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조이풀 인터뷰] 1화: '배틀그라운드'를 함께 건너는 동료

2022-04-27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조이풀 인터뷰] 1화: '배틀그라운드'를 함께 건너는 동료


* 소개할 조이

강소영: 자랑스런 셰어의 자칭 아니 자타공인 열혈 조이. 출판편집자로 일하며, 대표작으로 《배틀그라운드》(후마니타스, 2018)가 있다.


《배틀그라운드》 [ref]《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는 2018년 출간된 책으로 현재 셰어의 기획운영위원들 다수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책이다. 강소영 조이가 이 책의 편집자이기도 하다.[/ref]로 시대를 통과하기


보영(셰어 사무국장):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이 인터뷰는 셰어 뉴스레터를 통해 나갈 예정이에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셰어의 조이분들을 소개하는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소영님이 첫 번째로 시작을 열어주셨어요. 편하게 대화를 해 주시면 될 것 같고 질문도 딱딱하게 준비를 따로 하지 않았어요. 우선 《배틀그라운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제가 그때 당시에 같이 작업을 하진 않았어서 나영님과 소영님이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는데, 《배틀그라운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이 작업을 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끼셨는지, 기억에 남는 일이나 힘들었던 일이나 이런 걸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강소영: 출판사가 신촌으로 이사하기 전이라서 사무실이 합정역 근처에 있었는데요. 첫 만남 때 거의 일고여덟 명이 우르르 사무실로 오셨어요. '낙태죄' 폐지가 되게 중요한 이슈임에도 상업 출판이 접근하기에 까다로운 주제라는 건 자명했으니까, 저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고요. 책이 나온 뒤에도 서점 MD들을 만났는데, 제가 '이 책 너무 중요하다' 하면 MD들이 고개는 끄덕여도 표정이 꼭 '팔리진 않을 책이다' '관심 있는 사람만 관심을 가질 책이다' 하는 게 보였죠. '낙태죄', 이 말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어떤 인상들이 있잖아요. 기획 단계에서 사실 선생님들이 주신 초고가 되게 딱딱한 상태였지만, 이게 되게 중요한 얘기라는 거, 이런 책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이 나와서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목표가 있었어요. 책이 생각보다 늦게 나왔고, 한 번은 낙태죄 관련 집회에 갔는데 우리 책이 아직 없어서 아쉽더라고요. 그때가 아마 봄알람 출판사에서 《유럽 낙태 여행》을 냈을 때예요. 집회 날 오전에 봄알람이 북토크 같은 걸 했었거든요. '우리 책도 나왔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제가 했던 것 같아요. 그날 오후엔 땡땡책협동조합이 연 '길거리 독서회'에 가서 임신중지 관련 책을 읽었는데 '우리 책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생각했어요. 그날 하루는 온종일 '낙태죄' 이슈에 뜻이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날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책이 아직 안 나온 게 아쉬웠죠.


나영(셰어 대표): 그게 언제였나요?


강소영: 7월 7일. 아마 레베카 곰퍼츠[ref]임신중지 약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약물을 전달하는 위민온웨이브 Women on Wave 설립자로 2018년 한국에 방한하기도 했다.[/ref] 가 방한했을 때예요. 그때 당시에는 아쉬웠는데 나중에 《배틀그라운드》가 나올 시점에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더 보탤 수가 있었죠. 그동안 쌓였던 것들이라든가. 그래서 책이 늦게 나온 게 아니라 오히려 제때 나왔다고도 생각했고 그게 좋았어요. 제가 편집자로서 기뻤던 순간은 시위 현장에 《배틀그라운드》 책이 보일 때였어요. 이 책 본문을 낭독하는 분도 있고 앉아 읽고 있는 분들도 있고. 그럴 때 어떤 환희를 느꼈어요. 책장에 곱게 꽂혀 있는 책이 아니라 이 이슈에 관해 잘 알기 위해, 통합적으로 다각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사람들이 뒤적거리는 책. 여러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어떤 에센스 같은 이 책을 사람들이 좀 많이 참고해 주길 바랐던 목표가 이뤄진 것 같았어요. 기자들도 그렇고, 다급하게 출판사에 연락해 책을 급히 구하고 싶은데 출판사에 가면 살 수 있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고요. 대학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배틀그라운드》 에 실린 연표를 수업 자료로 쓰신다고도 하고, 이 연표로 전시[ref]2021년 10월 13~2021년 11월 3일까지 서울 보안1942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몸이 선언이 될 때 When the body becomes Manifesto> 전시. 셰어의 구성원들이 함께 작가로 참여하여 성과 재생산에 관한 연표를 전시하기도 했다. (전시정보 https://thebodymanifesto.xyz/) [/ref]까지 했잖아요. 그런 것들이 되게 기뻤던 것 같아요. 요새는 책이 나와도 관심을 받고 소개되는 게 아주 잠깐이라서 중요한 책이 나와도 금세 잊히는데요. 《배틀그라운드》 는 지금까지 잘 쓰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쓰일 것 같아요. 수신지 작가님이나 이현석 작가님의 픽션으로 재생산된 것도 기쁜 일이죠.[ref]수신지 작가의 《곤》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임신중지 경험을 한 여성을 국가가 색출하여 모두를 감옥에 보내는 가상현실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현석 작가의 소설 <다른 세계에서도>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임신중지 및 재생산 권리 등을 다루고 있다. [/ref] 《배틀그라운드》가 그분들의 창작에 영감을 줬다는 것이 기쁘고 지면을 통해 책을 언급하셨다는 게 기쁘고 그랬어요.


나영: 사실 소영님 말대로 그때는 저희도 이제 한참 세미나를 해서 우리끼리 고무되어 있을 때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원고의 질도 되게 제각각이고 톤도 다 달랐죠. 원고마다 다루는 주제도 달랐고요. 그리고 저희가 기획안을 드리기는 했지만 거의 포럼 때 발표 목록을 정리한 상태로 드렸기 때문에 굉장히 난감하셨을 것 같아요. 근데 그 난감한 상태의 원고를 어쨌든 해보자고 해주셨셔서 정말 감사했죠. 사실 저희는 소영님이 거의 운동을 같이 하셨다고 생각해요.


강소영: 책을 출간하게 된 건 저만이 아닌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안목 덕이겠고요. 책을 만들고 내는 과정은 정말 함께 운동을 이어가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나영: 사실 편집자는 책을 같이 만들고 알리는 정도의 역할을 해주시는데 소영님은 정말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여러 번 원고들을 다듬어 주셨고, 어떤 내용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주시면서 그 과정을 같이 만들어 주셨어요. 책 나온 뒤 북토크도 여러 번 했는데 북토크 때마다 자주 오시고 무슨 행사나 집회 있을 때 그 집회를 책하고 연결해 알리는 역할을 해주셨고요. 셰어가 설립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배틀그라운드》가 너무 중요했는데, 정말 책과 함께 운동을 만드는 역할을 해주신 것 같아요.


강소영: 동시대 페미니스트로서 저도 책과 함께 중요한 문제를 돌파하는 느낌으로 온 것 같아요. 무엇보다 책의 저자들이 편집자인 제 의견에 귀 기울여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고요. 책이 늦어진 것도 오히려 이슈를 확장시키고 와중에 생긴 맥락들을 추가하고 다듬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연표 같은 건 제가 제안해서 넣은 건데 사실 연표도 이런 작업을 어렵게 왜 하냐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고 또 되게 막연하잖아요 연표라는 것 자체가. 그런데 만들고 나니 책이 쇄를 달리할 때 업그레이드 할 게 계속 생기는 거예요. 지금 이 용어는 다르게 고쳐야겠다든가 이 항목을 추가해야겠다든가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다 지난 내용 이제 볼 필요가 없는 책이 아니라 독자들한테 계속 다가갈 거리가 생기는 것 같아요. 마치 해리 포터의 움직이는 지도 같은. (웃음) 책이 가진 행운이 있다면 저자와 편집자의 좋은 파트너십이 있었고, 선생님들은 제게 특별한 열정이 있다고 추켜세우시지만 저자들이 받아주지 않으면 또 못 하는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자들의 열정이 저를 끌어당긴 거죠. 북토크 제안이 오면 웬만하면 다 가시고. 큰 모임이든 작은 모임이든 저자와 독자가, 말하려는 사람과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만날 때 생기는 좋은 에너지가 있잖아요. 저는 그게 다 이 운동에 보탬이 됐다고 생각해요. 독자들도 아는 거죠. 이 사람들이 그저 책을 팔려고 지금 이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낙태죄 폐지 다음 날이었나 누가 저한테 '공이 있다'는 거예요. 일조를 했다는거죠. 겉으로는 손사래를 쳤지만 속으로는 '그래 나도 뭔가 했구나' 했어요.


셰어를 함께 만든 조이


보영: 셰어가 만들어진 초창기부터 함께하셨는데 셰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어떠셨는지, 조이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강소영: 그냥 저는 저절로 되었는데. (웃음) 그냥 뭐 어떤 1초의 생각도 안 한 것 같은데요. 그냥 셰어가 만들어진 것도 너무 반갑고 제가 봤을 때 멤버들 합이 너무 잘 맞는 조합인 거예요. 서로 너무 좋아하고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그러니까 처음에 잘 모를 때는 '즐겁게 하고 계실까?' 했는데 북토크나 시위에서 자주 만나다 보니 선생님들이 너무 잘 맞는 조합이란 게 보였죠. 같이 단체를 만드신다고 했을 때 너무 반가웠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낙태죄' 폐지 이후의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배틀그라운드》 의 메시지랑도 연결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나영: 단체로서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셰어가 이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기대한 바가 있으신가요?


강소영: 이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잖아요. 이거 이름 못 외우시는 분들 많으시죠?


나영: 너무 많아요. (웃음)


강소영: 이름에 담기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는 어떤 더 깊은 지점에 들어가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낙태죄' 얘기를 할 때는 아무래도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얘기를 많이 못하잖아요. 많은 이야기 중에 뒤로 밀려나게 되는데 권리에 방점을 찍고 얘기한다는 게 좋았죠. 이 단체의 긴 이름을 보고 처음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웃음) 어쨌든 '성적 권리'를 전면으로 내세운다는 게 되게 멋있었던 것 같아요. 


조이가 바라보는 셰어


강소영: 이번에 셰어 총회에 갔을 때도 최예훈 선생님의 클리닉이라든가, 섹스 빙고 키트 펀딩이라든가, 이런 구체적인 사업들을 공유해 주셔서 좋았어요. 예전부터 클리닉을 얘기하시긴 했지만 쉽게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직에서 이를 중요한 사업으로 여기고 함께 추진해 간다는 게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총회 끝나고 셰어 활동가 선생님 한 분께 총회평을 하기를, 일을 많이 하고 있고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총회라 좋았다고 했어요. 총회에서 그래프 같은 걸 보여주면서 후원회원의 증가 추이와 언제까지 얼마의 후원을 동원해야 하는지 말하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대부분 그런 얘기를 잘 안 해요. 그냥 끝날 때쯤 후원 계좌번호를 띄우는 정도죠. 후원이 잘 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실 때 느껴지는 에너지가 멋졌어요.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건강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잖아요. '돈은 있거나 없거나 우리는 이 일을 할 것이다' '우리는 상근 활동가의 비용을 쪼개서 어떻게 하고 있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걸 하고 있고 그를 위해 이 재정을 만들어 낼 것이다.' 김보영 사무국장님이 직접 카드뉴스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놀랐는데요. 너무나 성의 있게 만드시잖아요. 셰어는 많은 일을 하고, 그것을 조이에게 잘 공유해 주셔서 건강한 조직이라고 느끼게 해줘요.



나영: 주변 분들에게 조이 가입을 추천한 적이 있으신가요?


강소영: 제가 sns로만 하지. 사실 그렇게 친구가 많지 않아서. 사적으로 만나서 제안하면 약간 교회 전도 같잖아요. '셰어 믿으세요' (웃음). 그래서 제가 이번 총회 때도 공약으로 sns에 정기적으로 홍보하겠다고. sns 친구들이 저와 지향이 맞는 사람들이라서 이 사람들이 다 셰어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알리고 있고. '쟤 또 배틀그라운드야', '쟤 또 셰어야' 하는 말이 들릴 수도 있는데 제가 너무 즐겁게 조이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걸 계속 노출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를 아는 사람들이 '셰어 되게 좋은 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 좋겠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요. 저는 셰어가 하고 있는 일 해온 일들, 쌓아온 성취들을 강조하고 싶고. 사실 총회에 와보면 다들 전도가 될 텐데 이런 생각까지 하죠.


나영: 그러면 반대로 '이런 것만은 하지 말아라' 이런 게 있을까요? 셰어가 어쨌든 이제 3년 차가 되는 단체로서 이런 길로는 안 가면 좋겠다 싶은 거라든지? 


강소영: 어느 날 어떤 단체나 조직에 실망할 일이 생기더라도 거기서 해온 모든 일들의 좋은 영향력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곳을 다시 일으키고자 아등바등하는 사람이 거기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을 봐서라도 떠나기를 유보하는 편이에요.  만약에 예전 같지 않은, 열정이 식은 눈빛을 보인다든가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을 뿐이야' 하는 마음으로 활동하시는 게 느껴진다면 그때 실망을 하게 되겠죠. 셰어가 재작년 몬스테라(셰어 자원활동가 모임)라든가, 여러 다른 단위들과 협업하는 일을 많이 하셨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간담회라든가. 계속해서 접점을 만드는 게 셰어다운 접근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셰어가 경로를 이탈할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영: 굉장히 힘이 되는 말씀이네요. 저도 그게 셰어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활동이 뻗어나갈 수 있다는 거. 혹시 셰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요?


강소영: 어려운데... 거리에서 알록달록하게 나부끼는 깃발 같은 이미지? 예쁘고 자유롭고 다양하고 기발하고?


보영: 셰어와 찰떡이네요!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눠주셨는데요. 어떠셨나요?


강소영: 팬데믹으로 시간이 빨리 지난 것 같지만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런데도 '낙태죄'를 둘러싼 일들은 바뀐 게 별로 없고 아직도 지지부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럴 때 지치지 말고 화력을 키우기 위해 땔감을 넣어야 할 텐데, 셰어가 그 일을 해주고 계셔서 늘 감사드려요. 오늘 인터뷰 즐거웠습니다.


* 이번 인터뷰 사진 촬영은 안팎(셰어 기획운영위원)이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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