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저는 주로 여성과 성관계를 하는 여성인데요

2021-11-16

** 이 글은 2020년 10월호 셰어 이슈페이퍼 https://bit.ly/30s8PLM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질문

저는 주로 여성과 성관계를 하는 여성인데요. 이런 경우에도 주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것이 좋은지, 검진을 받는다면 어떤 종류의 검사를 받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임신의 위험이 없다보니 산부인과 가는 것을 기피하게 되는데 성병은 또 걱정이 조금 되더라구요. 산부인과 전문의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윤정원


이런 질문을 해주시길 기다렸답니다!! 병원에 정말들 많이 안오셔요. (저는 성적지향을 항상 물어봅니다.) 안 오시니 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드릴 기회 자체가 없었네요.


일단 성매개감염부터 시작할게요.


성매개감염은 성적 행동을 매개로 전파될 수 있는 감염들을 말해요. 피부-피부일수도, 점막-점막일 수도, 감염된 질분비물/생리혈 – 점막을 통해서도 감염이 가능하죠. 질분비물-토이-질분비물을 통해서도요!! 여성간의 섹스에서도 충분히 전파 가능하다는 거죠. 그리고 또 현재 여성파트너라 하더라도 이전에 남성파트너가 있었거나, 성폭력의 경험이 있었거나 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산부인과에서는 ‘보호받지 않은 성관계를 했다면 여/남, 게이/헤테로 공히 STD 위험성이 있다’ 가 정설이에요. 여성간의 성관계에서 전파 가능한 감염들은 다음과 같아요.


- HPV:HPV는 성기사마귀나 자궁경부 세포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이 중 일부는 자궁경부암으로 까지 발전할 수 있는 바이러스에요. 대부분은 증상이 없어 자궁경부암 세포진검사를 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암이 자각증상(출혈, 통증)이 있다는 건 많이 많이 진행된 경우에요.) 증상이 없어도 질분비물이나 접촉을 통해 전파가 가능해요. 토이 공유도요.


-트리코모나스 : 성접촉시 전파 가능한 원충(기생충)이에요. 축축한 속옷이나 수건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어요. 거품이 나는 노란~초록색 분비물이 아주 냄새도 고약하고 가렵다면 트리코모나스 질염일 가능성이 있어요. 항생제로 치료 가능해요.


- 헤르페스 ; 입술 주위나(HSV1형) 성기 주위, 회음부(HSV2형)에 작은 물집과 궤양을 만드는 바이러스에요. 접촉을 통해 진물에서 바로 전파가 될 수 있는데, 물집과 궤양이 있는 상태 뿐만 아니라 힐링되어 정상적으로 보이는 상태에서도 바이러스는 전파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증상이 있다면 진단을 정확히 받고, 병변이 있는 경우에는 성행위를 하지 말고, 병변이 없더라도 보호장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매독 : 세균에 의해 전파되어 성기 주변/입 점막내 궤양과 반점을 만드는 질환이에요. 레즈비언에서는 굉장히 위험도가 낮다고 되어 있지만, 혹시 잘 안 낫는 성기주위 궤양이 있다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 이 외에도 클라미디아, 임질, B형간염, HIV/AIDS, 사면발이 등의 성매개감염이 있는데요, 레즈비언에서 빈도가 더 낮다고는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 세균성질염은 성매개감염은 아니지만, 성매개감염의 위험을 높이고, 보호장구 없는 섹스에서 더 많이 생기는 질환이에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바이섹슈얼 여성과 레즈비언 여성에서 헤테로여성보다 세균성질염 빈도가 높다는 연구가 있어요.


성매개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한 섹스에요. 새로운 파트너가 생겼다면 성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각자의 감염력을 공유하고, 어떤 보호장구들을 이용할지를 먼저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성관계 전에 미리 검사를 받고 성관계를 시작하는 것을 권유드립니다. 그리고 피나 질분비물이 섞이는 상황을 최대한 막기 위한 보호장구들- 콘돔, 핑거돔- 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세요. 헤르페스나 사마귀가 있다면 외음부에 오럴을 할 때 미리 붙이는 덴탈댐이나 랩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섹스토이를 공유하는 사이라면, 사용 전 콘돔을 갈아끼우거나 비누로 충분히 씻는 것이 중요합니다.


레즈비언 여성들에게 유방암, 자궁내막암, 난소암의 위험성이 헤테로 여성에 비해 높아요. 이 암들은 임신/출산/수유에 의해 보호효과를 가지는 암들인데, 아무래도 레즈비언 여성은 그 경험이 적으니까요. 자궁경부암의 경우는 높다는 연구와 낮다는 연구가 분분한 편인데요, 일단 파트너 수가 적고 삽입섹스를 덜 한다는 보호효과가 있기는 해요. 하지만 HPV는 성기삽입 뿐만 아니라 오럴섹스나 토이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는데, 상담자분이 물어보신 것처럼 레즈비언들은 본인의 성매개감염이나 자궁경부암 위험도를 스스로 낮게 평가해서 검진을 덜 받는다고 해요. 그래서 자궁경부암의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도 있죠. 기억해야 할 것은, ‘암은 차별하지 않는다’ 에요. 자궁경부가 있으면 자궁경부암에 걸릴 수 있어요. 자궁을 안 썼다 하더라도 자궁내막암이 있으면 자궁암이 걸릴 수 있어요!!


- 탐폰/생리컵/손가락/토이/남성성기가 질 내 삽입된 적 있는 여성이라면 20~65세 사이 2년에 한번 자궁경부암 국가 무료 검진을 받습니다. 경부암검사에서 이상세포가 검출되면 HPV 검사를 추가로 합니다.


- HPV 백신은 여/남 공히!!! 헤테로/게이 공히!!! 권장됩니다. 9-26세 사이 맞는 것이 가장 추천되며, 45세까지는 접종할 수 있습니다.


- 자궁초음파는 권장 주기가 있는건 아니지만, 생리 불규칙, 생리통, 생리패턴의 변화, 이상 질출혈 등의 증상이 있을때는 꼭 받으시고, 그렇지 않다면 5년에서 10년에 한번 정도는 검진 목적으로 받으시는 걸 권유드립니다.


- 유방암 검진을 위한 유방촬영(맘모그램)은 40세 이후부터 2년에 한번, 국가 암검진사업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어요. 이 전 나이대라도 유방암의 가족력이 있거나, 자가검진에서 만져지는 종괴가 있다면 유방초음파로 검진할 수 있어요.


- 초경을 시작할 때, 완경에 가까울 때는 이후 건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담을 위해서도, 검진을 위해서도 산부인과를 찾으시는 게 좋아요.


성건강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레즈비언 여성들이 고려해야 할 일반건강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알아볼게요. 헤테로여성에 비해 레즈비언 여성과 바이섹스 여성들은 흡연율과 비만율이 높다고 해요. (물론 이건 사회적 편견과 억압에 더 자유로운 결과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가 높은 결과일 수도 있어요.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지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정신건강 문제도 무시할 수 없겠습니다. 커밍아웃여부, 가족 내에서의 수용 여부에 따른 스트레스, 사회의 시선과 폭력의 위험 등에 노출될 경우가 있으니까요.


의료기관을 방문 했을 때 의료기관의 의사나 간호사들이 성적지향에 대한 충분한 훈련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의료기관의 재방문이 꺼려질 수 도, 의료인이 레즈비언 환자에게 더 높은 위험이 있는 질환들에 대한 충분한 검사를 안 할 수도 있어요. 이런 이유로 실제로 레즈비언 환자들이 산부인과 진료와 암검진을 덜 받고 있기도 합니다. 2014년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중 47%는 의료기관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일이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난다고 응답했어요.


궁극적으로는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의료인 교육과, 의료기관에서 더 당당하게 정체성을 밝히고 건강추구행위를 할 수 있게 되는 당사자 교육이 더 확대되어, LGBTQI 건강에 대한 인식 저변 자체가 넓어져야.. 헥헥...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여쭤보셨는데 제가 역시나 또 장광설을 늘어놓았네요. 이만, 여기까지. 당장 다음 생리가 끝난 직후로 건강검진 예약 고고~!


*초음파를 보기 가장 좋은 시점은 생리가 시작한 날로부터 5-7일(=생리가 끝나자마자), 유방암검사를 하기 좋은 시점은 역시 같은 시점,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기 가장 좋은 시점은 생리 전 1주일째에요. 한 번에 다 해결하기 원하신다면, 생리 끝나자마자 병원방문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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