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18화] 인권운동을 예술과 연결하며 운동의 재생산을 위해 질문하는 남웅 조이님 인터뷰
셰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뜨거운 6월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남웅 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에서 활동하고 있고, 미술비평을 하고 있고, 조이인 남웅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뜨거운 6월인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뜨겁죠?(웃음) 행사로만 따지면 서울퀴어문화축제 끝나고 이후에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실 6월이 저에게는 가장 바쁜 주간이기도 해요. 활동 같은 경우에도 6월에 대중 활동이 확 몰려있잖아요. 행성인은 올해 지역 퀴어퍼레이드를 다 가자고 했고, 또 미술비평 활동도 기금에 따라 몰릴 때가 있는데, 딱 요맘때인 거에요. 기관이나 작가들도 보통 5월이나 6월 즈음에 같이 작업을 하자고 제안해 주시는데 마치 농번기 같은 시절이에요.
3월부터 10월까지 친구 커플이 캠핑카를 만들어 유라시아 여행을 하고 있어서 저랑 행성인 회원 한 분이 그분들 집에 집세를 미리 내고 들어가 집사처럼 지내고 있어요. 최근에 이분들이 유럽을 돌아다니고 있는데요. 가끔 안부 올리는데 어느 날은 이태리에 있고 크로아티아, 스페인 막 이런 거야. 저는 친구 커플의 여행 동선을 따라다니면서 그 나라의 와인을 편의점에서 사서 그 지역 풍경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재밌게 놀아라~’하면서 혼자 짠하는 소소한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셰어 오 남은 시간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요! 최근에 전국 퀴어퍼레이드를 가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남웅 성소수자 단체들에게는 퀴어퍼레이드가 몇만 명씩 오는 행사니까 후원 수익이 제일 많이 날 때죠(웃음). 지역을 거의 돌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기대가 떨어지기도 했어요. 우리가 굿즈에 열과 성을 다해서 제작하는 것도 아니고, 인권미감이 못 따라가잖아요(웃음). 수익적으로 접근했을 때 한계가 보이니까. 그것보다 ‘사람을 만난다, 단체에 오는 사람들 말고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하며 우리의 목소리와 활동을 알리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는 거 같아요. 지역 퀴어퍼레이드 같은 경우 서울에 안 오는 지역 사람들이 많이 오거든요. 특히 청소년 퀴어들도 많이 보이고요. 이에 맞춰서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할지 고민이 있어요.
셰어 행성인에서 부스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슈는 어떤 거예요?
남웅 지난해 행성인에서 일터 가이드북을 제작했어요. 성소수자들 보라고 만든 건 아니고 일차 독자는 성소수자 동료를 둔 노동자를 위한 가이드북이에요. 기금을 받아서 제작한 거라 무료배포하고 있어요. 작년엔 부스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배포했다면, 올해는 민주노총에서 ‘평등을 위한 투쟁’이라고 해외 노조 사례들 있잖아요. 성소수자와 연대 활동을 하고 인권 기반 지침과 규약을 만든 시도들을 번역한 게 있는데,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있으면 그걸 같이 묶어서 배포하는 거죠. 꼭 직장만이 아니라 학교나 행정기관에도 배포했어요. 이 일터 가이드북은 성소수자 동료를 둔 사람들이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모를 수 있으니까 기본적인 정보부터 참고할 만한 영화와 책자까지도 담고 있는데요. 주변에 성소수자라는 게 소문이 났다거나, 없더라도 성소수자 관련하여 불편하거나 혐오성 발언이 나왔을 때, 제도의 편파적인 걸 목격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가이드처럼 기본자료로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셰어 이걸 부스에서 배포하고, 신청받아서 보내드리는 거죠?
남웅 네. 지역이나 청소년 퀴어 분들이 오셨을 때는 본인의 학교를 적기도 해요. 3학년 전교생에게 보내고 싶다면서 전교생 숫자대로 주문한다거나(웃음) “교장실에 몇 부를 보내주세요” 이런 재밌는 상황들도 있어요. 꼭 이거 말고도 현장에서 같이 감수성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면, 인권 퀴즈 맞추기 등 소소한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어요. 행성인 활동가들에게 미션을 주는 것처럼 생각이 드는 게, 예전에는 우리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던 거예요. 그래서 운동권 방언 같은 게 습관처럼 많이 쓰였잖아요. 밖에서 보면 재미없고 어렵기도 하고요. 그 말들을 사람들이 듣고 읽을 수 있게 다시 쓰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 같아요. 근래 성소수자 인권 관련 교육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게, 이번 봄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유튜브 교육을 해달라고 요청이 왔었어요. 장애인권단체에도 성소수자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계시니까. 수어와 문자자막은 물론이고, 발달장애인 분들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초등학생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행해야 했거든요. 그게 우리에게도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로 하거나, 아니면 다른 분야의 언어 에 맞춰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런 훈련을 하면서 기존에 익숙한 말도 다른 방식이나 표현으로 생각해야 하는 국면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퀴어퍼레이드를 다니면서 예전과 지금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좀 더 과감하고 솔직한 섹스와 젠더 표현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거든요. 보지풀빵이나 햇빛서점의 ‘고추 부채’나 섹스토이 관련 업체들도 많이 나왔잖아요. 저는 재밌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절 때 다 헐벗고 나온 광경이었거든요. 2014년 신촌 퀴어퍼레이드에서 행성인 차량에는 빤스퀴어들이 올라갔고요. 자신의 몸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았어요. 여기에서 좀 더 나갔으면 이런 몸들끼리 뭔가 부대끼고 하위의 문화들이 좀 더 수면으로 나와서 지금보다는 좀 더 활발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 공식사진을 보면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죠. 참여자들 보면 진짜 ‘건전’해 보이고, 너나 없이 웃는 즐거운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번엔 날씨가 좋아서 저도 많이 웃기는 했지만(웃음). 저에게 이런 식의 편파적인 감상이 조금 더 허용된다면… 자신을 드러내 보여지는 것을 의식한다기보다 그렇게 보여지는 누군가를 보러 나왔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인상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건 젠더 감수성이 달라진 사회분위기도 영향을 줄 거고, 살짝 민감한 문제일 수 있지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경우 광장과 거리를 사용하려면 좋든 나쁘든 서울시와 협력적인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고요. 민감한 내용을 다루는 데 부담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것과 별개로 섹스나 내 몸을 드러내는 부분들에 대해 인권운동 안에서 얼마나 이야기를 해왔나 고민이 들기도 했어요. 커뮤니티의 퀴어 섹스나 젠더표현의 문화들에 인권운동은 어떻게 의제화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는 거죠. 셰어 같은 경우 항문 섹스나 성병, 임신과 재생산권으로 가지를 뻗어가면서 섹슈얼리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시도하잖아요. 행성인도 BDSM이나 퀴어 섹스 관련 이야기들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보다 수면 위로 올라오려면 어떤 활동이 필요하고, 누구를 만나야 될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런 지점에 대해 성소수자 커뮤니티나 운동이 어떤 상황에 있는가 같이 이야기 나눠보고 싶더라고요.
성소수자 운동, HIV/AIDS 인권운동, 예술 비평의 현장과 교차점에서 벼려온 질문들
셰어 행성인 활동가로서, HIV/AIDS인권활동가로서, 행동하는 미술평론가로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도 소개해주세요.
남웅 이 질문을 보고서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될까 생각했어요(웃음). 제가 운동을 해야겠다 특별히 결심한 순간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다 보니까 연결시킬 만한 지점들이 있었던 건데, 학교에서 미학이랑 예술학을 공부했어요. 당시에 행성인의 전신인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에서 활동하면서도 조금 거리를 둔 상태였죠. 2008년도에 소마미술관에서 키스 해링 전시같은 거 하면 웹진에 글을 쓰고 같이 가보자 정도.
행성인을 비롯한 성소수자 운동의 1차 변태기가 2000년대 후반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무지개행동도 발족하고, 행성인도 청소년팀, HIV/AIDS인권팀, 노동권팀이 생기고, 의제들이 만들어지는 시점이었어요. 무엇보다 연분홍치마의 <종로의 기적>에 동인련 활동가로 나왔던 정욜과 병권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인권운동의 커뮤니티를 매력적으로 어필하면서 단체에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아무튼 그 당시 HIV/AIDS인권팀이 만들어지면서 저에게도 같이 해보자고 제안이 왔었는데, 당시에 대학원 다니면서 에이즈 운동과 관련해서 덕질을 했거든요. 액트업을 비롯한 활동들, 에이즈로 애인이 죽고 자기도 죽어가는데 그걸 예술로 풀어내고 예술을 투쟁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드라마들을 만나게 되었죠. 당시 예술가들도 시대를 민감하게 감각했을 거예요. 이 질병을 통해서 내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날카롭게 발견하고, 약을 먹을 때도 정말 많은 약을 먹으면서, 생을 연명하면서 몸이랑 약이 구분 안 되는 상황이 있을 거고, 세이프 섹스를 하라고 너나없이 콘돔을 요구하는데 그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BDSM를 비롯한 다른 섹스문화를 문란하게 확장하는 시도들, 또 장례나 돌봄, 기억에 대한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지점을 기록으로, 작품과 전시로 남긴 자료들을 만난 거죠.
그런 와중에 한국에서는 2004년에 발족한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의 의약품 투쟁부터 요양병원 활동까지 쭉 이어지고 있었죠. 그 사이에 동인련에서 2010년 HIV/AIDS인권팀을 만들었는데요. 그 배경에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대상으로 인식 개선을 하고, 성소수자의 관점으로 자체 활동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했던 문제의식이 있었던 거였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친근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문화 활동이나 광고 캠페인 등 말랑한 프로그램이나 커뮤니티 대상 교육을 해보자고 했었고, 그게 제가 공부했던 것들과 연결이 됐어요.
운이 좋았던 게 활동하면서 공부한 게 연결되었어요. 당시 HIV/AIDS와 관련해서 동성애를 어떻게 재현해왔는가에 대해 미술비평을 작업하면서 2011년 인천 아트 플랫폼 예술상을 받았어요. 당시에 제가 활동과 미술 사이에서 생계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고민하면서 한번 정리는 해보자는 마음으로 썼던 건데 다행히 좋게 봐줬던 것 같아요. 그 계기로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활동이 많이 알려진 것 같고, 지금까지 활동과 비평을 투잡으로 쭉 가져오게 되었어요.
셰어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의 맥락과 현재의 고민을 좀 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남웅 에이즈가 전염병의 온상인 것처럼 얘기가 됐었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게 한국의 현대사랑도 맞물리고요. 1980년대 한국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를 많이 하고,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외국인들에게도 관광 많이 오라는 메시지가 나오고요. 근데 이게 미국발 전염병이 하나 나왔다, 동성애자들이 많이 걸리는 질병이라더라, 외항 선원이나 성매매 여성들도 조심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대다수였고, 국가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에 마주해야 했던 질병이기도 했던 거죠. 국가는 이 질병이 취약한 그룹, 그러니까 이주노동자나 성매매 여성이나, 동성애자 남성 등 기존에 잘 보이지 않거나, 정말 수탈당하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낙인 찍는 방식으로 예방의 방향을 잡았어요. 기존 국민을 통제하고 분리하면서 감시하던 방식을 반복하는 거죠. 보수적으로 접근했을 때 성적인 보수주의 같은 것들로 선전하기도 좋고, 위생학적으로 질병에 대해 뭔가 통제나 감시 체제로 대하기도 쉬웠고요. 감염병을 경제적으로나 위생적으로 취약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집단이나 그러한 섹스에 엮고 감시와 범죄화의 명분을 삼는 일은 최근의 코로나를 비롯한 신종 감염병에서도 반복하고 있어요.
인권운동에서는 감염인들에 대해 피해자로만, 그냥 낙인찍힌 누군가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없는 누군가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이 사람들의 생애에 필요한 권리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를 물었던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는 감염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국가와 사회가 질병유무로 성원을 나누고, 계층이나 성별, 성적지향과 장애 여부 등으로 분리하고 위계를 정하고 차별해온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질병여부로 차별받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나,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나, 이 사람이 질병 당사자라고 해서 실명으로 정보가 기입된 채로 감시되거나 관리되는 상황들에 문제제기를 하고요. 감염인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감염 여부로 사람을 분리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 질병을 우리의 문제로 가져오자는 의식화가 있었던 거 같아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단지 노콘 섹스를 했을 때 잘못해서 걸리는 질병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섹스의 상황들에 어떤 위기가 있고, 왜 어떤 섹스는 범죄의 낙인이 찍혀야 하고,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감염인이 차별받는지를 질문하고, 커뮤니티 안에서의 평등한 섹스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지는 운동이기도 하고요.
최근 HIV/AIDS인권운동은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해 비판을 이어가고 있어요. 길리어드가 새로운 신약을 개발했는데, 특허권을 행사하면서 높은 약값을 유지하고, 많은 이윤을 취득하려고 하니 이 치료제가 필요한 사람들 중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은 치료받을 권리를 얻지 못하고 건강권까지 위협받게 되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제약회사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고 하는 방식으로 풍선을 나눠주고, 뭔가 기금을 제공한다거나 이런 부분을 구조적으로 보게 되면서 핑크워싱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국가의 성적 낙인이나 범죄화에 맞서면서 의료 민영화나 초국적 제약산업의 구조 안에서 누군가의 건강권이나 생명이 위협받는 것에 계속 문제제기를 해야겠죠. 결국 HIV/AIDS 인권운동은 질병이나 성적지향이나 특정한 상황들 때문에 관계성이 끊어지거나, 차별받는 것에 대해 인식 개선을 하면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질병을 잘 관리해서 건강할 수도 있지만, 설령 아프고 손상하더라도 그가 사회에서 누락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기 위해 어떤 제도와 관계가 필요한가를 함께 고민하면서 국가나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의 고민은 제약회사의 기금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생각보다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미 기금을 받으면서 활동하는 단체들도 있고요. 한국사회에 공공 의료나 사회 공공성이라는 부분이 비어 있다는 진단들을 하잖아요. 시민사회나 인권운동도 그런 환경에서 취약하거나 비어있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기업의 기금이 들어오는 거죠. 이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지금 여건에서는 많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대해서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도 관련 이야기를 공유할 때 긴장이 생기고요. HIV/AIDS인권운동에서도 단체들이 기금을 받으면서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규탄을 할 수 있을지, 운동을 주도적으로 가져가면서 기금을 받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기금을 받는다면 어떤 활동까지 할 수 있을까, 특정 단체가 받는 것 자체를 뭐라고 비판하는 건 개입이 아닌가, 하지만 이 개입이 항상 부당하기만 할까. 질문이 많아지지만 이 질문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이어보면 기금을 받는다면 단체 내부의 역량강화나 자체적인 교육이나 캠페인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초국적 제약회사와 인권운동단체 이름을 나란히 걸고 제도를 바꾸는 운동이나 캠페인을 같이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일일까에 대한 고민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비범죄화에 대해 싸워오고 전파매개행위죄 폐지와 같은 비범죄화에 대해 싸우고, 감염인의 노동권에 대해서나 이주민/난민 구금 이슈에 대해서도 총체적으로 다시 집중할 의제들을 재편하고 있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네요.
셰어 성소수자 단체가 HIV 이슈를 다룬다고 하면 예방에 집중하게 될 수 있잖아요. 행성인 HIV/AIDS인권팀의 경우에는 예방 중심에서 노선을 바꾼 건지 처음부터 감염인 인권 방향으로 가기로 했는지 궁금해요.
남웅 2011년도에 아이캅(ICAAP10: The 10th International Congress on AIDS in Asia and the Pacific, 제10회 아시아태평양 에이즈대회)이 있었는데, 동인련에서도 열심히 준비했었어요. 그때 의약품 관련해서 나누리+와 세미나도 했었는데, 의료 기반을 중심으로 접근했으니 뭔가 게이 MSM(Men who have sex with men,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 섹스 관련 이야기가 잘 안됐던 거죠. 그동안 ‘HIV/AIDS는 동성애자만 걸리는 질병이 아니면 왜 우리가 그 운동을 해야하지?’라는 질문을 강렬하게 토로한 동료 활동가도 있었어요. 그도 답답함이 있던 거겠죠. 왜 내가 에이즈운동을 해야하는 것인지 답을 찾아야 겠고. 여기에 이전까지 답하기엔 다소 망설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어?’ 정도. 그것이 아이캅 전후로 해서 ‘HIV/AIDS는 게이 질병 맞다, 우리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라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들이 등장했죠. 콘돔의 강박에서 조금 비켜나서 ‘콘돔 없이 섹스할 수도 있다’는 이해가 생기기도 했고요. 여기에는 그간 해온 HIV/AIDS인권운동의 구력이 구심이 되었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섹슈얼리티에 대해 좀 더 자신있게 이야기할 준비도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힘을 얻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에이즈 얘기를 하면서 게이 섹스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에이즈와 게이 섹스를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정말 콘돔 중심의 예방 말고 할 말이 없어지는 캠페인밖에 안 남을 것이다. 이런 생각도 들었거든요.
셰어 그때부터 행성인 HIV/AIDS팀이 집중한 건 게이 섹슈얼리티나 성적 낙인이었나요?
남웅 행성인 HIV/AIDS인권팀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감염인 당사자가 자신을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그룹이 아니었고, 나누리+에서 활동했거나, 관심 있는 연구자들이 많이 있었어요. 감염인, 비감염인 할 것 없이 섹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기엔 프렙(PrEP, Pre-exposure prophylaxis)이나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캠페인도 없던 시절이고요. 일단 모르는 것부터 알아보자고 진행했던 게 기관과 단체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에이즈 운동이나 서비스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연결 짓는 작업인 ‘에이즈, 다르게 생각하기- 법과 제도, 홍보캠페인, 언론보도를 통해 본 한국사회 에이즈 예방과 성’이었어요. 그리고 이듬해 8,90년대 게이커뮤니티와 HV/AIDS감염인 생애사 연구를 진행했죠. 활동을 하면서 배우는구나 싶었던 게 HIV감염인의 생애사를 듣는 작업이지만 동시에 80, 90년대 커뮤니티의 풍경과 사회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펼쳐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HIV감염인의 경험에 바탕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또 소중했고요. 과거를 비판적으로 살필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줬거든요. 인터뷰를 하면서 찜방이나 크루징 같은 하위문화에 대한 경험을 그때 많이 얻었고, HIV/AIDS인권팀은 그걸 바탕으로 보고서를 썼죠.
퀴어퍼레이드에서 보고서를 판매하기도 했는데, 반동성애를 표명하는 당시 메이저 언론의 신문기자가 그걸 보고 기사를 냈어요. 봐라.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도 에이즈를 동성애자 질병이라고 쓰지 않냐. 중요한 생애사 내용은 쏙 빼고 그 부분만 잘라낸 거에요. 그 기사를 보고 인터뷰하셨던 분들이 문제제기를 했어요. 당시엔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 경험이 없고, 사전 동의를 구하지 못했던 과실도 있다고 판단해서 사과와 함께 보고서를 폐기했어요. 아깝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소중했다고 생각하는 건 커뮤니티의 입체적인 맥락을 볼 수 있었고, 그게 전거가 되어 이후 2016년 KNP+가 주도한 ‘낙인 지표 조사’라는 중요한 연구를 설계하고 실행하는데 참고가 되기도 했어요.
보고서를 폐기한 후 10년이 지났는데, 폐기한 경험이 아픈 기억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실패까지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하나의 역사가 됐잖아요. 기록의 시행착오도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커뮤니티의 역사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셰어 예전에는 혐오세력이 공격하면 방어적으로 대처하기도 했는데, 방어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더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을 찾게 되신 것 같아요. 그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남웅 내가 나로 사회의 권리를 인정받으려면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의식이 있던 것 같아요. 물론 그건 혼자 용기를 내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 거고, 그를 지지하는 동료와 커뮤니티의 인식 변화가 전제해야겠죠. 단적으로 2010년 중반부터는 감염인 작가들이나 활동가들이 자기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시도들을 해요. 그게 주변 사람들에게 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요. 개인만이 아니라 활동에서도 자조 모임을 시작하면서 거버넌스의 경험을 쌓고, 자체적인 돌봄 사업을 진행하면서 차별에 대응하고, 이를 통해 집단적으로 자신감이나 역량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혐오 언론이나 논조에 대해서도 그동안 쌓인 논리들이 있으니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항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운동 안에서 경험이 쌓였고요. 특히 코로나19 때도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를 만들어서 선제적으로 대응할 역량이 있던 건 앞서의 운동이 자원이 되었던 것 같아요.
셰어 이런 과정이 운동을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요. 혐오세력이 공격할 때 부인하고 숨기는 게 아니라, 우리 있는 모습 그대로 대응할 때 사람들에게 용기도 생기고, 우리 공동의 힘들이 생기고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 항문섹스 한다, 우리도 항문섹스를 배워야 한다 이런 이야기도 하게 되고,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도 혐오세력에 맞서 적극적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사회가 인식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게 운동에 큰 힘이 되었어요. 그런데 제도적으로 인정받기 원하는 과정으로 갈 때 운동에서 우리도 모르게 조율하게 되는 측면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좀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을 중심으로 고민하다 보니까. 지금은 또 어떤 국면의 전환이 필요할까 고민이 들기도 하네요.
성소수자 운동의 '2차 변태기', 긴장과 논쟁의 끈을 놓지 않기
남웅 아까 ‘변태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지금이 2차 변태기인 것 같아요. 조금 거리를 두면서 얘기를 해보자면, 지금 다들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배워가는 중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현재는 혼인 평등 운동이 적극적으로 캠페인이나 서명 운동, 법안을 만드는 운동을 하는데, 운동의 성패와 별개로 혼인평등에 대한 운동사회의 긴장이 충분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가를 계속 물었던 것 같아요. 저는 가족과 혼인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급진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래야만 하고요. 그런 점에 동성혼 법제화는 그것의 달성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 과정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이견을 제대로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나 하면,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의제임에도 쉬쉬하면서 각자의 활동을 하면서 토론을 회피한 의견표명이나, 이견을 회피하는 토론의 방식이 이어진다는 인상을 받아요. 서로 운동에 대해 개입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고, 그 부분에서는 냉정하지만 감정을 분리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너무 어려운 걸 알기에(한숨), 어떻게 하면 마음이 안 다치는 방식으로 이 날 선 이야기를 가져갈 수 있을까 고민이 들기도 해요.
제 방식대로 이야기하면, 그동안 ‘혐오 반대’나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공동의 목표 이후에,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목표와 지향을 가지고 있는가에 있어서 너와 내가 다르다는 걸 계속 확인하게 되는 국면인 것 같아요. 여기서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한 불편함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 없이 관계가 깨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다. 관계가 깨져도 논의는 충분하게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좀 더 희망적이겠네요. 우리는 내부의 불편함을 끌어안고 운동해야 합니다(웃음). 운동 지형이 바뀌어 가는 게 운동만이 아니라 관계도, 활동하는 나의 태도나 자세 같은 것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셰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지형 속에서 남웅 님의 위치와 역할을 스스로 어떻게 설정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남웅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역할인 거 같아요. 소통을 하면서도 벽보고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들도 있고, 안 되겠다 끊고 제 갈길 갑시다 싶은 순간들도 많을 거 같은데요. 적어도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느 지점에서 분기할 수밖에 없는지,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감정이 섞이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도 생각하지만, 적어도 본인들이나 운동이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편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운동은 어떻게든 엮일 수밖에 없고, 운동의 확장을 위해서도 너는 너네들의 운동을 해, 우리는 우리들의 운동을 할 게 이런 건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아까 기금을 예로 들어보자면, 기금을 받으면서 같이할 수 있는 운동과 할 수 없는 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겠죠. 운동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논의의 행정도 중요합니다.
셰어 하고 계신 예술 활동과 운동과 예술의 연결도 무척 궁금해요. 예술은 어떻게 투쟁이 될 수 있나요? 동시대 한국사회, 퀴어/에이즈 운동과 커뮤니티, 예술의 맥락에서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남웅 다른 작가들과 활동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런 의제나 키워드를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반가움이 앞서요. 그러고 나서 잘 하고 계신지 비평의 촉을 세우죠. 관심의 표현입니다(웃음). 사람들이 내가 어디서 활동하는지를 알고 찾아오는 경우들도 있어요. 서로 알아보고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효능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작가들에게는 행성인 후원의 의미를 설득하거나, 집회 참여를 제안하거나, 행성인 회원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도 해요. 작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을 통해 활동에서의 리프레시가 되는 시간이 되기도 하거든요. 저다마의 문법에 갇혀 있다가 의제에 공감하고 서로의 활동에 대해 알아가면서 다양한 언어들과 이야기를 하는 게 되게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과 별개로, 성소수자로서 예술을 한다고 표명할 때 받는 통념적인 오해가 있어요. ‘당사자 예술’이라는 틀짓기를 당하는 거죠. 물론 당사자성을 강력하게 표명하는 분들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활동하면서 자신이 불편한 상황에 직면하고 싶지 않아 커밍아웃한 경우들도 있을 거거든요. 하지만 그게 미술계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읽히기가 쉬워요. 나는 미술의 언어로 보여졌으면 좋겠는데, 그냥 퀴어 당사자 예술인으로만 좁혀지는 불편함을 마주해야 해요.
저는 작가들이 활동에 같이 공감하고 참여하더라도 그들에 대해 작업으로서 갖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이 있다는 걸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지점에서 예술과 활동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예술은 실용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용적이게 되면 이건 캠페인이나 디자인이 되는 거죠. 이게 미술의 관점에서는 모더니즘적이라고 하는, 상당히 보수적인 접근인데(웃음) 그럼에도 참여와 거리두기 사이의 균형을 의식적으로 맞춰가는게 중요해요. 저는 예술이 어느 정도는 무용함에 기반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어떤 점에서는 활동도 시행착오에 열려 있고, 무용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관심을 두는 노력을 하기도 해서 서로 접점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무용한 것으로 계속 두는가에 따라서는 예술과 인권운동의 긴장이 있죠. 활동보다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네요. 하하.
저는 이전에 활동이랑 미술 비평을 구분했어요. 성명에 맞는 언어가 있을 거고, 비평에 맞는 언어가 있을 거라고 마음대로 이해했죠. 정말 헐떡이면서 왔다 갔다 했는데, 꼭 이럴 필요가 있나 싶은 거예요. 성명에 감정적인 나의 어떤 문장이 들어갈 수도 있고, 비평에 성명문 같은 문장을 넣거나 성명 조의 강단을 개입하면서 비평으로서나 활동가로서 캐릭터를 만들어온 것 같아요. 이런 식의 절충이 서로의 분야에 도움을 주거나, 확장의 계기가 되고요. 그런 점에서는 예술하는 사람들과 인권단체의 관계들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인권단체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가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꼭 그렇진 않잖아요. 예술에도 굉장히 많은 활동들이 생기고 인권단체가 이런 다양한 예술창작 활동들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고요. 이런 변화를 감지하면서 예술과 인권운동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둬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좌시하지 않는' 셰어가 되기를!
셰어 아주 알찬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다시 셰어의 조이로 돌아와서 셰어의 활동을 보면서 든 생각이나 고민, 함께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지 이야기 나눠주세요.
남웅 저는 계속 뇌피셜 이야기를 밀어붙이고 있는데 현명한 조이 여러분들이 헤아려주시리라 생각합니다(웃음). 셰어는 성소수자 단체나 제가 알고 있는 여성단체들과 다른 위상과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토를 하나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브리바디 플레져북, 섹스빙고도 만드시고, 전시나 캠페인 하는 것을 보면서 활동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시구나 했어요. 특히 2021년 10월에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시하셨을 땐 질투도 났어요(웃음). 사람들이 운동단체에 오기까지 문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면서 사람들이 프로그램 자체에 매력을 갖고 오는 것과 의제의 시급성을 갖고 오는 것은 태도가 다르잖아요. 단지 의제를 차별화하기보다는 이걸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 나눌까 더 내밀하게 고민한다는 인상을 받았죠. 또 하나 의미를 두고 싶은 점은 퀴어 운동이라고 하더라도 꼭 성소수자 운동 단체들이 모두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셰어가 만나고 있는 퀴어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했어요. 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행사를 할 때마다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동시에 하는 것인데, 접근성을 고민하더라도 그걸 한 단체에서 계속 실현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잖아요. 기획부터 같이 진행을 하고, 언어를 맞춰가고, 이런 과정들에 대해 세부적으로 신경 쓴다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2년 셰어 자립파티 <내가 생각하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 토크에 게스트로 초대받아 참여했을 때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당신에게 재생산은?’이었어요. 그때까지만해도 재생산은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그냥 생물학적 재생산 정도만 생각하고 그건 내 것이 아니라고 치부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계속 곱씹게 되는 거예요. 나의 무형의 자산들과 내가 섹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재생산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냐, 생물학적인 것만 재생산이냐! 혼자 곱씹으면서 이 질문이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고, 도움이 되었어요. 성소수자 운동 단체 활동가의 입장에서는 좀 자극을 주는 단체에요.
셰어 셰어가 앞으로 이런 단체가 되면 좋겠다, 이런 단체는 안됐으면 좋겠다도 이야기해주세요!
남웅 셰어(탄식)... 저는 셰어가 재생산의 키워드를 쭉 잡고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주어를 늘려가는 운동을 하면 좋겠어요. 운동 사회나 퀴어 커뮤니티에서 제도화되기 쉽고, 좁게 생각하기 쉬워질 것 같은 것들을 계속 확장해 내는 작업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담론적으로도 넓어지는 게 필요하겠지만, 운동과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제가 가졌던 변화된 인식을 나누는 자리는 소중하잖아요. 활동가들이 운동의 재생산은 많이 이야기 하는데, 그게 저는 관계의 재생산이나 섹스를 재생산하는 것과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셰어가 그런 것들을 연결해 온 작업을 해오는 것 같고, 이걸 놓지 않으면 좋겠어요. 이런 단체는 안됐으면 좋겠다? 글쎄요? 어려워요. 아, 셰어의 활동 방향이나 모습을 봤을 때 성소수자 운동이나 여성 운동에서 날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질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랬을 때 셰어가 판단하기에 협상할 가능성이 안 보이는 상황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포기하지 말아라. 계속 좌시하지 말아라 (박장대소)
셰어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남웅 셰어에서 했던 활동들이 이전에도 없었던 건 아닌데 낙태죄 폐지나 성교육에 관해서 재밌게 하는 단체가 나왔다는 게 반가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장소로서 셰어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만들어 가고 있단 생각도 듭니다. 조이로서 후원의 보람, 후원 잘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조이분들도 계속 좋은 프로그램 참여하시면 좋겠어요. 뉴스레터도 재밌게 보고 있거든요. 사실 뉴스레터 행성인처럼 공들여 쓰는 단체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웃음), 셰어는 웹진에 좀 더 가까울 만큼 내용에 힘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조이가 되셔야 합니다(웃음).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18화] 인권운동을 예술과 연결하며 운동의 재생산을 위해 질문하는 남웅 조이님 인터뷰
셰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뜨거운 6월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남웅 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에서 활동하고 있고, 미술비평을 하고 있고, 조이인 남웅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뜨거운 6월인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뜨겁죠?(웃음) 행사로만 따지면 서울퀴어문화축제 끝나고 이후에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실 6월이 저에게는 가장 바쁜 주간이기도 해요. 활동 같은 경우에도 6월에 대중 활동이 확 몰려있잖아요. 행성인은 올해 지역 퀴어퍼레이드를 다 가자고 했고, 또 미술비평 활동도 기금에 따라 몰릴 때가 있는데, 딱 요맘때인 거에요. 기관이나 작가들도 보통 5월이나 6월 즈음에 같이 작업을 하자고 제안해 주시는데 마치 농번기 같은 시절이에요.
3월부터 10월까지 친구 커플이 캠핑카를 만들어 유라시아 여행을 하고 있어서 저랑 행성인 회원 한 분이 그분들 집에 집세를 미리 내고 들어가 집사처럼 지내고 있어요. 최근에 이분들이 유럽을 돌아다니고 있는데요. 가끔 안부 올리는데 어느 날은 이태리에 있고 크로아티아, 스페인 막 이런 거야. 저는 친구 커플의 여행 동선을 따라다니면서 그 나라의 와인을 편의점에서 사서 그 지역 풍경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재밌게 놀아라~’하면서 혼자 짠하는 소소한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셰어 오 남은 시간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요! 최근에 전국 퀴어퍼레이드를 가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남웅 성소수자 단체들에게는 퀴어퍼레이드가 몇만 명씩 오는 행사니까 후원 수익이 제일 많이 날 때죠(웃음). 지역을 거의 돌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기대가 떨어지기도 했어요. 우리가 굿즈에 열과 성을 다해서 제작하는 것도 아니고, 인권미감이 못 따라가잖아요(웃음). 수익적으로 접근했을 때 한계가 보이니까. 그것보다 ‘사람을 만난다, 단체에 오는 사람들 말고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하며 우리의 목소리와 활동을 알리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는 거 같아요. 지역 퀴어퍼레이드 같은 경우 서울에 안 오는 지역 사람들이 많이 오거든요. 특히 청소년 퀴어들도 많이 보이고요. 이에 맞춰서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할지 고민이 있어요.
셰어 행성인에서 부스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슈는 어떤 거예요?
남웅 지난해 행성인에서 일터 가이드북을 제작했어요. 성소수자들 보라고 만든 건 아니고 일차 독자는 성소수자 동료를 둔 노동자를 위한 가이드북이에요. 기금을 받아서 제작한 거라 무료배포하고 있어요. 작년엔 부스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배포했다면, 올해는 민주노총에서 ‘평등을 위한 투쟁’이라고 해외 노조 사례들 있잖아요. 성소수자와 연대 활동을 하고 인권 기반 지침과 규약을 만든 시도들을 번역한 게 있는데,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있으면 그걸 같이 묶어서 배포하는 거죠. 꼭 직장만이 아니라 학교나 행정기관에도 배포했어요. 이 일터 가이드북은 성소수자 동료를 둔 사람들이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모를 수 있으니까 기본적인 정보부터 참고할 만한 영화와 책자까지도 담고 있는데요. 주변에 성소수자라는 게 소문이 났다거나, 없더라도 성소수자 관련하여 불편하거나 혐오성 발언이 나왔을 때, 제도의 편파적인 걸 목격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가이드처럼 기본자료로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셰어 이걸 부스에서 배포하고, 신청받아서 보내드리는 거죠?
남웅 네. 지역이나 청소년 퀴어 분들이 오셨을 때는 본인의 학교를 적기도 해요. 3학년 전교생에게 보내고 싶다면서 전교생 숫자대로 주문한다거나(웃음) “교장실에 몇 부를 보내주세요” 이런 재밌는 상황들도 있어요. 꼭 이거 말고도 현장에서 같이 감수성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면, 인권 퀴즈 맞추기 등 소소한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어요. 행성인 활동가들에게 미션을 주는 것처럼 생각이 드는 게, 예전에는 우리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던 거예요. 그래서 운동권 방언 같은 게 습관처럼 많이 쓰였잖아요. 밖에서 보면 재미없고 어렵기도 하고요. 그 말들을 사람들이 듣고 읽을 수 있게 다시 쓰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 같아요. 근래 성소수자 인권 관련 교육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게, 이번 봄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유튜브 교육을 해달라고 요청이 왔었어요. 장애인권단체에도 성소수자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계시니까. 수어와 문자자막은 물론이고, 발달장애인 분들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초등학생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행해야 했거든요. 그게 우리에게도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로 하거나, 아니면 다른 분야의 언어 에 맞춰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런 훈련을 하면서 기존에 익숙한 말도 다른 방식이나 표현으로 생각해야 하는 국면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퀴어퍼레이드를 다니면서 예전과 지금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좀 더 과감하고 솔직한 섹스와 젠더 표현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거든요. 보지풀빵이나 햇빛서점의 ‘고추 부채’나 섹스토이 관련 업체들도 많이 나왔잖아요. 저는 재밌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절 때 다 헐벗고 나온 광경이었거든요. 2014년 신촌 퀴어퍼레이드에서 행성인 차량에는 빤스퀴어들이 올라갔고요. 자신의 몸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았어요. 여기에서 좀 더 나갔으면 이런 몸들끼리 뭔가 부대끼고 하위의 문화들이 좀 더 수면으로 나와서 지금보다는 좀 더 활발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 공식사진을 보면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죠. 참여자들 보면 진짜 ‘건전’해 보이고, 너나 없이 웃는 즐거운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번엔 날씨가 좋아서 저도 많이 웃기는 했지만(웃음). 저에게 이런 식의 편파적인 감상이 조금 더 허용된다면… 자신을 드러내 보여지는 것을 의식한다기보다 그렇게 보여지는 누군가를 보러 나왔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인상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건 젠더 감수성이 달라진 사회분위기도 영향을 줄 거고, 살짝 민감한 문제일 수 있지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경우 광장과 거리를 사용하려면 좋든 나쁘든 서울시와 협력적인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고요. 민감한 내용을 다루는 데 부담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것과 별개로 섹스나 내 몸을 드러내는 부분들에 대해 인권운동 안에서 얼마나 이야기를 해왔나 고민이 들기도 했어요. 커뮤니티의 퀴어 섹스나 젠더표현의 문화들에 인권운동은 어떻게 의제화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는 거죠. 셰어 같은 경우 항문 섹스나 성병, 임신과 재생산권으로 가지를 뻗어가면서 섹슈얼리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시도하잖아요. 행성인도 BDSM이나 퀴어 섹스 관련 이야기들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보다 수면 위로 올라오려면 어떤 활동이 필요하고, 누구를 만나야 될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런 지점에 대해 성소수자 커뮤니티나 운동이 어떤 상황에 있는가 같이 이야기 나눠보고 싶더라고요.
성소수자 운동, HIV/AIDS 인권운동, 예술 비평의 현장과 교차점에서 벼려온 질문들
셰어 행성인 활동가로서, HIV/AIDS인권활동가로서, 행동하는 미술평론가로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도 소개해주세요.
남웅 이 질문을 보고서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될까 생각했어요(웃음). 제가 운동을 해야겠다 특별히 결심한 순간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다 보니까 연결시킬 만한 지점들이 있었던 건데, 학교에서 미학이랑 예술학을 공부했어요. 당시에 행성인의 전신인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에서 활동하면서도 조금 거리를 둔 상태였죠. 2008년도에 소마미술관에서 키스 해링 전시같은 거 하면 웹진에 글을 쓰고 같이 가보자 정도.
행성인을 비롯한 성소수자 운동의 1차 변태기가 2000년대 후반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무지개행동도 발족하고, 행성인도 청소년팀, HIV/AIDS인권팀, 노동권팀이 생기고, 의제들이 만들어지는 시점이었어요. 무엇보다 연분홍치마의 <종로의 기적>에 동인련 활동가로 나왔던 정욜과 병권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인권운동의 커뮤니티를 매력적으로 어필하면서 단체에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아무튼 그 당시 HIV/AIDS인권팀이 만들어지면서 저에게도 같이 해보자고 제안이 왔었는데, 당시에 대학원 다니면서 에이즈 운동과 관련해서 덕질을 했거든요. 액트업을 비롯한 활동들, 에이즈로 애인이 죽고 자기도 죽어가는데 그걸 예술로 풀어내고 예술을 투쟁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드라마들을 만나게 되었죠. 당시 예술가들도 시대를 민감하게 감각했을 거예요. 이 질병을 통해서 내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날카롭게 발견하고, 약을 먹을 때도 정말 많은 약을 먹으면서, 생을 연명하면서 몸이랑 약이 구분 안 되는 상황이 있을 거고, 세이프 섹스를 하라고 너나없이 콘돔을 요구하는데 그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BDSM를 비롯한 다른 섹스문화를 문란하게 확장하는 시도들, 또 장례나 돌봄, 기억에 대한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지점을 기록으로, 작품과 전시로 남긴 자료들을 만난 거죠.
그런 와중에 한국에서는 2004년에 발족한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의 의약품 투쟁부터 요양병원 활동까지 쭉 이어지고 있었죠. 그 사이에 동인련에서 2010년 HIV/AIDS인권팀을 만들었는데요. 그 배경에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대상으로 인식 개선을 하고, 성소수자의 관점으로 자체 활동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했던 문제의식이 있었던 거였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친근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문화 활동이나 광고 캠페인 등 말랑한 프로그램이나 커뮤니티 대상 교육을 해보자고 했었고, 그게 제가 공부했던 것들과 연결이 됐어요.
운이 좋았던 게 활동하면서 공부한 게 연결되었어요. 당시 HIV/AIDS와 관련해서 동성애를 어떻게 재현해왔는가에 대해 미술비평을 작업하면서 2011년 인천 아트 플랫폼 예술상을 받았어요. 당시에 제가 활동과 미술 사이에서 생계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고민하면서 한번 정리는 해보자는 마음으로 썼던 건데 다행히 좋게 봐줬던 것 같아요. 그 계기로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활동이 많이 알려진 것 같고, 지금까지 활동과 비평을 투잡으로 쭉 가져오게 되었어요.
셰어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의 맥락과 현재의 고민을 좀 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남웅 에이즈가 전염병의 온상인 것처럼 얘기가 됐었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게 한국의 현대사랑도 맞물리고요. 1980년대 한국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를 많이 하고,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외국인들에게도 관광 많이 오라는 메시지가 나오고요. 근데 이게 미국발 전염병이 하나 나왔다, 동성애자들이 많이 걸리는 질병이라더라, 외항 선원이나 성매매 여성들도 조심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대다수였고, 국가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에 마주해야 했던 질병이기도 했던 거죠. 국가는 이 질병이 취약한 그룹, 그러니까 이주노동자나 성매매 여성이나, 동성애자 남성 등 기존에 잘 보이지 않거나, 정말 수탈당하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낙인 찍는 방식으로 예방의 방향을 잡았어요. 기존 국민을 통제하고 분리하면서 감시하던 방식을 반복하는 거죠. 보수적으로 접근했을 때 성적인 보수주의 같은 것들로 선전하기도 좋고, 위생학적으로 질병에 대해 뭔가 통제나 감시 체제로 대하기도 쉬웠고요. 감염병을 경제적으로나 위생적으로 취약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집단이나 그러한 섹스에 엮고 감시와 범죄화의 명분을 삼는 일은 최근의 코로나를 비롯한 신종 감염병에서도 반복하고 있어요.
인권운동에서는 감염인들에 대해 피해자로만, 그냥 낙인찍힌 누군가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없는 누군가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이 사람들의 생애에 필요한 권리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를 물었던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는 감염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국가와 사회가 질병유무로 성원을 나누고, 계층이나 성별, 성적지향과 장애 여부 등으로 분리하고 위계를 정하고 차별해온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질병여부로 차별받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나,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나, 이 사람이 질병 당사자라고 해서 실명으로 정보가 기입된 채로 감시되거나 관리되는 상황들에 문제제기를 하고요. 감염인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감염 여부로 사람을 분리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 질병을 우리의 문제로 가져오자는 의식화가 있었던 거 같아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단지 노콘 섹스를 했을 때 잘못해서 걸리는 질병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섹스의 상황들에 어떤 위기가 있고, 왜 어떤 섹스는 범죄의 낙인이 찍혀야 하고,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감염인이 차별받는지를 질문하고, 커뮤니티 안에서의 평등한 섹스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지는 운동이기도 하고요.
최근 HIV/AIDS인권운동은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해 비판을 이어가고 있어요. 길리어드가 새로운 신약을 개발했는데, 특허권을 행사하면서 높은 약값을 유지하고, 많은 이윤을 취득하려고 하니 이 치료제가 필요한 사람들 중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은 치료받을 권리를 얻지 못하고 건강권까지 위협받게 되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제약회사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고 하는 방식으로 풍선을 나눠주고, 뭔가 기금을 제공한다거나 이런 부분을 구조적으로 보게 되면서 핑크워싱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국가의 성적 낙인이나 범죄화에 맞서면서 의료 민영화나 초국적 제약산업의 구조 안에서 누군가의 건강권이나 생명이 위협받는 것에 계속 문제제기를 해야겠죠. 결국 HIV/AIDS 인권운동은 질병이나 성적지향이나 특정한 상황들 때문에 관계성이 끊어지거나, 차별받는 것에 대해 인식 개선을 하면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질병을 잘 관리해서 건강할 수도 있지만, 설령 아프고 손상하더라도 그가 사회에서 누락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기 위해 어떤 제도와 관계가 필요한가를 함께 고민하면서 국가나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의 고민은 제약회사의 기금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생각보다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미 기금을 받으면서 활동하는 단체들도 있고요. 한국사회에 공공 의료나 사회 공공성이라는 부분이 비어 있다는 진단들을 하잖아요. 시민사회나 인권운동도 그런 환경에서 취약하거나 비어있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기업의 기금이 들어오는 거죠. 이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지금 여건에서는 많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대해서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도 관련 이야기를 공유할 때 긴장이 생기고요. HIV/AIDS인권운동에서도 단체들이 기금을 받으면서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규탄을 할 수 있을지, 운동을 주도적으로 가져가면서 기금을 받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기금을 받는다면 어떤 활동까지 할 수 있을까, 특정 단체가 받는 것 자체를 뭐라고 비판하는 건 개입이 아닌가, 하지만 이 개입이 항상 부당하기만 할까. 질문이 많아지지만 이 질문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이어보면 기금을 받는다면 단체 내부의 역량강화나 자체적인 교육이나 캠페인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초국적 제약회사와 인권운동단체 이름을 나란히 걸고 제도를 바꾸는 운동이나 캠페인을 같이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일일까에 대한 고민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비범죄화에 대해 싸워오고 전파매개행위죄 폐지와 같은 비범죄화에 대해 싸우고, 감염인의 노동권에 대해서나 이주민/난민 구금 이슈에 대해서도 총체적으로 다시 집중할 의제들을 재편하고 있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네요.
셰어 성소수자 단체가 HIV 이슈를 다룬다고 하면 예방에 집중하게 될 수 있잖아요. 행성인 HIV/AIDS인권팀의 경우에는 예방 중심에서 노선을 바꾼 건지 처음부터 감염인 인권 방향으로 가기로 했는지 궁금해요.
남웅 2011년도에 아이캅(ICAAP10: The 10th International Congress on AIDS in Asia and the Pacific, 제10회 아시아태평양 에이즈대회)이 있었는데, 동인련에서도 열심히 준비했었어요. 그때 의약품 관련해서 나누리+와 세미나도 했었는데, 의료 기반을 중심으로 접근했으니 뭔가 게이 MSM(Men who have sex with men,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 섹스 관련 이야기가 잘 안됐던 거죠. 그동안 ‘HIV/AIDS는 동성애자만 걸리는 질병이 아니면 왜 우리가 그 운동을 해야하지?’라는 질문을 강렬하게 토로한 동료 활동가도 있었어요. 그도 답답함이 있던 거겠죠. 왜 내가 에이즈운동을 해야하는 것인지 답을 찾아야 겠고. 여기에 이전까지 답하기엔 다소 망설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어?’ 정도. 그것이 아이캅 전후로 해서 ‘HIV/AIDS는 게이 질병 맞다, 우리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라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들이 등장했죠. 콘돔의 강박에서 조금 비켜나서 ‘콘돔 없이 섹스할 수도 있다’는 이해가 생기기도 했고요. 여기에는 그간 해온 HIV/AIDS인권운동의 구력이 구심이 되었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섹슈얼리티에 대해 좀 더 자신있게 이야기할 준비도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힘을 얻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에이즈 얘기를 하면서 게이 섹스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에이즈와 게이 섹스를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정말 콘돔 중심의 예방 말고 할 말이 없어지는 캠페인밖에 안 남을 것이다. 이런 생각도 들었거든요.
셰어 그때부터 행성인 HIV/AIDS팀이 집중한 건 게이 섹슈얼리티나 성적 낙인이었나요?
남웅 행성인 HIV/AIDS인권팀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감염인 당사자가 자신을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그룹이 아니었고, 나누리+에서 활동했거나, 관심 있는 연구자들이 많이 있었어요. 감염인, 비감염인 할 것 없이 섹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기엔 프렙(PrEP, Pre-exposure prophylaxis)이나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캠페인도 없던 시절이고요. 일단 모르는 것부터 알아보자고 진행했던 게 기관과 단체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에이즈 운동이나 서비스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연결 짓는 작업인 ‘에이즈, 다르게 생각하기- 법과 제도, 홍보캠페인, 언론보도를 통해 본 한국사회 에이즈 예방과 성’이었어요. 그리고 이듬해 8,90년대 게이커뮤니티와 HV/AIDS감염인 생애사 연구를 진행했죠. 활동을 하면서 배우는구나 싶었던 게 HIV감염인의 생애사를 듣는 작업이지만 동시에 80, 90년대 커뮤니티의 풍경과 사회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펼쳐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HIV감염인의 경험에 바탕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또 소중했고요. 과거를 비판적으로 살필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줬거든요. 인터뷰를 하면서 찜방이나 크루징 같은 하위문화에 대한 경험을 그때 많이 얻었고, HIV/AIDS인권팀은 그걸 바탕으로 보고서를 썼죠.
퀴어퍼레이드에서 보고서를 판매하기도 했는데, 반동성애를 표명하는 당시 메이저 언론의 신문기자가 그걸 보고 기사를 냈어요. 봐라.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도 에이즈를 동성애자 질병이라고 쓰지 않냐. 중요한 생애사 내용은 쏙 빼고 그 부분만 잘라낸 거에요. 그 기사를 보고 인터뷰하셨던 분들이 문제제기를 했어요. 당시엔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 경험이 없고, 사전 동의를 구하지 못했던 과실도 있다고 판단해서 사과와 함께 보고서를 폐기했어요. 아깝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소중했다고 생각하는 건 커뮤니티의 입체적인 맥락을 볼 수 있었고, 그게 전거가 되어 이후 2016년 KNP+가 주도한 ‘낙인 지표 조사’라는 중요한 연구를 설계하고 실행하는데 참고가 되기도 했어요.
보고서를 폐기한 후 10년이 지났는데, 폐기한 경험이 아픈 기억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실패까지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하나의 역사가 됐잖아요. 기록의 시행착오도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커뮤니티의 역사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셰어 예전에는 혐오세력이 공격하면 방어적으로 대처하기도 했는데, 방어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더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을 찾게 되신 것 같아요. 그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남웅 내가 나로 사회의 권리를 인정받으려면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의식이 있던 것 같아요. 물론 그건 혼자 용기를 내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 거고, 그를 지지하는 동료와 커뮤니티의 인식 변화가 전제해야겠죠. 단적으로 2010년 중반부터는 감염인 작가들이나 활동가들이 자기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시도들을 해요. 그게 주변 사람들에게 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요. 개인만이 아니라 활동에서도 자조 모임을 시작하면서 거버넌스의 경험을 쌓고, 자체적인 돌봄 사업을 진행하면서 차별에 대응하고, 이를 통해 집단적으로 자신감이나 역량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혐오 언론이나 논조에 대해서도 그동안 쌓인 논리들이 있으니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항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운동 안에서 경험이 쌓였고요. 특히 코로나19 때도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를 만들어서 선제적으로 대응할 역량이 있던 건 앞서의 운동이 자원이 되었던 것 같아요.
셰어 이런 과정이 운동을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요. 혐오세력이 공격할 때 부인하고 숨기는 게 아니라, 우리 있는 모습 그대로 대응할 때 사람들에게 용기도 생기고, 우리 공동의 힘들이 생기고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 항문섹스 한다, 우리도 항문섹스를 배워야 한다 이런 이야기도 하게 되고,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도 혐오세력에 맞서 적극적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사회가 인식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게 운동에 큰 힘이 되었어요. 그런데 제도적으로 인정받기 원하는 과정으로 갈 때 운동에서 우리도 모르게 조율하게 되는 측면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좀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을 중심으로 고민하다 보니까. 지금은 또 어떤 국면의 전환이 필요할까 고민이 들기도 하네요.
성소수자 운동의 '2차 변태기', 긴장과 논쟁의 끈을 놓지 않기
남웅 아까 ‘변태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지금이 2차 변태기인 것 같아요. 조금 거리를 두면서 얘기를 해보자면, 지금 다들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배워가는 중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현재는 혼인 평등 운동이 적극적으로 캠페인이나 서명 운동, 법안을 만드는 운동을 하는데, 운동의 성패와 별개로 혼인평등에 대한 운동사회의 긴장이 충분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가를 계속 물었던 것 같아요. 저는 가족과 혼인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급진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래야만 하고요. 그런 점에 동성혼 법제화는 그것의 달성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 과정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이견을 제대로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나 하면,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의제임에도 쉬쉬하면서 각자의 활동을 하면서 토론을 회피한 의견표명이나, 이견을 회피하는 토론의 방식이 이어진다는 인상을 받아요. 서로 운동에 대해 개입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고, 그 부분에서는 냉정하지만 감정을 분리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너무 어려운 걸 알기에(한숨), 어떻게 하면 마음이 안 다치는 방식으로 이 날 선 이야기를 가져갈 수 있을까 고민이 들기도 해요.
제 방식대로 이야기하면, 그동안 ‘혐오 반대’나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공동의 목표 이후에,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목표와 지향을 가지고 있는가에 있어서 너와 내가 다르다는 걸 계속 확인하게 되는 국면인 것 같아요. 여기서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한 불편함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 없이 관계가 깨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다. 관계가 깨져도 논의는 충분하게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좀 더 희망적이겠네요. 우리는 내부의 불편함을 끌어안고 운동해야 합니다(웃음). 운동 지형이 바뀌어 가는 게 운동만이 아니라 관계도, 활동하는 나의 태도나 자세 같은 것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셰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지형 속에서 남웅 님의 위치와 역할을 스스로 어떻게 설정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남웅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역할인 거 같아요. 소통을 하면서도 벽보고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들도 있고, 안 되겠다 끊고 제 갈길 갑시다 싶은 순간들도 많을 거 같은데요. 적어도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느 지점에서 분기할 수밖에 없는지,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감정이 섞이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도 생각하지만, 적어도 본인들이나 운동이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편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운동은 어떻게든 엮일 수밖에 없고, 운동의 확장을 위해서도 너는 너네들의 운동을 해, 우리는 우리들의 운동을 할 게 이런 건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아까 기금을 예로 들어보자면, 기금을 받으면서 같이할 수 있는 운동과 할 수 없는 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겠죠. 운동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논의의 행정도 중요합니다.
셰어 하고 계신 예술 활동과 운동과 예술의 연결도 무척 궁금해요. 예술은 어떻게 투쟁이 될 수 있나요? 동시대 한국사회, 퀴어/에이즈 운동과 커뮤니티, 예술의 맥락에서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남웅 다른 작가들과 활동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런 의제나 키워드를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반가움이 앞서요. 그러고 나서 잘 하고 계신지 비평의 촉을 세우죠. 관심의 표현입니다(웃음). 사람들이 내가 어디서 활동하는지를 알고 찾아오는 경우들도 있어요. 서로 알아보고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효능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작가들에게는 행성인 후원의 의미를 설득하거나, 집회 참여를 제안하거나, 행성인 회원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도 해요. 작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을 통해 활동에서의 리프레시가 되는 시간이 되기도 하거든요. 저다마의 문법에 갇혀 있다가 의제에 공감하고 서로의 활동에 대해 알아가면서 다양한 언어들과 이야기를 하는 게 되게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과 별개로, 성소수자로서 예술을 한다고 표명할 때 받는 통념적인 오해가 있어요. ‘당사자 예술’이라는 틀짓기를 당하는 거죠. 물론 당사자성을 강력하게 표명하는 분들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활동하면서 자신이 불편한 상황에 직면하고 싶지 않아 커밍아웃한 경우들도 있을 거거든요. 하지만 그게 미술계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읽히기가 쉬워요. 나는 미술의 언어로 보여졌으면 좋겠는데, 그냥 퀴어 당사자 예술인으로만 좁혀지는 불편함을 마주해야 해요.
저는 작가들이 활동에 같이 공감하고 참여하더라도 그들에 대해 작업으로서 갖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이 있다는 걸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지점에서 예술과 활동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예술은 실용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용적이게 되면 이건 캠페인이나 디자인이 되는 거죠. 이게 미술의 관점에서는 모더니즘적이라고 하는, 상당히 보수적인 접근인데(웃음) 그럼에도 참여와 거리두기 사이의 균형을 의식적으로 맞춰가는게 중요해요. 저는 예술이 어느 정도는 무용함에 기반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어떤 점에서는 활동도 시행착오에 열려 있고, 무용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관심을 두는 노력을 하기도 해서 서로 접점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무용한 것으로 계속 두는가에 따라서는 예술과 인권운동의 긴장이 있죠. 활동보다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네요. 하하.
저는 이전에 활동이랑 미술 비평을 구분했어요. 성명에 맞는 언어가 있을 거고, 비평에 맞는 언어가 있을 거라고 마음대로 이해했죠. 정말 헐떡이면서 왔다 갔다 했는데, 꼭 이럴 필요가 있나 싶은 거예요. 성명에 감정적인 나의 어떤 문장이 들어갈 수도 있고, 비평에 성명문 같은 문장을 넣거나 성명 조의 강단을 개입하면서 비평으로서나 활동가로서 캐릭터를 만들어온 것 같아요. 이런 식의 절충이 서로의 분야에 도움을 주거나, 확장의 계기가 되고요. 그런 점에서는 예술하는 사람들과 인권단체의 관계들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인권단체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가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꼭 그렇진 않잖아요. 예술에도 굉장히 많은 활동들이 생기고 인권단체가 이런 다양한 예술창작 활동들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고요. 이런 변화를 감지하면서 예술과 인권운동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둬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좌시하지 않는' 셰어가 되기를!
셰어 아주 알찬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다시 셰어의 조이로 돌아와서 셰어의 활동을 보면서 든 생각이나 고민, 함께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지 이야기 나눠주세요.
남웅 저는 계속 뇌피셜 이야기를 밀어붙이고 있는데 현명한 조이 여러분들이 헤아려주시리라 생각합니다(웃음). 셰어는 성소수자 단체나 제가 알고 있는 여성단체들과 다른 위상과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토를 하나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브리바디 플레져북, 섹스빙고도 만드시고, 전시나 캠페인 하는 것을 보면서 활동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시구나 했어요. 특히 2021년 10월에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시하셨을 땐 질투도 났어요(웃음). 사람들이 운동단체에 오기까지 문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면서 사람들이 프로그램 자체에 매력을 갖고 오는 것과 의제의 시급성을 갖고 오는 것은 태도가 다르잖아요. 단지 의제를 차별화하기보다는 이걸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 나눌까 더 내밀하게 고민한다는 인상을 받았죠. 또 하나 의미를 두고 싶은 점은 퀴어 운동이라고 하더라도 꼭 성소수자 운동 단체들이 모두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셰어가 만나고 있는 퀴어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했어요. 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행사를 할 때마다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동시에 하는 것인데, 접근성을 고민하더라도 그걸 한 단체에서 계속 실현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잖아요. 기획부터 같이 진행을 하고, 언어를 맞춰가고, 이런 과정들에 대해 세부적으로 신경 쓴다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2년 셰어 자립파티 <내가 생각하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 토크에 게스트로 초대받아 참여했을 때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당신에게 재생산은?’이었어요. 그때까지만해도 재생산은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그냥 생물학적 재생산 정도만 생각하고 그건 내 것이 아니라고 치부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계속 곱씹게 되는 거예요. 나의 무형의 자산들과 내가 섹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재생산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냐, 생물학적인 것만 재생산이냐! 혼자 곱씹으면서 이 질문이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고, 도움이 되었어요. 성소수자 운동 단체 활동가의 입장에서는 좀 자극을 주는 단체에요.
셰어 셰어가 앞으로 이런 단체가 되면 좋겠다, 이런 단체는 안됐으면 좋겠다도 이야기해주세요!
남웅 셰어(탄식)... 저는 셰어가 재생산의 키워드를 쭉 잡고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주어를 늘려가는 운동을 하면 좋겠어요. 운동 사회나 퀴어 커뮤니티에서 제도화되기 쉽고, 좁게 생각하기 쉬워질 것 같은 것들을 계속 확장해 내는 작업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담론적으로도 넓어지는 게 필요하겠지만, 운동과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제가 가졌던 변화된 인식을 나누는 자리는 소중하잖아요. 활동가들이 운동의 재생산은 많이 이야기 하는데, 그게 저는 관계의 재생산이나 섹스를 재생산하는 것과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셰어가 그런 것들을 연결해 온 작업을 해오는 것 같고, 이걸 놓지 않으면 좋겠어요. 이런 단체는 안됐으면 좋겠다? 글쎄요? 어려워요. 아, 셰어의 활동 방향이나 모습을 봤을 때 성소수자 운동이나 여성 운동에서 날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질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랬을 때 셰어가 판단하기에 협상할 가능성이 안 보이는 상황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포기하지 말아라. 계속 좌시하지 말아라 (박장대소)
셰어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남웅 셰어에서 했던 활동들이 이전에도 없었던 건 아닌데 낙태죄 폐지나 성교육에 관해서 재밌게 하는 단체가 나왔다는 게 반가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장소로서 셰어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만들어 가고 있단 생각도 듭니다. 조이로서 후원의 보람, 후원 잘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조이분들도 계속 좋은 프로그램 참여하시면 좋겠어요. 뉴스레터도 재밌게 보고 있거든요. 사실 뉴스레터 행성인처럼 공들여 쓰는 단체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웃음), 셰어는 웹진에 좀 더 가까울 만큼 내용에 힘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조이가 되셔야 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