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즐겁고 안전한 성교육을 향해 – 셰어 성교육 참여 후기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자원활동가(띵가띵가) 희정

‘콘돔’ 이상의 성교육이 필요해!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운영하는 종로의 ‘띵동포차’. 10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띵동포차에는 떡볶이도 있고, 보드게임도 있고, 콘돔도 있다. 콘돔은 식사와 게임만큼이나 청소년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물품이기 때문이다. 포차에 방문한 청소년이 메뉴판의 콘돔란을 체크하면 자원활동가는 넉넉한 양의 콘돔과 젤을 건넨다. 건네며 콘돔을 사용하는 방법은 알고 있는지, 관계시 콘돔을 사용하자고 요청하는 데에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콘돔 사용 외에도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안전과 즐거움을 추구하기에 고민은 없는지를 함께 이야기하곤 했다.

<성은 안전하고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는 명제에 공감한다. 깊이 공감하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성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전과 즐거움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으며, 더 행복한 성생활을 지향하려면 어떤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컸다. 청소년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원활동가로서 ‘콘돔이 필요한지’ 묻는 것 이상으로, 그이의 성과 일상에 관해 이야기 나눌 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이 필요했다. 또한 청소년이 스스로도 자신의 성 생활의 안전과 즐거움을 지향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자료는 이성애 중심적이고 성별 이분법을 전제로 하고 있어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교육 자료들이 다수였다. 내용도 뻔했다. 편협하게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여성과 남성 간의 재생산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반反-성폭력으로서의 안전한 관계 맺음이 중요하다고 막연하게 선언하여 구체적 설명이 빠진 교육 자료들이 다수였다. 그 말인즉슨,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지식에는 접근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정보들마저 파편화되어 있었다. 안전의 이슈는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논의할 수 있었으나, 즐거움의 이슈는 또래 커뮤니티 내에서의 사적 물음으로 간간이 해결해야 했다.

안전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원칙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콘돔을 착용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협소한 행위를 넘어서서 어떻게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건진 알기 어려웠다. 나는 궁금하고 답답했다.

셰어와 함께한 새로운 성교육 시간

지난 10월 10일, 셰어에서 준비한 성교육에 참여했다. 일정이 잡히고 나서부터 줄곧 교육일을 기다렸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성교육이 기다려지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이때까지 접해온 성교육과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덕분이었다. 지금부터는 참여했던 각 교육들에 대해 나누어 보려 한다.

교육 1) 다양한 몸 이해하기

교육을 시작하며 참여자들은 “내가 생각하는 여성 또는 남성 또는 사람의 몸”을 그려보았다. 주제를 듣고 내가 맨 처음 떠올린 상은 성별이분법에 기반을 둔 정형화된 여남의 신체였다. 이상화된 여남의 몸과 완벽히 일치하는 몸을 가진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할텐데도, 그런 몸이 아니라면 어떤 몸이 보통 사람의 몸인지 생각해내기가 어려웠다. 참여자끼리 그림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꽉 막힌 생각을 하고 있단 걸 깨달았는데, 각 참여자들이 그린 몸은 다양했다. 나처럼 전형적인 여성과 남성의 몸을 그린 참여자도 있었고, 몸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기능적인 몸을 그린 참여자도 있었고, 자신의 취향인 몸을 그린 참여자도 있었다. 성별, 연령, 키, 몸의 굴곡, 피부색 등 몸의 형태와 특징이 천차만별이었다. 다른 참여자와 같은 몸을 그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사람의 몸이 다양하다는 걸 서로의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을 나누고 난 뒤, 강의가 진행되었다. 강의자는 과학적 지식을 통해 신체는 성별에 따라 완전히 구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성별에 따라 자연적으로 부여된다고 여겨지는 염색체, 생식기관도 성별에 따라 완전히 구분될 수 없으며, 다양한 형태로 형성됨을 확인했다. 그러니 생식기관에 따라 성별이 부여되고 젠더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연쇄적인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을 둬 비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강의는 다양한 몸 그리기로 시작하여, 생식기, 젠더 정체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해체하고 다양한 성과 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나 또한 내가 가지고 있었던 성, 몸, 젠더에 대한 생각들을 점검해볼 수 있어 기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성교육이 성별이분법을 전제로 하여 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에 반해, 성별이분법의 전제를 깨고 우리의 몸과 젠더는 다양하다는 논의부터 시작할 수 있어 참여자로서 편안한 교육 시간이었다.

교육 2) 인조이(Enjoy) 성적 권리 교육

섹스는 나와 할 수도 있고, 타인과 할 수도 있다. 다만 누구와 어떻게 하든 간에 즐거워야 하고, 안전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경험한, 내가 상상하는 섹스는 어떤가. 즐겁고 안전한가? 즐겁다면 어떤 단계에서,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질 때 즐겁고/즐겁지 않으며, 어떻게 안전을 추구하고 있는가? 더 안전하고 즐거운 관계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인조이 성적 권리 교육에서는 참여자가 경험하거나 상상했던 성관계와 그를 둘러싼 상황을 떠올려보고, 자신의 욕망들을 표현하며 각 상황에서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과 안전 수준을 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 평가의 방법은 다양했는데, 성관계의 즐거움 수준을 평가해 X축은 시간 Y축은 즐거움의 수준으로 구성된 곡선 그래프를 그려보거나, ‘감각여행’ 지도 위에 자신이 욕망하는 성관계와 상황들을 쓰고 그려보았다. 나는 마지막에 진행된 플레져미터 활동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이는 참여자들이 자신이 경험했거나 상상하는 성관계에서 7개의 영역-자기결정, 동의, 안전, 프라이버시, 자신감, 대화/협상, 신체적/심리적 만족과 즐거움 영역-을 평가하며 관계에서의 쾌락과 위험을 측정해보는 활동이었다. 플레져미터를 작성하다보면, ‘신체적/심리적 만족’ 요소 외의 6개 요소 또한 관계의 기쁨(pleasure)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플레져미터 점수를 체크하며 내 성 관계의 더 큰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개선 및 증진을 위한 조건과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감각여행> 지도는 자색고구미, 위티, 콘돔전시준비위원회에서 주최한
콘돔전시회에서 발표된 작품이다.

이번 교육처럼 즐거움을 중심으로 나의 성적 경험을 점검하고, 욕망을 표현해보는 건 생소한 경험이었다. 욕망은 나쁜게 아니라지만, 특히 소수자의 어떤 욕망들은 나쁜 것으로 치부되고 금기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거다’, 라는 막연한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나의 개별적 욕망을 탐색하며, 안전하고 즐거운 관계를 시도하기 위해 지향해야 할 방향과 방법을 함께 찾아나갈 수 있어 좋았다. 교육이 끝나고, 관계에서 나의 플레져 점수가 지지부진한 것을 보며 조금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걸 꺼내어 말하며 나누었기에 후련하고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오늘 나눈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시도해볼 나의 욕망들이 기대됐다.

교육 3) 게임으로 즐기는 STI 교육

STI 교육은 ‘섹시 빙고’ 게임을 통해 성적 건강에 대한 지식을 확인하고 알아가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섹스를 한다면 누구나 성매개감염이 생길 수 있고, 성매개감염은 누구와 섹스하는가보다 어떤 행위를 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일반적 사실에서부터 시작해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하고 치료할 수 있는지, 어떤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등 성적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섹시 빙고 낱말카드

성 건강에 대해 관심은 많았지만 찾아보기가 두려웠다. 나의 정체성과 성 경험이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사회 속 소수자에게 수용적인지 확인되지 않은 전문가 앞에서 완전히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기엔 심리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나의 정체성과 행위에 낙인찍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필요한 정보를 제시하는 건강 교육이 유용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특정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특정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 대신, 특정 행위를 추구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관계할 수 있다는 정보가 필요했고, STI 교육 시간은 내게 성 건강에 대한 그러한 방식으로 건네주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성교육이 필요한, 지금

한국 사회에 대안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새로운 성교육들이 시도되고 있다. 셰어의 성교육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참여자로서 셰어의 성교육은 편안하고, 자유롭고, 유용했다. 특정 몸과 정체성, 성적 욕망을 배제하지 않고 수용하되, 참여자가 교육 이후에도 학습한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안전하고 즐거운 관계를 추구할 수 있는 유용한 지식을 제공했다.

안전하고 즐거운 성 생활을 추구하는 데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 나의 욕망에게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내가 욕망하는 관계가 있음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성교육 시간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싹튼 나의 새로운 욕망이 반가웠다.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성과 욕망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셰어의 성교육에 지금, 당신도 참여해볼 수 있길 바란다.

One Response so far.

  1. 안녕하세요? 후원회원 김명륜입니다. 쉐어에서 진행하는 성교육에 진작부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예전에도 댓글남기고 답메일을 받았던 기억이… 혹시 이후에도 성교육이 진행될거라면 그 시기나 어떻게 참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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