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투쟁하는 비/인간의 퀴어한 미래와 재생산 정의

이진화 (탈식민주의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자)

이 글에서는 먼저, 흑인 대상 경찰 폭력과 감염병 대유행이라는 사태가 교차하는 가운데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흑인 생명의 취약성을 살피며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의의를 짚어본다. 다음으로, 근대의 인간이 본디 흑인 배제적으로 형성된 개념이고 흑인성과 퀴어성은 언제나 이미 서로를 구성한다는 점을 다루며 흑인의 투쟁이란 비인간화하는 구조의 타파와 인간(중심)주의의 철폐를 동시에 바라보는 작업임을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비장애 비트랜스 백인 이성애 정상성에 종속된 규범적인 아이의 형상이 아닌 흑인 해방 투쟁의 대물림을 매개로 미래를 불러오는 방법을 일종의 대안적 재생산으로 상상한다.

치명적인 공중 보건 위기: 백인우월주의와 코로나19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1]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과 사법 부정의에 저항하는 흑인 주도 미국 대중 운동의 이름이자 구호다.[2] 흑인은 인간이다. 흑인은 시민이다. 이렇게 바꿔써도 된다. 세 문장 다 당연한 말처럼 보인다. 당연한 말이어야 한다.

이처럼 당연해 보이는 말이 (당연해야만 하는 말이) 절박한 구호로 등장해야만 했던 배경에 바로 처참한 반反 흑인 인종차별의 역사가 있다.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동산動産 노예제(chattel slavery)를 거쳐 짐 크로 법(Jim Crow Laws)에 근거한 인종 분리 차별을 지나 미셸 알렉산더Michelle Alexander가 새로운 짐 크로 체제라 일컫는 흑인 대량 수감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흑인은 온전히 인간이자 시민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다.[3]

아프리카에서 뿌리 뽑혀 미국 땅으로 실려 오는 과정에서부터 상품이자 재산으로 소유되고 거래되었다. 노예제 종식 이후에도 이른바 합법적 차별 속에서 체계적으로 보편적 기본권을 박탈당했다. 이는 흑인 커뮤니티의 오랜 빈곤화, 쇠약화, 범죄화로 이어졌다.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의 타격도 가장 심각하게 받고 있다. 의료 서비스 접근이 안 되다시피 하는 환경에서 생활하며 이미 기저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은 데다가,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저임금 필수 업종 종사자 비율도 높기 때문이다. 과밀한 주거 공간과 심각한 대기 오염이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더 많이 처해있다.[4]

지난 오월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과잉 진압 살해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집회-시위가 열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산의 우려 속에서였다. 그러나 천이백여 명의 보건 의료 전문가와 감염병 전문가는 연대 성명을 발표하여 백인우월주의 자체가 코로나보다 더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코로나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치명적 공중 보건 문제라고 못 박았다.[5] 흑인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의해서나 코로나에 의해서 남들보다 쉽게 병들고 죽음을 맞는 현실을 나중에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Black Lives Matter 시위에 나선 보건의료인들의 행진
사진 Michael Ciaglo/Getty Images
출처 : https://www.axios.com/black-lives-matter-protests-coronavirus-science-15acc619-633d-47c2-9c76-df91f826a73c.html

전문가들은 되도록 집에 머물고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당국의 지시에 반대하며 중무장 상태로 미시간 주 의사당에 난입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시위와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흑인 주도의 집회-시위는 차원이 다르다고 보았다. 전자는 공동체 내 코로나 확산세를 강화하여 궁극적으로는 가장 취약한 흑인 구성원의 건강을 위협하게 되는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나, 후자는 그와 같은 무책임한 행위를 비롯하여 경찰 폭력과 대량 수감까지 관통하는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 전폭적으로 지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집회-시위 참여 시 고려해야 할 “위해 경감harm reduction” 방법을 상세히 나열한다. 코로나를 핑계로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지 말 것, 비좁고 환기되지 않는 유치장이나 경찰차에 시위자를 가둬놓지 말 것, 호흡기 기능을 악화하는 최루 가스 같은 독성 물질을 사용하지 말 것 등 당국에 대한 요구도 포함되어 있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더라도 따라야 하나 코로나 시국이라 더욱 세심하게 지켜주어야 할 사항들이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이것은 코로나를 무릅쓰고 외치는 구호가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더욱 힘주어 외칠 수밖에 없는 구호다. 흑인이라서 앞뒤 맥락 없이 곧장 범죄자 취급받으며 경찰의 총에 맞거나 목 졸려 죽거나 감옥에 갇혀야 하는 상황과 코로나로 인해 다른 어떤 인종보다도 쉽게 고통받고 많은 수의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이웃을 잃어야만 하는 상황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시위대는 그걸 안다. 지지자도 그걸 안다.

버려져도 되는 생명이기를 거부하는 투쟁이다. 더 배고픈 몸, 더 아픈 몸, 더 치료받기 어려운 몸, 무엇보다 위협으로만 인지되어 너무나 손쉽게 처분되는 몸의 취약함을 만드는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꿔내려는 투쟁이다. “중요하다”의 원 표현인 동사 “matter”에는 물질과 실재와 내용 등을 가리키는 명사의 의미가 겹쳐져 있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말은 그러므로 흑인을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실질적인 몸의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흑인의 몸을 환영하지 않고 흑인의 현재를 중단시키며 미래를 빼앗는 백인 지배의 사회에 맞선 구호이자 운동이다. 재생산이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포함하여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잘 살아가도록 하는 모든 과정까지를 아우른다고 볼 수 있고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할 때 (사실상 물질적 삶의 유지와 연속이라고 할 때) 이 구호-운동은 흑인을 위한 재생산 정의를 구현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비/인간 퀴어성의 미래와 재생산 정의

미국은 유럽 출신 백인 정착민들이 선주민으로부터 약탈한 땅에 아프리카에서 수송해 온 흑인 및 그 후손의 노예 노동을 더해 자본을 축적하고 건국의 기틀을 다진 나라다.[6] 독립선언문(1776)은 모든 “사람”(당대 관행에 따라 남성 명사 “men”으로 인간 전체를 지칭한다)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생명, 자유, 행복 추구 등의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였는데 이러한 선언과 노예제가 양립하는 모순 속에서 흑인은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아니라서 권리로부터 배제된 게 아니라 권리를 박탈당함으로써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심지어 3/5 타협(1787)은 노예 수의 3/5만 과세 및 하원 구성 비율을 정하는 인구수로 간주하자는 것으로, 자유인이 백 퍼센트 온전한 사람이라면 노예화된 흑인은 3/5만큼만 사람임을 공식화한 결정이었다. 노예화된 흑인이 부분적으로만 사람이라는 뜻이니 결국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서구 근대의 인간 개념은 애초부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매개로 구축되었다. 문명/비문명, 이성/비이성, 도덕성/비도덕성과 같은 이분법이 유럽 백인과 아프리카 흑인 혹은 식민지배자와 피식민인에게 위계적으로 할당되었으며, 피부색과 같은 신체적 특징이 타고난 우월성이나 열등성의 표현형으로 간주되었다.[7] 유럽 백인을 인간의 표준이자 보편으로 설정하기 위해 다양한 비유럽 비백인 유형이 타자의 자리로 밀려났다. 표준과 보편의 생산과 재생산이 유럽 백인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원래 우열이 있어서 유럽 백인이 표준이자 보편이 된 게 아니라, 유럽 백인을 표준이자 보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표현형을 위계의 꼭대기에 놓고 나머지를 계층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과관계를 감추어 위계를 마치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규범적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백인의 몸을 기준으로 하므로 흑인성과 퀴어성은 분리되지 않는다. 흑인이 모두 현재 통용되는 정체성 범주로서의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같은 비규범적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담지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흑인이라는 범주 자체가 규범적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바깥에서 구성된다는 말이다. 외부 자극을 수용하여 발달 가능한 자를 문명인으로 구분해내고 그 문명인 내부에 다시 이분법적 성차를 도입해 자극에 대한 취약성을 여성 쪽에 할당하는 식으로 성차와 인종 범주는 맞물려 구성되었다.[8] 그러므로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구호-운동과 퀴어 정치의 접점은 단지 흑인 퀴어 존재의 긍정과 주체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식민성으로 구성된 근대성의 배제적 인간 개념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에 대한 발본적인 문제 제기를 가능하게 하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은 언제나 이미 퀴어 정치를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져야 하고), 퀴어 정치는 언제나 이미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구호-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여겨져야 한다).

이때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의 퀴어 정치는 보편적인 인간 개념의 배제적 구성이 저질러온 타자 인간성의 말살dehumanization에 저항하면서 기존의 인간(중심)주의humanism를 타파해야 하는 중층적 과제를 안고 간다. 흑인이 그간 부당하게 말살된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인간(중심)주의가 전제해 온 유럽 백인 남성 중심의 협소한 인간 개념을 다시 쓰는 작업이지만, 흑인이 인간으로 자리매김 한다고 해도 인간 자체의 배제적 구성에는 변함이 없다면 다른 생명과 환경은 계속 타자화되면서 결국 파괴적인 결말로 치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퀴어 비非-인간(중심)주의queer inhumanism의 지향에 주목하게 한다. 퀴어 비-인간(중심)주의는 인간 개념의 비인간적inhumane 요소를 비판적으로 지목하고 인간을 지속해서 재발명in-human 하는 데서 퀴어한 비-인간 되기의 의의를 찾는다.[9] 여기서 비-인간은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비인간 동식물 및 환경과의 상호의존성과 상호투과성 속에 몸을 맡기고 자기 경계를 의심하기를 멈추지 않는 대안적인 존재다. 

  

동산노예제 하에서 노예화된 흑인의 자녀는 흑인 가계를 이어갈 후손이라기보다 주인의 재산이었다. 제도적 인종 분리 차별과 표면적 양상만 달라졌을 뿐 역시나 인종 분리 차별인 지금의 반-흑인 경찰 폭력과 대량 구금은 흑인 자녀의 삶에서 흑인 부모를 갈라놓고 흑인 자녀를 흑인 부모로부터 앗아간다. 빈곤층 흑인 어린이와 청소년 중 상당수는 가난한 가정과 학교에서 자라 보살핌과 교육을 받기보다 공권력에 의해 규율되고 통제된다.[10] 정신 질환이나 발달 장애를 가진 흑인은 조력을 받는 대신 진압되고 구금된다.[11] 흑인은 수감률이 가장 높은 인종으로 흑인 수감률은 백인 수감률의 약 다섯 배에 이른다.[12] HIV 신규 감염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구 집단이기도 하다.[13] 흑인 산모(및 미국 선주민 산모)의 사망률은 백인 산모의 사망률보다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다섯 배까지 높다.[14] 트랜스젠더 여섯 명 중 한 명이 수감 경험이 있는데 흑인 트랜스젠더의 경우 두 명 중 한 명꼴이다. 이들은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에 따라 시설에 갇히고, 트랜지션에 필요한 의료적 조치에 접근하지 못하며, 간수와 다른 수감자들이 가하는 성폭력에 노출된다.[15] 혐오 범죄의 성격을 띠는 살해 사건 희생자의 대다수가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이다.[16] 이는 앞서 지적한 흑인 커뮤니티의 빈곤화, 쇠약화, 범죄화가 드러나는 구체적인 모습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의 재생산 정의를 이룩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재생산 정의를 이야기할 때 무작정 낳으라고만 하지 말고 낳아 기를 환경부터 조성하라고 이야기한다.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을 구분하는 식으로 재생산권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임신과 출산과 양육은 사회가 관리 감독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 같이 책임져야 하는 작업이라고 이야기한다. 반-흑인 인종차별이라는 죽음 정치가 흑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수명을 단축한다면 그것의 철폐 없이 재생산 정의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흑인 인종차별 철폐의 퀴어 정치는 흑인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폭력에 낱낱이 대항한다. 살아 숨 쉬는 흑인의 몸을 계속 살아 숨 쉬도록 하고자 한다. 지금-여기의 흑인과 앞으로 올 흑인이 멀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고 현재를 통과해 미래에 닿을 가능성을 확장한다. 어떠한 흑인도 여기서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모든 생명은 중요하다”는 말이 흑인을 표적으로 한 죽음 정치에 저항하는 흑인 해방 운동의 취지를 무시한다면 “모든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말은 흑인의 존재를 매개하는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유무, 계급, 이민 지위 등의 조건에서 어느 범주도 비가시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든 생명은 중요하다”는 구호는 다시금 흑인 생명의 중요성을 무력화하지만 “모든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고 외치도록 만든 구조적 인종차별이 언제나 이미 다른 억압 기제와의 결합 속에서 작동해왔음을 인정하고 그러한 복합적인 권력 망의 어떤 매듭도 놓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흑인 중 누구도 전체 흑인을 과잉대표하지 않도록 하자는 선언이다.

지난 유월 십오일 뉴욕의 브루클린 박물관 앞 광장에서는 “흑인 트랜스젠더의 생명은 중요하다” 집회가 열렸다. 만오천여 명의 사람이 모여 흑인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끊임없이 폭력에 희생되는 현실에 공분했다. “흑인의 삶은 중요하다”는 구호 안에 흑인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흑인 장애계도 흑인의 표상에서 장애인의 존재를 지우지 말라고 요구하며 “흑인 장애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Black Trans Lives Matter 집회 사진
사진 Stephanie Keith / REUTERS
출처 https://www.democracynow.org/2020/6/16/imara_jones_black_trans_lives_matter

투쟁의 재생산과 미래의 가능성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가 얻어내고자 하는 변화는 재생산 정의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재생산 정의는 재생산이 필요하니 그것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재생산을 고민하고 실천할 조건이 모두에게 저마다의 특성에 따라 충분히 주어지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려되는 미래는 백인 중심의 이성애 규범성이 지상 목표로 하는 아이—정상성을 담지한 후세대—가 성장하고 살아갈 시간과는 다르다.[17] 흑인이 온전히 인간인 시간, 인간이 더는 생명을 지배하고 착취하지 않는 다른 삶의 양식이 가능한 시간이다.

미국은 노예제를 폐지하고 민권법을 제정하고 적극적 우대조치를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반-흑인 인종차별 타파의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 왔다. 그러나 많은 흑인 활동가와 연구자가 지적하듯 경찰 폭력과 대량 수감이 현대판 노예제이자 최신판 분리 차별 체제로 기능하고 있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의 주요 요구 중 하나가 경찰 폐지-감옥 폐지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곧 노예제를 폐지하라는 요구의 현재 버전이다.

60년대부터 흑인 해방 운동에 앞장서 온 페미니스트이자 대표적인 감옥 폐지론자인 앤절라 데이비스Angela Davis는 신자유주의적 감옥 산업 복합체가 빈곤층 흑인의 범죄화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비틀린 현실을 맹비난하며 응보적 사법이란 폭력을 재생산하고 죽음을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한다.[18] 경찰과 감옥의 개혁이 아니라 폐지여야 하는 이유는 개선된 노예제가 어불성설인 것과 같은 이유이다. (미국에서 현재의 모습과 같이 제도화된 경찰은 사유재산과 수송 물자의 보호 목적 또는 도망 노예 체포 및 흑인 반란 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경찰력을 그 기원으로 한다.) 경찰 폐지-감옥 폐지는 반-흑인 인종차별의 완전한 철폐를 위한 선결 과제다.

데이비스는 짧은 기고 글이나 연설문을 종종 흑인 해방 운동의 동지이자 자칭 “이십 세기 도망 노예”[19]인 아사타 샤쿠어Assata Shakur의 말로 매듭짓는다. 구조적인 흑인 차별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고 “테러리스트”로 명명되고 미연방수사국 요주의 지명 수배자에 포함되는 경험을 공유하는 동지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목소리에 목소리를 얹고 이전에 말해진 것을 지금 다시 되살리며 미래를 소환한다.

“계속하라/ 아이들에게 물려주라. 계속하라… / 자유를 향하여!”[20] 샤쿠어의 자서전에 실린 “전통”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투쟁에 함께 하는 것은 내 조상들의 명령이다. 젊은이들은 정치적으로 억압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21] 샤쿠어가 공개서한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샤쿠어가 호소하고 데이비스가 증폭하는 것은 다름 아닌 투쟁(만)이 마련해낼 미래의 가능성이다.


[1]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로 옮기기도 한다. 한편,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소중하다”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후자처럼 하면 흑인 생명의 중요성이 중요한 생명의 기존 목록에 사후적으로 추가되는 모양새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해당 운동에 관심을 가진 (해당 운동을 한국 사회에 알리고자 노력해온) 한국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었다. 원문인 “Black Lives Matter”는 “또한”을 나타내는 부사어 없이 오직 주어와 동사로만 이루어진 말이다. 다른 인종의 생명 못지않게 중요하다/소중하다는 차원에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소중하다”고 옮기기보다 흑인의 생명이 그 자체로 중요하다/소중하다는 의미에서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소중하다”고 옮겨야만 그 선언적 함의가 살아난다. 흑인은 인간이다. 흑인은 시민이다. 이렇게 바꿔 쓸 수 있다고 적을 때도 일부러 “흑인도”라는 말이 아닌 “흑인은”이라는 표현을 선택했다. 

[2] 탈집중형 운동인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의 공식 웹사이트: Black Lives Matter, https://blacklivesmatter.com/.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를 비롯한 여러 흑인 운동 단위의 연대 기구인 M4BL의 공식 웹사이트: The Movement for Black Lives, https://m4bl.org/.

[3] Michelle Alexander, The New Jim Crow: Mass Incarceration in the Age of Colorblindness. 10th Anniversary Edition (New York: The New Press, 2020), Kindle.

[4] Dan Vergano and Kadia Goba, “Why the Coronavirus is Killing Black Americans at Outsized Rates Across the US,” BuzzFeed News (2020/4/10) https://www.buzzfeednews.com/article/danvergano/coronavirus-black-americans-covid19.

[5] Mallory Simon, “Over 1,000 Health Professionals Sign a Letter Saying Don’t Shut Down Protests Using Coronavirus Concerns as an Excuse,” CNN (2020/6/5) https://edition.cnn.com/2020/06/05/health/health-care-open-letter-protests-coronavirus-trnd/index.html.

[6] “The 1619 Project,” The New York Times Magazine (2020/8/14 ~)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9/08/14/magazine/1619-america-slavery.html. 뉴욕타임즈 매거진 기획 특집 시리즈로 탐사보도 전문가인 니콜 해나-존스Nikole Hannah-Jones가 이끄는 작업이다. 노예화된 아프리카 흑인이 현재 미국이라 불리는 땅에 최초로 도착한 해인 1619년을 미국 노예제의 원년으로 보고 지난해 그 사백 주년을 기념하여 시작되었다. 노예제의 후과에 대해 말하지 않고 미국의 역사를 쓸 수 없으며 흑인이 미국에 해 온 기여야말로 미국사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입장이 기조를 이루는 기획이다.

[7] Emmanuel Chukwudi Eze, “The Color of Reason: The Idea of ‘Race’ in Kant’s Anthropology,” in Postcolonial African Philosophy: A Critical Reader, ed. Emmanuel Chukwudi Eze (Cambridge: Blackwell, 1997), 103-40; Roderick A. Ferguson, Aberrations in Black: Toward a Queer of Color Critique,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3; Paul Gilroy, The Black Atlantic: Modernity and Double Consciousnes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5); Siobhan B. Somerville, Queering the Color Line: Race and the Invention of Homosexuality in American Cultur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0); Sylvia Wynter, “Unsettling the Coloniality of Being/Power/Truth/Freedom: Towards the Human, After Man, Its Overrepresentation–an Argument,” CR: The New Centennial Review (2003).

[8] Kyla Schuller, The Biopolitics of Feeling: Race, Sex, and Science in the Nineteenth Centur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17).

[9] Mel Y. Chen and Dana Luciano, “Has the Queer Ever Been Human?: Introduction to Queer Inhumanisms.” GLQ: A Journal of Gay and Lesbian Studies 21.2-3 (2015): 183-207.

[10] Libby Nelson and Dara Lind, “The School to Prison Pipeline, Explained,” Justice Policy Institute (2015/2/24) http://www.justicepolicy.org/news/8775.

[11]  Jasbir K. Puar, The Right to Maim: Debility, Capacity, Disabilit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17); Sarah Kim, “Black Disabled Lives Matter,” Teen Vogue (2020/7/3) https://www.teenvogue.com/story/black-disabled-lives-matter.

[12] Ashley Nellis, Ph.D., “The Color of Justice: Racial and Ethnic Disparity in State Prison,” The Sentencing Project (2016/6/14) https://www.sentencingproject.org/publications/color-of-justice-racial-and-ethnic-disparity-in-state-prisons/.

[13]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HIV and African Americans,” (2020/5/18) https://www.cdc.gov/hiv/group/racialethnic/africanamericans/index.html.

[14]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Racial and Ethnic Disparities Continue in Pregnancy-related Deaths,” (2019/9/6) https://www.cdc.gov/media/releases/2019/p0905-racial-ethnic-disparities-pregnancy-deaths.html.

[15] Lambda Legal, “Transgender Incarcerated People in Crisis,” https://www.lambdalegal.org/know-your-rights/article/trans-incarcerated-people.

[16] National Coalition of Anti-Violence Programs, “Hate Violence Against Transgender Communities,” (2017) http://avp.org/wp-content/uploads/2017/04/ncavp_transhvfactsheet.pdf; Human Rights Campaign, “Violence Against the Transgender and Gender Non-conforming Community in 2020,” (2020) https://www.hrc.org/resources/violence-against-the-trans-and-gender-non-conforming-community-in-2020.

[17] James Bliss, “Hope Against Hope: Queer Negativity, Black Feminist Theorizing, and Reproduction Without Futurity,” Mosaic: An Interdisciplinary Critical Journal 48.1 (2015): 83-98; Lisa Duggan and José Esteban Muñoz, “Hope and Hopelessness: A Dialogue,” Women and Performance: A Journal of Feminist Theory 19.2 (2009):275-83; José Esteban Muñoz, Cruising Utopia: The Then and There of Queer Futurity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2009; Carolyn Dinshaw, Lee Edelman, Roderick A. Ferguson, Carla Freccero, Elizabeth Freeman, Judith Halberstam, Annamarie Jagose, Christopher Nealon, and Nguyen Tan Hoang, “Theorising Queer Temporalities,” GLQ 13.2–3 (2007): 177 – 96.

[18] Angela Y. Davis, Are Prisons Obsolete? (New York: Seven Stories Press, 2003); Freedom Is a Constant Struggle: Ferguson, Palestine, and the Foundations of a Movement (Chicago: Haymarket Books, 2016)

[19] Assata Shakur, “Open Letter From Assata Shakur.” (1998/4/1) https://repositories.lib.utexas.edu/handle/2152/6046.

[20] Angela  Y. Davis, “From Michael Brown to Assata Shakur, the Racist State of America Persists” (2014) in Freedom is a Constant Struggle. 여기서 데이비스가 인용하는 샤쿠어의 시를 재인용했다.

[21] Angela Davis, “Feminism and Abolition: Theories and Practices for the Twenty-First Century” (2013) in Freedom is a Constant Struggle. 여기서 데이비스의 샤쿠어 인용 마지막 부분을 재인용하고 해당 부분에 이어지는 문장을 19번 주석에 적은 샤쿠어 서한의 원문에서 찾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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