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조이풀 인터뷰] 2화: 산업재해와 성·재생산의 권리, 조각조각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의 이야기

2022-05-31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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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풀 인터뷰] 2화: 산업재해와 성·재생산의 권리,

조각조각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의 이야기 


* 소개할 조이

권영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로 10년째 활동하고 있다.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단체와 주제를 연결짓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셰어를 만났다. 

이종란: 2007년 삼성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 님의 아버지를 만난 것을 계기로 반올림 활동을 현재도 이어오고 있다. 올 2월 상근직은 내려놓았으나 산재 상담, 대리, 제도 개선 활동을 계속해나가려 한다. 책 읽기, 산책하기를 좋아하고 반려동물을 사랑한다.




타리: 안녕하세요 영은님, 종란님. 저는 셰어 기획운영위원이자 에브리바디 플레져랩 팀장인 타리입니다. 우선 여러분의 개인적인 근황과 반올림의 근황이 궁금한데요.


권영은: 안녕하세요. 저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ref]반올림은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명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님의 호소로 시작된 단체다. 2007년 11월 20일 19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가 발족했다. 이후 장기적인 활동을 위해 현재의 반올림으로 이름을 바꾸고 10년 넘게 정부와 삼성을 상대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노동자의 직업병 피해를 산재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벌여왔다. 그 결과 2017년 대법원에서 첨단산업 산재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2018년 삼성전자는 중재협약을 통해 공식적인 사과, 보상, 재발방지책을 약속하기도 했다. 현재도 반올림은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들의 산재 인정 활동과 함께 노동자 건강권을 위한 여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반올림 홈페이지 https://cafe.daum.net/samsunglabor [/ref]에서 활동하는 권영은입니다. 제 근황은 최근에 아이가 유치원에서 환경운동에 진심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 활동을 같이하느라 지구지킴이 엄마가 되었어요. 저의 정체성이 지금 복잡다단해요. (웃음) 경향신문에서 이것과 관련해서 인터뷰도 했는데 저는 왜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있냐는 질문에 대해 당연히 기후위기와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문제와 연결지어 이야기했죠. ‘작업환경이 위험하다, 그것이 확장되면 지구의 오염과도 연관이 있다’ 이런 얘기요. 노동환경과 기후위기의 문제가 연결 지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얘기는 기사에 안 실렸더라고요. 저의 개인의 삶과 반올림의 일이 연결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이루고 있어요. (웃음) 반올림의 근황은 일주일 중 4일은 공부하고 연구하고 활동을 해요. 나머지 하루 정도는 연대활동과 외부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의식적으로 여러 현장에 찾아가고 있어요. 장애 문제, 차별금지법, 비정규직 문제에 하루라도 연대하려고 하고 있어요. 


이종란: 저는 반올림 상임 활동은 쉬고 있어요. 쉽게 얘기해서 백수의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엄청 바쁘더라고요. 백수가 과로한다고. (웃음) 생활적으로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해서 바빠졌어요. 육묘의 행복을 엄청 많이 느끼고 있어요. 처음에는 고양이가 좀 아파서 병원 다니고 걱정하느라 좋은지를 모르고 걱정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너무 좋더라구요. 고양이가 제 삶의 루틴도 만들어주고요. 그리고 반올림 관련 일도 좀 이어가고 있어요. 산재 피해자분들 만나서 상담하고 산재사건 조력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또, 유해물질 노출 사업장의 피해자들하고 예방대책,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작은 모임이 있어요. 그 모임도 계속 이어가고 있고요. 틈틈이 사람도 만나고, 주말에는 쉬려고 하고 주중에는 일하는 패턴을 좀 유지하려고 해요.



반올림과 셰어의 만남


타리: 반올림이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자녀의 건강 손상에 대응하고 산재보상보험법 개정 투쟁을 하면서, 이에 얽힌 다양한 문제의식을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2021년에 셰어와 장애여성공감에 공동 논의 테이블을 제안해주셨는데요.[ref] 참고글 새로운 언어를 모색하는 초대장: 섹슈얼리티의 권리화와 ‘생산되는 손상’의 교차로에서 노동하는 몸을 다시 생각하기 [/ref] 이런 제안이 있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권영은: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펼쳐져있는 소재들이 있잖아요. 장애, 여성, 아이, 재생산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저희에게도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반올림의 활동이 산재 피해를 입증하고 보상하라 요구하는 활동인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언어들이 낼 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다른 영역에서 이야기가 함께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당장 만납시다’라고 했죠. 산재나 법적인 문제로만 접근하기보다는, 물론 그 길도 대단히 큰 길이지만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저도 더 알고싶고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여성과 노동, 장애 문제에 대해서 저희 활동가끼리 사적으로는 나누고 있었는데 장애여성공감, 셰어 두 군데를 만나 더 확장해보고 싶었죠.


타리: 셰어에게도 너무 중요했던게, 노동 사안에 결합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거든요. 근데 장애운동은 중증장애인 중심의 운동이다보니 사업체 근처로 갈 일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산재로 인해 장애가 생긴 분들은 장애인 정체성이 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셰어도 재생산정의 운동에서 노동 문제가 너무 중요한데 어떤 현장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이렇게 제안해주신게 셰어에게도 너무 좋은 기회였던거죠.


권영은: 셰어에서 손을 꽉 잡아줬죠.


이종란: 회의 준비가 부족하고 허술한 초안인데도 반겨주셔서 기뻤어요. 근데 약간 그런 건 느꼈어요. 조금 결이 다르다? 우선 쓰는 용어가 달라요. 저희가 쓰지 않는 단어를 쓰는 게 신선했어요. 책에서만 보는 단어를 사람이나 단체가 쓰는 걸 보니까 신기했죠.


타리: 예를 들면 ‘모성’ 대신 ‘재생산정의’ 이렇게 쓴다거나 하는 걸 말씀하시는 거죠?


이종란: 네. 그게 입에 안 붙고 노동계에서 특히 이런 단어들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할 것 같아요. 다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권영은: 비어 있는 부분, 고민해야 할 부분을 채워주시고 회의가 열릴 때마다 어설픈 저의 의견에 말을 채워주셔서 감사해요. 또 고맙게도 희정 작가가 그걸 다 기록하셔서 너무 뿌듯해요. 단체 안에 있으면 그때그때 기록을 잘 못해요. 희정 작가가 와서 활동도 기록하고 모임도 참여하고. 그 기록을 보고 있는데 정리가 너무 잘되고 있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이런 많은 ‘말’들이 있는 거죠. 주제별로 엮어도 되게 재밌는 게 많이 나올 수 있는 거 같아요.


타리: 여러 타이밍이 진짜 좋았어요. 


이종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가 이런 거다 싶어요. 조각조각을 잇는 거죠.


타리: 같이 꿰어서 너무 좋아요. 낯설지만 서로 익숙해지는 과정이겠죠? 저희도 산업 현장의 문제는 들어도 들어도 어렵고 유해화학물질 문제도 아직 어렵거든요. 대만의 활동가들과 2세 산재 문제에 대해 교류하는 행사도 되게 좋았어요.[ref] 참고글 반도체 전자산업 2세 직업병 문제 한-대만 교류 세미나 후기 [/ref]  많이 배웠고요. 산재는 저에게도 아직 안개 같은 거예요. 한발씩 다가가는 느낌이고. 정말 거대한 현장이잖아요. 그래서 조금 만져본 느낌 정도예요.


이종란: 희정 작가의 책이 나오면 토론 거리가 또 생길 거 같아요. 조금 더 섬세한 작업이 시작될 것 같아요.


권영은: 북토크 열게요. 여러 번! (웃음)



산업재해를 더 풍부하게 이야기하기


타리: 셰어와 반올림의 만남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로 다가오셨는지 궁금해요.


이종란 조이의 모습


이종란: 저는 사실 아픈 피해자분들을 많이 만나고 반올림이 그럴 수밖에 없는 운동의 성격이잖아요. 피해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운동이에요. 그동안 가장 많이 피해를 봤던 사람도 여성이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리불순부터 시작해서 유산, 임신지연, 출산 과정에서 노동과 불협화음이 생기는 문제예요. 근데 회사가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거죠. 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아이를 낳고 바로 다시 복귀한다든지 하면서 인권이 상실되어가죠. 생식건강의 문제와 노동권, 사람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거의 없었던 현실 속에서 사실 저희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거의 듣고만 있거든요. 그 중 산재 신청할 수 있는 질환이 있으면 해 보기도 하고. 하지만 산재신청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많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많이 깨달은 거죠. 여성 문제나 장애 문제, 아이가 아픈 문제 이런 게 너무 얘기가 안 되었던 거죠. 2세 질환이 여성의 책임이 아닌데 죄책감 갖는 분들이 계시고. 우리도 이분들한테 뭔가 해줄 얘기가 필요하다 싶었어요. 제대로 뭔가 말할 게 필요하고 나아가서는 반도체 현장뿐 아니라 일하는 모든 여성의 문제고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한다면 같이 모여서 얘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를 좀 해야겠다 싶었죠. 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도 있고 변화해 나가는 거잖아요. 변화해 나가는 거에 맞춰서 새로운 공부가 필요하고. ‘모성보호’ 개념도 여성들이 싸워서 쟁취한 것이지만 이제는 모성보호를 넘어 재생산정의라는 개념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권영은: 차별금지법 농성장 앞에 가서 동조단식을 하면서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어요. 우리 활동이 차별과 어떻게 연결되나. 발언을 해달라고 하셔서 발언을 준비했죠. 유미씨도 젊은 여성노동자로 차별받는 지위와 조건에 놓여있었고, 다른 여성노동자들도 여전히 그런 차별 속에 있다 이런 얘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반올림은 지금까지 피해자들의 산재인정으로 많이 알려졌잖아요. 산재 인정 자체도 너무 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벅차긴 하지만 우리가 들은 피해자들의 이야기에는 많은 영역들과 만나야 할 이유가 들어있고, 바꿔나갈 수 있는 힘도 이 피해자들의 이야기 속에 있어요. 산재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해볼 수 있는 거죠. 사건으로만 대하고 산재인정 받았으면 끝이 아니라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가보고 싶어요. 


이종란: 저는 노동,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그동안 애써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자꾸 노동할 수 없는 몸이 너무 보이는 거예요. 내가 만나는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하다 다치고 아파서 노동하지 못해 가난해진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에요. 유가족도 그렇고요. 노동할 수 없는 몸이 아니라 현재 조건에서 노동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죠. 그게 너무나 신경이 쓰이는 거죠. 그래서 장애운동 하시는 분들이 노동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하시잖아요. 너무 공감해요.



“성적 권리가 단지 성적 유희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친밀감, 연대감으로서 정의내려지고 저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타리: 2세 산재 이슈와 별개로 어쨌든 여성이라고 이름 붙여진 몸을 갖고 살아오면서 성과 재생산 이슈를 내 삶에서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있으셨나요?


권영은 조이의 모습


권영은: 저는 너무 전형적으로 크게 의심 없이 살아왔어요.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도 그렇게 주체적인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고 있는데 성과 재생산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면서 전형적인 경로를 따라온 사람의 고충이나 그동안 미처 의심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거 같아요. 저도 전형적으로 삶을 살다 이제 의심하고 그러는 단계라 서툴고 어설프죠. 제 아이에게는 다양한 선택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옛날 어른들이 '여자애가 다소곳해야지'를 강조했던 것처럼 저는 아이에게 '아니야.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라고 의식적으로 힘주어 말하고 있어요. (웃음) 


이종란: 저는 이게 약간 자신 없는 부분이에요. 저는 아이를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중요한 운동을 망칠까봐 애를 못 가지겠는 거예요. 일이 많기도 했어요. 2008년부터였나, 대책위 할 때부터 먼저 활동을 제안한 사람으로서 피해자 상담하고 하니까 바쁘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성격의 문제일 수 있는데 예민한 거죠. 최근에 책에서 '애를 가졌으면 내가 이걸 못했죠' 이런 식으로 쿨하게 얘기를 하는 인터뷰를 보면서 나뿐만 아니라 그렇게들 많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완전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겠다 싶어요. 제가 나이가 이제 마흔일곱이고 임신을 더 이상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나이인데 지난 시간이 돌아봐지더라고요.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때가 있고 돌봄에 대한 욕망과 욕구가 있는데 내가 이거를 제때 하지 못했고 지금 돌이켜 후회하자니 뭔가 안 맞는. 나는 아이 낳기를 기피했던 반면에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아이를 너무 갖고 싶어 했던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저렇게까지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뭘지 생각하기도 했어요. 항암치료를 끝내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신 분이 있는데 너무 눈부시다 해야할까요. 멋지더라구요.


권영은: 주변에 저와 비슷한 과정에 있는 여성들 보면 안 행복해 보여요. 아이가 이 정도 크면 내 삶이 보이고 남편과의 관계도 다시 보이거든요. 당연하게 단계를 밟고 왔을 때 당연한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단체가 셰어인 것 같아요. 성이 사실 생활의 엄청 큰 부분인데 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살잖아요. 연애의 순간에만 강조되고 그 뒤에는 무성 생물처럼 살아요. (웃음) 건강한 삶이 아니거든요. 


타리: 성적 즐거움을 언제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요?


권영은: 제 생각에는 임신 직후부터. 그로 인한 문제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여성에게요. 그런 부분을 건드려주시면 좋겠어요. 오은영씨가 이제 부부상담 프로그램도 시작했거든요. 하지만 셰어는 다른 관점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저도 아직 답은 모르겠어요. (웃음)


이종란: 저는 아직 성적 권리까지는,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호르몬의 영향이.. 40대 중반 넘어서니까 관심도가 확실히 떨어졌어요. 드라마를 봐도 연애 드라마가 재미가 없어요. (웃음) 


타리: 해외 캠페인이나 이런 거 보면 노년 여성들이 나와서 나의 성적권리를 주장하고, ‘나는 아직도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데 되게 파워풀하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아직 얘기가 되지 않죠. 


이종란: 얼마 전에 68세이신데 벌써 요양원 가시겠다는 분이 있었어요. 2012년에 유방암을 앓으셨고 산재 인정도 되셨는데 산재 인정이라는 게 쥐꼬리만한 보상이죠. 그래서 그분은 노인연금 30만 원 나오는 거랑 아들 용돈 조금으로 생활하시는데 너무 외롭다고 하시는 거예요. 국가에서 딱히 지원도 없고 자기는 혼자서는 못사시겠다 하면서 나름 요양원을 공동체 주거공간으로 생각하시고 거기 들어가겠다고 하시는 거죠.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게 먼 미래의 나의 모습일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 고독하지 않을 권리랄까요. 성적 권리가 너무 젊은 사람들의 것으로만 생각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공동체가 주어지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거든요. 다들 너무 외롭게 사는 거 같아요. 성적 권리가 단지 성적 유희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친밀감, 연대감으로서 정의내려지고 저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요.



조금 더 해방된 인간으로 살기


타리: 조이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어떻게 조이가 되셨나요?


권영은: 이 이슈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고 셰어와도 계속 연결되고 싶었죠. 셰어는 이슈를 딱 치고 나가고 계시잖아요. 셰어의 이름이 낯설 수도 있지만 이름에 담긴 의미를 실천으로 보여주신다 해야하나. 그래서 저도 그것들을 계속 접하고 싶고 반올림 활동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왜 나는 재생산을 계속 당연하게 여겼고 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부터 또 다른 어떤 문제제기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제 삶과 활동을 돌이켜볼 수도 있고요.


이종란: 조이가 된 계기는 제가 배울 수 있는 단체이고 또 셰어 활동가들이 따뜻한 면이 많아요. 회의할 때도 배려도 잘해주고 좀 북돋아 주시기도 하고. 그런 게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누군가는 얘기해야 하는데 잘 하지 않는 얘기들을 하시잖아요. 성적 권리 이런 얘기를 누가해요.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되는데. 그런 걸 얘기하는 단체가 필요하고 후원해야겠다 생각했죠. 저는 어쨌든 노동이라는 키워드랑 셰어가 많이 만나고 서로 배우고 하면서 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그런 측면에서 연대의 의미로 조이가 되기도 했어요. 지금은 우리가 서로 잘 모르지만 분명히 인간으로서 조금 더 해방감을 갖고 사는 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배울 게 많은, 조금 더 배워보고 싶은 단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노동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에게 특히 셰어 활동을 소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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