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으로 나가는 여성들 – 성·재생산 권리와 주거권

임경지, 주거권 연구활동가

소주 광고처럼 여성 모델을 선호하는 광고가 있다. 바로 아파트 광고다. 당연히 성차별적이고 왜곡된 여성성을 강조한다. 대기업 프리미엄 아파트 광고에는 당대 최고의 여성 배우가 등장한다. 이처럼 집은 여성들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복부인’과 같이 전국적인 투기 열풍 속에 마치 여성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여겨왔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흑석동에 있는 상가주택 매입 과정에서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아내가 한 것”이고 “정말로 몰랐던 일”이라며 퇴임하면서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같은 현상들은 집으로 상징되는 가정경제와 가사관리의 책임자는 곧 여성이라는 것을 뜻하며 통상적으로 집은 안식과 휴식을 상징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일터이자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는 24시간 노동이 멈추지 않는 가혹한 공간이 된다. 다시 말해, 생산 기능과 구별되는 소비 공간이자 재생산 공간으로서의 교외지역(또는 베드타운)의 주거공간은 가부장적인 성별이분법을 전제로 하는 도시계획과 주택정책의 구체적인 산물이다.

여기에 더하여 모자보건법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가족계획사업은 표준적인 생애주기 기대와 맞물려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관리해왔다. 주택정책은 매우 노골적이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가족계획사업, 1970년대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국토이용관리법은 가족을 통치의 수단으로, 주택은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불임시술자에게 공공주택을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등과 같은 가족과 주택을 매개하는 정책들은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했다.

“부지런히 일하고 저축하면 집 없는 사람은 모두 자기 집을 갖게 되고 자기 차로 주말을 즐기며 여유있는 생활을 하게 되는 날이 10년 안에 실현되는 것이다.”  – 1972년 ’10월 유신체제’ 홍보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와 더불어 주거에 있어 전근대적인 생활양식을 개선하고자 본격적으로 아파트 건설과 이에 맞는 문화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시작한다. 1962년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6층 규모 총 6동의 단지형 마포 아파트 준공식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아파트는 단기간의 많은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정부의 의지를 구현하기에 적합한 건축물이자 근대화에 대한 갈망과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등 시민들의 편의를 충족하자 놀라운 전파 속도로 전국 곳곳에 건설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장 보편적인 주택 양식이 되었다.

아파트가 한순간의 열풍으로 끝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족 형태와 구조의 변화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도시화가 빠르게 전개되면서 도시로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청년들은 새롭게 가족을 구성했는데 이들은 정부의 가족계획사업에 맞춰 핵가족을 선호했고 아파트를 필두로 1970년대 이후 지어지는 다가구·다세대 주택 역시 핵가족에 적합한 형태의 평면을 가지게 되었다. 과거 조부모, 부부, 미혼 자녀와 같이 3대가 함께 살았던 것과 비교해 한 세대 당 거주하는 인원 수는 줄고, 가구 수는 늘어나자 도시의 주택부족 문제는 다시 대두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서 아파트는 계속 각광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1973년, ‘마이홈, 마이카’를 부르짖던 유신체제에서 모자보건법이 제정된다. 이은진(2019)이 지적하듯이,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판단 권한을 여성 자신이 아닌 산부인과 의사들에 사실상 전적으로 위임”한 것이었다. 정부의 인구관리정책에 부합하도록 여성들의 접근권과 선택권을 제한하는 정부의 정책은 주택정책에서 더 노골적이었다. 1970년대말, 불임시술자에게 우선적으로 공공주택 입주 기회를 부여하는 등 가족, 주택을 연계하는 제도들이 실시되다가 2000년대 이후 곤두박질치는 출생율을 높이고자 2008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신혼부부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특별공급’을 신설했다. 나아가 2013년 행복주택은 공공임대주택 내에서는 신혼부부에게 일정 물량을 제공하는 할당제를 실시한 첫 사례다. 또한 2017년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동안 아이를 낳을 경우 거주 가능한 기간을 늘려주는 방침이 도입되면서 주택 배분은 신혼부부와 신혼부부의 출생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이뤄지고 있다. 과거 산아제한과 상반되는 형국이다. 신혼부부 기준 역시 행복주택 도입 당시 예비신혼부부 포함 혼인신고 이후 5년 이내에서 7년 이내로 점차 증가했다.

정책의 목표는 달라졌어도 주택, 가족을 강하게 연계하고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논의할 때 여성의 몸을 지배하는 다양한 제도 역시 함께 살펴봐야 하며 여성의 목소리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 여성이 ‘어머니’ 또는 ‘아내’, 나아가 ‘며느리’ 가 되기를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그동안 이성애 부부의 결합을 필수적으로 포함하는 정상가족과 저출생 담론의 결합을 매개로 하는 주택정책이 여성의 건강과 권리를 배제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과거 가족계획사업이 의도한 핵가족, 주택부족 해소와 건설경기 부양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주택정책과 도시계획은 끊임없이 여성을 집 안으로만 호출했다. 여성이 집 밖에서 생활하는 것이 비전형적이고, 예외적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여성의 몸은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왔기에 여성을 향한 폭력 역시 쉽게 은페되거나 가시화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끊임없이 ‘집 밖’을 나가며 나의 몸, 너의 몸, 그리고 우리 몸의 권리를 이야기하며 모두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해왔다. 여성의 몸을 조절과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설 때 지난하게 반복되는 ‘주택 부족 문제 해소와 아파트 대량 공급’ 논쟁과 ‘획일적인 주거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거 양식, 다양한 주택 공급과 배분의 방법들을 모색할 수 있다.

100년 가까이 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아니 코로나19로 인해 주거공간의 복합적인 기능이 필연적으로 야기되고 있는 지금, 더욱 더 많이 읽히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겨지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여성들에게 집 안에서 타인과 분리되는 공간, 가사노동 책임자의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성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로서 ‘자기만의 방’을 호명하는 것은 아닐까. 여성은, ‘여성들’은, 우리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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