성들의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고, 재생산 건강에 대한 모든 정보, 서비스, 의료적 접근은 모자건강의 영역에서만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남성의 재생산 건강은 어디에서도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으며, 그 결과는 다시 역설적으로 모자건강의 침해로 되돌아 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할수록 ‘가임기 여성’은 점점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성생식으로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가임기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재생산 관련 정책들과 지원들이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재생산 건강의 문제는 단순히 출산율 증대를 위한 신생아 숫자를 하나 더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건강권의 문제입니다. 남성 역시 재생산하는 몸을 가지고 있는, 인간 재생산의 주체라는 인식이 이루어질 때, 남성의 재생산 건강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 건강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자신들의 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이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다양한 투쟁과 협상을 이루어냈습니다. 2017년부터 이루어진 난임시술 건강보험 확보와 2019년 형법상 낙태죄 폐지는 모두 여성들의 적극적인 요구와 항의로부터 시작된 변화입니다. 이제 남성들도 재생산의 주체로서, 재생산 영역에서의 종속적이고 보조적인 위치를 넘어서기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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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김선혜 (2019).“재생산의료 영역에서의 남성: 한국의 보조생식기술과 난임 남성의 비가시화”. <경제와 사회> 124. 12-43p 를 요약·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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