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사례를 통해 보는 임신중지 비범죄화 (2) : 공공의료 체계를 통해 무상으로, 안전하게 임신중지 지원하기

나영

지난 호에서 소개한 것처럼, 캐나다는 1988년 연방대법원의 ‘여왕 대 모겐탤러 사건’ R.(Her Majority The Queen v. Morgentaler) 사건 판결 이후 임신중지에 대한 어떤 법적 처벌도 없는 비범죄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판결을 통해 강조된 ‘불공평(unfair)’, ‘임의적 적용(arbitrary application)’, ‘신체의 안전(security of person)’의 원칙은 이후 사회 각 영역에서의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과 보건의료 정책, 의료 환경에서도 중요한 원칙으로 적용되어 왔다. 정부와 의료인은 임신당사자의 결정을 신뢰하고 특정한 조건이나 허용 여부를 따지는 대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살핀다.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은 의료적 조치와 사회경제적 지원을 포함하여 당사자에게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고려된다. 당사자의 동의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하며, 상담 과정에서는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방식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각 병원이나 클리닉의 의료환경, 의료진의 기술, 시설 등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병원과 클리닉이 임신 전 기간의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경우 타 병원이나 클리닉과 연계하여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유산유도제에 관한 현장과 정책의 변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번 호에서는 이와 같은 보건의료 영역을 중심으로 캐나다의 사례를 살펴본다.

캐나다의 의료보장 체계와 원칙

캐나다에서 임신중지 지원은 연방정부의 캐나다 보건법 Canada Health Act 에 따른 보편적 의료보장 체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캐나다 보건법은 공적 운영, 포괄성, 보편성, 보유이동성, 접근성을 준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주정부의 보건의료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을 지원한다. 이 5대 원칙에 따라 주정부의 건강보험은 비영리 공공기관에 의해 운영되고, 필수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보험 급여가 이루어지며, 모든 건강보험 가입자는 동일한 보험 급여를 보장받는다. 그리고 다른 주나 다른 국가로 이전한 주민도 일정 기간 동안은 기존 주의 건강보험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또 모든 건강보험 가입자는 보건의료 기관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는다. 개별 주 정부가 의사협회와 협상하여 결정된 필수 보건의료 서비스의 영역에서는 전 국민이 본인 부담금 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보험 보장은 크게 세 개 층위로 나뉘는데 전적으로 공적 재정으로 지원되는 필수 의료 서비스는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를 포괄하고, 처방약이나 홈케어, 장기요양, 정신질환 등은 공적 재정과 민간보험, 일부 본인 부담금으로 지원된다. 그리고 치과, 안과 치료와 대체의학, 외래 물리치료는 주로 민간보험과 환자의 본인 부담금으로 이루어지고 저소득층의 경우 공적 지원을 제공한다.[1] 이러한 공공의료 보장 체계 하에서 유산유도제를 포함하여 임신중지에 필요한 의료 서비스도 기본적으로 무상으로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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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에 대한 의료적 지원

임신중지 지원은 병원과 클리닉에서 모두 받을 수 있다. 다만 병원, 클리닉마다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나 시설이 다르기 때문에 임신 주수에 따라, 유산유도제를 이용할지 수술을 할지 등에 따라 임신중지 상담 서비스를 통해 정보를 파악하고 가면 된다. 캐나다 연방정부에서는 1992년에 모든 주와 모든 개별 지역에 최소 1개 이상의 임신중지 클리닉을 두도록 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브리티시 컬럼비아 여성병원 BC Women’s Hospital의 경우 임신 24주+6주 정도까지 수술적 방법으로 지원하고, 그 이상은 약물을 이용한 유도분만으로 진행한다. 이 병원의 여성건강연구소 Women’s Health Research Institute를 이끌고 있는 웬디 노먼 Wendy Norman은 캐나다 전역에서 수술적 방법을 통한 임신중지의 3분의 2는 가정의가 시행하는데 대부분은 임신 12주에서 14주 정도까지 지원하며, 임신 24주 이후  임신중지의 경우에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병원이 아주 적어서 의료인의 교육과 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부분(89%)의 여성들도 임신 초기에 임신중지를 하기 때문에 중기 이후까지 가는 경우(연간 0.7%)는 산모나 태아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 임신 사실을 너무 늦게 발견한 경우, 사회경제적 여건이나 의료기관 접근성 문제 때문에 일찍 병원을 찾아가기가 어려웠던 경우 등에 해당된다고 한다.[2] 이 병원에서는 임신 24주 이후의 후기 임신중지도 지원하기 위해 법률팀, 사회복지사, 환자를 연계한 주치의, 산부인과 과장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연다. 태아의 상태와 임신한 여성의 건강 상태,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의료적 시술 방향과 사회복지 등 지원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다. 한편 입양기관, 아동복지 기관과의 연계나 선주민 지원 프로그램, 난민/이민자 지원 프로그램,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웬디 노먼이 피임과 임신중지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임신중지 지원 과정은 사전 상담을 통한 정보제공과 동의 확인, 약물 처방이나 시술, 사후 상담과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경우 2017년부터 임신중지 후 자궁 내 피임장치 시술을 하는 경우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하여 임신중지를 한 여성의 60%가 자궁 내 피임장치 시술을 택했고, 그 결과 반복적으로 임신중지를 하게 되는 비율이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유산유도제-도입 1년 만에 불필요한 규제 절차를 모두 폐지하기까지

캐나다의 유산유도제 적용 과정은 특히 주목해 보아야 할 사례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들의 적극적인 근거 제시로 도입 1년만에 약물 사용에 관한 불필요한 규제 절차가 모두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2015년에 미페프리스톤을 승인하고, 2017년부터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패키지인 미페가이미소 mifegymiso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미페프리스톤이 공급될 때에는 별도의 교육과 인증을 받고 제조사에 등록한 의사만이 처방전을 줄 수 있었고, 임신중지를 하려는 여성은 의사가 보는 앞에서 약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웬디 노먼을 비롯한 의료인들과 연구진이 현장의 사례와 임상경험을 모으고, 약국, 가정의, 임상간호사, 의사 등 150명을 인터뷰하여 정부에 월례보고서를 제출하며 비디오 컨퍼런스를 개최한 결과, 불과 11개월만에 정부는 관련 규제들이 모두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지금은 산부인과 전문의 외에도 임상간호사, 가정의 등도 처방전을 발행할 수 있고, 임신중지를 하고자 하는 여성도 처방전만 있으면 약국에 가서 약물 복용에 필요한 정보를 듣고 몇 개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한 후에 약을 받을 수 있다. 처방 받아서 구입한 약을 먹을지 안 먹을지, 언제 먹을지는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복용 후 경과나 증상 등은 병원과 약을 구입한 약국 어디에서든 상담과 연계지원이 가능하다. 2019년에는 처방 전 초음파 검사 의무도 삭제되었다.

건강보험 체계에 따라 임신중지가 무상으로 보험 지원이 되기 떄문에 유산유도제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웬디 노먼은 캐나다의 미페가이미소 공급가가 캐나다 달러로 360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유산유도제의 보험 적용이 접근성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유산유도제의 도입과 접근성 확대는 가까운 지역에서 임신중지를 위해 병원이나 클리닉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많은 여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유산유도제 도입 전에는 임신중지 지원이 가능한 대부분의 병원이나 클리닉이 미국과의 국경 지대와 가까운 지역이나 도시 쪽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유산유도제를 도입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대신 가장 가까운 병원과 클리닉에서 제공이 가능하도록 처방 가능한 의료인을 확대한 결과 이제 훨씬 많은 여성들이 이른 시기에 유산유도제를 이용하여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사자의 동의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하는 상담과 정보 제공 과정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상담과 정보 제공, 당사자의 충분한 이해에 입각한 동의(informed consent)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원칙은 당사자의 의사결정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며, 임신중지 이전- 진행과정-이후의 전 과정에 걸쳐서 필요한 정보와 자원 연계를 진행한다는 것, 당사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종합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임신중지 가이드라인[3]에서는 당사자가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파트너나 가족의 영향, 연령, 교육수준, 경제적 상태, 이전의 임신 경험, 종교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상담사는 이러한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면서 당사자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원 방향을 제공한다. 만약 학대나 폭력 상황에 있다면 임신중지에 있어서 이러한 상황들의 위험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약물을 이용한 방법과 수술적 방법의 비교, 각 방법에 따른 조치, 후유증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임신중지 후의 피임이나 성매개 감염 예방에 대한 상담 등도 사후 상담의 내용으로 포함된다.

상담과정에서 사생활 정보 보호와 그에 관한 권리

상담을 받은 후에는 동의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필요한 경우 부모나 후견인의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당사자 외에 제3자의 동의는 의무로 요구되지 않으며, 동의 역량의 기준이 되는 일괄적 연령 기준이나 지적 수준에 대한 기준 또한 없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다고 해도, 지적장애가 있다고 해도 사람마다 이해수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나이나 지적장애 여부가 아니라 자신이 받을 의료행위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받고 이해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고, 당사자의 이해수준에 맞추어 이를 제공할 책임은 의료인에게 있다. 각 주에서는 이와 같은 당사자 동의의 원칙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당연히 당사자의 동의 없이 부모 등 타인에게 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연재를 마치며

2020년을 3개월 남겨둔 지금, 정부는 갑자기 ‘낙태죄’의 개정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의 사례가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임신중지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없을 때, 사회 전반적으로 더 적극적인 노력이 시작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전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정부에 요구해왔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여성에게 처벌로서 전가해 온 역사를 끝내고,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법과 정책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고. 성적 차별과 낙인, 사회경제적 여건, 장애나 질병, 학교나 직장에서의 불이익이나 연령, 지역, 언어, 국적 등의 조건이 삶의 여건을 좌우하는 사회를 변화시켜야 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 처벌과 허용 수준을 정하는 것으로 또다시 손쉽게 손을 떼려 할 것이 아니라 성적 건강과 권리,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할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법 마련, 국가 차원의 종합계획 수립, 정부 각 부처 간 연계 체계 마련, 보건의료, 교육, 노동, 사회복지 등 전 영역에서의 실질적인 변화와 지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국적인 의료 접근성의 개선, 의료인 교육과 훈련 등 1988년부터 시작된 캐나다의 노력도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2020년인 지금,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그 노력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야 한다.


[1] 이상 언급한 캐나다의 의료보장 체계에 대해서는 이주연, ‘캐나다 토론토 탐방기 ; 보편적 건강보장 체계의 탄생과 현재’, <시민건강이슈> 2018.10. 시민건강연구소. 참조.

[2] 통계는 아래의 자료 참고.

Statistics-Abortion in Canada, Abortion Rights Coalition Canada, Updated March 27, 2020

https://www.arcc-cdac.ca/wp-content/uploads/2020/07/statistics-abortion-in-canada.pdf


[3] <Best Practice Guidelines for Abortion Care : Province of B.C.>, BC Ministry of Health,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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