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 발족 축하 & 후원 캠페인 100조이 이벤트 ‘온라인 성 건강 상담’ 후기_최예훈(셰어 기획운영위원, 산부인과 전문의)

최예훈

안녕하세요, 셰어의 기획운영위원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최예훈입니다. 비록 이벤트로 진행되긴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셰어에서 진행하는 의료 상담의 첫 발을 떼는 것이기도 해서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는데요. 막상 림보님과의 상담은 온라인이라는 형식 자체가 주는 새로움에 더하여 그 내용도 진료보다는 ‘대화’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상보다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고요.

그래서 제가 이 경험을 왜 ‘대화’라고 느꼈을까 곰곰이 되짚어 보게 되는데요. 나아가 ‘대화’라는 것이 보통 평등한 관계에서 상대의 의견에 공감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의사소통방식이라고 할 때 환자와 의사간에 진정한 ‘대화’란 가능한가, 의료지식의 양적 측면에서 둘 사이에 항상 위계가 생긴다는 점은 대화를 궁극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어른-아이, 교사-학생처럼 어떤 관계에서는 분명 불가피한 위계가 있다는 것을 떠올릴 때, 우리가 집중할 것은 이미 존재하는 위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 조건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환자와 의사간 위계 차이를 만드는 의료지식은 우리 몸의 특정한 증상들과 징후, 변화에 따라 질병의 이름으로 편의상 분류된 것일뿐, 어떤 질병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슷한 증상을 경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거나 몸에 나타나는 변화들의 축적이 결국 의학이라는 거대학문을 만들어온 셈이죠.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질병의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는 통증으로 경험되는 증상은 매우 주관적이고 그것을 경험하는 정도와 양상은 각자가 모두 다릅니다. 잊기 쉽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진실은 우리 모두가 다른 몸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오랜 기간 의료지식을 습득하여 질병을 찾아내고 이름을 붙이는 것에 익숙해진 의사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을 인식하는 일이 어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질병을 족집게같이 찾아내는 것이 의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어왔죠.

실상 모든 의사는 환자로부터 배웁니다. 의사가 질병을 찾아내는 과정 역시 환자가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감정을 살피고 공감하면서 질문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겪고 있는 다양한 증상 경험을 통한 것입니다. 서로의 목소리, 말투, 제스처, 표정부터 단어 선택과 표현 습관을 포함해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며 소통하는 ‘대화’가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죠. 질병을 찾아내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성과일 뿐입니다. 환자의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미리 가정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성이라서, 청소년이라서, 이주민이라서, 성소수자라서, 장애인이라서 등 편견을 전제로 한 질문으로는 ‘대화’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런 노력들 가운데 환자 역시 안전함을 느낀다면 자신의 상태를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요구사항도 분명해지고, 그에 필요한 의료서비스도 보다 만족스럽게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은 환자와의 만남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보다 더 늦게 깨닫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료지식의 전달은 진료 영역의 아주 적은 부분일 뿐이고, 그조차도 ‘대화’가 전제되어야 그나마 겨우 전달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셰어는 이번 상담을 계기로 하여, 보다 많은 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매달 성 건강 상담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직접 만나거나 온라인을 통한 진료는 아니지만, 익명을 보장받을 수 있고 평소 의사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과 고민들을 상담할 수도 있습니다. 보내주신 사연이 많으면 한두 고민을 선정하여 매달 이슈페이퍼와 함께 실을 예정입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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