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쾌락을 의사소통하기

2021-11-16

** 이 글은 2020년 2월호 셰어 이슈페이퍼 https://bit.ly/3qHWqPg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유림


미국인 5만2천 58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ref]Frederick, DA, St John, HK, Garcia, JR, et al.(2017) Differences in orgasm frequency among gay, lesbian, bisexual, and heterosexual men and women in a US national sample. Archives of Sexual Behavior. Published online first, 17 February 2017: 1–16. DOI: 10.1007/s10508-017-0939-z.[/ref]에 따르면,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에서 항상 오르가즘을 경험한다고 답한 이성애 남성은 95%이나 이성애 여성은 65% 입니다. 이성애 남성 다음으로 게이 남성이 89%, 바이섹슈얼 남성은 88%, 레즈비언 여성은 86%, 바이섹슈얼 여성은 66%가 항상 오르가즘을 경험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성애 남성의 압도적인 만족도와 이성애 여성이 보이는 가장 낮은 만족도의 대비는 오르가즘이 정치적인 문제임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성의 성, 성적 행위는 남성의 쾌락을 실현시켜주는 도구로서 존재하고, 여성이 스스로 자기목적적인 쾌락을 누리는 것은 ‘문란함’으로 정의되는 이중적 성적 규범의 문제, 성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누리는 여성을 지탄하지만 반면 파트너 남성의 성을 만족시켜주는 것은 현명한 여성상으로 칭송하는 구조 안에서 여성이 자신의 쾌락을 찾는 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지요. 


다시 연구로 돌아가면 위의 연구는 30여개의 성적 행동과 관련된 변수를 바탕으로 오르가즘을 덜 경험하는 여성과 더 많이 경험하는 여성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오르가즘을 더 많이 경험하는 여성은 구강성교를 더 많이 받고, 성관계 지속 시간이 길며, 그들의 파트너십에 더 만족하고, 침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청하고, 파트너가 어떤 성적 행위를 했을 때 그것을 칭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침대에서, 그리고 전화나 이메일로 짓궂은 성적인 대화를 하며, 성적으로 자극적인 속옷을 입고, 새로운 체위와 항문 자극을 시도하며, 자신의 성적 환상을 실현하며, 섹시한 대화는 물론 성관계 중에 사랑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연구는 다양한 성적 지향과 파트너십을 가진 사람들의 오르가즘 빈도와 특정한 성적 행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https://www.bishuk.com/sex/how-to-sex-talk/



실질적으로 쾌락을 인지하고, 소통하고, 경험하거나 실천하는 과정을 상상해 보자면, 아마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쾌락의 주어에 ‘남’이 아닌 ‘나’를 기입하는 일일 것입니다. 자신의 쾌락을 자기 스스로와 소통한다는 것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오한 일이기도 합니다. 나는 어떠한 성적 자극을 좋아하는가? 어떻게 자극하거나/받는 것을 바라는가? 상대방이 나를 잡는 것은 괜찮은가? 어떤 강도로 잡는 것이 적절한가? 수십 가지를 질문들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Yes/No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체위가 좋은지 하나를 꼽아보는 것은 너무나 빈약한 소통일 수 있겠지요. 이 모든 과정은 나의 욕구의 지형을 그려나가며 동시에 나의 몸과 존재에 대한 관계 맺기를 해나가는 과정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또한 섹시함, 흥분됨, 불안함, 안전함, 충만함, 만족감 등 성적 행위에 동반되는 감각들을 ‘나’를 중심으로 배열하고, 어떠한 상황이건 더 잘 인지하고, 대처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그리고 많은 ‘성교육’에서까지도 쾌락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기도 전에 그 욕망의 내용을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로 판가름하기도 합니다. 쾌락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일은 쉽지만 쾌락에 대해서 소통하고, 논의하고, 모색하는 일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상상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성적 자극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소위 ‘정상적인 이성애 섹스 및 성적 관계’에 대한 사회문화적 각본이 강력할수록 그에서 이탈하는 욕망들은 너무 쉽게 검열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비난하기 위한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쾌락에 대한 인정과 소통이 쾌락의 무조건적인 수용과 동의어도 아닐뿐더러 인간은 많은 종류의 크고 작은 선택과 비선택들을 가늠하고, 숙고하고, 타협하고, 유보하며 살아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쾌락에 대한 구체적인 탐색에 더하여 성적 친밀성을 공유하는 파트너와 쾌락을 소통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쾌락을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즐겁고, 건강하고, 섹시한 (Happy, Healthy, and Hot) 성적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것인지는 SRHR 운동 (성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실천적인 고민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ref] h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19/may/20/start-low-and-go-slow-how-to-talk-to-your-partner-about-sex [/ref] 


- 두려워 하지 말고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터놓아라
- 옷을 입지 않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당신을 (감정적으로)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 자신의 쾌락에 책임감을 가진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나에게 오르가즘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나의 오르가즘은 나의 온전한 것이라는 책임이 필요하다)
-비판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보자.
-충분히 듣고, 충분히 질문하자 


성적 쾌락을 파트너와 잘 공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개인의 노력 여하만으로 승패가 나뉘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IPPF (International planned parenthood federation)이 발간한 청소년과의 소통에서의 체크리스트 (young messaging checklists)를 바탕으로 우리가 쾌락에 대해서 어떠한 사회적/문화적인 메시지를 주고 받을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ref]PPF(2011) Youth Messaging Checklists. Available at https://www.ippf.org/sites/default/files/youth_messaging_checklist.pdf[/ref]


셰어 역시도 어떤 방식으로 쾌락을 상대방과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다양한 커뮤니티와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을 기대합니다. 


피해야
하는 말 
-쾌락은 죄가 되는 것이며, 더럽고, 잘못되었다.
-성적 쾌락은 오르가즘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다.
-좋은 섹스는 당신이 당신의 파트너에게 항상 주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의 성적 쾌락은 남성의 성적 쾌락보다는 덜 중요하다.  
전달해야 하는 말 -진정한 성적 쾌락은 상호적이다.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성적 쾌락을 경험한다.
-자위는 자연스럽고, 안전하고, 즐거운 것이며 동시에 개인의 선택이다.
-정보와 교육은 성적 쾌락에 대한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성적인 존재로서 연령, 인종, 젠더, 성적 지향, 종교, 질병 또는 HIV/AIDS의 상태, 장애, 또는 다른 개인적 특성이나 특징에 관계 없이 성적 쾌락을 누릴 자격이 있다.
-성적 쾌락은 단순한 육체적 자극 이상의 것이며, 다양한 종류의 감정적, 심리적, 사회적 충만감을 포용한다.
-성적 쾌락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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