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17화] 조미경 조이님 인터뷰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는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을 만드는 것!
셰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요즘에 어떤 일상을 보내시고, 어떤 생각을 많이 하시는지 궁금해요.
조미경 저의 일상에 대해서 어떻게 나눌까 고민을 했어요. 사실 제가 뇌출혈 이후 달라진 몸이 있고, 제가 활동하는 일상을 생각해보면 예전과 비슷한 것도 있고 달라진 것도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고,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도 했던 질문을 지금도 많이 던져요.” 나는 왜 살고 있는가? 왜 살고 있지? 어떻게 살 것이냐, 누구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가.” 그리고 몸이 달라진 이후에 새롭게 하게 된 고민은 운동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에요. 이게 요즘 일상이에요. 제가 뇌출혈로 인해서 활동가로서의 삶을 채우는 내용이나 감각이 달라진 거죠. 그동안 정말 많이 말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하고 소통하고 했는데 뇌출혈로 인해서 어딘가 날라갔어요.
사실 뇌출혈에서 증상이 되게 많은데요.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고, 인지나 신체상의 변화가 정말 다양하게 많아요. 뇌출혈 이후에 관계에서 고립되기도 하고, 다른 질병이 추가 되면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너무 많고요. 근데 내가 다시 살아났어. 우리가 다시 만났어. 나는 왜 다시 태어났어? 나는 왜 다시 살게 됐을까에 대해서 그 이유를 생각하고 이유를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저의 노력이에요.
뇌출혈과 함께 실어증이 같이 와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단어들이 계속 날라가요. 그래서 인권도 뭐도 어려워.(웃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단어가 기억이 안 나니까 말이 안나오는 거에요. 너무 중요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안 나오는거야. 그래서 계속 검색하면서 확인해요. 망각하지 않는 것. 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일상에 중요한 일이에요.
다시 살아난 이유를 망각하지 않기
조미경 일주일에 한번 공감 사무실에 출근해서 활동가들과 삶을 나누는 것. 많은 동료들이 어느 순간 돌아가셨고 어느 날 갑자기 못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까 얼굴을 보는 게 너무너무 소중하고, 만난다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시각장애가 있지만 아직 보이니까 눈 맞추고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오늘 힘드시구나, 신이 났구나, 화가 났구나를 느끼고 있어요. 여전히 짜증나는 건 사무실보다 병원을 더 많이 가는 거에요.
셰어 병원을 옛날부터 싫어하셨잖아요.(웃음)
조미경 근데 더 많이 가잖아요.(웃음) 또 하나 중요한 일상 중의 하나가 숨쉬기 운동이에요. 숨쉬는 게 폐활량이 갈수록 더 안 좋아져요. 보통 사람이 100퍼센트면 제가 20-25퍼센트 밖에 안돼요. 폐활량이 점점 더 낮아지고 그래서 숨쉬는 게 어렵고 목 마르니까 물 계속 마셔야 하고. 숨쉬는 것이 살기 위해 필수적인 운동이에요. 그게 저의 일상이네요.
오늘 인터뷰 하러 오면서 대체 그동안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뭘 생각했었지 잘 생각이 안 나서 예전에 작성했던 글을 봤는데 예전에 비마이너 칼럼이 이런 말을 했더라구요. “어제와 다른 몸,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변화가 올지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된 몸과 삶의 방식을 통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을 다시 깨닫는 걸 느낀다”고 했는데. 정말 맞다. 그때 했던 말이 지금 너무 맞는 말인거예요. 뇌출혈 전에 쓴 글인데 내가 마치 예감한 것처럼 썼네요. 예전에도 장애가 계속 진화한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너무 낯설어진 나의 몸과 삶의 방식을 다시 찾는 것. 운동을 하는 이유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었는데 다시 삶의 의미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 그걸 노력하는 것, 그게 삶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셰어 최근에는 좀더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데 세팅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 많은 게 필요해지셨을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도 같이 적응하는 시간이 너무 중요한 것 같고요.
조미경 요즘 시대는 엄청 속도가 빠르잖아요. 제가 성격이 급한 사람인데 스스로가 그 속도를 다시 배우게 되어요.
셰어 얘기 들으니까 오늘 셰어에 인터뷰 해주러 오신 게 더욱 특별한 것 같아요. 망각을 하지 않으려면 우리도 같이 알고, 기억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 오늘 만난 거 같아요.
조미경 서로 그러면 너무 감사하죠. 동료들과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같이 느끼고. 그게 당연한 게 아닌 걸 느꼈어요. 소중한 동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감사하죠.
셰어 장애여성으로서, 활동가로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조미경 제가 정말 최중증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린시절에 집에서 고립되었고, 나는 왜 살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어요. 나의 삶에 대해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없었어요. 어차피 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니까요. 그러다가 장애인직업교육원에 들어가면서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 전까지 장애인은 나밖에 없었거든요. 나와 친구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장애인이니까 당연하지 생각했다가도 동시에 내가 왜? 나는 왜 그래야 돼? 너는 왜? 그때부터 억울한 거예요. 그때 운동은 몰랐는데 분노가 있었어요. 억울함과 분노라는 감정이 있었어요. 왜 비장애인과 나는 다른지, 그 때는 차별이나 억압 같은 단어는 몰랐지만 문제의식이 생겼고, 장애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장애인운동을 하다보니까 또 답답한 거에요. 장애여성의 일상은 여전히 차별과 억압과 보호와 통제가 여전히 있는 거에요. 너무 답답했어요. 인권운동한다는 건데 나 왜 이렇게 답답하지? 미치겠는 거에요. 그런데 장애여성운동을 통해서, 공감을 만나면서 와! 이거야!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어요. 답답했는데 숨을 쉴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공감 운동을 하면서 장애여성 운동을 통해 정말 많이 배우고 정신없이 빡세게 지냈어요. 그만큼 고되고 고단하고 힘들 때도 당연히 많았지만요. 솔. 까. 말.(웃음)
낙태죄 폐지 운동이 정말 희열!
조미경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해온 것은 동료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서로 나누며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순간순간 희열을 줬어요. 낙태죄 폐지 때도 정말 희열! 이게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애여성 운동을 이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장애여성공감은 같거나 또는 다른 몸, 경험, 삶. 이들과 함께 서로 주거니 받거니 서로 나누면서 부딪히면서 운동의 감각을 키우고 나 자신에 대한 의미를 존재를 드러내고 나누는 운동의 현장이에요. 머리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가서 만나고 나누고 부딪히는 게 바로 운동이라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배웠고,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청각장애가 있다보니 쉽지 않아요. 사람 만날 때 눈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지금은 근데 문자통역을 보려면 기기를 봐요. 농담이던 뭐던 주거니 받거니 하려면 눈을 봐야 하는데 아쉽죠. 저는 나름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주거니 받거니가 쉽지 않아졌잖아요. 그럼에도 운동의 현장이 중요하다고 여전히 생각해요. 공감 활동가들이 많이 얘기해왔지만 누구나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동료들과 함께 너무나도 다양한 연대를 하고, 다른 언어와 삶을 나누는 건 너무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활동가로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셰어 아까 낙태죄 폐지 됐을 때 희열느꼈다고 했잖아요. 셰어에게도 장애여성운동과 재생산정의 운동을 함께 하는게 그런 마음이에요. 그동안 운동사회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희열인 것인지 느껴요. 장애여성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조미경 공감이 사실 장애여성의 몸 섹슈얼리티 (이 말을 발음하는게 되게 어려웠는데) 의제를 시작했잖아요. 성규범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고, 탈시설 시설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셰어랑 같이 중요한 내용들 만드는 게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낙태죄 폐지가 중요했던 건 앞으로 할 게 너무 많고 이게 시작이라는 것이었어요. 같이 할 게 너무너무 많은 거예요.
셰어 낙태죄 폐지와 그 이후를 만드는 그 출발점을 장애여성운동과 함께 만들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권리의 출발점을 어디로 해야 할지, 앞길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같이 했기 때문에 우생학의 문제를 제기하고,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조미경 그래서 장애여성운동은 장애여성 당사자가 몸으로 느끼는 감각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동료들과 함께 성적권리와 재생산을 위해서 같이 하는 거 자체가 너무너무 소중하죠. 배틀그라운드를 함께 쓰고 운동했던 이런 동료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거에요.
셰어 아까 장애운동을 하면서도 장애여성으로서의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고 하셨잖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조미경 되게 많겠지만 예를 하나 들면 자립생활 운동 안에서도 장애여성에게는 훨씬 보호주의가 작동해요. 장애인의 독립을 중요한 의제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그 안에서 독립을 얘기하면서 장애여성들이 경험하는 통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어요. IL 현장 안에서도 사실 너무 장애여성 관점의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못하고, 장애여성이 주변으로부터 통제되거나 독립하지 못하는 문제, 성폭력의 이슈도 다 나중이 되고. 장애여성의 삶의 문제는 후자로 다뤄지는 게 답답했어요. 장애운동 안에서 장애여성 활동가들이 리더십을 가지기 어려운 것도 중요한 문제에요. 항상 실무자의 위치에서 살림하는 사람으로 주변화되고, 장애여성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그걸 통해서 운동을 바꿀 수 있는 위치와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거죠. 이런 게 바뀌지 않으니 더 자신감을 가지기 어렵고, 장애여성 주체들을 더 많이 만들고 조직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어요.
셰어 장애여성공감도 그렇고 미경님도 각별하게 소수자 연대에 관심이 많으신데요. 이걸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으세요?
조미경 장애여성 운동을 하기 전에 사실 성소수자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장애인 운동을 할때는 장애만을 생각했는데 공감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초기에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을때 페미니즘 강의를 처음 들었는데 너무 놀라웠고 그 분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하지만 저도, 강사님도 부끄러움이 많아서 겨우 인사만 했죠. 그분도 제가 낯설었을 수도 있어요. (웃음) 그때가 시작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고 고민이 생겼어요.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 성소수자, 장애 이주민, 장애 HIV 감염인… 장애인 안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고 다양한 정체성이 있는데 여전히 언어를 만들고 존재를 드러내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숨센터에서 장애인만이 아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자조모임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쉽지는 않았어요.
셰어 소수자 그룹안에서 차이도 크다 보니까 같이 만나는 게 또다른 어려움이 있더라구요.
조미경 그렇죠. 그래서 다른 몸의 언어와 경험을 나누는 게 중요하죠.
장애-소수자들 사이에 몸의 언어와 경험을 나누는 것의 중요성
셰어 요즘에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윤가브리엘님이 장애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전장연에서 만든 장애인 건강권 모임에 참여하게 될것 같아요. 이런 경험이 HIV/AIDS 운동에도 중요한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조미경 너무 좋아. 너무 반갑다. 저도 이런 게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초반에만 해도 HIV 감염인 분들이 장애라는 것 자체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낙인이 있기도 하고, 장애 여성도 HIV가 낯설고 각자의 낙인이 있었던거죠. 그래서 저는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반갑네요. 바로 이런 거!
셰어 그리고 한국농인LGBT+ 단체도 있고 이번에 농인 성소수자 실태조사 발표를 해요.
조미경 와! 저는 되게 고민이었던 게, 청각장애가 생기면서 느낀 게, 이 분들의 언어가 장애운동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너무 드러난 게 없는 거에요. 자료를 찾다가 너무 없어서 그 분들을 너무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저는 몸의 특성상 또 수어가 안 돼.(웃음) 그랬는데 하여튼 너무 반가워요.
셰어 다음에 같이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조미경 좋아요. 나는 수어를 못하고, 그 분은 구화가 어려울 때 서로 소통방법을 찾아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셰어 뇌출혈 이후 달라진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미경 2020년에 공동대표 되고 1년 만에 뇌출혈이 생겼잖아요. 원래 골형성부전증이고 척추측만증으로 인해서 호흡기 장애가 오고 그 다음에 청각장애가 생겼는데 뇌출혈 이후 시각장애와 실어증, 언어장애가 새롭게 생겼고, 청각장애는 더 심해져서 문자통역이 있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어요. 기억 니은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우면서 시작해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고, 그동안 있었던 단어와 말들이 사라져서 대화하고 관계맺는게 힘들어졌어요. 그게 가장 슬프고 답답하고 힘든 것이었어요.
새삼 생각해보니까 이런 중복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더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절감했고, 이 사회가 얼마나 언어, 비장애 중심 사회인지 더 온몸으로 느꼈죠. 말을 하고, 듣고, 쓰고, 읽고,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고 그러면서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웃고 떠들고 서로의 존재를 서로 말하는 게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당연한 게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거라는 거. 그게 되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온몸으로 느꼈어요. 오래전부터 동료들과 함께 사회적 고립이나 차별에 맞서서 운동을 해왔지만 제 몸의 변화를 통해서 새롭게 깨달으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욱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고립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한 의지와 욕망
셰어 어느덧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하네요. 셰어와 조이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전해주세요.
조미경 30년 전에 만났던 장애여성 언니들, 친구들을 20년 넘게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시에 활발하게 살던 분들 중에 다시 고립된 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서 몇 분을 찾아갔어요. 더 장애가 심해졌거나, 질병이 생겼거나, 나이가 들었는데, 가장 큰 것은 모두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준 저에게 고맙다고 하시는 거에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졌어요. 특히 한 분은 언어장애가 있던 분인데 목이 골절되어서 지난 25년간 집안에서 누워서만 지내셨던 거에요. 8시간 걸려서 집으로 찾아갔는데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너무 경직된 얼굴이더라구요. 그동안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지내서 표정이 잘 안 지어지는 거였어요. 세번째 만나니까 표정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서 너무 안도했어요. 내가 어딘가 살아있다는 것을 나누는 사람이 있다는것이 중요하구나, 내가 그랬듯이. 머리로는 알지만 이렇게 몸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게 운동이구나 느꼈어요.
그래서 셰어와 이런 마음과 고민을 나누고 싶었어요. 젠더, 장애와 나이로 인해서 고립된 사람들에게 요즘은 주민센터에서 전화로 안부를 묻지만 중요한 건 관계가 생겨야 하는 거잖아요. 누구나 고립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길 원하지 않아요. 그냥 좋은 마음인거죠. 이 사람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관심을 갖고 함께 살고 싶은 욕구와 욕망이 생기는 게 저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너무 쉽지 않지만 근데 되게 필요하다. 같이 살고 싶고, 나누고 싶고, 친구되고 싶고가 욕망이 되는 거. 저는 셰어가 만든 것들을 보면서 시야가 생긴거에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 그게 말로 봤을 땐 어려울 수 있지만 하나하나 제 경험을 돌아보면서 그 의미에 대해서 또 다시 온몸으로 느꼈어요. 결국은 함께하는 욕망이죠!
그래서 고립된 채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너무나도 수많은 사람들, 저도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함께 사는 게 당연한 게 아니란 말이에요. 수많은 장애여성, 소수자들에게 간절하게 서로의 삶을 나누는 동료와 나눌 수 있는 공간, 지원체계, 연대가 너무 절실해요. 그래서 셰어가 하고 있는 운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저에게 셰어가 동료로 있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껴요. 곳곳에서 고립된 사람들과 외로운 이들이 정말 자유롭고 평화롭게 같이 살고 싶은 욕망들이 많이 생기고 욕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실현하는 운동이 더 활발해지길 바래요. 그래서 이를 위해서 함께 든든한 동료들, 조이 분들이 많이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함께 서로서로 삶을 많이많이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셰어 (일동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중 ㅠㅠ) 정말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조미경 뇌출혈 이후 외부에 나와서 이렇게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몇년만이에요. 다시 한 번 내가 살아난 이유를 느껴요. 정말 감사해요. 이곳이 서로의 감각을 다시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래요. 셰어의 후원이 많이 늘어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17화] 조미경 조이님 인터뷰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는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을 만드는 것!
셰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요즘에 어떤 일상을 보내시고, 어떤 생각을 많이 하시는지 궁금해요.
조미경 저의 일상에 대해서 어떻게 나눌까 고민을 했어요. 사실 제가 뇌출혈 이후 달라진 몸이 있고, 제가 활동하는 일상을 생각해보면 예전과 비슷한 것도 있고 달라진 것도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고,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도 했던 질문을 지금도 많이 던져요.” 나는 왜 살고 있는가? 왜 살고 있지? 어떻게 살 것이냐, 누구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가.” 그리고 몸이 달라진 이후에 새롭게 하게 된 고민은 운동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에요. 이게 요즘 일상이에요. 제가 뇌출혈로 인해서 활동가로서의 삶을 채우는 내용이나 감각이 달라진 거죠. 그동안 정말 많이 말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하고 소통하고 했는데 뇌출혈로 인해서 어딘가 날라갔어요.
사실 뇌출혈에서 증상이 되게 많은데요.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고, 인지나 신체상의 변화가 정말 다양하게 많아요. 뇌출혈 이후에 관계에서 고립되기도 하고, 다른 질병이 추가 되면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너무 많고요. 근데 내가 다시 살아났어. 우리가 다시 만났어. 나는 왜 다시 태어났어? 나는 왜 다시 살게 됐을까에 대해서 그 이유를 생각하고 이유를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저의 노력이에요.
뇌출혈과 함께 실어증이 같이 와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단어들이 계속 날라가요. 그래서 인권도 뭐도 어려워.(웃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단어가 기억이 안 나니까 말이 안나오는 거에요. 너무 중요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안 나오는거야. 그래서 계속 검색하면서 확인해요. 망각하지 않는 것. 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일상에 중요한 일이에요.
다시 살아난 이유를 망각하지 않기
조미경 일주일에 한번 공감 사무실에 출근해서 활동가들과 삶을 나누는 것. 많은 동료들이 어느 순간 돌아가셨고 어느 날 갑자기 못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까 얼굴을 보는 게 너무너무 소중하고, 만난다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시각장애가 있지만 아직 보이니까 눈 맞추고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오늘 힘드시구나, 신이 났구나, 화가 났구나를 느끼고 있어요. 여전히 짜증나는 건 사무실보다 병원을 더 많이 가는 거에요.
셰어 병원을 옛날부터 싫어하셨잖아요.(웃음)
조미경 근데 더 많이 가잖아요.(웃음) 또 하나 중요한 일상 중의 하나가 숨쉬기 운동이에요. 숨쉬는 게 폐활량이 갈수록 더 안 좋아져요. 보통 사람이 100퍼센트면 제가 20-25퍼센트 밖에 안돼요. 폐활량이 점점 더 낮아지고 그래서 숨쉬는 게 어렵고 목 마르니까 물 계속 마셔야 하고. 숨쉬는 것이 살기 위해 필수적인 운동이에요. 그게 저의 일상이네요.
오늘 인터뷰 하러 오면서 대체 그동안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뭘 생각했었지 잘 생각이 안 나서 예전에 작성했던 글을 봤는데 예전에 비마이너 칼럼이 이런 말을 했더라구요. “어제와 다른 몸,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변화가 올지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된 몸과 삶의 방식을 통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을 다시 깨닫는 걸 느낀다”고 했는데. 정말 맞다. 그때 했던 말이 지금 너무 맞는 말인거예요. 뇌출혈 전에 쓴 글인데 내가 마치 예감한 것처럼 썼네요. 예전에도 장애가 계속 진화한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너무 낯설어진 나의 몸과 삶의 방식을 다시 찾는 것. 운동을 하는 이유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었는데 다시 삶의 의미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 그걸 노력하는 것, 그게 삶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셰어 최근에는 좀더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데 세팅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 많은 게 필요해지셨을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도 같이 적응하는 시간이 너무 중요한 것 같고요.
조미경 요즘 시대는 엄청 속도가 빠르잖아요. 제가 성격이 급한 사람인데 스스로가 그 속도를 다시 배우게 되어요.
셰어 얘기 들으니까 오늘 셰어에 인터뷰 해주러 오신 게 더욱 특별한 것 같아요. 망각을 하지 않으려면 우리도 같이 알고, 기억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 오늘 만난 거 같아요.
조미경 서로 그러면 너무 감사하죠. 동료들과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같이 느끼고. 그게 당연한 게 아닌 걸 느꼈어요. 소중한 동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감사하죠.
셰어 장애여성으로서, 활동가로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조미경 제가 정말 최중증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린시절에 집에서 고립되었고, 나는 왜 살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어요. 나의 삶에 대해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없었어요. 어차피 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니까요. 그러다가 장애인직업교육원에 들어가면서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 전까지 장애인은 나밖에 없었거든요. 나와 친구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장애인이니까 당연하지 생각했다가도 동시에 내가 왜? 나는 왜 그래야 돼? 너는 왜? 그때부터 억울한 거예요. 그때 운동은 몰랐는데 분노가 있었어요. 억울함과 분노라는 감정이 있었어요. 왜 비장애인과 나는 다른지, 그 때는 차별이나 억압 같은 단어는 몰랐지만 문제의식이 생겼고, 장애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장애인운동을 하다보니까 또 답답한 거에요. 장애여성의 일상은 여전히 차별과 억압과 보호와 통제가 여전히 있는 거에요. 너무 답답했어요. 인권운동한다는 건데 나 왜 이렇게 답답하지? 미치겠는 거에요. 그런데 장애여성운동을 통해서, 공감을 만나면서 와! 이거야!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어요. 답답했는데 숨을 쉴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공감 운동을 하면서 장애여성 운동을 통해 정말 많이 배우고 정신없이 빡세게 지냈어요. 그만큼 고되고 고단하고 힘들 때도 당연히 많았지만요. 솔. 까. 말.(웃음)
낙태죄 폐지 운동이 정말 희열!
조미경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해온 것은 동료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서로 나누며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순간순간 희열을 줬어요. 낙태죄 폐지 때도 정말 희열! 이게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애여성 운동을 이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장애여성공감은 같거나 또는 다른 몸, 경험, 삶. 이들과 함께 서로 주거니 받거니 서로 나누면서 부딪히면서 운동의 감각을 키우고 나 자신에 대한 의미를 존재를 드러내고 나누는 운동의 현장이에요. 머리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가서 만나고 나누고 부딪히는 게 바로 운동이라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배웠고,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청각장애가 있다보니 쉽지 않아요. 사람 만날 때 눈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지금은 근데 문자통역을 보려면 기기를 봐요. 농담이던 뭐던 주거니 받거니 하려면 눈을 봐야 하는데 아쉽죠. 저는 나름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주거니 받거니가 쉽지 않아졌잖아요. 그럼에도 운동의 현장이 중요하다고 여전히 생각해요. 공감 활동가들이 많이 얘기해왔지만 누구나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동료들과 함께 너무나도 다양한 연대를 하고, 다른 언어와 삶을 나누는 건 너무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활동가로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셰어 아까 낙태죄 폐지 됐을 때 희열느꼈다고 했잖아요. 셰어에게도 장애여성운동과 재생산정의 운동을 함께 하는게 그런 마음이에요. 그동안 운동사회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희열인 것인지 느껴요. 장애여성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조미경 공감이 사실 장애여성의 몸 섹슈얼리티 (이 말을 발음하는게 되게 어려웠는데) 의제를 시작했잖아요. 성규범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고, 탈시설 시설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셰어랑 같이 중요한 내용들 만드는 게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낙태죄 폐지가 중요했던 건 앞으로 할 게 너무 많고 이게 시작이라는 것이었어요. 같이 할 게 너무너무 많은 거예요.
셰어 낙태죄 폐지와 그 이후를 만드는 그 출발점을 장애여성운동과 함께 만들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권리의 출발점을 어디로 해야 할지, 앞길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같이 했기 때문에 우생학의 문제를 제기하고,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조미경 그래서 장애여성운동은 장애여성 당사자가 몸으로 느끼는 감각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동료들과 함께 성적권리와 재생산을 위해서 같이 하는 거 자체가 너무너무 소중하죠. 배틀그라운드를 함께 쓰고 운동했던 이런 동료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거에요.
셰어 아까 장애운동을 하면서도 장애여성으로서의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고 하셨잖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조미경 되게 많겠지만 예를 하나 들면 자립생활 운동 안에서도 장애여성에게는 훨씬 보호주의가 작동해요. 장애인의 독립을 중요한 의제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그 안에서 독립을 얘기하면서 장애여성들이 경험하는 통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어요. IL 현장 안에서도 사실 너무 장애여성 관점의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못하고, 장애여성이 주변으로부터 통제되거나 독립하지 못하는 문제, 성폭력의 이슈도 다 나중이 되고. 장애여성의 삶의 문제는 후자로 다뤄지는 게 답답했어요. 장애운동 안에서 장애여성 활동가들이 리더십을 가지기 어려운 것도 중요한 문제에요. 항상 실무자의 위치에서 살림하는 사람으로 주변화되고, 장애여성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그걸 통해서 운동을 바꿀 수 있는 위치와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거죠. 이런 게 바뀌지 않으니 더 자신감을 가지기 어렵고, 장애여성 주체들을 더 많이 만들고 조직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어요.
셰어 장애여성공감도 그렇고 미경님도 각별하게 소수자 연대에 관심이 많으신데요. 이걸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으세요?
조미경 장애여성 운동을 하기 전에 사실 성소수자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장애인 운동을 할때는 장애만을 생각했는데 공감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초기에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을때 페미니즘 강의를 처음 들었는데 너무 놀라웠고 그 분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하지만 저도, 강사님도 부끄러움이 많아서 겨우 인사만 했죠. 그분도 제가 낯설었을 수도 있어요. (웃음) 그때가 시작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고 고민이 생겼어요.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 성소수자, 장애 이주민, 장애 HIV 감염인… 장애인 안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고 다양한 정체성이 있는데 여전히 언어를 만들고 존재를 드러내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숨센터에서 장애인만이 아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자조모임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쉽지는 않았어요.
셰어 소수자 그룹안에서 차이도 크다 보니까 같이 만나는 게 또다른 어려움이 있더라구요.
조미경 그렇죠. 그래서 다른 몸의 언어와 경험을 나누는 게 중요하죠.
장애-소수자들 사이에 몸의 언어와 경험을 나누는 것의 중요성
셰어 요즘에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윤가브리엘님이 장애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전장연에서 만든 장애인 건강권 모임에 참여하게 될것 같아요. 이런 경험이 HIV/AIDS 운동에도 중요한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조미경 너무 좋아. 너무 반갑다. 저도 이런 게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초반에만 해도 HIV 감염인 분들이 장애라는 것 자체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낙인이 있기도 하고, 장애 여성도 HIV가 낯설고 각자의 낙인이 있었던거죠. 그래서 저는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반갑네요. 바로 이런 거!
셰어 그리고 한국농인LGBT+ 단체도 있고 이번에 농인 성소수자 실태조사 발표를 해요.
조미경 와! 저는 되게 고민이었던 게, 청각장애가 생기면서 느낀 게, 이 분들의 언어가 장애운동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너무 드러난 게 없는 거에요. 자료를 찾다가 너무 없어서 그 분들을 너무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저는 몸의 특성상 또 수어가 안 돼.(웃음) 그랬는데 하여튼 너무 반가워요.
셰어 다음에 같이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조미경 좋아요. 나는 수어를 못하고, 그 분은 구화가 어려울 때 서로 소통방법을 찾아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셰어 뇌출혈 이후 달라진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미경 2020년에 공동대표 되고 1년 만에 뇌출혈이 생겼잖아요. 원래 골형성부전증이고 척추측만증으로 인해서 호흡기 장애가 오고 그 다음에 청각장애가 생겼는데 뇌출혈 이후 시각장애와 실어증, 언어장애가 새롭게 생겼고, 청각장애는 더 심해져서 문자통역이 있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어요. 기억 니은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우면서 시작해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고, 그동안 있었던 단어와 말들이 사라져서 대화하고 관계맺는게 힘들어졌어요. 그게 가장 슬프고 답답하고 힘든 것이었어요.
새삼 생각해보니까 이런 중복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더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절감했고, 이 사회가 얼마나 언어, 비장애 중심 사회인지 더 온몸으로 느꼈죠. 말을 하고, 듣고, 쓰고, 읽고,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고 그러면서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웃고 떠들고 서로의 존재를 서로 말하는 게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당연한 게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거라는 거. 그게 되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온몸으로 느꼈어요. 오래전부터 동료들과 함께 사회적 고립이나 차별에 맞서서 운동을 해왔지만 제 몸의 변화를 통해서 새롭게 깨달으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욱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고립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한 의지와 욕망
셰어 어느덧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하네요. 셰어와 조이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전해주세요.
조미경 30년 전에 만났던 장애여성 언니들, 친구들을 20년 넘게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시에 활발하게 살던 분들 중에 다시 고립된 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서 몇 분을 찾아갔어요. 더 장애가 심해졌거나, 질병이 생겼거나, 나이가 들었는데, 가장 큰 것은 모두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준 저에게 고맙다고 하시는 거에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졌어요. 특히 한 분은 언어장애가 있던 분인데 목이 골절되어서 지난 25년간 집안에서 누워서만 지내셨던 거에요. 8시간 걸려서 집으로 찾아갔는데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너무 경직된 얼굴이더라구요. 그동안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지내서 표정이 잘 안 지어지는 거였어요. 세번째 만나니까 표정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서 너무 안도했어요. 내가 어딘가 살아있다는 것을 나누는 사람이 있다는것이 중요하구나, 내가 그랬듯이. 머리로는 알지만 이렇게 몸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게 운동이구나 느꼈어요.
그래서 셰어와 이런 마음과 고민을 나누고 싶었어요. 젠더, 장애와 나이로 인해서 고립된 사람들에게 요즘은 주민센터에서 전화로 안부를 묻지만 중요한 건 관계가 생겨야 하는 거잖아요. 누구나 고립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길 원하지 않아요. 그냥 좋은 마음인거죠. 이 사람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관심을 갖고 함께 살고 싶은 욕구와 욕망이 생기는 게 저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너무 쉽지 않지만 근데 되게 필요하다. 같이 살고 싶고, 나누고 싶고, 친구되고 싶고가 욕망이 되는 거. 저는 셰어가 만든 것들을 보면서 시야가 생긴거에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 그게 말로 봤을 땐 어려울 수 있지만 하나하나 제 경험을 돌아보면서 그 의미에 대해서 또 다시 온몸으로 느꼈어요. 결국은 함께하는 욕망이죠!
그래서 고립된 채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너무나도 수많은 사람들, 저도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함께 사는 게 당연한 게 아니란 말이에요. 수많은 장애여성, 소수자들에게 간절하게 서로의 삶을 나누는 동료와 나눌 수 있는 공간, 지원체계, 연대가 너무 절실해요. 그래서 셰어가 하고 있는 운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저에게 셰어가 동료로 있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껴요. 곳곳에서 고립된 사람들과 외로운 이들이 정말 자유롭고 평화롭게 같이 살고 싶은 욕망들이 많이 생기고 욕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실현하는 운동이 더 활발해지길 바래요. 그래서 이를 위해서 함께 든든한 동료들, 조이 분들이 많이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함께 서로서로 삶을 많이많이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셰어 (일동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중 ㅠㅠ) 정말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조미경 뇌출혈 이후 외부에 나와서 이렇게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몇년만이에요. 다시 한 번 내가 살아난 이유를 느껴요. 정말 감사해요. 이곳이 서로의 감각을 다시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래요. 셰어의 후원이 많이 늘어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