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물어보셰어”를 시작합니다!

최예훈

셰어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여러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건강 상담을 문의해오는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5월에는 100번째 ‘조이(셰어의 후원회원)’ 달성 기념으로 한 분을 선정하여 온라인 성 건강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셰어에서는 보다 많은 분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성과 재생산 건강에 관련한 질문들을 받고 관련 상담 내용을 소개하는 칼럼 형태의 <무엇이든 물어보셰어>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번 이슈페이퍼에 실린 ‘재생산 건강을 위한 CHOICES 멤피스 센터’의 활동가이자 간호/조산사인 Nikia Grayson의 인터뷰에는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동의(Informed consent)’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Informed consent’는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 ‘고지된 동의’, ‘사전 동의’ 등 여러 용어로 번역되어 왔는데, 흔히 연명치료나 심리상담, 수술 및 입원과 같은 특수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의료인/의료기관이 혹시 생길 수 있는 의료사고나 소송에 대비하여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두려고 환자로부터 동의서를 받는 행위가 아닙니다. 인터뷰에서 Nikia Grayson이 언급했듯이, 의료행위에서의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동의’는 환자의 권리입니다. 즉 환자의 신체에 대한 자율성을 원칙으로 하여 스스로 의료적 결정과 치료를 선택하고 의료적 개입을 거절하고 동의를 철회할 수 있는 권리까지를 모두 의미합니다.

환자가 이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의료인과 분명하고 이해가능한 의사소통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의사소통 과정은 단순하지 않아서 상당한 시간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의료인은 프라이버시가 존중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서 환자가 편안한 시간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쉬운 용어를 사용하여 천천히 주요 핵심을 반복해가며 최대한 명확한 설명을 해야 합니다. 환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면 보다 전문적인 통역사와 함께 하고, 통역이 원활치 않다면 바디 랭귀지와 같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이나 시청각적 보조 도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잘 이해했는지를 재확인하는 과정까지 포함하여 의사소통에서 있을만한 거의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의료행위에서의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동의’입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의 여부를 떠나 분명한 것은 이런 훈련이 의학적 지식이나 기술 습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입니다. 의학에서 ‘정상’으로 유형화해온 비장애인 비트랜스젠더의 신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연령과 장애 유형이나 성정체성, 이주지위 상태 등 사회적 맥락을 포함한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몸에 배도록 반복 훈련되어야 합니다. 특히 산부인과에서는 질경, 질초음파와 같은 기구 사용, 자궁경부세포검사, 예방접종 등 성적 건강과 연관된 검사와 치료들이 시행되기 전에도 위의 ‘동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환자를 대할 때에는 또다른 신중함이 요구됩니다. 피임이나 임신중지 같은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시행함에 있어서 다른 의료 서비스와는 다르게 취급한다거나, 같은 의료행위에 있어서도 청소년이라서 혼인외 상태라서 장애인이라서 성노동자라서 등 어떤 이유로도 ‘동의’에 이르는 결정에 대해 비난하거나 달리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배려심이나 동정심 따위로 환자에게 베푸는 개인적인 선행이 아니라 의료인의 공적인 역할이고 의무로서 이해되고 훈련되어야 합니다.

의료행위에서의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동의’는 의료의 패러다임 전환, 즉 의료인이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처방을 내리는 가부장적인 의료(medical paternalism)에서 환자 개별의 자율성에 기초한 의료(patient autonomy)로의 전환 과정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환자 중심 의료(patient-centered care)’, ‘공유 의사결정(shared decision-making)’ 모델에서도 마찬가지로 환자의 자율성에 기초한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동의’에 대한 논의가 빠질 수 없습니다. 실제로 환자-의료인의 위계 차이를 만드는 의료지식은 우리 몸의 특정한 증상들과 징후, 변화에 따라 질병의 이름으로 편의상 분류된 것일뿐, 어떤 질병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선험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비슷한 증상을 경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거나 몸에 나타나는 변화들의 축적이 결국 의학이라는 거대학문을 만들어온 셈이죠.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질병의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는 통증으로 경험되는 증상은 매우 주관적이고 그것을 경험하는 정도와 양상은 각자가 모두 다릅니다. 잊기 쉽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진실은 우리 모두가 다른 몸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Nikia Grayson이 하고자 하는 ‘근거 기반의 전인적인 케어(evidence-based holistic care)’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른 몸을 가진 다양성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접근방식입니다.

실상 모든 의사는 환자로부터 배웁니다. 의사가 질병을 찾아내는 과정 역시 환자가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감정을 살피고 공감하면서 질문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겪고 있는 다양한 증상 경험을 통한 것입니다. 서로의 목소리, 말투, 제스처, 표정부터 단어 선택과 표현 습관을 포함해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며 소통하는 ‘대화’가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죠. 질병을 찾아내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성과일 뿐입니다. 환자의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미리 가정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성이라서, 청소년이라서, 이주민이라서, 성소수자라서, 장애인이라서 등 편견을 전제로 한 질문으로는 ‘대화’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런 노력들 가운데 환자 역시 안전함을 느낀다면 자신의 상태를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요구사항도 분명해지고, 그에 필요한 의료서비스도 보다 만족스럽게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은 환자와의 만남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보다 더 늦게 깨닫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료지식의 전달은 진료 영역의 아주 적은 부분일 뿐이고, 그조차도 ‘대화’가 전제되어야 그나마 겨우 전달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달 이슈페이퍼에 싣게 될 <무엇이든 물어보셰어>는 온라인 글 상담이라는 형식상의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용어와 내용들을 생산하는 것에 유념하면서 의료지식 전달의 일방 통로가 아닌 하나의 소통창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래의 링크로 상담하고 싶은 내용을 보내주세요. 성건강, 성관계, 피임, 임신, 임신중지, 성별 확정 케어(성전환, 트랜지션 등) 등 궁금하거나 고민되는 내용을 편하게 물어보시면 매월 하나의 상담 사례를 선정하여 셰어의 기획운영위원인 최예훈,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가 답변을 작성하고 셰어의 이슈페이퍼를 통해 공유할 예정입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상담 링크는 여기! https://forms.gle/NqDnTGc3iD9tP1cw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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