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바디 플레져랩] 성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 포괄적 성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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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정

정부에겐 유니콘 같은 ‘포괄적 성교육’

지난 8월 25일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에서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은 여가부의 ‘나다움을 찾는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에서 선정된 도서를 문제삼았다. “다양성, 공존, 개성존중은 동성 성행위와 트렌스젠더리즘 등 아직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문제적 성개념까지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교육하려는 일종의 언어적 포장일 뿐”이며 “이는 포괄적 젠더교육의 일환이며 결국 급진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급진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 반대운동”은 전세계적으로 성과 재생산권리와 성소수자 인권 증진 등에 반대하기 위해서 보수적인 카톨릭, 개신교계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슬로건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몇년 사이에 보수 개신교계 중심으로 회자되면서 약효가 떨어진 반공주의를 대체하는 역할도 하고,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에 크리스천 여성이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를 내부적으로 단속하며, 모든 인권이슈에 대응하는 중심 이데올로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슬로건이 이번 기회에 국회에도 입성한 셈이다.

김병욱 의원이 배포한 이미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삽화에서 성기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싶어져, 재미있거든”을 강조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김 의원의 질의에 “학교와 책의 비치 상황에 대해 파악해보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으며 다음날(26일) 여성가족부는 해당 도서를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9월 1일에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회수결정에 대해서 비판적인 질의를 하는 유정주 의원의 질문에는 어떤 방법으로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 여가부의 입장을 설명하지 못했고,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기가…”라고 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은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이며, 여성가족부장관의 무능의 이유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정옥 장관의 개인적인 무능을 당연히 넘어선다. 이 사태는 여성정책과 성평등정책이 인구에 회자될때, 정치적인 쟁점이 될때 반복되어왔던 문제의  반복이다. 여성이 차별과 폭력의 피해자를 넘어서려고 할때 ‘여성정책’은 무능하다. 노동시장의 성불평등 문제에 대해서 여성가족부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성차별과 성폭력의 피해자 지원 또한 국가 보호주의, 가해자 엄벌주의에 기대어 조금씩 확장되어왔을 뿐이다. 여성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고 있으므로 여성정책이 사회적 권리와 인권 이슈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좌절되어 왔다. 낙태죄 전면 폐지에 있어서도 여성가족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성교육의 문제 또한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이전 보수 정권 교육부가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탓하기엔 이번 사태를 통해서 보여준 여가부의 행태는 충격적이다. 사실 지난 4월 23일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안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올바른 성 가치관과 태도를 함양하는 포괄적 학교 성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바 있다.

이번 회수 사건은 포괄적 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 중에 하나인 ‘성에 관한 긍정적인 인식을 기른다’는 원칙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보수개신교계와 여성의당이 함께 공격하는 포괄적 성교육 원칙과 정신에 대한 명확한 입장없이 포괄적 성교육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조기성애화’ 개념이 공격하는 것은 누구인가

한편 이번 사태로 인해서 떠오른 키워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조기성애화’(premature sexualize)이다. 이 개념은 아동, 청소년, 혹은 학생에게 성교육을 할때 성기모양이나 임신의 방법으로 부부가 성관계하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거나, 성관계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성적호기심을 자극하여 성관계를 조장하기에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동원된다.[1] 성적 호기심을 증가시키고, 성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심어주어서 아동과 청소년이 성관계를 실행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 역시 보수개신교계  뿐만 아니라 여성의당 대표가 덴마크에서 출판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가 조기성애화를 부르며, 한국 실정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2]

책 [아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에는 소녀가 자신의 성기를 관찰하기 위해서 허리를 숙여 거울을 비춰보는 삽화가 담겨 있다.
이러한 장면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앎의 방식이 아닐까.

‘조기성애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들은 단지 아동을 성적 존재 혹은 성적 주체로 인식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서는 듯하다. 이 거부감이 아동성폭력의 원인으로 종종 잘못 지목되는 소아성애에 대한 공포와 결합하여 증폭될때 진정한 문제의 해결과는 멀어진다. 아동청소년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인식하고, 성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성적 실천을 실행하는 것이 결국은 성인 남성의 욕망을 채우는데 동원될 것이라는 우려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동청소년이 성관계에서 동의/거부를 표하기 어렵거나 관철하기 어려운 이유는 ‘조기성애화’와 관련이 없다. 이 두가지를 섞을때 돌아오는 것은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 동의역량의 박탈, 성건강 정보접근권 박탈이다. 또한 성적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낸 아동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반응과 처분은 비난과 제재로 남게 된다.  ‘N번방’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성범죄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났을때 비난받았던 ‘일탈계 소녀’ 가 처한 현실이 바로 이런 문제를 보여주었다. 성적 보수주의가 특정한 문화를 형성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화, 법제화 되었을때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국 성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이 범죄화되고, 이들이 피해자가 되었을때 정당한 보호를 철회당하고, 성건강이 위협받고, 삶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조기성애화’는 ‘보호논리’가 아니라 ‘공격논리’이다. 이 담론으로 공격받는 사람은 성적 권력/위계 위에 있는 이들이 아니라 정상성에서 벗어난, 규범에서 이탈한, 소수자들이다. 성적 권리가 보편적인 인권이 아니라 능력이자 특권이 될때 삶이 위태로워지는 존재들 – 선을 넘은 여성, 아동청소년,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노인 등- 과 정확히 겹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누구와 무엇을 할 것인가?

성적권리는 20:80의싸움인가 1:99의싸움인가

문득 성적권리를 둘러싼 권력구도의 양상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성적 권리를 둘러싸고 어떤 적대가 형성되어 있고, 어떠한 존재와 의제가 드러나야 하는지, 연대와 동맹의 조건은 무엇인지, 지배계급의 성격은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은 권리투쟁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분석일테고,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토론이 시작되어야 한다. 엉뚱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경제적 불평등을 둘러싸고 20:80의 싸움인지 1:99의 싸움인지를 두고 벌였던 논쟁을 떠올려본다. 신자유주의가 도래하고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20퍼센트의 사람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80퍼센트는 여기에 동원될 뿐이라는 설명이 회자되었다. 나아가 1:99의 도식은 2008년 금융위기에 저항하며 뉴욕 월가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확산됐다. 전세계 금융자본 1%가 사실상 모든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실패를 지적한다.[3] 나는 성적 권리는 남성과 여성 50:50의 싸움이라는 상상적 생물학에 기댄 손쉬운 주장에 반대하며[4], 20:80 혹은 1:99 논쟁을 참고하며, 훨씬 복잡한 대립구도를 떠올리고 다각적인 투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적 영역은 신성하기 때문에 성을 권리화하는 것조차 부정하는 보수/개신교 세력과 성적 영역은 민주주의와 관련이 없는 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쟁점이 되는 것을 회피하는 개혁세력,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적대로 설정하고 여성의 신체와 결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남성과의 성관계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대중들의 움직임 등이 있다. 공통적으로 이러한 관점들은 성적 영역을 인권이자 권리로서 다루지 못하게 하는 문제점이 있다. 성적 영역 안에 권력, 차별,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누적되어온 억압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개인간의 노력 뿐만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권력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서 소수자와 약자가 세력화를 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서 개인적인 성공이 아닌 집단적인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낙태죄폐지 운동이 누가 언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지 국가로부터 ‘허락’받는 것을 반대하며 낙태죄를 존치시키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생명을 선별하면 관리해온 체계적인 권력에 도전하는 운동인 것처럼, 성적 권리는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국가권력에게 ‘보호’받을 권리를 넘어서야 한다.

여성가족부의 성교육책 회수 사건을 보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포괄적 성교육’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투쟁이 필요한가를 드러내고 실천하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면 ‘포괄적 성교육’을 쟁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포괄적 성교육’은 인권으로서의 교육받을 권리, 즉 교육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모두 주체로서 인정받고, 때로 갈등하며 기존의 규범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노동인권 교육이 노동자로서 주체성을 가지고 갈등관계를 이해하며, 부당한 억압에 맞서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처럼 성교육 또한 그런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성적 권리를 억압하고 침묵하고 역량을 박탈하는 세력을 투명하게 드러낸 것이 바로, 여가부의 나다움 책 전량 회수 사건이며 ‘조기성애화’라는 개념으로 포괄적 성교육을 공격하는 움직임이다.


[1] 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성관계를 조장하고 사회적 합의도 없는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권리라고 가르치는 여성가족부 ‘나다움어린이책’사업 중단을 환영한다!!’ http://www.forjustice.kr/67/?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4674959&t=board

[2] https://twitter.com/Rep_womensparty/status/1304714638991347713?s=20

[3] 장석준은 20:80 혹은 1:99 중 어떤 설명이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다 더 정확하게 드러내는가를 질문하면서 중간층이 복지동맹에서 분배에 기여하는 것을 그만두고, 무너지는 복지체제에서 이탈하여 자산가가 되길 추구하는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서 20:80의 대립구도를 다시금 가져온다. 또한 80% 안에는 소득이 적다는 공통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과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서 또다른 적대와 연대의 가능성들이 상존하며 이것이 계급투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71682?no=171682&ref=twit#0DKU

[4] 윤정원의 ‘섹스도 젠더도  스펙트럼이다’를 참고하라. http://srhr.kr/2020/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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