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안]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10대 과제

1.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 보장)

• 현행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를 삭제하고 임신중지를 전면 비범죄화해야 합니다.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개인의 상황과 조건은 매우 다양하며, 몇 가지 사유로 타당성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95.3%의 응답자가 임신 12주 이내에 임신중지를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도적으로 임신중지 시기를 늦추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정보와 자원에 접근하기 어렵고, 파트너와 폭력적이거나 불평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 사회경제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며 취약한 조건에 있는 개인일수록 임신의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시기가 늦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후기 임신중지의 상황에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전문 의료인에 의한 상담과 안전한 의료적 조치입니다. 처벌은 두려움과 낙인을 강화하여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의 환경을 만들 뿐입니다. 

• 최근 임신 20주까지 임신중단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뉴질랜드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은 기존의 처벌과 규제를 없애고 점차 전면 비범죄화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임신중지는 권리의 문제이자 건강의 문제입니다. 임신중지를 전면 비범죄화하고 처벌 대신 건강과 평등한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의미합니다. 
• 임신 당사자가 자기 의사에 따라 결정한 임신중지의 경우 주수와 사유를 불문하고 당사자에 대한 어떠한 처벌 조항도 없을 것
• 임신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약물, 시술 등의 방법으로 이를 조력한 약사, 조산사, 의사 등 보건의료인에 대한 어떠한 처벌 조항도 없을 것
• 임신중지 상담은 임신당사자의 건강과 권리를 위해 보장되어야 하며 이행하지 않을 경우의  처벌을 전제로 하는 상담 의무제도나 강제 숙려기간을 전제로 두지 않을 것
• 임신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부모나 제3자의 동의를 의무 사항으로 규정하지 않을 것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 보건의료인들이 임신중지 관련 최신의 의학 정보와 사전/사후 건강 관리, 정보제공과 상담에 관한 가이드를 꾸준히 향상하고 공유할 수 있는 보건의료 환경 마련
• 아동/청소년, 이주민/난민, 장애인 등 정보와 의료기관 접근성이 취약한 사람들의 접근성을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와 자료 제공, 의료 환경 개선
•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등 관련 보건의료 기관의 지역별 격차 개선
• 유급 유ㆍ사산 휴가에 임신중지 휴가 적용

2. 약물적 유산유도제 도입

• 일명 ‘미프진’으로 불리는 유산유도제는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접근권을 높이기 위해 빠르게 도입되어야 합니다. 이미 전 세계 67개국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하여 사용되고 있고, 2005년에는 WHO가 미페프리스톤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등 이미 안전성은 충분히 확인되었습니다. 더 이상 여성들이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약을 개별적으로 복용하여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는 공식적인 의료 체계를 통해서 복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유산유도제의 공식 승인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절차에 돌입할 것을 요구합니다. 

• 또한 미페프리스톤의 국내 사용 승인을 위한 관련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에도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현재 위장관계 질환에 사용되고 있는 미소프로스톨의 적응증을 확대하여 임신중지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합니다.

3. 모두가 평등한 자원과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포괄적 성교육 시행

• 지금까지의 성교육은 주로 성에 대한 지식과 규범을 전달하거나 피해를 예방하는 내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는 성을 사회적 관계와 자원을 평등하게 구축하기 위한 필수 영역으로서 인식해야 합니다. 아동, 청소년만이 아니라 전 연령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관계 맺기에서부터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한 이해, 대중문화에 대한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인식을 기르기 위한 내용까지 포괄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성에 관한 정확한 정보와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4. 임신중지를 포함하여 성적 건강 전반에 대한 국가 의료 보험 보장성 확대

• 성 및 재생산 건강이 개인의 건강권에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정부와 보건의료 체계 전반에서 확실하게 인식하고, 국가보험보장석을 확대해야 합니다. 특히 피임과 임신중지에 대한 비용으로 인한 접근성의 문제를 해소해 줌으로써 당사자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유도하며, 재생산 건강에서의 합병증이나 모성 사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성과 재생산을 권리로써 보장하는 시발점으로 국가 의료보험 보장성을 확대할 것을 요구합니다. 

• 현재 트랜스젠더의 성별 변경을 위한 법률은 없으며, 대법원 내부의 가이드라인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기준으로 개별 법원의 판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정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호르몬 투여 및 생식능력 제거를 포함한 외과적 수술 등의 의료적 조치가 강제되는 반면, 관련된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에 전혀 포함되지 않고 있어 성과 재생산 건강 권리 전반에 심각한 침해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성별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권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권리이자 건강권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성적 성별 변경의 요건을 완화하고, 성별 변경과 관련한 다양한 의료적 조치 역시 건강보험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 또한 미등록이주민과 난민 등 현재 보험 적용이 되지 않거나 취약한 조건에 있는 거주민들도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합니다. 

5.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 전파매개금지조항 폐지

•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은 HIV감염인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조항입니다. 전염성 질환에 대한 예방은 전파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건강증진과 예방을 위한 자발적 노력과 사회적인 지원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 조항은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에 어긋나며 의료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정당성이 없으며 질병자체를 죄악시하고 HIV감염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뿐입니다.

6. 군형법 92의6 추행죄 폐지

• 군형법 추행죄는 성인간의 합의한 동성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법입니다. 군당국은 분단상황과 집단생활이라는 특수성이 있기에 정당하다고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인의 시민권을 부정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논리일 뿐입니다. 위력이 존재하는 군 내의 성폭력 근절에 힘쓰는 동시에 합의한 동성간 성관계를 비범죄화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7. 보편적출생등록제 마련

• 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국제 조약은 아동의 “출생 등록 될 권리”를 명시하고 있으며, 유엔인권기구는 한국 정부에 보편적 출생 신고 제도를 도입기를 수차례 권고하였습니다. 출생 등록은 사회에서 시민의 출생과 사망을 기록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절차이자 “등록될 권리”로서 인권의 영역입니다. 난민 아동이나 미등록 이주아동은 어디에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사실상 무국적자가 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한국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이 본인 또는 부모의 국적과 체류자격에 관계 없이 출생 즉시 정확한 출생정보가 공공기관에 신고, 등록될 수 있도록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촉구합니다.                                                                                        

8. 가족계획 하에 동의없이 이루어진 불임시술, 장애인 등 시설거주인에 대한 강제불임/낙태 시술, 해외입양 정책에서의 국가 폭력 조사 및  사과와 보상 정책 마련

• 가족계획사업은 1960~90년대에 산아제한을 위해 수립된 정책으로 피임보급과 참여자에 대한 보상정책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피임보급 정책은 당사자의 실질적인 동의를 구하지 않은채 강제적으로 불임수술이 보건소, 이동진료소 등에서 벌어졌고 장애인과 부랑인 등이 수용된 거주시설에서도 동의없는 불임수술이 자행되어 왔다는 증언이 있지만 한번도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습니다. 정부는 형법상 낙태죄가 있음에도 우생학과 정상성의 관점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실행하기 위해서 모자보건법을 제정하여 정책을 정당화했습니다. 또한 해외입양 활성화 정책을 통해서 ‘혼혈아동’, ‘고아’, ‘장애아’를 국외로 추방했으며 아동의 권리와 재생산 권리를 침해했습니다. 올바른 재생산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이러한 강제 불임, 낙태 수술과 해외 입양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고 지금이라도 제대로된 조사와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9. 강간죄 개정 등 성폭력 관련법을 성적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

•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현재의 강간죄는 피해자의 동의여부로 바뀌어야 합니다. 성기 삽입을 중심으로 피해의 중함을 판단하고, 피해자의 저항여부에 따라 범죄 성립을 판단하는 기준은 피해자의 성적 권리를 논의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성관계에 이르는 과정에 동의가 있었는지, 위력을 행사하거나 위력이 작동하는 관계였는지, 또한 성관계에 대한 촬영 및 유포 등 전 과정에 당사자의 동의가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아동, 청소년이라고 하더라도 동의능력이 없다고 전제할 것이 아니라 취약성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동의를 표할 수 있을지, 상대가 어떻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사회적인 논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관계나 성적 거래, 성적인 표현물 제작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폭행이나 협박을 받았다면 피해자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고, 그 어떤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성적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됩니다. 

10.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사회 근간에서 보장하는 기본법 제정

• 모든 사람은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가지며, 성적 건강과 재생산 건강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사람들이 정확한 보건의료 정보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차별없이 성과 재생산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평등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기본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형법 낙태죄에 대한 헌법 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은 국가의 의지에 따라 개인의 성과 재생산을 제약해온 역사를 청산하고,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인권적 보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포괄적 성교육, 피임, 임신을 유지하거나 중지하는 것, 성과 재생산 건강에 대한 공공의료기반 확충 등은 자기 결정권, 교육권, 정보접근권, 건강권의 기조 아래에서 새롭게 쓰여져야 합니다. 또한 그 모든 과정에서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ㆍ미혼ㆍ별거ㆍ이혼ㆍ사별ㆍ재혼ㆍ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몸과 미래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기본법이 필요합니다. 


2020년 4월 7일
성적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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