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 발족 축하 & 후원 캠페인 100조이 이벤트 ‘온라인 성 건강 상담’ 후기_림보(88번째 조이)

림보 (88번째 조이)

성 건강 상담에서 무슨 얘기를 나눌까. 성 건강이 뭐지? 섹스 경험에 대한 궁금증? 자궁에 관한 질문이어야 하나? 성 건강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의 상상력이 쪼그라들었다. 결혼하고 출산도 했지만, 나름 결혼제도에 저항하고 살아보겠노라며 sexless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온 지 몇 년이 되었는데, 내 성 건강에 대해 뭘 물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셰어 활동에 많은 부분 공감해서 시작한 후원인 조이인데 말이다) 온라인 상담에서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지를 찾아보다가 성/젠더와 건강이라는 이슈가 의외로 ‘여성’으로 살아온 내 삶의 경험과 폭넓게 만나고 있다는 걸 새삼 알았다. 때마침 5월에 읽고 있던 버틀러의 책 <박탈>에 감옥 안에서 단식투쟁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힘과 저항성에 대해 다룬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겪은 상담 전후의 상황을 머리로 정리해보는 계기도 갖게 되었다. 몸의 정치성 또는 이 몸에 다가오는 메시지의 정치적 힘에 조금 더 골몰해 보고 싶기도 하다. 아래 문장들이 사실 좀 비장하기는 하지만, 한의원을 그만 다닐 생각을 하면서 의외의 위로를 주었기에, 옮긴다. 그리고 공명하는 만큼, ‘나를 허무는 실천은 불가능한가’ 하며 슬펐다.

“단식투쟁을 감행하는 이들은 자신의 육체를 정치적 힘의 원천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식하는 수감자는 그 시스템과 감옥 현실의 비인간성을 노출하는 것이고, 언어적 발화의 형태를 취할 수도, 혹은 취하지 않을 수도 있는 육체적 행동을 통해 “아니오”라는 표현을 구성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단식투쟁은 수감자의 죽고자 하는 의지를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데, 이는 그의 생명이 재생산되는 조건들이 그 생명을 죽음과 불가분의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감옥에의 예속과 감옥의 통제는 대개 감추어져 있는 형태로 간과되기 일쑤인 데 반해 단식투쟁은 또한 인도주의적인 도덕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여론을 환기시킵니다. 단식은 일종의 저항의 한 형식입니다. … 방치, 감금, 강요된 고립과 같은 체제 중 한 가지 조건 아래서 어엿한 한 명의 주체로 구성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따라서 유일한 저항이란 주체 그 자체를 허무는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한 생명으로서의 스스로를 박탈하는 것은 강압적이고도 탈취적인 힘으로부터 그와 같은 형태의 권력을 박탈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박탈, 233~234쪽

마음을 쉬게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기 어려웠던 시간

2018년 너무도 더웠던 여름. 온몸에 땀을 흘리며 나는 집에 누워만 있었다. 눈에 헤르페스 염증이 생겨 안과를 다니는 것 말고는 집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웠다. 3개월 병가가 끝나고도 상근활동 복귀는 하지 않고, 연대체 활동 한 가지만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했다. 심리상담은 2018년 11월 말부터 받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시작했던 연대체 활동과 관련한 일은 자꾸 늘어났다. 일정이 없는 날에는 거의 집에만 있었다.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의 일정을 잡는 것이 너무나 무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마저도 마음대로 조정하기 어려웠다.

1년 반이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마음을 돌보는 일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조심조심 활동을 이어오다가 또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었다. 올해 1월부터 스스로 안식년을 선언하고서야 모든 활동을 접고 본격적인 휴식에 들었다. 3월이 되니, 마음이 동하지 않아 몸을 살피고 돌볼 힘조차 내지 못하던 상태를 조금은 벗어난 것 같았다. 한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미묘한 불편함이 있었지만, 어떻게 다잡은 마음인데, 끝까지 믿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2개월 만에 그 한의원을 그만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그 날, 예훈 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하튼, 온라인 상담 성사! 예훈 샘과의 상담은 내가 품었던 ‘의료’에 대한 큰 기대와 큰 실망 혹은 절망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이었다. 성 건강 상담에 적절한 주제를 제대로 찾은 느낌이다.

<감옥에의 예속과 감옥의 통제는 대개 감추어져 있는 형태로 간과되기 일쑤>

어릴 때부터 살집이 많은 아이였다. 한 번도 날씬함을 소유하지 못한 자. 그래서 살이 쪘네, 빠졌네 하는 사람들의 대화는 늘 편하게 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애써 태연해하고 싶지만, 잘되지 않는 지점. 나에게는 살찐 사람이라는 속성이 일종의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1년이 조금 넘는 상근활동을 그만둔 후로부터 2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몸무게가 많이 늘었고 아침마다 몸이 부었다. 안식년을 선언한 올해 초부터는 오른쪽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을 자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기록팀 하나를 빼고는 대부분의 활동을 멈추고 나자 몸을 좀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하나 두루두루 인터넷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뭔가 종합적으로 나의 건강에 대해 의논하고, 방법을 찾아갈 수 있으려면 양의보다는 한의가 나을 것 같았다. 엄마네 집과 가까운 한의원 하나를 발견. 잘 찾은 걸까. 한번 믿고 따라가 보자. 그런 마음이었다.

<단식하는 수감자는 그 시스템과 감옥 현실의 비인간성을 노출하는 것>

활동은 쉬었지만, 어린이와 살아가는 삶은 도무지 한가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어려웠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고 어린이가 10살이 되었는데도…. 그냥 수용하고 살기는 왜 이렇게나 힘이 드는가. 나는 왜 계속 불화하는 것인지 고민스럽기도 하다.

그나마 전에는 집 밖으로 나가서 내 시간을 확보했지만, 몸이 아프고 마음의 기운이 떨어진 상태라 밖으로 나가는 일도 쉬운 게 아니었으므로 나는 꼼짝없이 시달리는 기분이었고, 유일하게 혼자 있는 유유자적한 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온 식구들이 잠든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생활 리듬을 잃어갔을 것이다. 불규칙한 수면과 식사, 그러면서 어린이를 학교에 보내고, 청소 빨래 같은 가사노동도 겨우겨우 필수적인 일만 해내는 수준으로 처리하고 있다.

의사는 규칙적인 생활을 주문한다. 하루 세끼 규칙적으로 챙겨 먹고, 12시에는 자야 한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밀가루도 금식. 그리고 햇빛을 받으며 걷기. 열심히 주문을 수행한다. 다리가 아픈 것은 사실 허리가 나빠서라고 했다. 허리를 바로잡으려면 체중을 좀 줄여야 하니, 지킬 것을 잘 지키면서 따라오라고 했다. 말 잘 듣는 환자가 되어야지. 점점 나아지는 몸을 느끼다가 4월 말에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은 아니지만, 몸이 회복되어가는 속도가 더뎌진다. 무릎을 조심스레 다뤄야 하니 걷기도 쉽지 않았다. 내 속이 타는 것만큼 의사도 속이 탔는가 보다. 그런데 그게 나를 탓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말았다.

소식해서라도 체중을 빼 오라는 주문 앞에서 마음이 터져버렸다. 그동안 치료받으면서 의사가 다른 침상 환자들과 나누던 얘기도 떠올랐다. 여성인 환자들에게 무심하게 체중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는 일이 많았다. 마음이 상하니 더욱 그런 식으로 판단하게 되었을 것이다. 체중을 줄이는 게 목표도 아니었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면, 병원을 신중하게 고르며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강해지려면 뭐가 필요할까. 잘 자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잘 쉬라는 말 앞에서 반감이 들었다. 의사로서 예훈 샘도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의사와 나누는 대화에서 이렇게 인정하는 분을 본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예훈 샘의 대답만으로도 크게 위로가 되었다. 뻔한 정답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게 잘되지 않으니까.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병원을 찾아갔던 것이다.

“피부염을 치료하고 오세요, 살 빼 오세요.” 이런 주문 앞에서 무너졌던 것은, 몸을 살피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내 몸에 나타난 증상들을 변화시켜가기를 바랐기 때문이고, 내 몸의 변화를 위해 나 스스로 동의하고 실천하는 시간을 의료진과 함께 겪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탓일까. 나의 모든 조건과 고민,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는 의료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여기, 한국 사회의 의료 현실에서는 어쩌면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유일한 저항이란 주체 그 자체를 허무는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 일찍 자야 한다는 요구를 받으니, 겨우 마련한 내 공간을 내놓으라는 요구처럼 여겨졌다. 내 공간을 빼앗기는 억울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가족 내 ‘역할’을 수행하라는 메시지를 수락/용인한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나? 이미 비혼일 수는 없지만, 이혼도 쉽지 않은 기혼자이지만,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자’, 싸우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저항자로 산다는 것은 건강을 잃고 병든 몸을 얻게 된다는 말인가.

다니던 한의원을 가지 않기로 했는데 나는 다시 상실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혼자 화내고, 실망하고, 상실의 아픔을 겪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은 것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1주일 동안 잠들기 어려웠다. 상담 가서 상담자와 얘기를 나누고서야 좌절당한 기대에 대해 애도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 애도 기간을 거치면서 두 달 동안 지켜온 규칙적인 생활이 무너졌다. 그리고는 새로운 병원을 찾기로 했다. 면역에 이상이 생긴 몸은 근육과 무릎은 물론이고 피부 곳곳의 염증까지 내보이고 있다. 아쉬운 대로 동네 병원을 다니며 치료하고 있다. 하긴 그동안 너무 먼 병원에 다니느라 고되기도 했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른다.

<한 생명으로서의 스스로를 박탈하는 것은 강압적이고도 탈취적인 힘으로부터 그와 같은 형태의 권력을 박탈해내는 것>

온라인 상담을 하기 까지 이어진 고민과 온라인 상담을 통해 예훈 샘과 나눈 이야기까지 다 뒤엉킨 머릿속을 글로 펼치고 보니 너무나 길어졌다. 온라인 상담 말미에, 절망과 분노에 휩싸여 있었던 나는 비만 대사 수술을 하려고 대형병원에 상담을 받아보겠다고 했다. 더 이상 꾸준하고 성실하게 차근차근 하라는 메시지에 질렸다고 투덜거렸다. 그때 샘이 해준 말이 비틀어진 방향감각을 되살리는데 도움이 됐다. 어느 기관에서 만났던 한 청소년이 대사수술을 결정했지만, 수술 이후의 돌봄이 어려웠던 상황 때문에 수술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대사수술을 하는 병원은 아마 상담을 하면 수술 하라고 권하겠죠.”

이렇게 말하고는 지금 나를 살피고 기운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전신마취수술이라는 위험을 감당하려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한다는 일을 쉽게 생각했던 것은 말 그대로 무지 때문이었고, 요행을 바라며 대박을 노리는 한탕주의를 꿈꾸고 있었다는 것까지 알아채고 퍽 부끄러웠다. 수술 후의 내 몸을 돌보고 나를 꾸준히 챙길 여유가, 지금도 없는데 수술한다고 만들어질 리가 있을까. 결국 수술을 마음에서 지웠다. 예훈 샘과 온라인상담은 붕 뜬 나를 다시 땅에 내려놓은 것이다.

단식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굶는데도 돈이 든다니 속이 쓰리다. 단식투쟁으로 영감을 얻은 글쓰기는 단식에 돈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끝난다. 실로 건강한 삶에 대한 나의 욕망은 강력하고, 내가 밟고 서 있는 세상은 강압적이고 탈취적인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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