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드디어 2024년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행사의 마지막 시간, ‘임신중지’편이 진행되었습니다!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 산부인과에서 진료하고 계시는 오정원 님과 최근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 잔의 자유>라는 책을 낸 김도미 님이 여섯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함께해 주셨어요. 도미님이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먼저 대화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도미님은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이후 3년이 지난 2022년경 골절 치료를 하던 중에 혈액암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위기임신 상담센터 같은 곳을 떠올렸지만 아무래도 그곳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것 같고, 온라인에 떠도는 미프진 광고 등은 믿음이 가지 않아 친구를 통해 병원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유산유도제로 사용되는 미소프로스톨(사이토텍)을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었고, 집에 와서 약을 복용한 후 친구와 함께 셰어에서 만든 영상(링크)를 보며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원래 약 복용 후 나타나는 증상인 출혈이나 복통이 많이 없었고 확인해보니 임신중지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임신초기에 미소프로스톨만 복용하는 방법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모두 복용하는 방법보다 성공률이 떨어지는데 도미 님이 그 실패 확률에 해당하는 경우가 된 것이죠. 결국 혈액 수치도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 임신중지 시술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미님은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 덕분에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가 임신중지 시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도미 님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제도적 공백을 경험한다는 것이 큰 공포로 다가왔다고 해요. 다행히 도미 님은 정보를 알고 있는 지인과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는데 이런 자원조차 없는 많은 사람들, 특히 도미님처럼 건강상의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임신중지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고 병원의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거나 관련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임신중지가 여전히 의료적으로 비공식적인 영역처럼 남아있다는 사실은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도미 님은 임신중지를 해줄 의사 분에게 진료 예약을 할 때에도 자신으로 인해 의사 분이 병원 내에서 피해를 보지는 않을지에 대해서조차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임신중지를 무사히 마친 후에도 어려움은 남았습니다. 당시에는 혈액암 진단까지 받은 이후였기 때문에 이후 혈액암 치료 과정에서도 임신중지 후 사후관리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는데, 혈액암 치료를 하는 병원이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곳이라 임신중지를 했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계류유산으로 이야기를 하고 진료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도미 님의 경험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개정입법 시한까지 지나 ‘낙태죄’가 법적으로 완전히 효력을 잃은 이후였기에 도미 님의 당시 마음에 대해 더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되었어도 어떤 상황에서든 다른 진료와 마찬가지로 걱정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도미 님이 경험한 불안한 마음과 낙인으로 인한 어려움은 계속해서 장벽으로 남아있을 테니까요. 사전신청에서 사연을 남겨주신 분 중에서도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갔을 때 마주한 차가운 눈빛과 설명하는 말투에서 모두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도 있었구요.
오정원 님은 우리가 어떤 진료를 받든 그 병원에서 자신의 상태를 잘 공유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데 병원이나 의료진의 태도에 따라 충분히 정보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결국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로 돌아온다는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정원 님이 병원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도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이나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먼저 비난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이런 낙인이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서 정원님은 임신 상태태 확인을 위해 초음파 검사를 할 때에도 먼저 초음파 화면을 같이 보기를 원하는지 여부를 물어보고, 원하지 않는 경우라면 위쪽에 있는 모니터를 끄고 소리를 모두 줄여둔 상태에서 검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미 님은 우리가 어떤 사건이든지 경험하기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만큼, 결국은 내 인생을 어떤 장에 어떤 모양으로 배치하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만큼, 혼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지지적인 관계와 조력을 통해 낙인감 없이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힘들었던 경험이나 죄책감도 마음을 잘 정리하면서 삶의 한 시간으로 넣어둘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리고 내가 죄책감이라고 느끼는 감정 안에 임신중지 사실 자체만이 아니라 어떤 감정의 결이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낙인의 말들도 같이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한편, 참가 신청자 분이 보내주신 질문 중에도 도미 님이 경험하신 것처럼 비범죄화 이후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장벽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실제로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러브플랜’이라는 상담 사이트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임신중지 상담이나 정보 제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사이트에 있는 정보는 대부분 후유증에 관한 것이고, 홈페이지에는 마치 바로 연결될 것처럼 여러 산부인과 전문의의 명단이 상담위원으로 나와있지만 정작 상담위원들에게까지 상담 연결이 되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죠. 10월에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도 이에 관한 질의와 질타가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반면,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는 보건부가 제공하는 공식 상담, 정보 사이트에서 가까운 병원과 각 병원, 클리닉마다 제공 가능한 임신중지 방법, 임신중지 권리 안내, 임신의 유지나 중지에 따른 지원 기관 안내 등에 대한 상세한 안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정원 님은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이미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에 대한 권고와 보건의료 가이드, 접근성에 대한 지침 등이 제공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런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고 있는 상황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어주시기도 했습니다. 보건의료 기관에 대한 안내나 보건의료인에 대한 공식 가이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정보를 알아보며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하고, 임신중지의 과정이나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주변인과의 관계나 어려움, 회복을 위한 관리, 후유증 등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 등에 제 때 안전하게 대처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나온 참에, 정원님과 함께 약이나 수술을 통한 임신중지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먼저 마지막 월경일이나 초음파를 통해 임신 기간을 확인하고, 수술로 하는 방법과 약으로 하는 방법 중에 결정하게 되는데요, 약으로 하는 경우 보통 임신 10주경까지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같이 사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미페프리스톤이 승인되어 있지 않아서, 많은 병원에서 미소프로스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소프로스톨만 사용하는 방법은 임신 전 기간 가능하고, 수술로 하는 경우 미소프로스톨을 먼저 복용해서 자궁경부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고 진공흡입술이나 배출술을 진행합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안전하지만 수술로 할 때는 마취에서 깰 때까지 2시간 정도 걸리고 실제 수술 시간은 15-20분 정도인 반면, 약으로 할 때는 필요에 따라 반복해서 약을 먹기도 하고 완전히 배출이 될 때까지 하루에서 길게는 2-3일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약을 이용할 때는 시간을 충분히 할애할 수 있는 경우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셰어에서 가지고 있는 시술 도구들과 자궁 경부 모형도 있어, 임신 14주-16주경까지의 임신중지에 사용되는 수동진공흡입기를 가지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간단하게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으로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흔히 ‘소파술’ 혹은 ‘긁어낸다’고 알고 있는 방법은 현재는 권장되지 않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병원도 일부 있으니 꼭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미페프리스톤이 오래 전부터 도입된 많은 나라들은 이제 초기에 안전하게, 편안한 곳에서 약으로 하는 비중이 훨씬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편, 지금 미소프로스톨이 아닌 메토트랙세이트, 통상 MTX라고 부르는 약을 쓰는 병원도 있는데요, 이 약은 항암제나 항류마티스제로 사용되는 약입니다. 하지만 이제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이 공식적으로 안전한 유산유도제로 사용되는만큼, MTX는 더 이상 임신중지용으로는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되고 있어요. 무엇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혈액 수치를 더 떨어뜨린다든지 탈모를 유발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서 상태를 잘 보면서 사용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우려가 됩니다. 병원에서 꼭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물어보세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미 님은 백혈병 환자들의 경우에 서로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고, 정보를 많이 찾을 수 있는 반면 임신중지는 경험에 대한 정보도 여전히 비밀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더욱 정보를 제대로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병원에서의 정보 뿐만 아니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전한 온, 오프라인 공간들도 더 많아져야곘다는 데에 많은 공감이 오갔습니다.
2부에서는 의료기관과 의료인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습니다. 도미 님의 경우 임신중지 후에 배출된 조직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부분 포상기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포상기태는 자궁 안에 마치 임신을 한 것처럼 포도송이 같은 형태의 종양들이 생기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임신중지 이후 임신중지가 잘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임신 호르몬 수치를 계속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했는데 혈액암 치료를 같이 받는 과정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보니 관련 후속 케어도 어렵고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생긴 정신적 어려움도 있었다고 해요. 더구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피임이 중요했는데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진료 중에 루프(자궁 내 피임장치)가 내려왔다고 하면서 그냥 빼고는 ‘카톨릭 병원이어서 피임 관련 시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일인데도 병원 혹은 의료진 개인의 종교적 이유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없이 필요한 시술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참가자들도 공분을 나누었어요. 한편, 도미 님의 경우와 반대로 장애여성이나 이주여성들의 경우 본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가족 구성원이나 제3자의 요청에 따라 자궁 내 피임 시술 등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주제는 산전검사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산전검사 기술은 점점 발전을 하고 있는데 막상 산전검사에서 유전자 이상이나 태아의 장애 가능성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다시 온전히 개인에게 모든 결정과 부담이 남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육을 고려할 경우에도 장애 아동의 양육이나 장애인 관련 지원과 정책, 환경이 너무나 부족하고, 임신중지를 하고자 해도 산전검사만 할 뿐 대체로 산전검사가 이루어지는 시기 즈음에는 이미 임신 중기를 지나고 있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신 당사자인 여성들만 모든 비난과 죄책감,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삶의 조건이 변화하고,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 더 자연스러워진다면 산전검사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임신의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도 분명 다른 조건들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이 셰어가 ‘재생산정의’를 요구하며 부정의와 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며, 서로의 소감을 나누던 중에 수어통역을 하신 한국농인LGBT+의 진영님이 ‘임신중지’의 수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원래 농사회에서는 임신중지를 ‘낙태’의 의미대로 태아를 집게 같은 도구로 꺼내는 것으로 표현했고 지금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데 한국농인LGBT+에서는 일부러 ‘임신’을 ‘중지’하는 모습으로 표현한다고요. 진영 님도 수어통역센터에서 거의 4년 가까이 있었는데 한 번도 임신중지에 관한 통역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편견과 낙인에 더해 농사회에서는 더욱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며, 이런 이야기들이 농사회에도 좀 더 퍼지면 새로운 언어의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셰어는 지금 ‘포괄적 임신중지 상담과 지원을 위한 활동가, 상담사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결국 임신중지는 단지 임신을 중단하는 시술이나 방법, 결정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피임, 임신, 임신의 유지, 출산, 양육에 관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상황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 등 제반의 상황이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관한 연계와 지원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이 앞으로 중요한 방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임신과 출산, 양육에 여러 사회경제적, 보건의료적 연계 지원이 이루어지듯이 임신중지에도 그와 같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똑같은 상황에서 임신중지에 관한 결정이 반복되지 않고, 삶의 조건들이 변화하면서 다음에는 다른 결정도 가능해질테니까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임신중지의 비범죄화 후에도 아직까지 변화는 너무 더디지만 이 날 함께 나눈 이야기들처럼 계속해서 서로에게 연결되어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누며 마지막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지난 여섯 번의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자리에 함께해주신 이야기손님, 참가자, 온라인으로 질문과 사연을 남기며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는 내년에 또 만나요!
✨2024년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한국어/수어 정보 컨텐츠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작될 컨텐츠에도 많은 관심바랍니다!
10월 23일, 드디어 2024년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행사의 마지막 시간, ‘임신중지’편이 진행되었습니다!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 산부인과에서 진료하고 계시는 오정원 님과 최근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 잔의 자유>라는 책을 낸 김도미 님이 여섯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함께해 주셨어요. 도미님이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먼저 대화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도미님은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이후 3년이 지난 2022년경 골절 치료를 하던 중에 혈액암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위기임신 상담센터 같은 곳을 떠올렸지만 아무래도 그곳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것 같고, 온라인에 떠도는 미프진 광고 등은 믿음이 가지 않아 친구를 통해 병원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유산유도제로 사용되는 미소프로스톨(사이토텍)을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었고, 집에 와서 약을 복용한 후 친구와 함께 셰어에서 만든 영상(링크)를 보며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원래 약 복용 후 나타나는 증상인 출혈이나 복통이 많이 없었고 확인해보니 임신중지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임신초기에 미소프로스톨만 복용하는 방법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모두 복용하는 방법보다 성공률이 떨어지는데 도미 님이 그 실패 확률에 해당하는 경우가 된 것이죠. 결국 혈액 수치도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 임신중지 시술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미님은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 덕분에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가 임신중지 시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도미 님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제도적 공백을 경험한다는 것이 큰 공포로 다가왔다고 해요. 다행히 도미 님은 정보를 알고 있는 지인과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는데 이런 자원조차 없는 많은 사람들, 특히 도미님처럼 건강상의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임신중지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고 병원의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거나 관련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임신중지가 여전히 의료적으로 비공식적인 영역처럼 남아있다는 사실은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도미 님은 임신중지를 해줄 의사 분에게 진료 예약을 할 때에도 자신으로 인해 의사 분이 병원 내에서 피해를 보지는 않을지에 대해서조차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임신중지를 무사히 마친 후에도 어려움은 남았습니다. 당시에는 혈액암 진단까지 받은 이후였기 때문에 이후 혈액암 치료 과정에서도 임신중지 후 사후관리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는데, 혈액암 치료를 하는 병원이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곳이라 임신중지를 했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계류유산으로 이야기를 하고 진료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도미 님의 경험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개정입법 시한까지 지나 ‘낙태죄’가 법적으로 완전히 효력을 잃은 이후였기에 도미 님의 당시 마음에 대해 더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되었어도 어떤 상황에서든 다른 진료와 마찬가지로 걱정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도미 님이 경험한 불안한 마음과 낙인으로 인한 어려움은 계속해서 장벽으로 남아있을 테니까요. 사전신청에서 사연을 남겨주신 분 중에서도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갔을 때 마주한 차가운 눈빛과 설명하는 말투에서 모두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도 있었구요.
오정원 님은 우리가 어떤 진료를 받든 그 병원에서 자신의 상태를 잘 공유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데 병원이나 의료진의 태도에 따라 충분히 정보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결국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로 돌아온다는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정원 님이 병원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도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이나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먼저 비난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이런 낙인이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서 정원님은 임신 상태태 확인을 위해 초음파 검사를 할 때에도 먼저 초음파 화면을 같이 보기를 원하는지 여부를 물어보고, 원하지 않는 경우라면 위쪽에 있는 모니터를 끄고 소리를 모두 줄여둔 상태에서 검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미 님은 우리가 어떤 사건이든지 경험하기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만큼, 결국은 내 인생을 어떤 장에 어떤 모양으로 배치하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만큼, 혼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지지적인 관계와 조력을 통해 낙인감 없이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힘들었던 경험이나 죄책감도 마음을 잘 정리하면서 삶의 한 시간으로 넣어둘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리고 내가 죄책감이라고 느끼는 감정 안에 임신중지 사실 자체만이 아니라 어떤 감정의 결이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낙인의 말들도 같이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한편, 참가 신청자 분이 보내주신 질문 중에도 도미 님이 경험하신 것처럼 비범죄화 이후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장벽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실제로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러브플랜’이라는 상담 사이트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임신중지 상담이나 정보 제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사이트에 있는 정보는 대부분 후유증에 관한 것이고, 홈페이지에는 마치 바로 연결될 것처럼 여러 산부인과 전문의의 명단이 상담위원으로 나와있지만 정작 상담위원들에게까지 상담 연결이 되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죠. 10월에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도 이에 관한 질의와 질타가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반면,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는 보건부가 제공하는 공식 상담, 정보 사이트에서 가까운 병원과 각 병원, 클리닉마다 제공 가능한 임신중지 방법, 임신중지 권리 안내, 임신의 유지나 중지에 따른 지원 기관 안내 등에 대한 상세한 안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정원 님은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이미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에 대한 권고와 보건의료 가이드, 접근성에 대한 지침 등이 제공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런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고 있는 상황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어주시기도 했습니다. 보건의료 기관에 대한 안내나 보건의료인에 대한 공식 가이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정보를 알아보며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하고, 임신중지의 과정이나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주변인과의 관계나 어려움, 회복을 위한 관리, 후유증 등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 등에 제 때 안전하게 대처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나온 참에, 정원님과 함께 약이나 수술을 통한 임신중지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먼저 마지막 월경일이나 초음파를 통해 임신 기간을 확인하고, 수술로 하는 방법과 약으로 하는 방법 중에 결정하게 되는데요, 약으로 하는 경우 보통 임신 10주경까지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같이 사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미페프리스톤이 승인되어 있지 않아서, 많은 병원에서 미소프로스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소프로스톨만 사용하는 방법은 임신 전 기간 가능하고, 수술로 하는 경우 미소프로스톨을 먼저 복용해서 자궁경부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고 진공흡입술이나 배출술을 진행합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안전하지만 수술로 할 때는 마취에서 깰 때까지 2시간 정도 걸리고 실제 수술 시간은 15-20분 정도인 반면, 약으로 할 때는 필요에 따라 반복해서 약을 먹기도 하고 완전히 배출이 될 때까지 하루에서 길게는 2-3일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약을 이용할 때는 시간을 충분히 할애할 수 있는 경우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셰어에서 가지고 있는 시술 도구들과 자궁 경부 모형도 있어, 임신 14주-16주경까지의 임신중지에 사용되는 수동진공흡입기를 가지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간단하게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으로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흔히 ‘소파술’ 혹은 ‘긁어낸다’고 알고 있는 방법은 현재는 권장되지 않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병원도 일부 있으니 꼭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미페프리스톤이 오래 전부터 도입된 많은 나라들은 이제 초기에 안전하게, 편안한 곳에서 약으로 하는 비중이 훨씬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편, 지금 미소프로스톨이 아닌 메토트랙세이트, 통상 MTX라고 부르는 약을 쓰는 병원도 있는데요, 이 약은 항암제나 항류마티스제로 사용되는 약입니다. 하지만 이제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이 공식적으로 안전한 유산유도제로 사용되는만큼, MTX는 더 이상 임신중지용으로는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되고 있어요. 무엇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혈액 수치를 더 떨어뜨린다든지 탈모를 유발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서 상태를 잘 보면서 사용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우려가 됩니다. 병원에서 꼭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물어보세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미 님은 백혈병 환자들의 경우에 서로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고, 정보를 많이 찾을 수 있는 반면 임신중지는 경험에 대한 정보도 여전히 비밀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더욱 정보를 제대로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병원에서의 정보 뿐만 아니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전한 온, 오프라인 공간들도 더 많아져야곘다는 데에 많은 공감이 오갔습니다.
2부에서는 의료기관과 의료인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습니다. 도미 님의 경우 임신중지 후에 배출된 조직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부분 포상기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포상기태는 자궁 안에 마치 임신을 한 것처럼 포도송이 같은 형태의 종양들이 생기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임신중지 이후 임신중지가 잘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임신 호르몬 수치를 계속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했는데 혈액암 치료를 같이 받는 과정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보니 관련 후속 케어도 어렵고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생긴 정신적 어려움도 있었다고 해요. 더구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피임이 중요했는데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진료 중에 루프(자궁 내 피임장치)가 내려왔다고 하면서 그냥 빼고는 ‘카톨릭 병원이어서 피임 관련 시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일인데도 병원 혹은 의료진 개인의 종교적 이유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없이 필요한 시술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참가자들도 공분을 나누었어요. 한편, 도미 님의 경우와 반대로 장애여성이나 이주여성들의 경우 본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가족 구성원이나 제3자의 요청에 따라 자궁 내 피임 시술 등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주제는 산전검사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산전검사 기술은 점점 발전을 하고 있는데 막상 산전검사에서 유전자 이상이나 태아의 장애 가능성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다시 온전히 개인에게 모든 결정과 부담이 남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육을 고려할 경우에도 장애 아동의 양육이나 장애인 관련 지원과 정책, 환경이 너무나 부족하고, 임신중지를 하고자 해도 산전검사만 할 뿐 대체로 산전검사가 이루어지는 시기 즈음에는 이미 임신 중기를 지나고 있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신 당사자인 여성들만 모든 비난과 죄책감,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삶의 조건이 변화하고,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 더 자연스러워진다면 산전검사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임신의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도 분명 다른 조건들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이 셰어가 ‘재생산정의’를 요구하며 부정의와 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며, 서로의 소감을 나누던 중에 수어통역을 하신 한국농인LGBT+의 진영님이 ‘임신중지’의 수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원래 농사회에서는 임신중지를 ‘낙태’의 의미대로 태아를 집게 같은 도구로 꺼내는 것으로 표현했고 지금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데 한국농인LGBT+에서는 일부러 ‘임신’을 ‘중지’하는 모습으로 표현한다고요. 진영 님도 수어통역센터에서 거의 4년 가까이 있었는데 한 번도 임신중지에 관한 통역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편견과 낙인에 더해 농사회에서는 더욱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며, 이런 이야기들이 농사회에도 좀 더 퍼지면 새로운 언어의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셰어는 지금 ‘포괄적 임신중지 상담과 지원을 위한 활동가, 상담사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결국 임신중지는 단지 임신을 중단하는 시술이나 방법, 결정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피임, 임신, 임신의 유지, 출산, 양육에 관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상황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 등 제반의 상황이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관한 연계와 지원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이 앞으로 중요한 방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임신과 출산, 양육에 여러 사회경제적, 보건의료적 연계 지원이 이루어지듯이 임신중지에도 그와 같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똑같은 상황에서 임신중지에 관한 결정이 반복되지 않고, 삶의 조건들이 변화하면서 다음에는 다른 결정도 가능해질테니까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임신중지의 비범죄화 후에도 아직까지 변화는 너무 더디지만 이 날 함께 나눈 이야기들처럼 계속해서 서로에게 연결되어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누며 마지막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지난 여섯 번의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자리에 함께해주신 이야기손님, 참가자, 온라인으로 질문과 사연을 남기며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는 내년에 또 만나요!
✨2024년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한국어/수어 정보 컨텐츠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작될 컨텐츠에도 많은 관심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