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지지 않는 무더위가 한가위 연휴를 지나고도 계속되던 9월 마지막주. 어느 덧 다섯번째를 맞이한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공개 토크가 ‘자궁건강’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토크의 패널로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님과 홍보물에서 ‘자궁없는 부치’로 소개된 인디님이 함께해 주셨어요.
‘자궁 건강’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주로 통증과 질환, 불편을 경험할 때 자궁이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드러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경험보다는 힘들었던 경험, 불화해 온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자궁의 필요성을 크게 의식하지 않기도 하고, 산부인과는 왠지 다른 병원과는 달리 찾아가는 데에 좀 더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죠. 막상 아파서 병원에 가면 나의 몸과 자궁의 치료 방향이 이성 간의 성관계나 임신, 출산을 전제로만 다뤄지는 것 같아 불쾌하고 어려웠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자궁은 생각보다 일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나의 일상에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 스트레스, 노동이나 주거 환경, 식생활, 수면, 성관계 등 많은 요소들이 자궁 건강과 관계를 맺고 있죠. 이번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에서는 이런 경험들을 편하게 나눠보고 막연하게만 알았던 정보들을 제대로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패널로 참여한 인디님은 3년 전에 자궁내막증으로 인해 자궁과 난소 중 하나를 떼는 수술을 받았다고 해요. 인디님의 표현에 따르면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자궁이 내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산부인과에도 한 번도 간 적이 없고, 수술 몇 년 전 건강검진 당시 복부 초음파를 하고 나서 자궁초음파 검사를 해보라는 소견이 있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막상 병원에 가니 의사 분이 바로 자궁을 떼자고 하시며 “다시는 산부인과 올 일 없게 해주겠다”고 하셨다는데요.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오히려 수술 이후에 인디님은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1년에 두 번씩 가고 있고, 일찍 찾아온 갱년기 증상으로 여성호르몬을 복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궁을 자신의 몸의 일부로 인식하지 않고 살아왔고 자궁 떼면 끝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수술 후 산부인과도 더 많이 가게 되고 이런 자리에서 자궁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인생이 참 아이러니 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참가자 중에도 자궁내막증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온 분이 있었습니다. 자궁내막증 수술 당시 청소년이어서 내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해요.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쳤지만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는 과정에서 부정출혈 등 부작용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복용을 하지 않고 월경을 하고 있는데 현재 통증 때문에 너무 크게 고통을 받고 있어서 고민 끝에 오게 되셨다고 이야기 하셨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자궁내막증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재발 경험을 한 분들이 많았는데 막상 병원에 가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라고만 하고, 자궁 적출을 고려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 고민이 많다고요.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에 검색을 해보면 자궁 적출에 대한 후기나 이런저런 방법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오는데 무엇을 믿어야할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안전하고 나의 상황에서는 무엇을 고려해야할지 어렵기만 합니다.
정보는 많지만 구체적인 선택지는 알 수 없어 일단 자궁적출부터 고려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산부인과 전문의인 윤정원 님은 ‘보존적인 치료부터’ 안내해 주신다고 합니다. 약을 이용해서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이나 미레나 시술부터 검토해 보고, 점차 침습적인 방법을 검토하는 것이죠. 이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건, 제일 영향을 미치는 증상이 무엇인지, 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치료 방법이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완경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같은 요소들을 두고 방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윤정원 님은 자궁에 대한 감정이나 위화감 같은 것도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짚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월경이 너무 힘들어서 매번 저주하기도 하고, 임신출산 계획도 없지만 자궁을 보존하고 싶은 열망이 큰 경우도 있고, 여러가지 양가감정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막상 수술한다고 하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거나, 반대로 수술하고 너무 해방감을 느끼는 분도 있습니다. 정원님은 우리가 가진 자궁에 대한 불화나 위화감 중에 많은 부분이 사회에서 자주 접한 정보나 인식, 주변인을 통해 형성된 감정에 영향을 받는 경우도 크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나의 상황과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본인이 원하는 방향의 결정을 내린 후에 수술이나 다른 치료 방법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야 부작용이나 효과도 달라진다고요. 한편, 자궁근종 치료로 고주파로 근종을 제거하는 하이푸나 로봇수술 같은 경우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실비 보험이 있다고 하면 병원에서 먼저 권장하기도 하고 광고도 많이 뜨는데요, 정원님은 이로 인해 불필요하게 과잉 유발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건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궁내막증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떼어내고 또 몸 어딘가에서 자라나는 것일까요? 자궁내막증은 원래 자궁내막인데 다른 데서 자란다고 해서 ‘자궁내막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해요. 월경을 할 때 내막이 떨어져 나오지만 일부는 역류해서 나팔관을 따라 몸 안으로 들어가거나 월경혈이 고여있는 경우가 생기는데, 대부분은 역류한 피가 면역계를 통해 사라지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 가서 붙어서 자라나는 것이죠. 난소, 자궁 표면, 직장과 질 사이 등에서 자랄 수 있고 그러면 그 곳에서 세포들이 월경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생리혈이 염증을 일으키고, 주변 세포와 붙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내막증은 유전적인 영향도 있지만 환경호르몬과 고지방식이 여성호르몬 과잉에 영향을 미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월경을 계속 하는 한 재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날 내막증 고민을 이야기한 참가자에게도 환경을 바꿔보고, 미레나나 주사제 등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참가자 분들 중에는 자꾸 발생하는 통증과 자궁 관련 질환으로 인해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채식도 하고, 유전적인 이유도 없는데 왜 나만 이럴까’,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하는데 대체 그걸 어떻게 하라는건가’,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 체중을 줄이라고 하는데 정말 체중이 관련이 있는건가’ 하는 고민을 나눈 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대체로 어떤 질병에는 어떤 원인이 있다고 하다 보니, 스스로나 주변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과도하게 문제 삼고 그로 인해 더 괴로워지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질병의 원인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해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정원 님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생활습관 개선이 어려우면 약물 치료를 받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을 당장 그만둘 수 없다면 우선 대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보고요.
인디님은 수술 후에 갱년기를 겪으면서, 왜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서 어머님들이 그렇게 몸에 좋다는 걸 찾으시나 했는데 이제 이해하고 있다면서 삶의 질을 위해 이전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하고 술도 줄이고 스트레스도 덜 받으려고 하는 일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경험을 나누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에 대한 고민도 많은데요, 정원님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은 난소에 있는 질환이 아니라 전신질환이라는 점을 짚어 주셨어요. 다낭성난소증후군은 인슐린 감수성과 관련되어 있어서 당뇨나 고지혈증과도 연결된다고 합니다. 난소가 인슐린에 반응을 잘 안하고 못 쓰게 되면서 뇌에서 내려오는 호르몬의 밸런스가 깨지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당조절이 잘되면 증상이 조절되기 때문에 실제로 당을 관리하는 식이요법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막연히 ‘체중을 줄이라’는 말 대신, 구체적으로 원인에 대한 연관성을 알게 되니 어떻게 하면 될지 좀 더 명확하게 방법이 보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궁 건강은 노동환경과도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노동환경의 열악함 때문에 질환이 악화되거나, 필요한 시기에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중요한 건강 지표인 월경은 그냥 참을만한 문제로 무시되기 쉽지요. 정원님은 자궁건강에 관한 질환이 산업재해로 신청되는 경우에도 대부분 산업재해 기준이 남성들이 많이 일하는 노동환경에 집중되어 있고,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질병판정위원회 위원 중에서도 산부인과 의사가 정원님 한 명 밖에 없는 상황이라, 인식이 매우 낮고 인정받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정원님은 근본적으로 쉽게 쉴 수 있는 사회구조 만드는 것, 이런 문제가 생길때 나를 비난하지 않고, 몸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회적인 원인들을 운동으로서 바꿔나가는 시도를 계속 하는게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월경 전 증후군으로 인한 우울증에 대한 고민과, 항암치료 후 난소가 더 이상 기능을 안 하게 된 상태에서 자궁건강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라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정원님은 우선 월경이 중요한 생체지표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월경은 현재의 몸 상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스트레스나 감정 상태, 면역 상태 등을 다 반영하는 증거라고요. 그래서 본인의 상태를 관심있게 잘 확인하는 게 중요하고, 원래의 자신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징후나 증상이 3개월 이상 계속된다면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인을 못 찾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약으로 증상을 줄여나갈 수 있으니까요.
월경 전 증후군의 경우 의학적으로 진단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고,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지만 삶에 지장을 주는 정도라면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울과 월경 전 증후군은 밀접한 영향이 있기도 하니 필요하면 정신건강에 대해서도 도움을 받으면 좋다고 합니다.
항암치료를 받으신 참가자 분에 대해서는 항암 후에도 난소보호 주사를 이용하거나 난소 조직을 떼어 얼렸다가 다시 이식하는 방법 등 가임력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꼭 임신이 아니더라도 조기 완경으로 골다공증이나 심혈관 질환 등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호르몬 보충 요법 등을 고려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마지막으로, 바라는 점을 나누었는데요, 신청 링크에 남겨진 이야기들을 옮겨봅니다.
“산부인과에 안 가면 안 되니까 꾸역꾸역 가긴 하지만, 정말 가기 싫어요. 저는 레즈비언이고, 지금은 성인이지만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고 수술을 진행할 때는 청소년이었습니다. 성관계 유무를 묻는 질문이 담긴 설문조사는 시스젠더 헤테로를 기준으로 짜여있어서 선뜻 답하기 힘들었습니다. (임신 가능성을 묻는거라 생각해서 없다고 답했더니, 항문으로 초음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경험이 없으면 질로 초음파를 받을 수 없다면서요. 여성과의 관계 경험이 있는 저는 질 초음파를 받고 싶었지만, 갑자기 말을 바꿀 수 없어서 불편하게 항문으로 초음파를 받아야 했습니다. 왜 여성의 질에 남성의 성기가 들어간 적이 없으면 초음파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걸까요? 여성의 질이 남성과의 관계를 위한 기관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뭘까요.) (한 번 대놓고 '혹시 남성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고 직접적으로 물었더니 '당연하죠!' 라는 답변을 돌려받고 '그럼 없어요.' 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자궁내막증 수술을 설명들을 때도, 가장 많은 설명을 들은 부분이 처녀막 손상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특히나 보호자로 있는 엄마에게 처녀막이 손상될 수 있고, 그러면 의료진들이 꼬매준다는 이야기를 가장 주요하게 전달했습니다. (엄마와 제가 굳이 그럴 필요 없다, 그게 중요할까요? 같은 의견을 피력했는데도 말이죠.) 수술이 끝난 뒤에도 예상보다 유착이 심해 수술 시간이 오래걸렸음에도 그런 이야기보다는 처녀막을 잘 꼬맸다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주요하게 들었습니다. 내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녀막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의 몸은 저의 것이고 저한테는 처녀막이 자궁보다 중요하지가 않은데 왜 이럴까. 여성의 몸은 남성과의 첫 경험을 위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옛날 초음파 기계 쓰면서 뱃살 언급 안 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살집이 있으시네요~"를 진짜 들은 적 있음..)”
“치료를 앞둔 암환자한테 의사들이 난소보호주사가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라던가 조기폐경 여부에 대해서 안알려주거나 사전 고지를 안해요. 미리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일상의 관계나 정보, 일터, 학교 뿐 아니라 많은 의료기관에서도 자궁과 난소, 질을 이성과의 성관계나 임신을 위한 것으로만 대하는 환경 속에서 너무 지쳐 있습니다.
자궁이 우리의 몸의 일부라는 것도, 자궁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 몸의 호르몬을 비롯해 여러 기관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또, 자궁이나 월경이 내 일상과 삶의 전부를 좌우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합니다.
인디님은 자궁과 난소를 떼고 갱년기도 좀 일찍 왔지만 최근에는 운동도 하고 소개팅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정원님도 자궁이나 호르몬이 내 건강과 성적 욕구, 생식기능을 다 좌지우지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친밀감이나 애정, 안전하게 섹스할 수 있는 환경, 따뜻한 집 같은 더 많은 사회적인 요소들을 같이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완경 이후 다른 걱정 없이 성생활이 좋아졌다고 한 경우도 많다고요.
우리가 자궁을 너무 기능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의 삶과 환경, 관계 속에서 자궁과 다른 관계를 맺어볼 수 있을거에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면서, 나를 돌볼 수 있는 일상이 자궁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월경과 자궁, 난소, 질,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더욱 많이 꺼내어 놓기로 해요.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자궁 건강>편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이후 한국어/수어 정보 컨텐츠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제작될 컨텐츠와 더불어 2024년 마지막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에도 많은 관심바랍니다!
믿어지지 않는 무더위가 한가위 연휴를 지나고도 계속되던 9월 마지막주. 어느 덧 다섯번째를 맞이한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공개 토크가 ‘자궁건강’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토크의 패널로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님과 홍보물에서 ‘자궁없는 부치’로 소개된 인디님이 함께해 주셨어요.
‘자궁 건강’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주로 통증과 질환, 불편을 경험할 때 자궁이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드러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경험보다는 힘들었던 경험, 불화해 온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자궁의 필요성을 크게 의식하지 않기도 하고, 산부인과는 왠지 다른 병원과는 달리 찾아가는 데에 좀 더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죠. 막상 아파서 병원에 가면 나의 몸과 자궁의 치료 방향이 이성 간의 성관계나 임신, 출산을 전제로만 다뤄지는 것 같아 불쾌하고 어려웠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자궁은 생각보다 일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나의 일상에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 스트레스, 노동이나 주거 환경, 식생활, 수면, 성관계 등 많은 요소들이 자궁 건강과 관계를 맺고 있죠. 이번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에서는 이런 경험들을 편하게 나눠보고 막연하게만 알았던 정보들을 제대로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패널로 참여한 인디님은 3년 전에 자궁내막증으로 인해 자궁과 난소 중 하나를 떼는 수술을 받았다고 해요. 인디님의 표현에 따르면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자궁이 내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산부인과에도 한 번도 간 적이 없고, 수술 몇 년 전 건강검진 당시 복부 초음파를 하고 나서 자궁초음파 검사를 해보라는 소견이 있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막상 병원에 가니 의사 분이 바로 자궁을 떼자고 하시며 “다시는 산부인과 올 일 없게 해주겠다”고 하셨다는데요.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오히려 수술 이후에 인디님은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1년에 두 번씩 가고 있고, 일찍 찾아온 갱년기 증상으로 여성호르몬을 복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궁을 자신의 몸의 일부로 인식하지 않고 살아왔고 자궁 떼면 끝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수술 후 산부인과도 더 많이 가게 되고 이런 자리에서 자궁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인생이 참 아이러니 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참가자 중에도 자궁내막증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온 분이 있었습니다. 자궁내막증 수술 당시 청소년이어서 내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해요.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쳤지만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는 과정에서 부정출혈 등 부작용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복용을 하지 않고 월경을 하고 있는데 현재 통증 때문에 너무 크게 고통을 받고 있어서 고민 끝에 오게 되셨다고 이야기 하셨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자궁내막증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재발 경험을 한 분들이 많았는데 막상 병원에 가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라고만 하고, 자궁 적출을 고려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 고민이 많다고요.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에 검색을 해보면 자궁 적출에 대한 후기나 이런저런 방법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오는데 무엇을 믿어야할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안전하고 나의 상황에서는 무엇을 고려해야할지 어렵기만 합니다.
정보는 많지만 구체적인 선택지는 알 수 없어 일단 자궁적출부터 고려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산부인과 전문의인 윤정원 님은 ‘보존적인 치료부터’ 안내해 주신다고 합니다. 약을 이용해서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이나 미레나 시술부터 검토해 보고, 점차 침습적인 방법을 검토하는 것이죠. 이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건, 제일 영향을 미치는 증상이 무엇인지, 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치료 방법이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완경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같은 요소들을 두고 방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윤정원 님은 자궁에 대한 감정이나 위화감 같은 것도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짚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월경이 너무 힘들어서 매번 저주하기도 하고, 임신출산 계획도 없지만 자궁을 보존하고 싶은 열망이 큰 경우도 있고, 여러가지 양가감정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막상 수술한다고 하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거나, 반대로 수술하고 너무 해방감을 느끼는 분도 있습니다. 정원님은 우리가 가진 자궁에 대한 불화나 위화감 중에 많은 부분이 사회에서 자주 접한 정보나 인식, 주변인을 통해 형성된 감정에 영향을 받는 경우도 크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나의 상황과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본인이 원하는 방향의 결정을 내린 후에 수술이나 다른 치료 방법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야 부작용이나 효과도 달라진다고요. 한편, 자궁근종 치료로 고주파로 근종을 제거하는 하이푸나 로봇수술 같은 경우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실비 보험이 있다고 하면 병원에서 먼저 권장하기도 하고 광고도 많이 뜨는데요, 정원님은 이로 인해 불필요하게 과잉 유발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건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궁내막증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떼어내고 또 몸 어딘가에서 자라나는 것일까요? 자궁내막증은 원래 자궁내막인데 다른 데서 자란다고 해서 ‘자궁내막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해요. 월경을 할 때 내막이 떨어져 나오지만 일부는 역류해서 나팔관을 따라 몸 안으로 들어가거나 월경혈이 고여있는 경우가 생기는데, 대부분은 역류한 피가 면역계를 통해 사라지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 가서 붙어서 자라나는 것이죠. 난소, 자궁 표면, 직장과 질 사이 등에서 자랄 수 있고 그러면 그 곳에서 세포들이 월경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생리혈이 염증을 일으키고, 주변 세포와 붙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내막증은 유전적인 영향도 있지만 환경호르몬과 고지방식이 여성호르몬 과잉에 영향을 미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월경을 계속 하는 한 재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날 내막증 고민을 이야기한 참가자에게도 환경을 바꿔보고, 미레나나 주사제 등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참가자 분들 중에는 자꾸 발생하는 통증과 자궁 관련 질환으로 인해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채식도 하고, 유전적인 이유도 없는데 왜 나만 이럴까’,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하는데 대체 그걸 어떻게 하라는건가’,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 체중을 줄이라고 하는데 정말 체중이 관련이 있는건가’ 하는 고민을 나눈 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대체로 어떤 질병에는 어떤 원인이 있다고 하다 보니, 스스로나 주변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과도하게 문제 삼고 그로 인해 더 괴로워지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질병의 원인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해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정원 님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생활습관 개선이 어려우면 약물 치료를 받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을 당장 그만둘 수 없다면 우선 대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보고요.
인디님은 수술 후에 갱년기를 겪으면서, 왜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서 어머님들이 그렇게 몸에 좋다는 걸 찾으시나 했는데 이제 이해하고 있다면서 삶의 질을 위해 이전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하고 술도 줄이고 스트레스도 덜 받으려고 하는 일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경험을 나누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에 대한 고민도 많은데요, 정원님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은 난소에 있는 질환이 아니라 전신질환이라는 점을 짚어 주셨어요. 다낭성난소증후군은 인슐린 감수성과 관련되어 있어서 당뇨나 고지혈증과도 연결된다고 합니다. 난소가 인슐린에 반응을 잘 안하고 못 쓰게 되면서 뇌에서 내려오는 호르몬의 밸런스가 깨지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당조절이 잘되면 증상이 조절되기 때문에 실제로 당을 관리하는 식이요법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막연히 ‘체중을 줄이라’는 말 대신, 구체적으로 원인에 대한 연관성을 알게 되니 어떻게 하면 될지 좀 더 명확하게 방법이 보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궁 건강은 노동환경과도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노동환경의 열악함 때문에 질환이 악화되거나, 필요한 시기에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중요한 건강 지표인 월경은 그냥 참을만한 문제로 무시되기 쉽지요. 정원님은 자궁건강에 관한 질환이 산업재해로 신청되는 경우에도 대부분 산업재해 기준이 남성들이 많이 일하는 노동환경에 집중되어 있고,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질병판정위원회 위원 중에서도 산부인과 의사가 정원님 한 명 밖에 없는 상황이라, 인식이 매우 낮고 인정받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정원님은 근본적으로 쉽게 쉴 수 있는 사회구조 만드는 것, 이런 문제가 생길때 나를 비난하지 않고, 몸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회적인 원인들을 운동으로서 바꿔나가는 시도를 계속 하는게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월경 전 증후군으로 인한 우울증에 대한 고민과, 항암치료 후 난소가 더 이상 기능을 안 하게 된 상태에서 자궁건강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라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정원님은 우선 월경이 중요한 생체지표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월경은 현재의 몸 상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스트레스나 감정 상태, 면역 상태 등을 다 반영하는 증거라고요. 그래서 본인의 상태를 관심있게 잘 확인하는 게 중요하고, 원래의 자신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징후나 증상이 3개월 이상 계속된다면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인을 못 찾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약으로 증상을 줄여나갈 수 있으니까요.
월경 전 증후군의 경우 의학적으로 진단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고,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지만 삶에 지장을 주는 정도라면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울과 월경 전 증후군은 밀접한 영향이 있기도 하니 필요하면 정신건강에 대해서도 도움을 받으면 좋다고 합니다.
항암치료를 받으신 참가자 분에 대해서는 항암 후에도 난소보호 주사를 이용하거나 난소 조직을 떼어 얼렸다가 다시 이식하는 방법 등 가임력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꼭 임신이 아니더라도 조기 완경으로 골다공증이나 심혈관 질환 등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호르몬 보충 요법 등을 고려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마지막으로, 바라는 점을 나누었는데요, 신청 링크에 남겨진 이야기들을 옮겨봅니다.
“산부인과에 안 가면 안 되니까 꾸역꾸역 가긴 하지만, 정말 가기 싫어요. 저는 레즈비언이고, 지금은 성인이지만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고 수술을 진행할 때는 청소년이었습니다. 성관계 유무를 묻는 질문이 담긴 설문조사는 시스젠더 헤테로를 기준으로 짜여있어서 선뜻 답하기 힘들었습니다. (임신 가능성을 묻는거라 생각해서 없다고 답했더니, 항문으로 초음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경험이 없으면 질로 초음파를 받을 수 없다면서요. 여성과의 관계 경험이 있는 저는 질 초음파를 받고 싶었지만, 갑자기 말을 바꿀 수 없어서 불편하게 항문으로 초음파를 받아야 했습니다. 왜 여성의 질에 남성의 성기가 들어간 적이 없으면 초음파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걸까요? 여성의 질이 남성과의 관계를 위한 기관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뭘까요.) (한 번 대놓고 '혹시 남성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고 직접적으로 물었더니 '당연하죠!' 라는 답변을 돌려받고 '그럼 없어요.' 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자궁내막증 수술을 설명들을 때도, 가장 많은 설명을 들은 부분이 처녀막 손상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특히나 보호자로 있는 엄마에게 처녀막이 손상될 수 있고, 그러면 의료진들이 꼬매준다는 이야기를 가장 주요하게 전달했습니다. (엄마와 제가 굳이 그럴 필요 없다, 그게 중요할까요? 같은 의견을 피력했는데도 말이죠.) 수술이 끝난 뒤에도 예상보다 유착이 심해 수술 시간이 오래걸렸음에도 그런 이야기보다는 처녀막을 잘 꼬맸다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주요하게 들었습니다. 내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녀막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의 몸은 저의 것이고 저한테는 처녀막이 자궁보다 중요하지가 않은데 왜 이럴까. 여성의 몸은 남성과의 첫 경험을 위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옛날 초음파 기계 쓰면서 뱃살 언급 안 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살집이 있으시네요~"를 진짜 들은 적 있음..)”
“치료를 앞둔 암환자한테 의사들이 난소보호주사가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라던가 조기폐경 여부에 대해서 안알려주거나 사전 고지를 안해요. 미리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일상의 관계나 정보, 일터, 학교 뿐 아니라 많은 의료기관에서도 자궁과 난소, 질을 이성과의 성관계나 임신을 위한 것으로만 대하는 환경 속에서 너무 지쳐 있습니다.
자궁이 우리의 몸의 일부라는 것도, 자궁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 몸의 호르몬을 비롯해 여러 기관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또, 자궁이나 월경이 내 일상과 삶의 전부를 좌우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합니다.
인디님은 자궁과 난소를 떼고 갱년기도 좀 일찍 왔지만 최근에는 운동도 하고 소개팅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정원님도 자궁이나 호르몬이 내 건강과 성적 욕구, 생식기능을 다 좌지우지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친밀감이나 애정, 안전하게 섹스할 수 있는 환경, 따뜻한 집 같은 더 많은 사회적인 요소들을 같이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완경 이후 다른 걱정 없이 성생활이 좋아졌다고 한 경우도 많다고요.
우리가 자궁을 너무 기능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의 삶과 환경, 관계 속에서 자궁과 다른 관계를 맺어볼 수 있을거에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면서, 나를 돌볼 수 있는 일상이 자궁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월경과 자궁, 난소, 질,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더욱 많이 꺼내어 놓기로 해요.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자궁 건강>편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이후 한국어/수어 정보 컨텐츠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제작될 컨텐츠와 더불어 2024년 마지막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에도 많은 관심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