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보호’를 거부한다

김정혜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연구위원

9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맞아 여성계 원로 100인이 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선언을 했다. 선언을 보도한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여성의 제일 좋은 훌륭한 일은 출산과 육아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국가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인구 증가가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분석 결과 피임을 보급하고 인공임신중절 허용범위를 확대했고, 인구 감소가 경제적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견에는 출산율을 높이는 데 용하다는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경제 위기의 해법은 다른 데서 찾아야 마땅할 것 같기는 하지만, 여하튼 국가에게 인구는 ‘조절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인구정책 속에서 여성은 ‘가족계획도 안 하고 애만 많이 낳는 짐승’이 되었다가 ‘애도 안 낳는 이기적인 여자’가 되었다가 했다.

아직도 명절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 생애주기를 듬뿍 담은 인사를 품고 온다. 대학은. 취업은. 결혼은. 좋은 소식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훌륭한 일’이고 ‘좋은 소식’이다. 어떤 여성에게는 그것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누군가는 평생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 어떤 여성은 원하더라도 사회가 부정한다는 사실은, 침묵된다.

여성의 일차적 위치를 어머니에 두는 단어가 ‘모성’이다. 모성의 사전적 정의는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ㆍ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다. 여성은 어머니가 되기를 원할 것이고, 또 마땅히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 국가의 모성보호 정책도 세워졌다. 오랫동안 여성노동자는 ‘잠재적 어머니’ 집단으로서 노동 관계 법률에서 강제로 보호 당했다. 이제 ‘저출산’ 시국에서 모성보호 정책은 노력해서 임신하고,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만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여성은 어머니가 될 ‘의무’를 진다.

임신에서 출산으로, 육아로 이어지는, ‘어머니 되기’에만 집중하는 정책은 사람들이 생애 동안 직면하는 수많은 필요와 욕구를 놓친다. 여성들과 남성들, 그리고 이분법적 성별로 대표되지 않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부모가 되는 것 말고도 많다. 자신에게 맞는 피임법이나 성매개감염의 예방 및 치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접근가능성을 확보하는 것, 원치 않는 임신을 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 것,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면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하고 사후 관리를 받는 것, 평등하고 안전한 관계를 맺는 것, 피임이나 성관계에서 실질적 협상력을 확보하는 것, 강요당하지 않고, 파트너와 함께 또는 혼자서 그리는 삶의 전망 속에서 자녀를 계획하는 것, 생식력 손상의 우려가 없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것, 나이나 장애, 언어의 제약 없이, 성과 재생산 관련 정보에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고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는 것, 완경 이후의 건강 관리에 대한 정보와 서비스 접근가능성을 확보하는 것, 성과 재생산 관련 진료가 필요할 때 이용가능한 의료기관이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의료기관 이용에서 차별이나 낙인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인구 증가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더구나 모성보호 정책은 임신, 출산을 하고자 하는 이들을 모두 포괄하지도 못하고 있다. 중증 신체장애인이 임신, 출산을 하고 안전하게 자녀를 양육할 수 있으려면, 장애 특성에 맞는 의학적 정보와 의료 서비스, 그에 대한 접근가능성, 양육 지원 체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장애인이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시설로 격리되지 않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 평등하고 안전한 성관계가 가능한 조건도 필요하며, 장애를 이유로 피임이나 인공임신중절을 강제당하지 않을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비혼인, 성소수자가 자녀를 가질 수 있으려면 ‘비정상적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려 한다는 비난이나, 자녀에 대한 차별과 낙인의 우려가 없어야 한다. 한국어나 음성 언어 소통이 어려운 사람이 안전하게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하려면, 의료 서비스에 있어 각자에게 적합한 방법의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률혼 관계의, 이성애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자녀라야 행복하다는 ‘정상가족’의 지향 속에서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비혼인, 저소득층, 비정규직 등등 어떤 집단의 임신, 출산은 애초에 선택불가능한 일이거나, 환영받지 못하거나, 없는 듯 외면당한다. 보호되는 모성은 따로 있다.

우리나라의 모성보호 정책을 담은 「모자보건법」은 임산부·영유아·미숙아의 건강 관리, 난임 지원, 산후조리업 관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생산권 보장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은 모성보호나 모성권이 아닌, 성적 권리와 재생산의 권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국가가 원하는 ‘정상적인’ 모성 말고도, 국가가 보호해야 할 것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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