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집회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에 참여했습니다.

2023-06-30

매년 6월 29일은 ‘성노동자의 날’입니다. 올해는 재개발로 인한 집결지 강제 폐쇄에 맞서 싸우고 있는 파주 연풍리(용주골) 성노동자 분들과 함께 파주시청 앞에서 집회가 진행되어 셰어 활동가들도 집회에 함께했습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도 보신 분들이 있겠지만 경기도 파주시 대추벌(속칭 용주골) 집결지는 6.25 전쟁 이후 국내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촌 중 하나로 형성되었지만 미군 기지의 이전에 따라 2015년 8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파주시장은 파주경찰서, 파주소방서와 TF를 구성하며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를 선언했습니다. 재개발을 목적에 둔 대책없는 집결지 폐쇄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의식해 파주시는 최근에서야  지원 대책을 발표했으나 이 자활 지원책은 집결지에서 생계를 이어 온 종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파주시는 연풍리 성매매 집결지에 종사하는 성매매 피해자 등을 200명 안팎으로 집계했으나 성매매 집결지 폐쇄 시 이 중 약 100명(올해 20명, 2024년 80명)을 지원할 예정이라며, 전체 50%가 목표라고 발표했는데요, 이 조례 지원은 '탈성매매 확약서'를 작성해야만 받을 수 있으며, 조례 지원을 받을 때 단 한 번이라도 성매매를 한 정황이 포착되면 받았던 지원금을 모두/일부를 반납해야 합니다. 용주골 종사자 분들은 홀로 자녀를 양육하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의 생계를 부양해야 하는 분들도 많은데 갑자기 아무 대책도 없이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의 지원금으로 살아가기는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자작나무회 대표 별이님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생계비가 너무 적으므로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직업훈련을 받으며 파주시청이 정해놓은 프로그램을 이행하며 다른 직업을 갖기 어렵다"라고 발언했습니다. (5월 16일 기자회견 소식에서 발언문 다시 보기 https://me2.kr/ytulT)


셰어는 이곳에서 일하며 주민으로서 살아온 성노동자들의 삶을 존중하고 조건없는 지원과 보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며 계속해서 투쟁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지만 용주골 종사자모임 자작나무회의 회원분들과 연대하러 온 이들로 파주시청 앞 인도가 가득찼어요. 다같이 자작나무회에서 준비해 주신 보라색 우비를 입고 파주시청 앞을 지나가는 시민들과 시청을 향해 힘있게 구호와 발언을 했습니다.
셰어에서도 에브리바디 플래져랩 타리 팀장이 연대발언으로, 나영 대표가 오픈마이크 자유발언으로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집회 후에는 파주경찰서 앞까지 행진했습니다. (비가 오니 구호 소리가 더 잘 들리더라구요 ㅎ)


행진 후에는 용주골에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함께 했는데요, 다같이 버스를 타고 용주골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풍경이 업소마다 붙어 있는 하얀색 종이였습니다. 그 종이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6월 29일은 성노동자의 날입니다. 오늘은 동네 전체가 휴업하오니 내일부터 찾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개발과 파주시의 강제폐쇄, 인권 침해에 맞서며 성노동자로서 노동권과 주거권,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찾아가는 투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날 자작나무회와 함께 집회를 주최한 성노동자 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의 구호에도도 그 선언이 잘 담겨 있었습니다.

"용주골은 우리의 생활터전 이 곳에 우리의 삶이 있다.”
“성노동자는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들은 노동자다.”
“성매매를 하면서도 존엄은 삶은 나는 살아간다"


마지막으로, 이 날 집회에서 나눈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용주골 여종사자모임 자작나무회 별이 님과 지혜 님의 발언,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 InternationalWaters31(IW31) 림보님의 발언, 차차 유원님 발언,  멸종반란과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희음님의 시, 그리고 셰어 타리와 나영의 발언문을 꼭 함께 읽어주세요. 


[발언문 1]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별이(자작나무회 대표)


안녕하세요 시민 여러분! 저는 용주골 종사자들의 모임 자작나무 회의 대표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희 종사자들은 파주 시청으로부터 철저히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으며 생존권 또한 위협받고 있습니다. 파주 시청은 감시 처소 설치, 여행길 걷기대회, cctv 설치 시도, Hid 용역 순찰 올빼미 감시단 창단 등을 종사자들과 그 어떤 소통도 없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행위는 민주주의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방적인 위협입니다. 합법이란 껍데기를 쓴 부당한 폭력입니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사가 시청의 편에 서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하거나 악마의 편집을 하는 등 저희들의 목소리가 집결지 밖으로 나가지 않게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 저희는 허위사실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고소고발까지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자작나무회는 집결지 강제 폐쇄 과정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여종사자 전원과 비밀투표를 진행했습니다. 투표 안건은 공권력을 상대로 싸울 것인가, 아니면 무대응으로 갈 것인가였습니다.
공권력을 상대로 싸우게 된다면 공무집행 방해, 불법 집회 등의 사유로 연행되거나 경찰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들었고, 우리가 다치는 경우 또한 생길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88% 종사자들이 싸우자고 투표했습니다. 저희는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파주 시청이 지금 저희를 위협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멈추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종사자들과 소통한다면 저희 또한 그렇게 하겠지만 저희와 소통하지 않고 합법을 위장한 위협으로 종사자들을 괴롭힌다면 저희도 그에 맞게 강력하게 싸울 것입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종사자들이 다치거나 사고가 생긴다면 그건 파주 시청의 잘못입니다.
저희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소통을 원했고, 6개월 동안 저희를 무시한 쪽은 파주 시청입니다. 저희 종사자들은 폐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이렇게 강압적으로, 폭력적으로 이곳을 폐쇄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집회를 준비하면서, 한 종사자분이 카톡 방에 대한민국 헌법 15조를 언급하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헌법 제2장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국민 누구든 종사하는 직업에 관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자유를 갖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직업도 직업입니다. 우리는 불법이 아닙니다. 
그 기사를 보고 헌법을 더 읽어보았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지금 파주 시청의 행동은 저희를 국민으로, 시민으로 보는 것 같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저희는 오히려 파주 시청으로부터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저희 자작나무회는 파주시에 지금까지 종사자들을 위협해온 모든 행위를 멈추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종사자들과 소통하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듣고, 제대로 된 이주보상대책을 세워주십시오. 재개발이 진행되고 관련 계획이 세워지면 이곳 종사자뿐 아니라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주방 이모님들 상인들 모두와 시간을 두고 소통과 협의를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파주시장님! 다수의 시민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시민들과도 소통하며 모든 시민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 시장의 올바른 자세라 생각합니다. 저희 먼저 소통하십시오. 그것이 용주골 자진 해체를 위한 첫 시작이어야 합니다.

[발언문 2]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지혜(자작나무회 회원)


저는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저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습니다. 퇴행성 디스크가 있어서 한 번은 의사선생님이 60대 보다 허리가 안 좋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어렸을 적 가정폭력으로 우울증도 심합니다. 친오빠와 이야기하다가 제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 뺨을 때렸을 때 엄마는 옆에서 네가 맞으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하고 웃고 계셨습니다. 피가 섞였지만 같은 가족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가족과는 인연을 끊은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저에게 가족의 울타리를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알아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아야 합니다. 아프다고 운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제가 먹고 자고 입는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우울증이 심하다고 사회에서는 누구 하나 이해해 주는 분 없었습니다. 출근시간에 급하게 정신과를 가야 하는 상황 또한 이해하지 못해주셔서 그날 퇴사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정신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편해서 그런 병에 걸리는 거라고. 부자병이라고. 바쁘게 살면 그런 병에 걸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살면서 5시간만 자고 일할 때도 우울증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밥을 먹다가, 자려고 누워서, 공구를 들고 있을 때도, 커피를 마시면서 쉴 때도 항상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말하면 주위 사람들이 힘들 것 같아서 차마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참았습니다.


이곳 용주골은 우울증 때문에 출근 전에 병원 갔다 와도 괜찮고 심한 날은 쉬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있을까요? 저는 일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하다는 진단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제가 일반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낮에 일하면 우울증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은 실수를 봐주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또 상처받고 자존감만 낮아질 뿐입니다.
이곳 용주골은 제 마지막이자 최선의 선택지입니다.


이곳이 폐쇄된다는 것을 알고 저는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은 제게 일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제2의 고향이며, 지나가며 사람들과 인사하고 서로 아파 보이면 걱정도 하는 그런 곳입니다.
밥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행복해하고, 내일 또 보자며 인사를 하고, 내일이 되면 그 사람들이 항상 같은 곳에서 만나 인사도 나눕니다.
제가 어딜 갔다 와도 이곳만은 남아있다는 안정감도 받습니다. 힘들 때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투쟁하면서 저는 파주시장은 독재자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일을 진행하고, 조율은 없고 일방적인 통보만이 있고, 자신 이외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파주시장 주위로 시민을 지지해야 할 단체들이 파주시의 편을 들고, 시민단체들이 시민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법 일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직업은 불법이 아닙니다.
당당하진 않지만 우리의 선택이었습니다.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발언문 3]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타리(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안녕하세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에서 활동하는 타리입니다. 
2023년 성노동자의 날을 맞아서, 강제 폐쇄에 맞서 온몸으로 투쟁하고 있는 현장에 함께 하게 되어 인생의 중요한 날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연대발언을 요청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부족하지만 그동안 인권운동을 하면서 만나고, 깨닫게 된 저항과 연대의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셰어는 성적 권리가 인권이라는 점을 계속 환기하면서 국가가 해야 하지만 방기하고 있는 책임을 요구하고 모두의 성적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서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적 권리가 인권이라는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국가에 의해서 벌어지는 차별과 폭력을 밝혀내고 그것을 철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어떤 차별과 폭력이 있을까요? 


미군 기지를 유지하고, 외화벌이하는데 필요하다는 국가의 판단에 의해서 집결지가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들인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습니다. 미군 기지가 떠나고 국가가 관리해야 할 명분이 없어지자 도덕적인 낙인을 씌워서 문제 있는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말합니다. 이건 정당하지 않고 사실도 아니며 부당한 차별이고 혐오입니다. 이주대책도, 자활대책도 시혜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관리와 통제를 당연시합니다. 이것은 권리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여기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존중 없이 강제로 이루어지는 철거와 이주는 삶을 파괴합니다. 국가가 필요할 때는 여기에 사람을 모으고 애국자라며 치켜세우다가, 필요 없어졌을 때는 불법을 운운하고 다른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면서 단속하는 행태에 분노합니다. 


성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권력에 밀리고 자본의 논리에 밀릴 때 특히나 무자비한 대접을 받습니다. 마치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위험한 영향을 주는 것처럼 혐오를 조장해서 차별을 정당화합니다. 성노동자, 성소수자, HIV/AIDS 감염인, 이주노동자와 난민, 장애인 등 소수자들을 차별할 때 성적 낙인이 자주 동원됩니다. 이럴 때 이 소수자들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 아니라 안 보이는 곳으로 숨겨지길  바라는 존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수자들은 질문해왔습니다. 왜 주류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졌다고 해서 차별받아야 하는지, 왜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불법이 되어야 하는지, 왜 특정한 질병을 가졌다고 해서 비과학적인 이유로 격리당해야 하는지, 왜 일할 곳이 없는지, 왜 살아갈 곳이 없는지, 그렇다고 시설에 구금되고 추방되어야 하는지, 왜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나타났다가 사라져야 하는지… 


그리고 저항해왔습니다. 현행법이 불법이라고 규정해도 인권이 있습니다. 어떤 법은 사람이 아니라 질서를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질서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차별합니다. 성적 권리는 인권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권력자들의 성적 쾌락만을 보호해왔습니다. 우리가 동등한 시민이라는 것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졌다고 해서 보지 않을 권리, 혐오할 권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셰어는 모든 사람이 성과 재생산 권리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차별과 폭력이 없어지고 불평등이 줄어는 사회적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노동자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터에서 안전을 확보하고 성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아프면 맘 편히 치료를 받거나 쉬어야 하고, 차별과 강요, 폭력과 낙인 없는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과 별개로 성노동자가 성적 즐거움을 누리고, 임신과 출산, 임신 중지, 양육 과정에서 차별 없이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일자리는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노동자가 주체적으로 발언하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성노동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폭력을 종식시키는 방안에 대해서 성노동자의 입장을 듣고 반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온 터전을 옮기기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하는 과정이 생략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구와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하고, 그간에 살아온 역사를 부정당하지 않아야 그다음으로 이동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회적 정의를 찾아나가고 실현해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곳에 켜켜이 쌓여온 국가폭력을 밝히고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국가가 행해온 차별과 폭력을 종식하기 위한 연대는 종종 법의 한계를 넘어서 이루어집니다. 법 제도가 소수자에게 행하는 차별을 똑바로 인식하고, 모두의 인권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때로 선을 넘고 법을 바꾸어왔습니다. 그러한 용기를 통해서 인권은 신장되어 왔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러한 투쟁과 연대가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작나무회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셰어도 계속해서 사태를 살피고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어떤 주장을 해야 하는지 계속 고민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나가겠습니다.

[발언문 4]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림보(International Waters 31)


안녕하세요. 그동안 파주 용주골 싸움 소식을 자주 찾아보며 응원만 하다가 왔습니다. 저는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InternationalWaters31, 줄여서 IW31이라고 부르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림보라고 합니다. 


IW31은 국경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의 이주정책을 반대하며, 흔히 불법체류자라고 불려온 미등록 비국민이 “지금-여기”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살고 있는지 문제제기하고, 외국인보호소라는 이주구금시설을 폐지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IW31의 활동은 2021년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새우꺾기 고문피해를 입은 M과 연대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때 우리가 외친 구호는 “내 이웃을 가두지 말라”라는 구호입니다. 오늘은 이 구호를 조금 바꿔서 외쳐보려고 합니다. “내 이웃을 내몰지 마라, 쫓아내지 마라”


저는 용주골에서 싸우는 여성들의 싸움이 이동권 투쟁이자,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곳에 머무르며 일하며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을 지지하기 위해 오늘 여기에 왔습니다. 여러분은 이동권이라는 단어를 언론 보도를 통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동권은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말하는 용어로 요즘 한국 사회에서 많이 이해되고 있지만,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관계를 맺고 일하고 교육도 받고,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동권은 생존권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 이동권은 국경을 넘어갈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지만, 원하는 곳에 집을 마련하고 살며 일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단속당하지 않고 쫓겨나지 않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동료와 이웃을 만나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라고도 넓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CCTV를 설치해서 통제하고, 일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은 결국 누구의 이익과 안전을 위한 것입니까? 대한민국 정부가 미등록 비국민의 노동력에만 빨대를 꽂고, 그들의 삶을 외면하고 있는데, 파주시도 역시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이익만을 보호하면서 가난한 용주골 여성들의 삶은 없는 셈 치고 있지 않습니까. 
파주시가 개발을 이유로 용주골을 밀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결국 이들을 더 가난하고 취약한 존재가 되도록 내모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밀어내면 어디까지 떠밀려 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용주골의 싸움을 보면서 저는 국경이 곳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국경을 넘습니다. 그 경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있을 수도 있지만, 생존과 도덕 사이에도 세워지고, 경제적 위치나 나이로 두터워지기도 합니다. 


용주골에 사는 여성들의 요구를 귓등으로 흘리며 인정하지 않는 파주시를 규탄합니다. 그리고 용주골 여성들과 연대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언론을 비롯한 다른 운동 단체들의 태도도 너무나 문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페미니스트의 선언문을 엮어 만든 “우리는 다 태워버릴 것이다”라는 책에서 꼭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구절을 하나 발견했는데요. 바로 “한 명의 상처는 모두의 상처”라는 문구입니다. 한 사람도 외롭게 혼자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서 계속 용주골의 싸움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여러분도, 서로를 보살피면서 몸과 마음이 너무 상하지 않게 챙기면서 잘 싸워내시리라 믿습니다.

[발언문 5]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유원(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안녕하세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유원입니다. 차차는 주홍글씨로 낙인찍힌 모든 성노동자를 위해 차별과 낙인을 차근차근 없애 나가는 당사자 중심 모임입니다. 개인 조건, 유흥업소, 기타업종 등에서 일했거나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성노동자 인권 운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용주골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상황을 규탄하기 위해 여러분과 힘을 합쳐 싸우는 중입니다. 


차차가 성노동, 성노동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성노동도 일이고 성노동하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차차는 우리가 매일 힘내서 먹고살고 있는 이 현장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을 너무 하고 싶어서, 출근이 너무 좋아서 일하는 노동자는 드물 것 같습니다. 특히 성노동은 쉽지 않은 면이 많은 노동입니다. 차차 활동가들은 성노동을 하면서 종종 힘들고 억울한 경험을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적으로 안 좋은 시선을 받는 불법적인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손님이 진상이라서, 가게에서 어려운 요구를 해서, 내가 뭘 잘 몰라서 부당한 취급을 받을 때도 있었고, 범죄 피해자가 되거나 몸이 아프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 속 시원하게 대처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위험부담이 크고,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제도도 없으니까요. 


이러한 성노동 현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폭력과 착취에 맞서기 위한 실천이 차차의 운동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혹시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분이 계신 가요? 그럴 수 없어서 투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동을 강제당하는 우리의 삶에서 노동권은 인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노동이 성을 착취하기 때문에 노동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중요한 일부를 착취당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권리를, 노동권을 박탈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회사에 의해 착취당해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합법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말입니다. 


차차는 법률상담이 필요한 성노동자분들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일하다가 협박, 사기, 성폭력 피해를 겪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해 주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 내 잘못인 것 같다고요. 성매매를 한 것도, 술에 취했던 것도, 다 내 잘못인 것만 같다고요. 잘못한 놈은 따로 있는데, 그놈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그때 내 상황을 잘 이해받지 못하니까 자책을 하게 되는 겁니다. 심지어 “그런 일을 하는 여자는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가해자를 면책해 주는 차별적인 인식이 있기에 아무 잘못 없는 피해자가 계속 스스로를 비난하고, 검열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성노동을 하다가 겪는 피해는 성노동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피해를 겪게 한 가해자의 잘못입니다. 누가 성매매를 했다고, 술에 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일방적으로 자기의 이익에 따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폭력을 가해도 되고, 착취해도 되는,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어떤 직업을 가졌든 누구나 평등하고,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하는 순간에도 남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남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노동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존엄할 수 있습니다. 성노동자도 사람이니까요. 


저는 계속 성노동자가 가지는 권리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이런 권리가 없는 것처럼 구는 파주시 때문입니다. 파주시는 용주골 종사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다시는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는 탈성매매 확약서를 쓰고 복지 제도의 관리를 받으며 살아가는 성매매 피해자가 될 것인가, 불법 성매매를 그만두지 않는 범죄자인 상태로 쫓겨날 것인가. 


성노동자인 우리의 삶을 어떻게 피해자나 범죄자 둘 중 하나로 욱여넣을 수가 있겠습니까.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해도 항상 피해자이기만 할 수 없고, 성매매 특별법상 불법 행위자라고는 하나 사실상 국가의 편의에 따라 양태가 조절되고 있는 여자들 아닙니까? 여자가 필요할 때는 눈감아 주고, 필요 없을 때는 근절하려 하는 이중 잣대 속에서 우리를 구매하는 남자와 단속하고 처벌하는 남자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경찰,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우리를 구매하는 동시에 단속하고 처벌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범죄자란 말입니까?
게다가 용주골은 기지촌의 번영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성매매 집결지입니다. 한국 정부가 미군을 위한 성매매 업소를 조성하고, 관리하지 않았다면 파주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매매 집결지가 생길 이유가 없습니다. 성매매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입니다. 용주골에 흘러 들어와 일하게 된 종사자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사죄하며 배상해야 할 시민들이기도 합니다. 


파주시장은 “여성인권을 위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용주골에서 먹고사는 여성들과 단 한 번도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들을 무시한 채 1년이라는 촉박한 기간을 잡고 집결지 폐쇄를 강행하는 폭력적인 행정은 용주골 종사자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사자들 없이 깨끗하게 비워낸 용주골 땅을 재개발하기 위한 무리수에 가깝습니다. 아직 용주골에 남아 계신 분들 중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1년 만에 나가라는 요구가 부당하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종사자분들께서 거듭 말씀하셨듯이, 용주골에서 영원히 일하고 싶다는 게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각자의 상황과 사정이 있어서 여기에 머물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파주시가 제시하는 틀에는 들어맞지 않는 개개인의 상황과 사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용주골을 취재한 BBC 영상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여자로서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할 때는 인생의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혼자 고생했던 시간에,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밤을 슬픔과 고통 속에서 버텨 왔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노력했고, 가장 오래 고민했습니다. 어떻게든 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를 미워하면서도 때로는 일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습니다. 나를 살리고, 내 자식들을 기르고, 아픈 가족을 돌볼 수 있게 한 스스로에게 긍지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가끔 너무 싫을 때도 있지만 조금은 사랑하는 우리의 삶, 우리의 일. 그렇게 살아야 했다는 사실이 그 누구에게도 하나도 죄송하지 않습니다.  


성노동자의 날을 축하합니다!

[오픈마이크 발언문 1]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안녕하세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에서 활동하는 나영입니다. 원래 오늘 오전에 다른 일정이 있었는데 그 일정이 취소되어서 이것은 신의 계시다 생각하고 집회에 왔습니다. 
지난 기자회견 때 셰어에 너무 많은 댓글이 달려서 괜찮냐고 걱정하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오히려 저희는 정말 괜찮았고, 그 일이 셰어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계기가 되고 용기가 되었는지를 얘기하고 싶어서 오늘 오픈마이크 발언도 신청했습니다. 
저는 그 때의 일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일단 첫번째로는, 차차는 화력이 세다. 차차에서 셰어 홈페이지에 비판 댓글이 너무 많이 달리고 있다고 sns에 알리시고 나서 정말 많은 분들이 더 많은 응원과 연대의 댓글을 남기러 오셨거든요. 
덕분에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셰어 홈페이지가 중요한 토론의 장, 교육의 장이 된 것 같아서 영광이었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셰어보다 차차가 더 관심을 받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차차를 더 욕해주세요. 


아무튼 사실 비판하는 댓글은 한 페이지 정도고, 그 뒤로 두세 페이지 정도가 용주골 성노동자 분들의 투쟁이 어떤 투쟁인지, 왜 중요한지, 재개발을 위한 강제적인 집결지 폐쇄 조치가 이곳에서 일해온 성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무시하고 더 생계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글이었는데요, 저도 댓글을 보면서 중요한 고민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동시에 더 열심히 잘 연대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싸우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을 비로소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믿어온 걸 옹호하려고 하려고 해도 지금 싸우는 사람들이 시작한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셰어 홈페이지에 비판의 댓글을 달았던 분들도 그 뒤에 달린 많은 성노동자 분들, 용주골에서 일했거나 지금 일하고 있는 분들의 댓글을 보며 또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면서 느낀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처벌과 비난, 낙인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야기를 꺼내고 싸우기 시작했을 때, 지금까지 사회가 설정해 두었던 틀 안의 세계가 깨지고 우리가 듣고 말하는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에 임신중지한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겨우 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임신중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슬픈 이야기만이 그나마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처벌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임신과 임신중지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낙태를 찬성하냐 반대하냐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낙태죄 폐지 투쟁의 과정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남자도 같이 처벌하면 되지 않느냐거나, 여자는 처벌하지 말고 남자를 처벌하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남자를 처벌하는 것 말고 과연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를 처벌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처벌이 과연 무엇을 해결해 주느냐를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벌의 대상은 어떤 행위에 있기 때문에 이야기와 맥락에 대한 관심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야 될 행위와 하면 벌받는 행위를 나누고, 그걸 기준으로 벌받을 사람을 벌주면 되니까 처벌을 내세우는 것은 사실 국가로서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근데 중요한 건 그렇다고 처벌이 다 원칙대로 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그래서 처벌은 구조를 가리고, 대신 낙인과 불안을 이용합니다. 


사람들의 삶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 삶에 개입하는 부정의와 차별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라면, 처벌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이야기하는 대신 정말 바꿔야 할 것이 무엇이고, 그 현실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둘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면 이제부터라도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편에 서서 연대를 시작해야 합니다. 


자작나무회는 싸움을 시작했고, 이미 이 세상에 균열을 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다른 이야기들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전과는 반드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파주시장은 쉽게 생각했던 일에 점점 큰 난관을 만나게 될 것이고, 앞으로 파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 어디에서든 이런 식으로 성노동자의 삶과 요구를 단순히 무시하고 덮어버리려는 시도는 쉽게 진행될 수 없을 것입니다.


싸우는 성노동자, 자작나무회 여러분 투쟁입니다.

[오픈마이크 발언문 2]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누가 나를, 우리를 


희음(멸종반란 /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


선아는 오늘 아버지의 두꺼운 손이 언젠가의 하나님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를 가르친 적 없는데 그 기도가 틀렸다고 불 한가운데로 내던지시는 하나님. 손자국이 뒤덮인 끈질긴 몸으로 선아는 도망쳤습니다. 기도도 가족도 없는 곳에서 선아는 다시 시작했습니다. 밥이 있고 화채가 있고 언니들이 있는 곳. 누구도 누구를 함부로 구원하려 들지 않는 곳. 사랑은 몰라도 멸시와 천대와 내동댕이가 무언지는 너무 많이 알아버린 사람들이 마른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곳. 이곳에서 선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인 채로도 두 번 세 번 살아진다고 자꾸 중얼거립니다. 


현수는 어릴 적부터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건 대개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이었는데 어른들은 웃어 넘기기 바빴습니다. 그런 어른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하자 현수는 열심히 살고 싶지가 않아졌습니다. 눈만 뜨면 놀고 또 놀았습니다. 너무 놀다 보니 무엇도 새로 시작하기엔 늦은 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도 현수의 서툴고 가난한 출발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수는 출발 없이 도착했습니다. 출발 없이 도착할 수 있는 곳은 비탈지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가졌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이유로 먼저 도착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원하고 마을이 원하고 가족이 원하고 애인이 원해서, 굶주린 배가 원하고 목숨이 원해서. 이런 이유로 그들은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 옆에 있다 보면 현수는 웅크리고 있을 때도 피가 도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찾지 못했던 대답이 여기에 고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선아는, 현수는, 우리들은 발그레한 뺨으로 밥을 먹고 웃고 울고 땀 흘리며 일하고 욕하고 인사하며 살았는데요, 어느 날 어떤 창백하고 낯익은 얼굴들이 몰려와 그게 다 가짜라 말합니다. 이 집도, 이 삶도 다 틀렸다고 합니다. 또 다시 나라와 마을과 가족과 애인의 이름표를 달고서 선한 얼굴로, 이번에는 여기서 나가라고 합니다. 


이봐요, 대체 여기란 어딥니까. 이 집과 이 삶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말입니다. 내 집에서 누가 나를 나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내 삶에서 누가 나를 나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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