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조이풀 인터뷰] 8화 : 셰어와 함께 다양한 권리들의 언어를 삶의 언어로 풀어내고 싶어요! 달걀부리 마을 식구들의 이야기

2022-12-29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조이풀 인터뷰] 8화

셰어와 함께 다양한 권리들의 언어를 삶의 언어로 풀어내고 싶어요!

달걀부리 마을 식구들의 이야기

 

이번 조이풀 인터뷰의 주인공은 달걀부리 마을에 함께 살고 있는 식구들-기린(홍승은), 칼리(홍승희), 우주해달, 먼지민-입니다. 자매사이인 기린님과 칼리님, 폴리아모리 연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기린, 우주해달, 먼지민 네 분 모두 셰어의 든든한 조이이자 셰어의 다양한 활동과 집회에 참여하는 분들이시죠. 최근에는 셰어에서 만든 <에브리바디 플레져북>과 <섹스빙고>를 직접 강의와 글쓰기 모임, 책, 칼럼 등에 소개하며 본인들의 활동에 적극 반영하고 있기도 한데요.

셰어 활동가들도 인터뷰를 겸해 네 분을 만나면서 따뜻한 환대와 응원, 적극적인 아이디어들에 많은 힘을 얻고 왔습니다. 네 분의 이야기를 보면서 여러분도 많은 영감을 얻어보시길 바래요 :)


함께한 사람들

셰어 : 나영, 타리, 혜원

달걀부리 식구들 : 기린(홍승은), 칼리(홍승희), 우주해달, 먼지민


나영 : 현재 하고 계신 일들과 활동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우주해달 : 저는 우주해달입니다. 회사원이고요. 근래 주변화되고, 비가시화 된 몸과 마음에 관한  책이 있으면 옮기고 있어요. 올초에는 <반란의 매춘부> 작업을 마치고, 새롭게 앨리슨 케이퍼의 <페미니스트, 퀴어, 크립>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원래 교육 관련한 일을 하다가, 지금 사범대 교대에서 예비교사들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요. 거기서 어떻게든 소수자나 평소에 교육에서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셰어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잘 흡수해서 전달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린 : 저는 승은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기린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어요. 주로 집필 노동과 강연 노동을 하고 있고요. 경기도에 산지는 이제 5년 정도 되어갑니다. 원래는 강원도 춘천에서 쭉 오래 살았는데,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기도 하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기도 하면서 제도나 중심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밀려나는 경험들을 할 때 고립감과 분노가 차올랐어요. 그런데 그걸 설명할 언어나 연결 관계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죠. 학생운동을 하면서는 큰 구호들을 외치기는 하는데  구호와 삶 사이의 괴리, 자리 사이의 공허함을 많이 느끼고 상처받는 일도 많았어요. 이후 페미니즘과 퀴어페미니즘, 장애학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그 동안 열심히 외쳐왔지만 놓치고 있었던 게 뭔지 알게 되면서 집필노동을 하게 됐어요. 춘천에서 저와 칼리를 포함해서 제도권에서 이탈되고, 가족이나 정상성으로부터 이탈된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대안공동체를 만들어보자 하여 인문학 카페 36.5도를 6년 정도 운영했어요. 지금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써왔던 글을 소개해보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숨은 말 찾기> 등이 있고, 크리스마스이브 때 신간이 나옵니다! (박수) 유유 출판사에 땡땡의 말들 시리즈가 있어요. 거기에서 <관계의 말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오는데요, 다양한 관계 맺음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셰어의 <에브리바디 플레져북>도 인용되어 있고, 성적권리 꼭지도 포함되어 있어요!


셰어 : 와~축하드립니다!


칼리 : 안녕하세요, 저는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연대하는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 무당 칼리입니다. 저도 활동해온 것을 어디서부터 소개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요. 2008년에 촛불집회에 가서 그때 처음으로 집단 황홀경을 경험했고, 이후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이 사회가 빨리 바뀌려면 자본주의 반대하고, 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통일 운동과 노동 운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어요. 인문학 카페에 함께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고요. 그 때는 여기에서 제가 활동을 제대로 안 하면 저는 이 세상에서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해서  좌절도 많이 했고, 몸이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 무너지게 되는 일이 많았어요. 이런 과정을 겪다가 세월호 이후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직접 행동하고 싶어 퍼포먼스와 그래피티를 했어요. 그리고 그 즈음에 임신중지를 했는데,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사회정의에는 여성의 몸은 없었고, 고통을 겪고 나니 이것을 글로 쓰는 게 되게 중요하구나 알았어요. 임신중지 수술을 앞두고 있었을 때 기린 언니가 옆에서 이걸 글로 써야 너의 상처도 치유될 수 있고, 아픔이 우리에게 머무는 게 아니라 계속 말해질 수 있다고 격려를 해줘서 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6년 전부터 지금까지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지금까지 쓴 책은 제 성적 경험에 관해 기록한 <붉은 선>, 타투나 교도소, 마약처럼 두려움의 상징이 된 것들에 대해 쓴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무당이 된 다음에 쓴 <신령님이 보고 계셔>가 있어요. 이번에 나온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도 연장선에 있는데, 개인의 영적인 각성과 사회적인 변화를 분리하는 편견을 정화하는 게 되게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고, 부모님의 이야기도 실려 있어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먼지민 : 저는 먼지민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이런 자기소개 요청을 받았을 때 너무 많은 직업을 가지고 있나 할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무지개 무당 무무로 상담을 중심에 두고 사람들을 만나서 기존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은 것들을 같이 상담하고 삶을 풀어내는 작업들을 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지역 책방에 관심이 많아서 책방에서 작은 모임들을 계속 운영하면서 안전하고 환대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 독서 모임도 함께 하고 있고요. 가장 기쁜 순간은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어요!”라고 말해줄 때예요. 이런 걸 평생 해나가고 싶어요. 여기저기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데 게으른 편이라 적극적으로 활동은 못 하고 있지만, ‘여행자(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나 ‘갓길’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어요.


나영 : 갓길은 어떤 곳인가요?


먼지민 : 제가 5년 전 기독교 대학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연 이후에, 학교에서 저에게 성소수자라는 이유와 굉장히 다양한 비정상 딱지를 붙이면서 무기정학 시킨 사건인데, 제 삶의 되게 큰 사건이에요. 이후에 비슷한 사건들을 발견하며 접점을 만들어가다가 같이 활동을 해보자 하여 만든 단체예요. 최근 감신대(감리교신학대학교)와 총신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런 모임이 존재하면 문의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같이 연대할 수 있겠다 싶어서 없애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영 : 네 분이 모두 조이이신데 각자 어떤 이유로 셰어의 조이가 되셨나요?


먼지민 :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단체였어요. 가장 큰 이유는 구성원분들의 활동을 그 전부터 따라가고 있었고, 거기서 만난 다양한 언어들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제일 결정적이었던 건 처음 셰어 창립하면서 분야별 간담회 했을 때 저에게 너무 큰 영감이 되었거든요. 활동을 해나갈 때 어떤 기준점을 잡고, 무엇을 마음에 담아 활동을 해야 되는가 라는 생각에 되게 큰 영감을 줬어요. 그 때도 여행자의 한 명으로 기웃기웃했지만, 저한테는 셰어에 대한 큰 인상이 남았어요. 늦었지만 조이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칼리 : 저는 식구 따라서 셰어에 갔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요. 2년 전에 한국에 돌아와서 정기적인 수입도 생기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후원회원을 하면서 힘을 보탤 곳을 식구들에게 물어보다가 다들 첫 번째로 말한 곳이 셰어였어요. 사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믿는 마음으로 활동을 지켜보면서 계속 감사한 마음으로 계셨던 분들이 셰어 활동을 하고 계셔서 너무 잘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틈새들을 이불 솜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좀 더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이 따뜻할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기린 : 처음에 읽은 페미니즘 책을 떠올려보면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에요. 이걸 통해서 페미니즘의 언어를 공부한 게 너무 다행이라고 느껴요. 그 책이 아니었다면 교차성 등을 놓쳤을 거예요. 지금도 글방을 열 때 참고도서로 많이 활용할 정도로 너무 사랑하고요. 타리님을 알게 되고, 인문학 카페 때도 초청하기도 했어요. 저한테는 선배가 있는 게 살면서 흔치 않은 일인데, 나영님과 타리님은 믿고 따르는 선배의 존재이고, 두 분의 자취와 기록을 따라가면서 배워왔던 역사가 있어요. 칼리가 저에게 ‘자기가 저의 붕어똥처럼 달려다니는 존재다’라고 하는데, 저도 그런 느낌이에요. 또 셰어의 활동을 되게 믿고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특히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가 연결되는 낙태죄 폐지의 역사, 운동과 또 모두를 위한 성교육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이나 그런 문제의식도 너무나 사랑하고 감사하게 배우고 있어요. 장애여성이나 아픈 몸, HIV 감염인, 이런 놓치기 쉬운 틈새들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찾아내려는 단체이기 때문에 저는 기꺼이 조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주해달 : 앞에서 다 해주셨는데, 비슷한 역사였던 것 같아요. 승은과 인문학 까페를 함께 운영했어요. 그때부터 주변에 활동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알게 되고, 배우고, 믿으면서 글을 읽게 되는 분들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중에 많은 분들이 셰어에 모이셨다는 것을 알게 돼서 그렇게 셰어의 조이가 되었던 것 같아요. 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 있을 때 가입신청서 썼던 기억이 나네요. 너무 좋아하고 지금도 셰어의 활동을 접하다 보니 원래는 몰랐던 다른 활동가분들, 선생님들을 알게 되면서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나영 : 우주해달님은 셰어의 미라클 세미나에도 참여를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미라클 세미나는 2022년에 시작된 재생산정의를 주제로 한 셰어의 세미나 모임입니다)


우주해달 :  오랜만에 영어 텍스트를 붙잡고 발제와 공유를 하면서 전에는 잡히지 않았던 ‘재생산 권리와 정의’라는 개념이나 이야기의 실마리를 조금씩 잡게 되었어요. 대략 이런 정도를 이야기하고, 추구하는 거구나 알게 되었고, 이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제가 주워 먹는 재미로 함께 했어요. 전공 분야도 다양하고, 재생산정의 관련해서도 서로 관심 가지는 주제들이 다양해서 재미있게 해나가고 있어요.


나영 : 특히 어떤 부분에 관심이 가셨어요?


우주해달 : 요즘 번역하고 있는 책에서 주로 미래 담론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요. 제가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인데요. 우리가 미래를 상상할 때는 거기에 등장하는 특정한 몸과 마음이  있는 거 같아요. 그 토대 위에서 사람들이 태어나거나, 양육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배제되죠.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들을 찌질한 사람들로 몰기도 하고, 그 사람들이 특정한 물적 토대에 의해 갇히게 되고요. 그에 따라서 어떤 직업을 갖게 되기도 하고. 이런 것들에 관심이 생겨서 재생산 미래주의 관련해서도 책을 읽고, 고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영 : 네 분이 <에브리바디 플레져북>과 <섹스빙고>를 잘 활용하고 있더라고요. 특히 기린님은 칼럼이나 이번 글방에서도 적극적으로 소개를 해주셨죠. 사실 워크북을 만들면서 이 자료가 매개하는 사람 없이 개인 차원에서도 잘 활용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었는데, 네 분은 어떠셨는지, 좋은 점과 아쉬운 점, 소개는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기린 : 성교육이나 욕망글방에서. 이야기를 꺼낼 때 처음에 질문을 해요. 모두를 위한 성교육이라고 할 때 여기에서 ‘모두’를 누구까지 상상하는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여태까지 우리가 받아온 성교육의 대상과 방식이 누구를 중심으로 뒀는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성적권리는 어디까지일까? 단지 섹스할 권리를 말하는 걸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경험은 어떤 감정이나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로 시작해요. 이 질문이 가능하게 해준 게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이죠. 

저에게 섹스는 주로 어떤 금기 아니면 꼭 달성해야 할 트로피 둘 중에 하나로만 되어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근데 여기에서 섹스를 ‘탐험하는’이라는 진행형으로 표현된 게 저에게는 여백을 주는 느낌이었어요. 달성해야될 게 아니라, 계속 탐구하고 탐색하는 여정이라는 소개가 되게 좋았고요. 또,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너무 낯설었거든요. 대부분 수치심, 슬픔, 공허함, 빡침이었지 즐거움은 몇 안 되는 느낌이었어요. 하나하나 제목에서부터 되게 큰 영향을 받았어요. 욕망글방 커리큘럼 짤 때도 섹스할 권리를 반복 재생하는 게 아니라 세밀한 틈을 넣었어요.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을 보면서 내 몸을 이 사회에서, 또 나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성적권리란 무엇일지를 각자의 위치에서 이야기해보는 것, 동의와 폭력 사이, 또 그렇게만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어떤 언어로 우리가 표현할 수 있을까와 같은 주제들을 힌트로 삼았어요. 글방에서도 최악의 섹스, 최고의 섹스 그래프도 그려보고, 빙고게임도 하고요. 그러면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음담패설이 아니라 재미있고 진솔하게 나누면서, 그러면서도 야하게 놀 수 있다!라는 걸 찾은 게 제 활용 방식입니다.


타리 : 슬로건 하나하나의 의미를 발견해주신 게 정말 소중해요. 역량만큼 발견하고 만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일방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구요. 저희가 너무 감사합니다.


나영 : 그 전에 이 집에서도 식구들끼리 해보셨잖아요. 어떠셨어요?


기린 : 칼리님 없이 셋이 했어요. 몸 그리기를 했는데, 서로 자신의 몸을 디테일하게 미워하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털 하나부터 생김새, 피부 결, 부위 하나하나를 처음으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어요. 자기 몸에 대한 인식이 이러니까 관계에서는 어떻게 발동되었는지 알게 되기도 했어요. 레크레이션으로 섹스 A to Z도 했는데요, 은근슬쩍 두 사람 들으라고 우회적이면서 직설적이게 대화하기에 좋은 방식인 거 같았어요. 감각 탐구도 했고, 가다실 접종도 놓치고 있다는 걸 알았고, 많이 배웠어요. (웃음)


칼리 : 저도 하고 싶어요!


우주해달 : 부끄러웠어요. 같이 터놓고 해봤던 적이 없어서요. 아까 그래프 그리는 것도 섹스를 공유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그거를 옆에서 그려야 하니까 눈치가 보였어요. 좋다고 과장해야 하나?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와 같이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작년, 올해 다른 시도들을 해본 기억이 있어서 승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하기도 했고, 그런 것들을 서로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밌었어요. 나의 만족감을 높여주는 요소들이 있을 텐데, 해보니까 저에게는 그 요소가 ‘낯선 사람’이더라구요. 물론 오래 만난 사람과의 만족감도 있지만, 뭔가 다르단 느낌이 들었어요. 그걸 정리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먼지민 : 그때 당시에는 제가 아직 학교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라서, 우울과 무기력이 베이스라 욕망이 잘 안 나왔어요. 그래서 셋이 할 때는 제 욕망에 관해서 크게 얘기하지 못했는데, 방금 우주해달 얘기를 들으면서 떠오른 건, 처음 SM 용어를 접했을 때 해방감 비슷한 걸 느꼈어요. 내가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상황에, 특정한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이렇게 언어화될 수 있구나, 그리고 그게 기쁨일 수 있구나, 마치 SM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리고 이 식구들한테 영향을 받았는데, 고민이 있었어요. 사람마다 섹스가 관계의 그래프 안에서 언제 등장하는 것이 좋은지, 어느 정도 교감이 됐을 때 섹스가 등장하는지 그 시기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잖아요. 교감이 전혀 없을 때 섹스가 즐거운 사람이 있고, 또 교감이 가득했을 때 섹스가 즐거운 사람이 있고요. 이런 고민을 서로 나눴을 때, 예전에 들은 승은의 고민은 “나는 교감이 많아야 섹스가 가능해지는데 이게 내 특성인지, 아니면 이렇게 길러져서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걸 극복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든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희에게는 이 워크북이 “같이 경험을 쌓으며 실패를 계속 해보자. 그러면서 실패를 해도 안전할 수 있도록 서로 옆에 존재해주기만 한다면 섹스도 탐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언어를 제공해 준 경험이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욕망이 막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여러 실패를 하면서 느낀 건 실패는 아프지만 재밌다! 입니다.


타리 : 와~! 어쨌든 세 분은 책으로 쓸 수 있을만큼 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인데, 이 플레져북을 통해서 안 하던 얘기를 해봤다. 특히 섹스와 관련된, 혹은 몸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셨다는 것이 너무 소중하게 들리는 것 같아요. 이런 대화들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후에 언젠가 또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린 :  “우린 독점하지 않는 걸 지향해” 하면서도 그 동안 저희도 모르게 은연중에 눈치를 보고 가두려고 한 게 생겼던 것 같아요. 오히려 터놓고 이야기하고, 각자의 삶에서 친밀한 관계와 돌봄의 네트워크가 계속 넓어지니까 성적인 것이 꼭 맞아야 되나 생각했어요. 그게 한 때는 잠깐 슬펐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폴리아모리라는 단어도 잘 안 쓰게 됐어요. 예전에는 연애라는 좁은 규범을 확장하는 방식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해체하고 ‘애인’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가 있을까 하며 그냥 언제든 내일이라도 헤어질 수 있는 관계에서 지금의 우리를 잘 돌보고 사는 것으로 생각해요.


먼지민 : 기존에는 올바름을 중심으로 고민해서, 관계에서 어떤 지점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했다면, 거기서 탈락됐던 즐거움을 발견하게 해준 게 셰어에서 발행한 다양한 자료와 이야기들 덕분이기도 했어요.


칼리 : 저도 손님들, 이런 즐거움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도 하고 선물도 했는데 되게 좋아하셨어요.


나영 : 칼리님 인터뷰집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전에도 무당이 활동가랑 비슷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결국 연결해 주는 역할이구나 생각했었는데, 칼리님 책에서 구체적으로 그 이야기들을 담아주셔서 좋았어요. 그런데 무속은 워낙 오랫동안 전수되어 왔던 지식이기도 해서, 칼리님의 지향이나 찾아오시는 분들의 고민과 부딪히는 부분들도 있을텐데 그럴 때 어떻게 해석해오셨는지 궁금하고, 성적권리나 재생산권리와 관련된 고민이 있는 분들과 어떻게 만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칼리 : 우선 보통 점을 보러 오시면 연애운, 결혼은, 자녀운 이 안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가 들어있는 협소한 개념으로 다가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런 정상 기준을 벗어나면 흉괘가 되는 게 전통적 해석이었어요. 저는 결혼, 출산을 하지 않아도, 꼭 한 사람만 만나지 않아도, 이혼해도 이것이 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점 보는 게 맞나 했어요. 그런데 식구들이 고민을 듣고 정상 기준에서 벗어난 운명 해석을 해주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얘기를 해줬어요. 성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분들이 오시면 경우에 따라 BDSM을 추천하거나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을 선물하기도 하고요. 성적인 상상력을 영적인 감수성이랑 연결해서 풀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리기도 해요. 보통 성적권리나 재생산정의 관련해서 고민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벗어나는 제가 이상한가요? 이대로 혼자 늙어 죽을까봐 두려워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공동체와 연결망을 소개해 드리는 식으로 해석을 해요.


태아령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태아령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이었어요. 저도 임신중지 수술을 했었고, 당시에 점집에 갔을 때는 저에게 태아령이 붙어 있고, 뭔가 좋은 기회가 와도 아이가 눈을 가리고 있어서 잘 못 보고 건강도 안 좋다고 했어요. 근데 이게 저뿐만 아니라 유산을 하거나, 임신중지 수술을 한 모든 여성이 보편적으로 듣는 말이더라고요. 무속 신앙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오래된 습관이자 성차별의 역사이기도 해요. 나영님 강연 들으면서 태아령, 여성의 억울한 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성 개인의 건강 문제로 해석해야 하고, 신비화된 이런 신화들을 벗겨내는 게 중요하구나 했어요. 


또 하나는 이혼이나 유산, 임신중지, 장애,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이것이 벌전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무속 신앙뿐만 아니라 불교 사상에도 있잖아요. 이생에 핸디캡을 가지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리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뭔가 전생에 잘못해서 그런가? 이런 벌전의 개념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두려움을 미끼로 신을 믿게 하고 이걸 유지하는 신앙이 아니라, 두려움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것들을 언어화하게 되었고, 인터뷰하면서 많이 정리하게 되었어요.


먼지민 : 여러모로 저는 칼리로부터 많은 언어를 얻기도 했고, 덕분에 세계를 보는 눈을 갖출 수 있었어요. 아주 사소하게는 사주의 다양한 글자에 질문이 생기면 먼저 고민했던 칼리가 답을 주는 방식으로 고민의 물꼬를 틀어줬는데, 실제로 상담할 때 그게 제 방법이 됐어요. “이 글자가 지금까지는 어떤 식으로 해석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어떠한 역사 속에서 이 글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상담의 방법이에요. 그래서 지금 우리 삶에서는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물어봐요. 종교를 찾아오는 분들은 특정한 권위를 빌리거나 권위에 기대고 싶을 때가 많아요. 처음에 그게 저에게 대단히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니 권위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식으로 “당신에게 당신의 서사를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해주는 게 어떨까 생각했어요. “이 글자가 이런 역사가 있다면, 당신의 삶에서 이 글자는 어떻게 영향을 발휘했나요?” 라고요. 그러다보면 저도 상담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 어느새 같이 대화하는 사람으로 위치가 바뀌게 되더라고요. 


현실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분은 4년간 다니고 있는 정신과 선생님이에요. 저도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고 권위를 주면서 이야기를 듣잖아요. 그럴 때 선생님의 어떤 모습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는지, 어떤 말들은 나를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데 아닌 척 하는지 묘하게 알아들어지니까 저도 스스로 상담할 때 그런 걸 보고 들으면서 거울 보듯 공부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결론은 해석하고 상담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건 실제로 셰어와 같은 단체, 활동가, 연구자의 언어들이에요. 예전에는 공부를 이 정도로 해야한다가 없었는데 이제는 공부라는걸 해야 한다로 바뀌었어요. 여전히 어려운 게 많아요. 가령 제가 산 땅 값이 오를까요? 이런 건 모른다고 얘기하면서 내담자랑 같이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나영 : 마지막으로 셰어 활동에서 관심있게 본 일들이나 앞으로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 바라는 것, 조이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기린 : 욕망글방을 오픈했을 때 거의 하루 만에 신청이 다 차고 대기가 줄을 섰어요. 그만큼 많은 사람이 욕망에 대해 관심이 있는데 이걸 안전하게 풀 곳이 없고 갈증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참가하신 분들의 동기를 보면 유성애뿐만 아니라 다양한 젠더 스펙트럼, 국적, 관계 지향도 다양하고 BDSM과 같이 금기된 욕망을 가진 분들 등 정말 각기 다른 위치에서 찾아오셨어요. 적극적으로 탐구할 기회가 필요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됐어요. 여성을 성적대상화하지 말라, 섹스의 자유, 성적 주체가 되자 라는 구호들 사이에서 다양한 욕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자, 동지가 저에겐 셰어에요. 장애여성, HIV 감염인, 난민 등 제가 잘 모르지만 관계 맺고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이들이 가진 권리의 언어를 삶의 언어로 같이 풀어내고 싶어요.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심화 버전도 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우주해달 : 더 바랄 게 없어요. 뉴스레터도 계속 받아 보고 있고, 얻어가는 게 너무 많아요. 또 되게 다양한 이슈들을 가지고 활동하고 계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렇게 따라가며 저도 관심사를 점점 넓혀가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책들과 연결해서 이걸 어떻게 나의 고민거리로, 나아가 가치관으로 넓혀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아까 이야기한 시간에 관한 것들, 시간성, 미래와 관련한 것들, 상황과 위치, 성별, 인종에 따라 접근성의 종류가 다른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재생산과 맞닿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셰어와 고민을 함께해보고 싶습니다!


칼리 : 연계클리닉 색다른의원이 있어서 되게 든든하다고 느꼈어요. 질염이 두려워지지 않는! 언제든 또 가고 싶어요. 플레져북 저도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 읽으면서 되게 좋았어요. 심리테스트처럼 온라인으로도 나와도 좋겠어요!


먼지민 : 안 지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목표처럼 구성원들 역량 강화뿐만 아니라, 돌봄이랑 쉼도 같이 가면 좋겠어요. 전 홍은전 선생님 글을 되게 좋아하는데,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건 좋은 사회의 징조가 아니라 그 사회가 수명을 다했다는 징조인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칼리의 최근 인터뷰집에서 제가 ‘함께 우는 존재’라는 말을 계속했던 것처럼, 우리같은 무당이나 셰어와 같은 활동가들이 사라지는 세상을 바라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 존재할 수 있을까를 바라게 됐어요. 마지막은 사랑 고백 같은데, 최근에 읽은 이슈페이퍼 수엉님의 글이 너무 좋았어요. 셰어가 발행하는 글들이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어요. 저도 읽으면서 매번 공부하는 입장으로서 같이 읽는 사람들이 생겨도 좋겠다!


우주해달 : 셰어 이슈페이퍼 읽기 모임 추진하시나요?


먼지민 : 고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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