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조이풀 인터뷰] 21화 : “페미니즘이나 젠더권 관련한 운동을 청소년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 주셨으면 해요” 선이(정효선) 조이님 인터뷰

2025-06-11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조이풀 인터뷰] 21화

“페미니즘이나 젠더권 관련한 운동을 청소년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 주셨으면 해요”

선이(정효선) 조이님 인터뷰


이번 호 조이풀 인터뷰에서는 윤석열 퇴진 집회의 광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광장 곳곳을 누비며 활동한 선이(정효선) 조이님을 만났습니다. 셰어 활동가들은 집회에 갈 때마다 한 번도 빠짐 없이 선이님을 만났어요.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자원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셰어 외에도 여러 단체의 회원으로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선이님은 항상 따로 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음식을 담아 광장에서 만나는 활동가들에게 나눠주시기도 했습니다. 셰어는 선이님이 대체 어떤 분인지 정말 궁금했어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셰어를 만나면서 현안을 넘어선 방향을 찾게 되었다는 선이님의 이야기, 여러분도 함께 보아주세요. 



셰어 안녕하세요. 윤석열 퇴진 집회 광장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만났네요.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간략하게 본인 소개를 해주세요.


선이 저는 사무직 일을 하고 있고,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앨라이, 환경주의자의 정체성으로 저를 소개하지만 많이 모자라요. 페미니스트로서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기에 편승해서 편하게 살아가고 싶기도 해요. 오늘 입은 옷도 싫어하는 옷인데 가장 편하게 입어요. 제 성격이 성별이분법에 맞지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안다면 사람들이 옷만 보고 예쁘다고 말하지 않을텐데, 여성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예쁘다고 하니까 되게 싫거든요. 그런데 내가 모난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는 여러 사람 중에 한 명으로 숨어있을 수 있으니까 편하기도 하죠. 그리고 집에서는 비건인데 밖에선 아니에요. 그렇게 철저하게 지키지 않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설득하거나, ‘저는 안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소심해서 어려워요. 그래서 되게 모자라다고 느껴요. 페미니스트라고 하기도 모자라고 환경주의자라고 하기에도 모자라고. 하지만 이런 모자란 사람도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고, 환경운동에 참여한다는 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내가 해도 될까? 관심 있는데 해도 될까?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참여하면 좋겠어요.


셰어  누구든 완벽하게 다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선이님은 실천할 수 있는 걸 하시면서 사는 거잖아요. 그 부분이 진짜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활동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선이 저는 할머니께서 키워주셨어요. 할머니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라고 하셨어요. 사실 성경에 따르면 그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어야 하는데 할머니께서는 당신이 믿고 싶은대로 하나님을 믿으셨어요. 우리 하나님은 좋은 분이시니까 타인을 위해 실천하는 사랑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셨어요. 또 저희 집이 동네에서 풀어먹이는 역할을 했어요. 어려운 분들, 지나가는 분들 다 저희집에서 식사하셨어요. 동네 분들도 무언가를 수확하면 한 바구니씩은 저희 집에 내려놓고 가셨어요.  할머니는 지식이 없어도 진보적인 분이셨어요. 제가 어릴 때 게이라는 개념도 잘 모르고 인권 관련 책에서 동성혼에 관한 글을 읽고 할머니께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결혼을 못하냐 했더니 할머니꼐서는 그렇게 사랑하면 결혼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다른 친척들은 제가 이런 책을 읽는다고 난리가 났죠. 고모부는 얘가 이런 책 읽는 거 아시냐고 저희 부모님께 화내시고. 하지만 제가 할머니께서 제일 귀애하시던 손주라서 저한테 함부로 못했어요. (웃음) 그렇게 할머니처럼 나누는 거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거 하는 사람이 됐어요.


셰어 그럼 혹시 처음 참여한 사회단체 활동이나 집회도 기억나시나요? 


선이 천성산 터널 반대 운동이었어요.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진. 학생회실에 있는 포스터 같은 것을 보고 혼자 갔어요. 저는 혼자다니는 걸 좋아하거든요. 운동권에 속하기는 싫은데 가고는 싶고 그래서 선배들이 같이 가자고 했는데 같이 안가고 몰래 학생회실에 들어가서 일정표를 보고 혼자 갔어요. 장애인 차별 철폐 집회도 선배들이 같이 가자고 했는데 혼자 가고. 항상 같이 안 간다고 해놓고 가면 거기 앉아 있었어요. 학교에 운동권 대자보가 붙어있으면 몰래 응원하는 포스트잇을 붙여놓기도 했어요. 원래 성격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지금도 개인적으로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고 의견을 나누는 건 좋아하는데 제 생각을 오롯이 가지고 싶은 면도 있거든요. 어느 단체나 누군가와 아주 크게 친밀한다든지 하면 다른 생각을 가졌을 때 내 생각을 가져가기가 어려울 수 있잖아요. 내 세계도 지키면서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셰어 혹시 처음 셰어를 만난 날을 기억하시나요? 어떤 계기로 알게 되셨고, 처음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땠어요?


선이 '낙태죄' 폐지 헌법소원 했을 때 연대체에서 기자회견 하고 그랬잖아요. 그때 기자회견 기사에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확대해서 현수막에 있는 단체들 홈페이지에 다 들어가봤어요. 좀 조사해서 가입하는 편이거든요. 그 때 셰어 홈페이지에 가보고 뉴스레터 신청도 했어요. 그리고 2022년 후원파티에서 가입했어요. 셰어 활동이 일반 여성단체랑은 많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마음에 들었어요. 일반적인 여성단체에서는 여성을 전제로 해서 여성의 현안 문제를 좀 더 다루는데 제가 만족감을 느끼기는 좀 힘들었어요. 저는 제가 시스젠더 헤테로이지만 제가 여성인게 싫어요. 여성으로 대해지는 것도 싫고 여성 역할을 하는 것도 싫어요. 제가 가진, 저 스스로에 대한 여성혐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셰어가 젠더권 같은 저한테 필요한 운동을 하고 있는 거 같아서 관심이 갔어요.


셰어 셰어 활동가들은 이번 탄핵 광장에서 선이님이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놀랍고 감동을 받기도 했거든요. 저희가 봤을 때는 한 번도 빠진 적 없이 늘 웃는 모습으로 자원활동을 하고 계셨고 심지어 셰어를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활동가들을 볼 때마다 간식도 챙겨주셨고요. 포장 쓰레기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항상 음식을 담을 통도 따로 가지고 다니셨잖아요. 그리고 셰어 조이로서 외에도 다른 활동들에도 많이 참여하고 계신데 주로 어떤 주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에 참여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아까 천성산 터널 반대 운동 이야기도 하셨는데 환경운동을 제일 처음, 많이 하신 것인가요?


선이 제가 고등학생 때 동네에 아름다운 산이 있었어요. 반딧불도 있고. 거기가 달뱅이 논이 중턱까지 있고 중턱에 과거에 만들어진 늪같은 저수지가 있는데 남생이도 살았어요.  그런데 그곳이 골프장으로 개발이 되었어요. 허가가 날 곳이 아닌데 비리로 허가가 나서 너무 화가 났어요. 그리고 개발 과정에서 거기 사는 생명들을 이주시키지 않고 그냥 덮어버렸어요. 

그때 저는 그냥 학생이라 그에 대해서 발언을 하면 그냥 발랑 까진 애가 되고 제 발언이 너무 무력하고 의미가 없었어요. 나중에 그 비리와 연루되었던 시장, 공무원, 사장 다 감옥에 갔지만 산은 이미 파괴되고 생물들은 학살되었죠. 

대학생이 되면서 고향을 떠나오니까 좀 더 제 마음대로 환경운동에 따라나설 수 있게 되면서 천성산 개발 반대 활동에도 많이 참여하게 되었죠. 내가 나가서 뭘 할 수 있다는 게 되게 많이 위로가 되었어요. 혼자는 무력한데 조직이 있으니 따라가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게 되게 힘이 되더라구요.


 


셰어 제일 처음 적극적으로 하신 것은 환경운동이네요. 그러다가 페미니즘 이슈로 관심이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선이 저는 이전에는 여성혐오나 차별에 영향을 그렇게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성차별주의자여도 체면상 대놓고 혐오를 하지는 않았거든요. 몇 년 사이에 여성, 소수자 혐오가 만연하다고 제가 느낄 정도가 되었어요. 저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안하고 사람도 별로 안 만나는데 제가 느낄 정도면 일상이 된 거죠. 그렇게 느낀 게 3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사회와 인권감수성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일상에서 제가 혐오를 접하는게 놀랍기도 했고요. 저도 영향을 받으니까 저도 적극적이 될 수밖에 없더라구요.


셰어 그렇군요. 그럼 셰어 활동 중에서 선이님이 특히 더 관심이 있거나 주목하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선이 행동하는성소수지인권연대에서 타리님이 했던 성교육에 참여했어요. 이전까지 성교육을 생각했을 때는 뭔가 안전, 보호 이런 것만 연상했었어요. 그런데 그 때 타리님이 성교육을 하면서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거든요. 그전까지는 제 몸이 그냥 규제되고 단속해야 되고 보호해야 되는 몸이라고 생각했지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몸이라는 걸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억압을 받는 몸이다 보니까 여성인 게 싫었던 것 같아요. 좀 더 자유롭고 쾌락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제 자신을 조금은 긍정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이런 고민을 제 나이 대 여성들이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남자를 자극할 수 있는 옷을 입으면 안 된다든지 몸가짐이 단정해야 한다는 교육과 억압을 많이 받다 보니까 자기 몸을 긍정하고 여성임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포괄적 성교육은 주로 청소년들 대상으로 할텐데 저 같은 중년 여성들에게도 이런 성교육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얼마 전에 ‘올파의 딸들’이라는 영화를 봤거든요. 올파는 네 명의 딸을 가진 튀니지 여성인데 2011년 아랍의봄 이후에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해 첫째와 둘째가 테러리스트가 돼요. 저는 이 영화에서 이 중심 이야기보다 올파가 자기 몸을 부정하는 것에 더 관심이 갔어요. 올파는 당당한 여자에요. 올파가 결혼할 떄 결혼식 도중에 성관계를 가지고 처녀혈이 묻은 천을 하객들에게 보여줘서 신부의 처녀성과 혼인 성립을 증명을 해야 했어요. 그런데 올파는 이 굴욕적인 성관계를 거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편을 두들겨 팬 다음 남편의 코피를 묻힌 천으로 혼인 성립을 증명해요. 결혼생활 동안에도 튀니지는 남녀 차별도 심하고 성관계는 남성의 만족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해서 여성의 쾌락은 금기시 됐었는데 올파는 남편에게 쾌락을 느끼고 싶다고 요구해요. 그리고 아랍의 봄을 통해서 나도 내 인생에 혁명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이혼을 해요. 그런데 동시에 자기 몸에 대해서는 불경하고 억압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딸들도 그렇게 단속을 하는 거에요. 딸들이 자라면서 자기 몸을 탐구하고 이성에 관심을 가지는 걸 금기시하고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폭력적으로 혼내거든요. 여성 스스로 가진 여성혐오와 여성의 몸에 대한 부정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대물림이 돼요. 올파의 딸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것도 엄마와 사회로부터 여성혐오를  체화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포괄적 성교육을 우리 세대 여성들이 받지 않으면 결국 우리도 청소년들에게 그런 생각이 이어지도록 만들게 될 것 같아요. 


셰어 맞아요. 셰어 활동에서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죠.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면서도 우리에게 이런 권리가 보장되려면 성적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근데 위험과 안전에 관한 이야기만으로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죠. 보호를 요청하는 대상으로 남아있어야 하고 더 적극적인 권리의 주체가 되지 못하니까요. 보호를 받을 권리에서 더 나아가서 우리가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권리를 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걸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셰어 활동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거든요. 선이님이 정말 핵심적인 부분을 간파해 주셨네요.


선이 그 부분에 대해 셰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다른 분들도 도움받으면 좋겠구요. 셰어는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도 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걸 넘어서 건강권, 성적권리에 대해서도 활동을 하시고. 현안을 넘어 근원적인 목표를 가진 운동을 하는 곳 같아요. 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 제목을 봤을 때 느꼈던 뭉클함을 셰어 활동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셰어 그런 걸 마음에 들어 해주시다니 좋아요! 셰어 구성원들은 그런 걸 하고 싶어서 이 단체를 같이 하게 된 것 같아요. 다른 방향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요. 선이님도 주로 그런 쪽으로 마음을 쓰고 계신 것 같아요. 이번 윤석열 퇴진, 사회대개혁 집회에도 그런 마음으로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선이님이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신 동기가 궁금해요.


선이 부채감이 있어요. 2016년에 박근혜 퇴진 집회에는 많이 못 나갔거든요.  나갔다가 저한테 별로 안전해 보이지 않고 상처받을 거 같아서 안 나갔어요. 대학 때는 여성으로서 노동운동 참여하는 게 힘들었어요. 물론 노동운동을 한다고 해도 성차별도 할 수 있지만 제가 가면 마음의 상처를 받으니까. 기사를 보면 화나는 일이나 슬픈 일이 많죠. 나도 연대하고 싶은데 용기가 안났어요. 그런데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12월 7일부터 평등약속문이 무대 화면에 올라갔을 때 되게 감격스러우면서도 죄책감이 느껴졌어요. 그런 약속문이 광장의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이 사회에서 버틴 사람들이 있고, 평등한 집회를 만들기 위해 약속문을 올리자고 싸운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니까요. 그런 걸 하는 사람이 있어야 사회가 바뀌는건데 저는 제 마음 다칠까봐 안 나온 게 부채감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지금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비상행동의 거의 모든 집회에 나갔고 자원활동에도 참여했어요.


셰어 열심히 참여하신만큼 파면 이후 상황에서 마음이 더 부대끼진 않으셨어요?


선이 사실 하면서도 미래가 어두웠어요.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거 같아요. 잘 몰라도 연대하고 그랬는데 연대도 사라지는 것 같고. 거기에서 주목받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고요. 


셰어 어려운 상황이지만, 앞으로 셰어와 함께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거나 셰어가 다뤄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활동이나 내용이 있다면 이야기 나눠주세요. 


선이 페미니즘이나 젠더권 관련한 운동을 청소년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 주셨으면 해요. 요즘 좋은 책을 읽으면 저 어렸을 때가 생각나요. 제가 어릴 때는 책을 읽는 것조차 규제를 많이 받았거든요. 지금도 학생인권조례 폐지되고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성소수자, 페미니즘 관련 책이  폐기되고, 학부모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청소년들이 정말 접근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지식이 있어야 하는건데 이렇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면 찾아볼 생각도 못하게 되지 않을까. 저는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책도 보고 위로도,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의 청소년들이 이런 도움을 못받을까봐 걱정이 돼요. 앞으로 이런 활동이 있다면 적극 참여할께요. 


셰어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선이 아직 셰어의 조이가 아닌 분들에게 이야기해보면,. 저와 같은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현안만 대응한다고 해결이 되지 부침이 있는 분들이요. 이런 부분에서 마음의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셰어인 것 같아요. 젠더권에 대해서 앞으로 좀 더 나서서 활동하는 곳이 셰어라고 생각하거든요.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로 여성의 문제만을 다뤄서는 지금 느끼는 이런 힘듦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제 스스로도 저 자신에 대한 여성혐오가 있는데 스스로를 통제하고 규제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제 세대에 많을 거에요. 저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셰어에 오는 것을 추천합니다.



0

셰어의 활동 소식과 성·재생산에 관한 뉴스를 받아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셰어의 뉴스레터를 
신청해 보세요. 알찬 소식으로 가득찬 뉴스레터를 월 1회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