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후기] 제17회 성소수자인권포럼 -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 <에이즈&혐오의 역사 40년, '양보갈'부터 '카일리'까지>

2025-06-11


지난 25일, <제17회 성소수자인권포럼 -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에서 <에이즈&혐오의 역사 40년, '양보갈'부터 '카일리'까지> 세션이 열렸습니다. 세션의 제목부터 무척 기대되었는데요, 강의실을 꽉 채울만큼 뜨거운 관심 속에 정글 님의 사회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패널들의 자기소개에 이어 한국의 에이즈 혐오와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며 시대별로 윤가브리엘, 타리, 소주, 코코넛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1980년부터 90년대를 담당한 윤가브리엘 님은, 처음 에이즈를 접한 것은 배우 록 허드슨의 감염과 사망 소식을 전한 해외 뉴스였고, 그 당시에는 에이즈 인권운동도 없었으며, 감염 경로나 예방·치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막연한 공포만 조성되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미군을 시작으로 감염이 확산되며, 트랜스젠더와 게이 업소를 대상으로 한 강제 검진이 이루어졌고,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강제격리·강제치료 중심의 ‘에이즈예방법’이 1987년에 급하게 제정되었습니다. 해외에서는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과 추모 콘서트를 계기로 HIV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고, 에이즈 인권운동 단체인 액트업도 생겨났습니다. 가브리엘 님은 당시 게이 커뮤니티에서 서양인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양보갈’이라 불렀다며, 외국인과 관계를 맺으면 에이즈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편견과 공포가 팽배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에서 ‘슈퍼에이즈’가 발견되었다는 등의 자극적인 보도들도 불안을 키웠고, 종로 근처 헌혈차에서 HIV 검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아 헌혈차를 피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영화 <필라델피아>가 감염인의 삶을 다루며 널리 알려졌고, 당시 주병진쇼에서는 감염인 김경민 씨가 직접 출연해 인터뷰했는데, 이는 감염인 공동체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브리엘 님은 그 시절을 “에이즈가 죽음과 공포의 병으로 불리던 시대”였다고 돌아보며 발표를 마무리했습니다.


2000년대를 담당한 셰어의 타리 에브리바디 플레져랩 팀장은, 1990년대부터 감염인 자조모임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가 출범하면서 에이즈 인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를 열었습니다. 초기에는 인권단체와 건강권 단체들을 중심으로 모임이 구성되었고, 에이즈예방법의 독소 조항 폐지를 위한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지금은 치료제가 안정화되고 접근성도 개선되었지만, 당시에는 칵테일 요법의 부작용, 불안정한 약물 수급, 높은 약값 등으로 많은 감염인이 고통받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타리 팀장은 특히 2000년대에 성노동자, 이주민, 감염인을 향한 혐오가 여러 사회적 사건을 통해 드러났던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을 예로 들며, 당시 법으로 규정된 ‘윤락 여성’ 또는 ‘윤락 우려가 있는 여성’이 감염병 전파의 주체로 낙인 찍고, 유흥업소 종사자는 공중보건 정책에서 항상 1순위 감시 대상으로 취급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행불 감염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감염인을 범죄자처럼 취급하고, 격리와 억압 중심의 정책이 이어졌던 현실도 짚었습니다. 윤락방지법에서 성매매방지법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감염병 정책과 공중보건 정책 사이의 모순 속에서 지속적인 긴장을 만들어냈다고 말했습니다. 이주여성과 관련해서는, 결혼비자를 통한 입국 과정에서 HIV 감염 사실이 드러나면 입국이 거부되었으며, 이는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와 같은 국가 정책 속에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차별과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강제검진 제도를 정당화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끝으로 교정시설 내 감염인 격리, 군인의 강제 전역, 마약주사 관련 이슈를 언급하며, 오래전부터 성적 낙인을 겪어온 사람들, ‘보갈’과 ‘갈보’, 낙인과 범죄화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이 계속해서 연대로 함께하길 바란다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했습니다.



2010년대를 담당한 소주 님은, 2010년대 시작부터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성소수자가 등장하여 학부모, 보수 단체가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책임져라”라는 혐오로 시작하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열었습니다. 2011년에는 한국에서 제10차 ICAAP(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가 개최되었고, 이는 국내 에이즈 인권활동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 감염인의 5분의 3이 초국적 제약회사의 특허 독점으로 인해 치료제를 복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활동가들은 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액션을 대회장에서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참여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그중 한 명은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이 결성되었고, 이후 현재의 ‘HIV/AIDS인권행동 알’로 이어졌습니다. 활동 초기에는 알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계란이 떠올라서 계란을 몇판 사다가 그림과 글씨를 써서 ‘알’의 활동을 알렸다고 합니다(웃음). 2014년에는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증언대회를 열어, 시설 내 차별 문제를 공론화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지만, 사실 규명이나 차별 시정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이에 대한 강한 규탄이 이어졌습니다. 2015년에는 한국의 HIV/AIDS 30년을 돌아보며 10대 이슈를 정리해 발표했고, UNAIDS와 함께 낙인지표조사에 착수해 기자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이 조사는 감염인 당사자들이 직접 설계하고 실행한 매우 의미 있는 조사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활동가들과 단체들은 네트워크를 구성했고, 게이바에서 ‘키씽 에이즈 쌀롱’ 같은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며 HIV 감염인과 낙인, 차별, 혐오에 맞서 함께하는 다양한 운동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HIV 감염인 여성과 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에이즈 괴담과 가짜뉴스가 확산되면서 감염인의 학습권과 노동권이 침해되는 사건도 반복되었습니다. 2010년대를 마무리하며 전파매개행위죄가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가면서 형사처벌 중심의 법적 규정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다며 발표를 마무리했습니다.



2020년대를 담당한 코코넛 님은, 활동을 전파매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 앞 기자회견에 참여하면서 시작했다며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직 2020년대가 5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HIV 감염을 이유로 해고당한 구급대원 A씨 사건에서, 법원은 “에이즈예방법 제3조 제5항의 감염인 차별 금지 조항이 공무원 신분 관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며 HIV에 대한 노동권 침해가 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A씨의 의원면직 처분을 무효로 인정하지 않아 복직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엠폭스(원숭이두창) 확산 당시에는 감염의 책임을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에게 전가하는 혐오가 반복되며, 과거의 ‘에이즈 공포’가 또다시 재생산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기, 감염병예방법 제19조(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와 군형법 제92조의6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심판을 받았지만, 위헌 의견이 다수였음에도 위헌 결정 정족수에 미달해 모두 합헌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최근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는 주인공이 HIV 감염 사실을 고백하며 “나에겐 카일리가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는 감염인이 사회적 차별과 배제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습을 담아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정부는 ‘신규 감염 제로, 사망 제로, 차별 제로’를 목표로 AIDS 대응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낙인과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높은 약값, 이주민·난민의 낮은 치료 접근성 등 구조적 장벽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혐오와 배제는 다른 얼굴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카일리’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통해 서로를 연결하고, 지난 40년간 혐오와 낙인에 맞서 연대해온 역사를 되짚으며 세션을 마무리했습니다.


여전히 혐오 세력은 성소수자를 공격할 때 에이즈 낙인을 이용해 혐오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도 여전히 잘못된 정보와 HIV/AIDS에 대한 편견이 존재합니다. 이날 우리는 ‘양보갈’부터 ‘카일리’까지, 지난 40년간 우리가 맞서 온 혐오와 낙인을 되짚고, 그 속에서 함께 만들어온 변화를 나누었습니다. 앞으로의 운동을 함께 이어가고 연대를 확장해 나가기 위한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함께해주신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사진 출처: 성소수자인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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