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인가?

최현정

셰어는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모든 사람의 성∙재생산 권리와 건강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꼭 필요한 내용을 담은 법안입니다. 지난 6월 30일에는 간담회를 통해 단체 활동가들과 법안을 공유하고 의견과 질문을 받았습니다. 간담회에서 몇 차례 나왔던 질문은 “왜 기본법인가?”였습니다. 즉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안이 아니라 기본법안을 제안하는 이유가 있는지, 법 체계상 적합한지,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었습니다. 조만간 셰어의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을 공개할 예정이므로 이슈페이퍼를 통해서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합니다.

그동안 셰어는, ‘임신중지의 전면 비범죄화’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일 뿐이며, 성∙재생산 권리는 의료, 교육, 노동, 사회복지 등 모든 생활 영역에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고, 이를 보장할 의무는 국가에게 있다고 지적해왔습니다. 동시에 국가는 인구정책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와 건강 보장’으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하며,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 나이 등을 이유로 권리가 침해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평등과 차별금지 원칙에 따른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관련 글 보기 – 나영, “이제 처벌 반대를 넘어 세상을 바꿀 때가 왔다. –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 제안에 부쳐”

한편, 성∙재생산 권리는 포괄적인 권리틀이므로 그 권리의 세부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선언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임신∙임신중지∙출산에 국한하지 않고 보장되어야 할 개인의 성∙재생산 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 나이 등을 감안하여 특히 더 강조되어야 할 성∙재생산 권리는 무엇일까요? 낙태죄가 존재하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그동안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권리가 성∙재생산 권리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성∙재생산 권리의 세부 내용은 무엇이며 어떠한 원칙에 따라 보장하여야 하는지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 원칙이 모든 생활 영역의 개별 법률과 정책에 반영되도록 촉구하기에 가장 적합한 입법 형식이 ‘기본법’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본법은 정책에 관한 기본적인 지침∙방향과 그것을 추진하기 위한 체계, 정부의 권한과 활동의 규준∙절차∙조직에 관하여 개괄적으로 규정하는 입법 형식입니다.[1] 기본법의 제정은, 그 분야 정책이 중요하므로 국가차원에서 중점을 두어 정책을 추진한다는 인식을 제시하고, 그 책무나 결의를 명확히 하면서, 법의 방향성과 지침에 따라 계획적∙종합적∙장기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국회의 구성이나 내각이 변경되더라도 정책의 계속성∙일관성∙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이념이나 제도의 형성과 정착을 도모하는 경우에는 그 제정을 통하여 사회에 대한 교육효과를 의도하기도 합니다.

현재 성∙재생산 권리와 건강에 관한 조항들은 여러 법률에 흩어져 규정되어 있는데 일관된 원칙이 없고, 차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에는, 임신 중인 근로자가 유산하거나 사산한 경우 그 근로자가 청구하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용자가 유산∙사산 휴가를 주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74조 제3항).[2] 그런데 이 조항에는 단서가 있습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 따른 ‘합법적’인 유산∙사산(인공임신중절)인 경우에만 휴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기존 ‘형법 낙태죄-모자보건법 허용사유’ 체계에서, ‘불법’으로 유산한 근로자에게도 휴가를 지원하라고 현행법에 규정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합법/불법에 따라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근로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임산부의 보호”라는 조문의 제목과 그 입법 취지에 맞는 합리적인 조항은 아닙니다.

모자보건법이 전면 개정되면 위와 같은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기본법이 필요합니다.[3]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의 지속과 출산에 중점을 둔 입법 목적에 따라,[4] 난임(임신 지원)과 산후조리(출산 지원)에 관한 조항이 대부분입니다. ‘모’와 ‘자’에 국한된 법률이라, 모성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 모성을 선택하지 않도록 강요 받는 사람(대표적으로 정신적 장애인), 자녀 출산을 의도하지 않은 성∙재생산 권리까지 담기에는 부적절합니다. 법명까지 전부 바꾼다고 하더라도, 기본법의 형식이 아닌 이상 앞에서 본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셰어의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은 성∙재생산 권리 보장의 목적과 기본이념부터 새롭게 규정합니다.

이 법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 및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등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개인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를 실현하는 것”입니다[제1조(목적)].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규정하는 것, 그럼으로써 “개인의” 권리 실현이 법의 목적임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기본이념은 “모든 사람이 가장 높은 수준의 성적 건강과 재생산건강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정확한 보건의료 정보와 최신의 보건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과 함께, “차별 없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평등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어야 함을 명확히 하였습니다[제2조(기본이념)]. “모든 사람은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를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과 누구도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등을 이유로 권리 보장에 있어 차별 받지 아니한다는 원칙도 명시하였습니다[제5조(평등과 차별금지)]. 이러한 원칙이 이후 다른 개별 법률에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에는 이 법의 목적과 기본 이념에 맞도록 하여야 한다.”는 규정도 두고 있습니다[제7조(다른 법률과의 관계)].[5]

이와 함께, 자기결정권, 건강권, 성적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 정보접근권 등 성∙재생산 권리 실현을 위한 대표적 권리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보다 세부적인 권리로, 월경, 피임, 성별 확정 및 성별 정정, 보조생식기술, 임신 출산과 임신중지, 포괄적 성교육과 관련한 권리들,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 지원의 원칙과 방향 등을 규정하였습니다.

기본법은 그 특성 상, 전체적인 정책 방향을 잡아주는 것으로서 그 역할을 합니다. 기본법이 단순히 선언적 규정으로 머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법 체제에 맞추어 개별 입법에서 구체적인 정책사항이 규율되어야 합니다.[6]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벌칙 조항을 통하여 이행을 강제하는 개별 법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셰어의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은 정부가 ‘성∙재생산 건강 심의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심의를 거쳐 5년 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하며, 관계 행정기관이 매년 추진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도록 규정합니다. 그동안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몇몇 분야의 경우, 너무 추상적인 원칙만 제시하면 이를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법 취지를 왜곡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규정을 두기도 했습니다. 포괄적 성교육의 원칙과 내용∙항목, 정신적인 장애∙나이 등으로 인하여 의사결정이 어려운 환자에 대한 의사결정 지원 절차 등은, 일반적인 기본법의 추상적 규정 형식을 넘어서 보다 자세히 규정하였습니다.

셰어의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 제안을 계기로,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 이후 우리가 요구해야 할 권리와 제도의 모습이 더욱 구체적으로 상상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박영도, ‘기본법의 입법모델연구’, 한국법제연구원, 2006, 이하 이 문단에서 기본법의 기능은 같은 글 24~34면 참조.

[2] 근로기준법 제74조(임산부의 보호) 

③ 사용자는 임신 중인 여성이 유산 또는 사산한 경우로서 그 근로자가 청구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유산ㆍ사산 휴가를 주어야 한다. 다만, 인공 임신중절 수술(「모자보건법」 제14조제1항에 따른 경우는 제외한다)에 따른 유산의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3] 현행 모자보건법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김선혜, 모성의 의무에서 재생산 권리로 : 모자보건법의 비판적 검토 및 개정방향 모색, 『이화젠더법학』제12권 제2호, 2020 참조.

[4] 모자보건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도모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5] 많은 기본법에 유사한 규정이 있습니다(예를 들어 「양성평등기본법」 제6조, 「보건의료기본법」 제9조 등). 우리의 법 체계 상 기본법과 개별 법률 관계는 총론과 각론의 관계와 같으며, 기본법이라고 하여 개별 법률보다 ‘상위’의 지위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헌법에는 기본법이 개별 법률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규정이 없고, 따라서 ‘법률’들은 모두 동일한 지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별 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기본법은 입법지침 또는 고려사항으로서 선언적 의미를 가지며, 관련 법률을 해석할 때 그 지침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에 관해서는 황승흠, ‘기본법체제에 대한 법학적 이해’, 『공법학연구』제11권 제1호, 2010, 249~255면 참조.

[6] 황승흠, 위의 글, 24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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