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후기] 셰어X한농퀴 2024년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트랜지션”편

2024-09-05


지난 8월 28일 무더웠던 여름 저녁, 4차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트랜지션”편이 열렸습니다. 작년 <색다른 토크하셰어> 1차 주제 ‘다양한 몸들이 모여서 함께 나누는 질과 자궁 이야기’에서 에디님의 질재건술 전후 겪었던 구체적인 경험을 들으며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정보를 포함해 모든 접근성을 배제하고 있는 현 보건의료체계에 필요한 변화들을 논의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의료적 트랜지션을 넘어 지정된 성별에 따르지 않고도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변혁을 꿈꾸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타리 에브리바디플레져랩팀장, 정글 트랜스패런트 운영자,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의 성형외과 전문의가 함께 공동진행을 맡았고, 보석, 수진 한국농인LGBT 활동가 두 분이 수어 통역을 진행했습니다.



정글님이 우선 자신의 트랜지션 경험으로 이야기를 열었는데요. 의료적 트랜지션은 20살에 처음 호르몬치료를 시작했다가 가족들이 알게 된 이후 꽤 오랜기간 부정의 기간을 거치셨다고 해요. 그리고 두번째 호르몬치료를 시작하고부터 현재 4년째인데, 다시 시작한 첫해에는 그동안 생각만 해오던 것들을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느낌이라 의욕도 넘치고 “매우 신나는”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비로소 “첫 트랜지션이 중단된 순간부터 두번째 트랜지션이 시작된 시간이 마치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해요. 두번째 해부터는 드랙 경험을 바탕으로 재밌는 파티를 기획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중요한 아젠다 없이도 (트랜스젠더들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 나눌수 있는” 트랜스패런트 행사를 열어 “다양한 직업군에서 자기 모습대로 고민하고 찾아가며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기쁜 마음으로 이어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정글님은 트랜지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더 명확히 밝혀주었는데, “트랜지션은 나 혼자 내 몸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과 이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며, 커뮤니티 내 용어인 ‘완트(완전한 트랜스)’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어떤 시작과 종착 지점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각자가 편안함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고, 스스로와 화해하면서 안전한 지점을 찾아 결국 “자신의 모습으로 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랜지션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얼굴, 몸, 머리 길이와 같은 외모에만 집중하기 쉬운데, 그보다는 마치 정해진 것처럼 간주되는 여성과 남성의 정의, 젠더에 관한 질문을 파고들어 논의를 확장하고 사회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우리가 성취해야 할 것이라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몸과 화해하는 과정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정글님의 경우에 처음 트랜지션을 시작할 때 찾아간 병원은 치료에 관한 전문성이 결여된 곳이어서 “주사 주기를 어느 정도 하나요?”라는 질문에 “오고 싶은대로 오면 돼요”라는 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의료적 트랜지션의 접근성에 있어서 단순히 병원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공신력 있는 의료 정보를 찾기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타리님은 셰어의 미션 중 하나가 바로 그러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인데, 정보가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며,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미루는 질문들은 언젠가 고민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의료인, 상담사, 커뮤니티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음으로 김결희님은 종합병원에서 다학제적 팀을 꾸려 트랜지션 수술을 하기까지 거쳐왔던 지난한 과정을 요약해서 들려 주셨습니다. 전문성과 감수성을 갖춘 의료진, 성별다양성을 고려한 병원 환경, 정보 접근성을 계속 고민하면서 홈페이지 및 뉴스레터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고, 온라인강의(스마트 Q), 유튜브채널(Dr. 결희킴TV)도 운영하는 등 여러 활동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느끼는 것은 특히 의료적 트랜지션과 관련해서 트랜스커뮤니티 내 폐쇄된 정보유통 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트랜스패런트를 비롯해서 다양한 방식의 당사자 모임들이 중요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회차의 질문들은 트랜지션 제목만큼 방대하고 다양해서 사전에 분류하기도 쉽지 않았는데요, 호르몬치료와 수술이라는 의료적 트랜지션으로 크게 나누어서 현장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호르몬치료에 관해서는 치료가 필수적인지 여부, 치료를 위해 갖춰야 할 건강 상태, 미성년자 부모 동의, 건강보험에 대한 질문 등이 있었습니다. 김결희님은 “트랜지션을 위해 호르몬치료가 당연히 필수적이지는 않다”고 강조하면서, 가장 최근에 나온 트랜지션 관련 국제 가이드라인(WPATH SoC8)에 따르면 의학적인 금기가 아닌 이상 환자 스스로 호르몬치료나 수술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가역적인 치료인 호르몬치료를 수술 전에 6개월 이상 권고하던 이전 판본과 달리, 수술을 먼저 진행할 수도 있고 정해진 순서는 없다고 합니다. 

청소년의 경우 비용도 문제지만, 사춘기 억제제를 포함한 호르몬치료 시작이나 수술을 위해 현재 부모 동의가 필요한 상황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청소년의 의료적 결정에 대한 동의 문제는 트랜지션뿐 아니라 임신중지와 같은 영역에서도 부모 동의를 필수 요건으로 할 때 인권침해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당사자의 의사를 중심에 두고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이야기되었습니다. 



수술 관련한 질문에서는 의료인의 사전 소통, 비용 및 성확정수술(가슴제거술, 음경재건술, 질재건술, 음성수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오갔는데요. 김결희님은 해외에서는 수술을 위해 의료인뿐만 아니라 사회사업팀, 심리상담사, 커뮤니티 위원회 등과 같은 병원 내부 시스템이 함께 연동되어 필요한 도움을 주기도 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수술의사와의 소통만이 중심이 되고 있는 한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양한 성확정수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디스포리아에 대한 논의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는데요. 타리님은 흔히 디스포리아로 인해 수술을 필요로 한다고 했을 때, 디스포리아를 느끼거나 해석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외과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부분이 함께 섞이기도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글님은 디스포리아가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이나 고통이라 했을 때 이에 대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도 사람마다 다를 것인데, 젠더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는 사회적인 영향과 인식도 작용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디스포리아 때문에 신체의 어느 부분을 수술한다고 했을 때,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지 않은 레즈비언부치의 가슴제거술, 안면장애가 있는 사람의 수술 등은 젠더와 관련 없는 것으로 퉁쳐 생각할 수 있는지도 질문되었습니다. 결국 어디까지가 ‘젠더 디스포리아’인지 말할 수 없다면 트랜스젠더 진료와 시스젠더 진료를 딱 떨어지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시스젠더의 갱년기 호르몬치료는 트랜스젠더의 호르몬치료와 디스포리아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른지도 다시 질문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정글님은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어쩌면 그런 관점에서 “우리 모두는 트랜스”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고, 다른 참여자들도 이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또한 질재건술이나 음경재건술을 할 때 스스로 원하는 성기의 모양이나 길이, 크기를 편하게 선택할 수 있기보다는 이성애중심적이고 남근중심적 사고에 의해 정해지는 현상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트랜스여성의 수술 후 관리로서 다이레이션 방법, 성확정수술 후 느끼는 성감에 대한 질문, 전형적이지 않은 형태로 성기재건술을 원하는 경우 등에 대해서 김결희님이 의료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장장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열기가 식지 않고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어느덧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어요. 신청시 작성해주신 의료인/기관에 바라는 점은 타리님이 전체 참여자들에게 소개해주는 것으로 갈음하였습니다.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나이, 지역, 언어, 비용 등의 장벽 없이 의료적 트랜지션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여러 자리에서 이를 위한 논의를 더 확장하겠다는 다짐을 새기며 다함께 뜨거웠던 여름밤 모임을 마쳤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트랜지션>편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이후 한국어/수어 정보 컨텐츠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제작될 컨텐츠와 더불어 앞으로 매달 이어질 무엇이든 물어보셰어에도 많은 관심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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