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욕망을 부정하지 않아도 피해를 말할 수 있도록-금기와 처벌을 넘어, 권리와 불평등을 말하자

나영

“그런데 피해 여성들이 아동, 청소년만 있는 건 아니었잖아요. 성인 피해자들도 자원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며칠 전 박사방 사건으로 취재 방향을 묻던 한 언론사의 기자와 통화하던 중에 기자가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검거 이후 n번방, 박사방 등 텔레그램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피해 유형이 구체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탈계나 스폰 알바 등 피해자들의 행위에 관한 갑론을박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해자도 벌을 받아야 하지만 형평성 차원에서 일탈계를 한 피해자도 음란물 유포죄 등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주장이 만연한가 하면, 한쪽에서는 “일탈계나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디지털 환경에 아동, 청소년이 노출되지 않도록 나서서 교육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또 한 편에서는 “자신의 성을 남성에게 욕망 받을 만한 매력 자본으로 삼아 자원화하는 걸 임파워링으로 오인하게 만든 프레임이 여성 청소년들의 일탈계 양산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전히 이 모든 논의는 ‘처벌 아니면 보호’로 귀결되는 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 아동, 청소년에게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셰어는 ‘권리를 말할 수 없는 곳에서 n번방은 지속된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3월 23일 발표한 논평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아동과 청소년은 이 과정에서 더욱 취약한 위치에 있지만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 역량이나 자원이 모두 충분하거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동•청소년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성인이면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으로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며 피해자를 선별하고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한편, 아동•청소년과 장애인에게는 보호를 내세워 권리를 제약해 왔다. n번방을 만들고 참여해왔던 자들은 이러한 차별적 구조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 규제되어야 할 것은 개인의 성적 표현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침해와 폭력이다. ‘순수한 피해자’ 상을 전제하지 말고 폭력 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 논평의 행간을 적극적으로 읽어내 주기를 바란다. ‘순수한 피해자’만을 강조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이야기들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까. 

문제의 원인은 일탈계가 아니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문제의 원인은 일탈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피해자가 어떠한 사람이고, 피해 당시에 어떤 행위를 했든 당사자의 자율적인 동의와 그에 대한 존중 없이 이루어진 행위는 폭력’이라는 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한 원칙이다. 그런데 이 원칙을 아무리 강조해도 다시 돌아오는 지점이 있다. 피해자 탓을 하는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피해자의 행위는 여전히 ‘위험 요인’으로 남는 것이다. 지금도 언론에서는 조주빈과 관련자들의 범죄 수법을 세세하게 보도하면서 동시에 “n번방 표적이라 알려졌는데도… ‘일탈계’ 여전히 활개”1) 같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제의 원인이 일탈계에 있다는 논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피해자의 행위가 위험 요인으로 남으면 결국 행위에 대한 낙인효과가 발생하여 피해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피해자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건 가해자의 의도와 행위 때문이지 피해자의 행위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탈계 또한 더 이상 텔레그램 디지털 성폭력 사건의 ‘원인’이나 ‘위험요소’로 지목되어서는 안 된다. 

2016년 파티에서 만취한 상태에서 스탠포드 대학의 유명 수영선수 브록 터너 Brock Turner 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은 샤넬 밀러 Chanel Miller 는 법정에서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피해자 최후 진술문을 낭독했다.2)

″넌 나를 모르지만, 나를 침범했지. 신문에서 나의 이름은 ‘의식이 없고, 술 취한 여성’ 이었어. 10글자. 그것밖에 없었어.”

그리고 이렇게 진술을 이어갔다. 

″나는 나의 진짜 이름, 나의 정체성을 다시 배우도록 나 자신을 몰아붙여야 했지. 난 이게 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배워야 했어. 너는 유죄가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고한, 최고 대학에 다니는 미국을 대표하는 수영선수지만, 나 역시 그저 동아리 파티에서 술에 취해 쓰레기통 뒤에서 발견된 피해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배워야 했어.”

밀러는 사건 이후 자신이 익명의 ‘의식이 없고, 술 취한 여성’으로 언급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야 했다고 고발한다.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더라도 피해자의 행위에 관심의 초점이 모이는 순간 행위가 피해자의 정체성과 가해의 원인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 청소년들의 일탈계가 양산되어서 이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우려하는 것은 결국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공간을 축소시키는 결과로 돌아온다. 향후에라도 일탈계를 단속하거나 처벌하는 등의 행위가 디지털 성범죄의 예방 대책이나 재발 방지 대책으로 등장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위험한 것은 일탈계 자체가 아니라 일탈계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 사회적 관계와 경제적 자원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이고, 그 자체로 금지되고 말할 수 없는 공간으로 남는 것이다. 

샤넬 밀러와 그녀의 책 <Know My Name>

욕망을 긍정해도 피해가 성립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이제 우리는 피해자의 욕망을 부인하는 것이 피해를 입증하는 전제조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실제 피해자의 연령대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아동, 청소년만이 강조되는 것은 아동, 청소년일수록 성에 무지하여 무고한 피해를 당했으리라고 전제하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아동, 청소년에게도 다양한 성적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거나 무시하게 만들고, 성인에게는 피해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게 만든다.

이미 대부분의 아동, 청소년이 유아기 때부터 모바일 환경을 접하고 스스로 소셜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일탈계나 몸캠 등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10대 초반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아동, 청소년들은 친구의 권유로, 호기심에 이끌려서, 게임 채팅을 하다가, 오픈채팅방에서 놀다가 등 다양한 경로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거나 그것을 교환,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난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상대방의 접근 자체로 위험을 감지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이 환경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나 욕망이 타인에 의해 요구되거나 의도되었을 것이라고만 전제하면 피해자는 일단 자신의 행위와 욕망을 스스로 부인하고 삭제해야 피해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왜 누군가의 욕망은 그 자신의 것으로 강조되고, 누군가의 욕망은 자신의 것이길 부정당하는지부터 되물어야 한다. 욕망을 부정당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대가가 왜 이토록 불평등한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텔레그램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부모나 주변인들에게 피해자의 사진과 행위를 알리겠다는 것을 협박의 빌미로 삼았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도 자신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폭력의 피해 사실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가해자에게도 행위에 대한 책임을 보다 분명하게 물을 수 있으며, 개인의 욕망과 행위만을 문제 삼는 사회에 불평등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금기와 처벌을 넘어서

이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기자의 질문은 성적 자원과 취약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성적 역량은 성인이 된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에 필요한 자원도 경제적인 자원만은 아니다. 성적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이나 주거 등 경제적 자원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 판단하고 협상하고 대응할 수 있는 교육과 경험도 필요하며, 그에 필요한 정보와 자원에 대한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폭력을 경험했을 때 지지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주변인들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조건들을 실행할 수 있는 법·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권리와 역량을 만드는 대신 금지와 검열만을 앞세우고, 폭력이 아니라 음란을 단속했으며,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성적 거래가 그 자체로 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도록 방치해 왔다. 임금노동 시장에서는 여성을 언제든 사적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 예비노동력으로 두고 임금 차등과 불안정 노동으로 이를 관리하면서, 다른 한 편에서는 하룻밤 풀코스 접대에 수백, 수천, 억 단위의 돈을 쓰며 여성들을 이용하는 비즈니스 관행이 바로 이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핵심이다. 아동, 청소년에게 다른 사회경제적 권리는 제대로 보장하지 않으면서 성적 역량은 키울 수 없게 만들고 이들의 섹슈얼리티는 거래될 수 있는 자원이 되도록 방치한 국가와 사회가 n번방, 박사방을 만들었다.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는 일은 가장 일차적인 대응이다. 이제는 금기와 처벌을 넘어서 불평등한 성적 경제의 근간을 바꾸고 권리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n번방 시민방범대 https://nthroomcrime.com/

디지털 성범죄 관련 상담과 지원이 필요한 경우 아래의 단체들로 연락하시면 법률상담, 피해촬영물 삭제, 심리상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담 내용은 본인의 동의 없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단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전화: 02-735-8994
게시판 상담: www.women1366.kr/stopds

○탁틴내일
전화: 02-3141-6191

○한국성폭력상담소
전화: 02-338-5801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전화: 02-817-7959
이메일: hotline@cyber-l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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