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시리뷰] ‘힐난도 자랑도 수치도 아닌’

나영정

“포르노 문법에서 탈주하기 위한” 콘돔전시회


자색고구미(자주적인 섹슈얼리티를 고민하는 프로젝트팀)와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지난 1월 “힐난도 자랑도 수치도 아닌 콘돔전시회”를 공동주최하고 3월에 도록을 발간했다.


(콘돔전시회 포스터)

콘돔전시회는 2017년부터 이우고등학교의 성 자치기구 ESC(Ewoo Sexuality Class)에서 매년 교내 콘돔 전시회로 이어오고 있었는데 2020년에 자색고구미, 위티, 콘돔전시준비위원회(이하 콘준위)가 함께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다. 또한 자색고구미와 위티는 전시회 이전에 “콘돔 OR 반창고”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이는 청소년이 콘돔을 사기 어렵거나 소지했다는 사실만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에 대항해 피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으로 기획되었다. “이제껏 자본과 성적 통념이 범주화하고 포섭한 책정 방식을 반발하고 문제시하는 것. 우리의 등가성을 만드는 것”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69160) 으로서 콘돔과 반창고의 교환을 설명한 부분은 좀 혁명적인 느낌을 준다. 

전시회를 방문했을때 가장 눈에 들어왔던 코너는 ‘청소년 섹스 공간 아카이브’와 ‘감각여행’이었다. 오리, 하영, 햇살 작가의 <청소년 섹스 공간 아카이브>는 사진작업을 통해서 ‘미숙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한다’고 상정되는 청소년이 역설적으로 섹스의 공간을 박탈당함으로써 위험에 처하게 되는 구조적인 현실을 지적한다. 공중 화장실, 계단, 비상구, 노래방, 룸까페 등을 촬영한 사진 작품을 통해서 청소년에게 섹스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이러한 공간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질문하자고 제안한다. 섹스의 공간으로 상정되지 않은 공간에서 누군가 섹스를 하기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상호 합의하게 은밀하게 섹스를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청소년이기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이 두가지 사이에서 여전히 많은 이들은 대답의 갈피를  잃는다. 

다른 선택지가 있음에도 특별한 경우에 이러한 장소가 섹스의 장소로 선택된다면 많은 문제들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상대방과의 관계 특성이나 여러가지 특정한 상황, 성적 만족감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나이,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사회경제적 상황 등 나의 의지로 당장 바꾸기 어렵거나 바꿀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이러한 장소만이 섹스의 장소로 허락된다면 이는 심각한 차별의 문제가 되며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된다. 이 전시를 통해서 작가들은 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박탈하기 때문에 안전하지 못하고, 청결하지 못한 이 장소 이외에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장소를 선택하기 어렵다는 점은 성관계의 방식과 상대와의 관계에서도 심대한 영향을 준다. 안전하고 청결한 장소를 소유한 상대방은 청소년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권력과 자원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많고, 상대방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해 상호합의를 넘어선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오리, 하영, 햇살 <청소년 섹스 공간 아카이브> 콘준위 제공)



“문은 잠기지 않았고 누군가 문을 열까봐 걱정됐다.”, “아주 차가운 곳에 알몸으로 덩그러니 놓인 것만 같았다.”, “나는 포근하고 따뜻한 공간을 원한다” “남들에게 공개될 위험이 없는 곳에서 기분 좋게 즐기고 싶다.”는 말들은 나이와 젠더를 문제삼으면서 섹스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성관계 자체를 금기시하는 행위가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킨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별난, 윤달 작가의 <감각여행>이라는 참여형 작품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탐색할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을 위해서 기획된 작품이다.  “소수자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욕망을 채워주는 존재로 대상화되고, 자신의 욕망을 박탈당한다. 지금껏 묵살 당했던 소수자들의 욕망이 이 작품으로 인해 다시 발견되고 되찾아지길 바란다. 자신이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것을 느끼는지, 성적 지향은 어떤지 등등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마음껏 탐색할 수 있길 바란다.”는 작품기획의도는 실제로 많은 관객 참여자들이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할 수 있도록 구현되었다. 대강의 지형이 그려진 빈 종이 위에 전시 참여자들은 시각, 청각, 촉각에 대한 욕망, 주변 환경과 분위기, 상호 합의와 대화, 이후에 발생한 건강 이슈, 혐오와 폭력까지 빼곡히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고, 수십장의 지도가 걸린 벽은 장관을 이루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몸의 느낌과 경험, 관계를 통해서 얻은 느낌과 지식들은 누군가에게 왜 철저하게 배척당하고 오히려 존재를 위협하는 것으로 계속 남겨져야 하는가? 개인의 선택와 독박책임이 아니라 관계적 역량을 키우고자 하는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은 왜 이러한 영역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지도 앞에 선 나에게 떠올랐다. 


지면의 한계상 두가지 작품만을 언급했지만 콘돔전시회에서는 성별 이분법과 불화하거나 우울증을 겪는 몸의 서사 등을 표현한 회화 작품(이랑),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했던 부분에 대해서 청소년이 직접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영상 작품(별란), ‘임신 가능성, 불법 촬영에 대한 불안, 성관계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낙인, 불평등, 폭력의 경험’이 응축되어 있는 <콘돔을 만져보세요!>라는 설치 작품(오리), 레즈비언 할머니 커플, 게이 커플, 폴리아모리, 에이섹슈얼 등 다양한 형상이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 회화 작품(밍, 윤달, 이랑), 먹는다는 행위 안에 포함된 위계와 폭력의 구조를 통해서 여성과 동물의 권리를 고민하는 설치 작품(궐재) 등 모두 언급하지 못한 작품이 전시장에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작가의 말 아카이브

3개월간 주 1회 장시간 회의를 하며 전시를 만들었던 기획단은 도록(94~114쪽)에 이런 말들을 남겼다. 작가 소개글이었지만 지금 청소년의 섹슈얼리티가 놓여있는 자리와 그것을 변화시켜나가려는 주체들의 목소리가 담긴 선언문이기에 덧붙일 말이 별로 없다. 

“전시회가 끝난 얼마 후 엄마와 콘돔전시회 이야기를 하다 6번째 커밍아웃을 하고”(이랑)

“정말 섹스도, 사랑도 연애도, 한가지 종류가 아니구나 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깨달았어”(별란)

“이제는 피해가 아닌 섹스를 상상해. 지금껏 두려움에서 나아갈 수가 없었는데 더 이상은 아니야. ‘내가 뭘 어쩌겠어’’라는 학습된 무기력함은 이제 없어. 나는 내가 떠올리고 원하는 섹스를 찾아낼 거야. 주체적으로 섹스를 상상하는 일은 즐거워. 취향이 담긴 공간에서, 원하는 때에,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상상을 해. 나는 오후의 홍차와 섹스”(햇살) 

“전시가 끝난 이 시점에서, 어찌 보면 전시장이 ‘우리만의 유토피아’ 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공간이 유토피아라고 해서 그게 잘못되거나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공간이 유토피아였던 것은 청소년 당사자들이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마음껏 표출해냈기 때문이다”(하영)

“내가, 그리고 우리가 ‘문란하지 않음’, ‘잘못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었다. (중략) 콘돔 전시회 포스터를 게시하고 ‘그건 좀 아니지’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그건 좀 아닌’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많아져서 어느새 당연해지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오리)

“말할까, 말까, 보다는 어떻게 말할까를 고민한다. 정상성의 범주 안에 들지 않는 나를 훨씬 너그러이 대하고 있다”(윤달)

“여전히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서, 가족들 앞에서 나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콘돔전시회에서, 콘준위 사람들 앞에서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꺼내긴 어려울것 같아요. 그러나 이제는 제 자신이 부끄럽지 않아요. 나는 가방에 콘돔을 들고 다니는 학생이고, 나는 섹스하는 청소년이고, 나는 여자와도 남자와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입니다”(나윤)

“감춰야할, 부끄러운, 혹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라 여겨졌던 나의 욕망과 감각을 난생 처음 만난 기획단원들에게 이렇게 바로 맘껏 표현할 수 잇음이 처음엔 새삼스러웠어요. 짧은 기간 함께했지만 함께하던 매 순간 우리는 아주 진지하게 우리 몸의 감각에 대한 깊은 대회를 이어갔고, 이제 우리에겐 이 대회가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 되었음을 느꼈어요”(밍)

(별난, 윤달 <감각여행> 콘준위 제공)

폭력과 착취를 끊어내는 방법

콘준위는 전시 소개에서 “포르노 문법에서 배제된 이는 힐난 받거나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또한 “포르노의 문법을 무용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의 상상과 욕망을 전개시켜야 할 곳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내 존재를 배제시키는 어휘가 나의 유일한 언어가 되는 터무니를 더이상 가만히 지켜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 말을 통해서 콘준위가 포르노에 반대한다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포르노가 가진 단순화와 대상화가 가진 한계는 산업이 되면서 성에 대한 폭력적인 규범화와 약자에 대한 자본의 수탈을 동반하게 되었으나, 섹스와 성적 욕망을 철회하는 것으로는 포르노를 제대로 반대할 수 없다. 포르노를 반대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설정과 실천이 필요하다. 섹스를 거부하는 것이 정체성으로든 실천적 선택으로든 의미있게 되려면 섹스가 폭력과 착취가 아닐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과 적대적이어서는 안된다. 상호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자신이 원하고 선택하는 것이 내가 당장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는 요인(나이, 젠더, 인종, 성적 지향, 장애, 사회경제적 조건 등)으로 인해서 어떤 정치학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주체의 역량을 박탈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지금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n번방’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콘돔전시회를 통해서 제기된 여성, 퀴어 청소년의 성적 권리와 욕망에 대한 발화가 더욱 힘을 얻길 바란다. 다른 선택권은 없는데 섹스 여부만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만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경제적 능력을 성취하면 성적 권리는 무시해도 되거나 혹은 자연히 성취할 것이라고 믿는 헛된 기대와도 결별해야 한다. 특히나 페미니즘과 같은 사회해방 이론과 실천은 이러한 기만과 헛된 기대를 뿌리뽑아야 한다. 이는 폭력과 착취에 반대하는 것 만큼이나 단 한명도 억울하게 목숨을 잃거나 건강을 잃거나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중대한 노력중의 하나이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