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조이풀 인터뷰] 9화 :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수어통역사 박미애 조이님 이야기

2023-01-31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조이풀 인터뷰] 9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수어통역사 박미애 조이님 이야기


2022년 12월, 한 해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 정말 반가운 정기후원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집회, 기자회견, 토론회 등 어느 현장에서나 행사의 내용을 먼저 받아 고민하고 소통을 이어주시는 분, 수어통역사 박미애 님이 정기후원을 신청해 주셨거든요. 행사 현장에서 뵙거나 수어통역을 요청드릴 때마다 ‘성적권리’나 ‘재생산정의’ 같은 개념어들을 최대한 의미가 잘 소통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고, 제안도 해주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기에 셰어로서도 박미애 조이님의 등장은 정말 반갑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박미애 조이님은 지난 해 셰어 자립 응원 파티 때의 수어통역을 계기로 조이가 되기로 결심하셨다고 하는데요, 인터뷰를 하면서 저희도 수어통역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접근성’을 중요한 키워드로 삼아 활동해 나갈 올해의 셰어 활동에 중요한 제안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박미애 조이님과의 알찬 인터뷰 소개해 드릴께요. 꼭 읽어보셔요!


셰어  안녕하세요! 통역사님을 드디어 이렇게 조이로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고 기뻐요! 조이로 가입하신 거 보고 셰어 활동가들 모두 정말 기뻐했거든요. 혹시 조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따로 있나요? 


박미애  셰어를 처음 알게 된 건 재작년 장애여성공감의 IL과 젠더 포럼 때였어요. 그 때는 되게 난감했던 기억이 나요.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수어로 어떻게 통역할지도 어렵고, 차별없는 수어를 사용하자는 제안들도 있고 해서 어려웠죠. 그리고 나서 작년 4.10 집회(‘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 때 또 통역을 했죠. 그 때도 용어가 어려워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저의 생각을 깨준 것들이 있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아직 깨지지않은 나의 생각들을 많이 깨주었죠. 그리고 저도 딸이 있어서 이런 곳에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여자로서 사는게 위험하긴 하잖아요. 사건사고 안당하면 좋겠지만 일어나도 본인 탓을 하지 않고, 지지받을 수 있다는 공간이 있다는 것,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걸 제 딸도 알았으면 좋겠고요.  그 동안 나는 왜 임신중지에 대해서도 사건이나 사고라고만 생각하고 그저 안 벌어지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되돌아보게 해준 것 같아요.

스무살 초반에 내가 이런 단체를 알았으면 어땠을까 이런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한 마디로 ‘빽’이되는 단체일 수 있겠다. 다양한 일을 겪었을 때 경찰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 먼저 찾을 수 있고, 그런 일이 아니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안심이 되었어요. 

그리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셰어 응원파티에요. 저도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거든요. 남편이랑 토이샵을 재미삼아 갈 때도 있지만 그 때도 알게 모르게 불편한 감이 있었어요. 근데 셰어 응원파티 분위기를 접하면서 보니 내가 너무 고정관념이 있었나 싶었어요. 셰어의 행사를 가면서 제가 깨지는 것 같아요.


셰어  그런 생각을 하셨다니 저희도 안심이 되고 기쁘네요. 지금 하고 계신 일과 그 동안 활동해 오신 일들에 대해서도 한 번 소개해 주세요. 


박미애  지금은 수어통역 일을 하고 있고요, 이전에는 수어통역사로 활동하면서 인권강사로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에서 1년 정도 장애인권교육을 하기도 했고, 장애인정보문화누리에서 비상근 활동도 했어요. 장추련(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서도 3년 정도 활동했고요. 수어를 배우면서 한국농아인협회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인권팀이 생겨서 활동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셰어  와. 엄청 다양한 활동을 하셨네요. 박미애 통역사님은 국회나 방송국에서도 통역을 하시지만 또 여러 집회 현장이나 기자회견, 단체 토론회에서도 수어통역을 많이 하고 계신데요. 원래도 사회운동을 하시다가 수어통역을 배우시게 된 것인가요?


박미애 원래는 일반 회사에 다니다가 집 근처에서 무료로 수어를 가르쳐 준다고 해서 갔는데 민주노동당에서 하는 것이었어요. 거기서 배워서 자격증을 땄죠. 사실 학교 다닐 때는 학생운동하는 애들 별로 안 좋아했어요. 개량한복 같은 거 입고 다니고, 술 먹으러 와서 술값도 안내고 가고 그래서. (웃음) 그러다가 처음 집회에 간 게 미선이, 효순이 사건(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이었어요. 그 때는 사건 자체에 너무 화가 났었어요. 그 집회에 농인분들과 같이 가게 되어서 수어를 하기 시작한 게 첫 수어통역이었어요. 그 때는 통역이라 하기에도 민망하고 대화라기 보다는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수준이었지만요. 아무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일들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죠. 

당에서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어요. 대의원 중에 농인이 있었는데도 통역사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그 때는 문제제기를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하면 불편할 수 있겠다는 걸 몰랐어요. 그 후로는 문제라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제가 나서는 대신 직접 정보를 알아보실 수 있도록 서류를 보내드리거나 하는 것으로 했죠.


셰어  그 때 민주노동당에서 만난 청각장애인 분들이 영향을 많이 주시기도 했겠네요. 


박미애  당원인 분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었는데, 수어도 가르쳐 주시고,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하면서 많이 친해졌죠. 청각장애인 분들이 노래방도 되게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저는 사실 거의 수어를 술마시면서 배웠어요. 수업시간에는 회사 때문에 못가고 뒷풀이에서 배웠죠. 


셰어  그러면 그 때는 대체로 당에서 통역을 하셨어요?


박미애  그때는 통역사는 아니었어요. 그 전에 퇴사를 하고 공무원이 되겠다고 쉬다가 농아인협회에서 2박 3일 행사에 자원봉사를 했는데  저 빼고 다 청각장애인인거에요. 제가 수어를 잘 못할 때라 대화가 하나도 안됐어요. 하나도 못알아듣고 나를 위해서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럴 사람도 하나 없고. 2박 3일동안 울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혼나기도 했어요. 농아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장애인 영화제에서 스탭으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지금이야 베리어프리가 그래도 많이 시도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 영화제의 시도 자체가 정말 획기적이었거든요. 스카라 극장을 빌려서 의자를 100개 정도 뽑아가지구 휠체어 자리도 만들었어요. 처음으로 한국 영화에 자막도 넣었구요. 제가 들어갔을 때가 5회 영화제였는데 정말 여러모로 충격을 받았어요. 화면해설에도 충격받고. 한 번은 저희 안에서 회의를 할 때 발달장애인들을 막아야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으로 얘기가 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누군가 뛰어다니거나 하더라도 모두가 즐기는 자리를 만드는 게 이 영화제의 취지라는 결론을 내리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죠. 


셰어  사실 저희는 수어통역사 분들을 어떤 현장이나 TV 등을 통해서 보지만 수어통역사 분들이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를 잘 모르잖아요. 수어통역사로서의 활동에 대해 좀 더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진 : 박미애 조이님


박미애 수어통역사는, 추상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고요. 음성언어를 시각언어로 바꿔주는 것도 있지만 시각언어를 음성언어로 바꾸기도 해요. 음성언어를 시각언어로 통역하는 것을 수어통역, 수어를 음성으로 바꾸는 걸 음성 통역이라고 해요. 수어와 한국어가 체계가 달라서 한국어 문장으로 쓰기 어려운 경우에는 문장을 매끄럽게  정리하기도 하고요. 필기 통역이라고 해요. 수어통역사 자격시험 볼  때 이 세가지를 봐요. 인터뷰 하실 때도 본인 이야기를 저한테 보내주시면 한글로 타이핑해서 보내드리기도 하죠. 무엇보다, 일상생활 지원 통역이 많이 필요한데, 그건 센터가 있어서 센터 지원을 많이 받으세요. 

저는 통역일, 방송, 토론회 이런 것들도 하지만 제일 재밌는게 집회에요. 왜냐면 하고자 하는 말을 돌려 말하지 않으니까요. (웃음) 명확하게 원하는 이야기를 하시고, 그런 현장감이 저는 좋아요. 절박함을 아니까 감정전달하기도 편해요. 어려운 건 뉴스에요. 농인분들이랑 직접 대면하는 건 물어볼 수 있거든요. 내가 전달한 게 맞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방송통역은 누구한테 물어볼 수가 없잖아요. 

한 번은 민주노총 집회에 섰을 때 멀리서 수어통역을 보고 뛰어오신 분이 계셨어요. 너무 반갑다고, 너무 재밌다고 이런 얘기를 하셨거든요. 수어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농인 분들은 통역 있으면 지나가다가 한번이라도 보시거든요.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그리고 수어통역사들을 주로 뉴스나 눈에 띄는 곳에서 많이 보지만 저는 수어통역센터에 있으면서 실제로  통역사가 정말 필요한 곳들을 많이 알게 되었거든요. 수어통역센터에 있으면 힘들긴 해요. 급여도 적고, 일은 다 해야하고, 사회복지 업무도 해야하고요. 원하는 통역만 맡는다거나 그런 게 없어요. 원하지 않아도 다 해야 해요. 그런데 그게 좋은 게 뭐냐면 비뇨기과, 산부인과 다 가보고, 가족 간의 상황도 다양하게 알게 되는거에요. 농인 자녀와 부모의 갈등이 있는 경우도 있고, 장례식장에 통역을 하러 갔는데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들이 수어를 다 잘해서 통역사가 필요 없을 정도인 경우도 있었구요.  농인의 삶을 보고 싶지 않아도 들어가서 할 수 밖에 없어요. 때로는 감정적인 노동도 심하고 힘들지만 이런 시간들이야말로 농문화와 수어를 두루 다 알게 되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토론회나 이런 곳에서도 중요하지만 실제 삶에서 지원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번은 아이가 유치원 때 장애인인권교육을 배워왔는데. 시각장애인, 청각 장애인 이런 식으로 구분을 짓는 방식으로 배워온 거에요. “엄마, 친구 누구는 청각 장애인이지?” 이런 식으로 되는 게 싫어서 인권교육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장애인인권교육에서도 청각장애인만 당사자 강사가 없는거에요. 다행히 나중에 강북센터에서 이런 사업을 만들어서 3년동안 청각장애인 인권 강사를 양성했어요. 1년 사업으로는 안 되어서 3년 동안 하고 이제 딱  강의도 나갈 수 있는데 코로나가 터졌어요. 

농학교를 갔을 때 보니까 자신들의 언어를 직접하는 선생님이 오니까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농인 분이 직접 강의를 한 학급은 수업시간이 다 끝났는데도 이야기가 안 끝났어요. 학생들이  일상에 대한 상담도 하고, 졸업해서 뭘 하고 살아야할지 물어보기도 하고요. 

어쨌든 서로의 교류가 시작되어서 이 분들이 많이 활동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뜸한 상황이에요. 


상담의 경우도 청각장애인 상담가 많지 않아요. 국기인권위원회에서는 원래 월, 화만 수어 상담이 있었는데 진정을 넣어서 지금은 107 손말이음센터를 연결해서 언제든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성폭력상담센터 등에도 전문으로 하는 통역사가 있어야 하는데, 같은 농인이 하는 것도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성폭력 상담 같은 경우 내담자가 농사회에 소문이 날까봐 꺼려하게 될 수도 있으니 다른 전문 수어통역사가 더 양성될 필요도 있고요. 


셰어  아, 정말 저희가 정말 좁게 알고 있었네요. 그런데 통역사님은 지금 굉장히 여러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면 사실 모든 영역을 매번 공부하기는 어려우실테고, 통역하시는 현장마다 어려움도 있으실 것 같아요.


박미애  뉴스 같은 경우는 계속 그걸 봐야하고, 토론회는 주로 불러주시는 곳에서 다시 불러주시니까 처음에는 어렵지만 공부를 계속하니 축적이 되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새로운 단어에 당황했다가도 1년 동안 쌓아가면서 나름 풀어나가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그런데 제일 당황스러운 건 포럼 같은 행사를 할 때 그냥 영어로 주실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걸 구글번역기로 바꿔서 읽고 그랬어요. 집회는 큐시트만 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또 난감할 때가 노래에요. 지금은 가사랑 정보를 주시니까 그래도 도움이 되는데 가수만이라도 알려주시면 유튜브에서 찾아서 한 번이라도 듣고 갈 수 있거든요. 

셰어도 재생산권, 이런 용어들이 계속 고민이에요. 내가 이해가 안되면 전달하기가 어렵거든요. 수어통역을 할 때 미리 자료를 주시는데 그걸 보고 공부를 하고 한글 사전을 먼저 찾아보고 하지만 이게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셰어  그러면 그런 여러 현장에서 통역사로 활동을 하시면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우선순위나, 원칙 같은 게 있나요?


박미애  첫번째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게 통역을 할 것인가. 내가 표현하는 것과 농인이 이해하는 정도가 달라요. 내용을 있는대로 다다다다 해버리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때로는 숙어로 묶어서 전달하기도 하죠.

두 번째 원칙은 미리 물어보는 것. 저희는 전달자잖아요. 발화자가 이 문장을 썼을 때 이 문장 안에 숨겨진 의도가 있을텐데 제가 왜곡하면 안되잖아요. 여쭤보는거죠. 다행히 제가 가는 토론회나 셰어 같은 곳들은 의미를 꼬지 않고 명확한 편인데 정치인 분들은 꼬고 또 꼬고 그래요.의미하는 바를 찾아야 하니까. 이 문장이 이런 의미가 맞아요? 물어본다거나 하죠. 

성평등 교육에 갔을 때는 영상 촬영하시는 분께 미리 말씀을 드렸어요. 양성평등이라고 하는 걸 수어로 그대로 하면 남성과 여성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니 안써도 될까요, 성평등으로 써도 될까요 물어봤죠. 지금은 농사회 안에서도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남녀평등은 잘 안쓰려고 하거든요. 제가 주최측이 아니라 마음대로 하진 못하지만 제안은 해봐요. 

사실 통역사가 어떤 색깔을 가지고 통역을 하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여기가 오픈된 곳인지 회원분들만 오시는 자리인지를 여쭤보고 하죠.  

수어통역사들은 수어책이 나오면 쟁여놔요.  저도 한국농인LGBT에서 만든 책도 사고, 지역에서 만든 책도 사서 계속 업데이트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런 수어들이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보니 그냥 사용하면 이해를 못하세요. 만약에 통역을 하는 자리에 오시는 분들이 주로 단체 회원분들이고 성소수자 관련 수어를 아시는 분들이면 거기에 맞춰서 수화를 하는거죠. 


셰어  대중에게 낯선 개념이나 새롭게 제안되는 수어를 사용하시는 게 여러 어려움이 있기도 하겠네요. 


박미애  그렇죠. 예를 들어서 재생산의 권리를 통역할 수어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미국수어를 가져와서 쓸 순 없잖아요. 성적 매력 같은 단어도 어떻게 이해를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거든요. 임신중절에 대한 수어도 고민이 커요. 옛날부터 임신중절의 수어는 긁어내는 표현을 썼어요. 수어는 에둘러서 표현하지 않고 직설적인 언어거든요.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 비장애인 입장에서 이런 표현이 자금까지 안좋게 쓰였으니 바꾸자고 할 때 새로운 의미와 언어가 되어야 하니 농인들도 고민인거죠. 그냥 어떤 수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할 것만이 아니라, 그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통역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논의와 합의의 과정이 필요해요. 용어의 개념에 대한 교육을 한 다음에 그 개념이 공유되고 토론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통역 방식을 정하면 좋겠어요. 


셰어  수어 뿐만 아니라 외국어도 그렇잖아요. 특히 영어권에서는 막 새로운, 대안적인 용어들이 계속 나오는데 막상 영어권이 아닌 사람들은 새로운 용어를 알려면 그 용어가 제안된 맥락이나 새로운 의미도 이해를 해야 하고, 사용하던 언어가 아니니 낯설 수밖에 없는데 갑자기 사용하려면 맥락 없이 단어만 전달되기도 하고요. 


박미애  그렇죠.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언어들이 있어서, 통역을 하면서 실제로 사용하려면 그 과정의 몇 배를 해야해요. 통역사들도 원래 사용하던 수어가 습관처럼 나오기도 하고요. 

동료와는 통역 전에 합의를 하기도 해요. 이걸 어떻게 표현할지. 막상 들어가면 습관처럼 나올 수도 있으니까 끝나고 나서도 얘기하고. 농인분들이 보시고 가끔 피드백을 주시기도 해요. 그래서 요즘은 행사 정보를 많이 보내드리기도 해요. 토론회 집회가 있으면 아는 분들에게 공유를 해야하고, 그래야 또 토론도 되고요. 


셰어  맞아요. 그런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셰어도 올해 활동의 중요한 주제가 접근성이거든요. 그런 과정을 같이 만드는 활동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박미애  네. 용어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면. 그걸 가지고 농인들과 토론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보내주신  셰어에서 만든 자료집들이 너무 좋았는데 그런 자료집에 있는 용어들을 소개하면 좋겠고, 인권교육할 때 인권감수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를 몇시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재생산권이나 새로운 용어, 개념에 대한 강의를 받으면 좋겠어요. 저도 정리가 되어야 통역을 더 잘할 수 있겠고요. 

셰어에도 셰어의 내용을 잘 알고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수어통역사, 문자통역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영역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 우리 나라는 아직 그렇게까지 안 되어서 안타까워요. 지금은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만능이어야하는데 영역마다 전문으로 하는 통역사들이 양성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셰어  그러게요. 제안해 주신 활동을 올해부터 셰어도 시작해봐야겠어요. 바쁘신 와중에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어 인터뷰도 해주시고 좋은 제안까지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올해도 자주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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