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14화] 김화용 조이님 인터뷰 :
불화하고 미끄러지는 존재들과 관계 맺고 연결하는 운동에 함께하는 김화용 조이님의 이야기!

셰어 자기소개와 함께 그 동안 해왔던 일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것, 최근에 주로 고민하거나 다루고 있는 주제와 작업 등을 이야기해 주세요.
화용 저는 미술작가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화용이에요.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은 고정관념이나 이데올로기, 관습, 규범, 정상성처럼 견고하게 인식되고, 관성적으로 몸어 배어있어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사실 억압인 것들에 대해 고민해온 것 같아요.이런 것들이 다 다른 주제들 같지만 균열을 내고 질문하며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 이야기를 찾고 잇는 작업을 계속해 왔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울 혹은 수도권 밖에서 발화되는 예술 실천에도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던 것 같고요. 인천의 변두리에서 나고 자란 경험때문도 있겠지만요.
셰어 작업에서 주로 어떤 현장이나 주제, 소재를 다루셨나요?
화용 초기에는 페미니즘 관련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제 작업은 스튜디오 안에서 물리적인 형태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누군가를 만나는 여행을 간다거나, 워크숍을 열어 누군가를 초대하고 대화를 나누거나, 청취의 장을 만들고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매체가 고정된 것은 아니었고 프로젝트를 만드는 방식이라 자연스럽게 기획도 하게 된 거에요. 문화예술교육을 매개로 다른 세대와 만나기도 하고요. 이런 프로세스는 방식이 열려있기에 액티비즘과 함께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까이 있던 페미니스트 친구들 주변에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다양한 이들은 만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활동가들을 비롯 많은 이들을 직접 만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것 같아요. 초기 작업들과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어요.
사실 아무리 공공적인 의도를 담고 사회적인 주제를 이야기해도 예술이라는 것에 항상 자괴감이 들거든요. 작품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꼭 돈이나 자본주의적 자원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작가 개인의 크레딧이 생기고 작품이 되는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그래서 현장의 활동을 자원삼는다거나 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다행히도 작업을 위해 만났다기 보다는 저의 일상에 항상 절 깨워주는 이들이 있었어요. 현장의 당사자들, 활동가 친구들, 그들을 통해 배웠던 것들… 내가 연대자가 되거나 주변에 있었기에 내 작업에 초대할때도 자연스러웠고 지지를 해주셨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런 현장의 지지로 성장한 것이 큽니다.
성장이라는 것이 작업성과가 늘어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긴급한 현장의 운동이나 정치나 제도가 해결하는 실질적인 것에 비하자면 무력하게도 느껴졌지만 점점 ‘예술’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된 것이에요. 학문의 영역이라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들을 섣부르게 이야기할 수 없어요. 이론화가 될 때까지 다소 긴 시간이 필요하고요. 하지만 ‘예술'이라는 틀에서는 다소 무모하고 하구 같은 질문도 가능하죠. 조금 웃기게 얘기하자면 예술가는 아무거나 가져와도 예술이라고 막 퉁치고 그러자나요. (웃음) 하지만 이 덕에 모호하거나 위험하거나 혹은 교차되는 복잡한 것들을 상상력으로 포용할 수 있는 거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예술활동이라기 보다는 연대와 운동인가, 혹은 리서치나 연구인가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그 사이 틈이나 저기 구석에 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의 가능성 같아요.
현장에서도 보면 용역이 들어온다거나 하는 시급한 상황도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느린 시간을 버텨낼 때 문화예술적 방식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이 밴드를 만들어서 직접 연주를 한다거나,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말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서로를 연결하고 간극을 이어주는 지보이스 활동 같이 문화예술은 현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무대를 위해 연습하면서 즐거움도 있을 테고요. 이런 시간은 공식적으로는 기록되지 못하거나 중요한 날로 기억되지는 않아도 무거운 시간을 버틸 때 가장 중요한 날들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과 또 예술과 계속 불화를 하다가도 그리고 몇 번의 예술가로서 삶의 위기 안에서도 계속 이것을 하고 있는 건, 이런 예술적인 방식이 빛나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입시미술을 준비하고 또 전통적 미술가로 교육받고 성장한 작가가 아니었어요. 공대생이었는데 친구들은 여성운동 주변과 마이너한 음악을 듣는 커뮤니티에서 만났죠. 그러면서 문화 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이런 것이 예술이라면 나도 예술을 하고싶다 생각하고 전공을 바꾸게 되었어요. 하지만 막상 내부로 들어와 보니 어릴 때부터 특정 매체를 수련해온 이들, 폐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써클문화나 제도화된 것들이 많았고 저는 계속 거기에서 미끄러졌던 것 같아요. 그 자체가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네요.
셰어 셰어도 제도화된 운동과 불화하고,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영역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전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고 싶지 않고, 그 방식으로는 우리의 얘기를 충분히 할 수 없고, 계속 미끄러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운동을 계속 하고 동료를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고민하는데요, 그러다보니까 화용같은 예술가나 연구자들과 계속 만나게 되고, 그 분들도 셰어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화용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시를 셰어에게 제안했을 때도 그렇고, 운동에는 촉각을 다투는 시급한 문제, 대표해야 할 상징적 이야기들이 항상 있어요. 하지만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개개인의 다양한 말을 과연 누가 들었을까? 생각하면 그 자리에 항상 있던 활동가들이라고 생각했기에 꼭 그들을 전시에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예술 영역에서도 주제전의 형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한 작품 한 작품 다른 시/공간에서 감상하는 형태이고, 한 공간 안에 여러 작품이 동시에 놓이고 또 관계하며 만들어지는 기획전은 현대미술 전시의 고유 특징일 텐데요. 그리고 음악에 속하기 애매한 사운드 작업, 전통적 무대 위의 공연이라 할 수 없는 퍼포먼스 그런 것들이 현대미술에는 쉽게 포섭되죠. 엄청 폐쇄적인 미술계가 어떤 관점, 어떤 위치에서는 매우 포용력 있고 관대하기도 해요. 이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 주제에서 꼭 들어야 할 말을 누가 할 수 있을지 작가로 한정하지 않고 생각하려 했어요. 전시는 전시 기간이 끝나면 휘발되는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 이 순간이 변화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맥락들이나 ‘연결되지 못하는 것들’을 봉합하는 일들을 만들 때 창작에 대한 믿음이 한 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특강에서 같이 작업한 많은 분들을 어떻게 설득했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이 없더라고요. 이런 작업을 해야지 생각해서 그들과 만났던 것이 아니었고, 적당한 거리에서 주변에서 함께 한 시간들이 있거나 연결감이 가졌던 분들과 함께 했던 것이라, 무언가를 함께 해야겠다고 판단할 때는 이미 함께한 분들이 나를 신뢰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 질문이 저를 돌아보게 되면서 좀 힘이 됐어요. 그냥 그 자리에 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 싶은.
셰어의 활동들도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되게 납작해질 수 있는데 방법론이 충분히 예술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플레져북, 섹스빙고를 만들고 진행하는 방식도, 이야기를 꺼낼 때 기존 회고의 방식이 아니라 카드나 프로그램 같은 매개를 만든 것이잖아요. 감각을 이끌어내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균열을 내고 재구성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이런 활동들이 되게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요.
셰어 셰어와 중요한 협업을 했던 경험이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시인데요, 이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한 경험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주제와 작가를 선정하는 큐레이션에 대해서도 지금 다시 짚어봐도 의미가 깊을거 같아요. 더불어 셰어가 최근에 접근성 활동을 하고 있어서 전시와 접근성에 대한 고민도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화용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할 때 들었던 여러가지 말들도 있을 것이고, 나중에 역사에 기록될 너무 중요한 포인트들도 있지만, 개인/활동가/당사자들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다 이야기되지 못했던 것들을 꺼내보고 싶었어요.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미루다 발표한 정부의 입법 예고안에 예외 조항을 추가하는 일이 있었고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하고 동료들과 전시를 준비했어요. 근데 전시가 열리기 전 예외 조항 없이 입법이 되면서 다행이었지만 급변하는 상황에 전시의 내용이 뒷북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오히려 그동안 ‘낙태죄' 뒤에 가려져왔던 문제들이나 미뤄졌던 논의를 나누며 담론의 장을 확장할 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준비 막바지에 폴란드 작가들에게 참여를 제안을 했던 이유도 그때 한참 여러 운동들이나 교차성을 고민하는 문제들에서 상처를 받는 시기이기도 했잖아요. 그래서 폴란드의 블랙시위, 임신중지 비범죄화 운동이 어떤 운동과 만나고 또 확장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예술적 실천이 운동에 어떻게 협력하고 기여하는지도 그렇고요. 만약에 정부가 예외조항 꼼수를 계속 쓰면서 입법을 더 미뤘다면 ‘낙태죄 전면 폐지’가 너무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욕심을 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급하게 새로운 작가를 찾고 맥락을 더 확장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서 고민해야할 문제를 다룰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의미있었습니다. 폴란드의 블랙시위는 상징적이잖아요. 그래서 예술가를 비롯한 창작자들이 운동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찾기 시작하다가 APP도 알게 되었고요. APP의 멤버들 중에는 예술계 안에서도 개인적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더라고요. 개인의 창작과 더불어 공공적 실천적 의미로 작업을 어떻게 환원하고 있는지, 블랙시위가 다른 소수자 운동과 연대하고 확장해 가는 것을 목격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개인의 몸의 이야기나 임신중지 경험을 다루는 작품은 소중하고 의미있지만 전시의 전체 큐레이션으로 생각하면 몇 개의 개인 이야기로만 수렴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셰어의 작업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위한 긴 운동의 역사를 모은 것이기도 했고, 참여 작가의 작업이 이 역사의 부분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결망으로서도 중요했어요. 그래서 셰어가 바빠도 꼭 해야한다. (웃음) 작가 활동을 돌이켜 성장한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사실 큰 미술관에서 한 전시 이런 것 보다는 내 작업이 이런 맥락과 만날 수 있구나, 이렇게 확장될 수 있구나 생각하게 해준 의미있는 주제를 가진 기획전이나 프로젝트였다. 더 깊고 넓게 연구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으니까. 이 전시가 그런 의미이길 바랐어요.

셰어 전시 제안을 받고 작품이 전시되는 과정을 보면서 작가가 활동을 매개로 작품에 담아내는 것과 다르게 셰어는 단체로서 전시에 참여한 거잖아요. 작가도 아니고 우리가 그래서 뭘 할 수 있지 생각을 했었고, 연표와 현수막들이 어떻게 작품이 되는거지? 어떻게 보면 그냥 텍스트로 보이는 것이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고, 전시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지만 궁금하기도 했어요. 조이풀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은 아마 전시에 왔던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을텐데 <몸이 선언이 될 때>를 제안하고 진행했던 기획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주세요!
화용 공공 영역에 선언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사실 쉽게 허용되지 않고, 사적인 공간에 거는 건 많이 읽히지 않을 수 있죠. 근데 전시를 하는 꽤 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매니페스토 문장이 붙어 있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어요. 그곳이 세대나 정치적 입장이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했고. 예술이라는 방식을 핑계삼아 일정 기간 동안 발언을 붙여놓을 수 있다는 것이 아까 말한 빈틈의 방식을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동료 작가가 셰어 작업을 좋게 보고 짧게 후기를 썼던 글이 있었는데요. 연표는 책<배틀그라운드>에도 있잖아요. 근데 어두운 전시장에서 그 글을 읽는 건 또 책으로 쭉 읽는 거랑은 달랐던 것 같아요. 과거가 되어버린 역사는 잘 보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 윗부분에 있는 게 감각적으로 이제 우리가 저걸 싸워서 이기고 이미 지나간 기억들로 느껴지기도 했다고 해요. 이걸 고려해서 디스플레이를 한건가 하더라고요. 어떤 부분은 맞지만 어떤 부분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재해석되는 것이 예술적인 포착이기도 했죠. 사적인 얘기들로 수렴되어 읽히지 않도록 이 작품들을 역사에 연결할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는 것도 있었죠. 셰어의 작업은 전시에 놓은 작업과 작업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는 작업이었어요. 연표 끝이 빈 채로 길게 뺐는데 여기에는 앞으로 쓰여질 역사를 이야기하는 걸까? 이런 여러 가지 상상들을 하는 분도 있었고요. 그것이 셰어의 연표가 작품이 된 이유 같습니다.
셰어 전시 배치를 엄청 고민했잖아요. 이런 예술적 감각의 가능성, 접근성 키워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전시 기획과 접근성과 관련해서 어떤 생각을 하셨었나요?
화용 극장에 휠체어 좌석이 생겼지만, 예술 공간 접근성은 0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건축할 때부터 접근성을 고려한 건물도 없고, 물론 이런 고민이 이제 시작이기도 하고요. 지을 때부터 고민을 하지 않은 건물에서 이제 뭔가 접근성을 실천하려고 하니까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희도 전시 장소를 두 번이나 바꿨잖아요. 특히 미술 공간은 몇 개의 크고 유명한 아트센터들 빼고 어렵게 분투하면서 운영하는 공간들이 많으니 더 열악한 공간에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 전시에 임신중지 문제만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 장애, 난민, 소수자 문제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전시를 하는데, 전시가 만들어 지는 조건이나 뒤에서 생기는 일들이 이율배반적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어요. 그래서 접근성을 최대한 해보려고 공을 많이 들였어요.
전시를 만들 때 관성적으로 하는 일들이 있어요. 전시 내용이 환경적인 부분을 다루진 않았지만 실천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데 관성적으로 하는 건 하지 말자 이게 제일 컸거든요. 예를 들어 전시 타이틀 같은 걸 보여주려고 시트지를 쓴다거나 하지 않았고요. 화학 접착제도 거의 쓰지 않았어요. 모든 가벽과 프레임은 칠하지 않고 사용하고 그대로 재활용할 수 있게 하고요. 사진 설치는 철판을 설치해 모두 자석으로 붙였어요.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실험, 실천의 시간이기도 했죠.
비인간 동물이나 비거니즘 고민들을 오래 해왔지만 이런 발언이 이전에는 윤리 지상주의로 치부되고 좌절한 적이 많아요. 최근에 기후위기나 인류세를 맞딱드렸잖아요. 근데 이런 상황이 발언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기도 했죠. 내 삶에 중요한 운동이 중요한 언어가 되어 어떤 시간과 만나게 되는 거 같아요. 작년까지 이런 주제로 많은 프로젝트를 만들었는데 이제 큰 거시적 이야기는 나는 그만해도 되겠다 생각해요. 재작년 연구 프로젝트로 ‘비거니즘 전시 매뉴얼’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https://0makes0.com/pdf/비거니즘_전시_매뉴얼_ver1.pdf)
친환경적 전시 매뉴얼이 아니라 ‘비거니즘’을 이야기한 것도 정치적인 태도였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이런 고민을 하는 거면 아크릴 쓰는 작가들이랑 작업 안할거냐,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까지 들었어요. 모든 것에 완벽한 순수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세세하게 나열해보고 여러 결정의 순간에 환경에 덜 빚지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매뉴얼로 만들었죠. 전시의 주제나 의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 정도라도 관성적인 것들은 덜 해보자는 취지로요. 하지만 이것이 디폴트가 되길 바라죠. 2년 전에 만들어 오픈소스로 공개해 뒀고 확장되고 활용되기를 기대해요. 그 사이에 환경에 대해 관심이 높아져서 이미 새롭지 않은 내용들도 있을 거에요. 이런 활동이 작업이기도 하지만 실천이라는 생각을 합니요.
최근 미세플라스틱 이야기도 많이 하잖아요. 예술가의 삐딱하고 엉뚱한 질문인데, 플라스틱 덜 쓰는 거 중요하죠. 하지만 갑자기 플라스틱이 안쓰러운 거에요. 펜데믹 때 환경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역으로 백신이나 마스크 같이 플라스틱은 우리의 위생과 건강을 지키주고 있었거든요.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생태계를 망치는 존재라고만 환원하는 것도 인간 중심적인 거에요. 저는 환경 비거니즘과 동물권이 제 삶에 들어온 지 오래됐지만 늘 고민이 많았어요. 여성운동이나 퀴어링 이런 것들이 기존의 제도를 오염시키고 흔들고 그러면서 전복하는 게 중요했는데 생태나 동물권 문제는 너무 도덕적으로 보이거나 순수하게 정화시키고 이렇게만 수렴되는 것 같아서 이런 첨예한 부분을 어떤 언어로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축산동물의 많은 문제가 대량생산을 하고 ‘재생산’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잖아요. 근데 단순히 재생산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차원을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고요.
<제로의 책> (공동기획 / 강민형 김화용 전유진, 출판 / 돛과닻)을 기획했는데 거기에 퀴어 자손이라는 이도 실려있어요. 긴 논문인데 축약한 버전이에요. 이 글을 처음 만났을 때 저의 이런 해소되지 않은 질문을 이야기하고 있어 반가웠어요. 해양생태계에는 인간이 미세 플라스틱을 걱정하기 훨씬 전부터 생겨난 미생물들이에요. 미세플라스틱 분해하거나 거기에 흡착해서 살아가는 미생물, 박테리아, 바이러스들이 많아졌거든요. 이걸 정상성 기준으로 현재의 분류학으로는 돌연변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미 비인간동물이나 생태는 우리가 문제라고 파악하기 전에 변화를 감지하고 어떻게 생존하고, 변태하고, 생식하고 나아갈 것인지 이미 감각하고 있었다고 읽혔어요. 그리고 이 미생물의 생식의 방식은 암수 구분이 아니잖아요. 플라스틱과 친족이 된 이 존재는 생물학적 재생산성의 관점을 완전히 다르게 환기하게 했어요. 이 작은 존재가 이미 (비)생산, 재생산, 퀴어링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해요. 그래서 이 글을 만났을 때 큰 해방감을 느꼈고 <제로의 책>에 꼭 싣고 싶었어요.
제가 환경문제에서 계속 발견하고 싶은 것들이 이른 존재들 같아요. 갯벌도 그래요. 간척 사업이나 신공항의 주 타켓이 되는 땅으로 쉽게 타자화 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생태공원이나 람사르 습지 같은 말로 보호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죠. 이곳은 땅도 바다도 아닌 장소에요. 이렇게 남도 여도 아닌, 좌도 우도 아닌 것들을 생태 안에서 찾고,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넓은 의미로 퀴어링과 만나고, 약자가 배제 포섭되는 이야기와도 교차되요. 우리 주변의 존재들이랑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환경, 소수자 문제들의 이야기가 서로 떨어진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더 인식하게 되고 예술의 상상력으로 이런 틈의 이야기들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셰어 비건과 요가 이야기도 안들어볼 수 없는데요?!
화용 채식을 한 지 23년 쯤 되었네요. 완전 비건을 잘 못할 때도 있었지만요. 비건 레시피를 찾기 어려울 때 막 실험도 하고 그러다보니 오래 쌓여 창작 과정이 된 것 같아요. 요리도 매일 하고 스무디를 매일 마시는데 계절에 따라 재철 재료 탐색도 하게 되고, 비건식을 실천하면서 제 삶을 재구성하게 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하루에 12시간 앉아서 명상하는 수련을 다녀오면서 내가 몰랐던 내 몸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서울과 서귀포를 오가면서 살고 있는데 오가면서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경계를 오가거나 전혀 다른 환경에 날 두면 보이는 것들이요. 이런 연습이 거리를 두고 상황을 보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삶의 방식을 확 바꾸면 내 봄에 밴 편견이나 관성이 보이는 것 그게 저의 영감이기도 해요. 하루하루 매일 일상의 실천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 기후변화, 계절감을 알게 해주고 이것은 생애주기와 연결되기도 하고요. 먹는 것들을 바꾸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내가 만들면서 만나거나 보이는 것들이 많아요.
셰어 이런 관계, 주변과 관계를 새롭게 맺는 방식이 되는 거 잖아요. 사실 재생산정의 기후정의 이런 얘기들을 계속 하고있는데, 조금 크게 얘기하자면 지금의 사회나 체제에서 위기라고 느끼는 부분들을 뭔가 화용님이 해보신 관계 맺기를 가지고 좀 새롭게 해볼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면, 제안해주실 수 있는 게 있다면 어떤 걸까요?
화용 동문서답일 수 있는데, 저는 처음에 대중화된 비건 음식이 반가웠어요. 때로는 노동자나 학생들이나 요리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중화가 되는 것도 중요하죠.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화 된 자본주의 상품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축산업도 마찬가지고요. 고기를 먹고 안 먹고의 문제를 넘어 예전에 마을에서 닭이나 돼지를 키울 때와 완전히 단절된 지금은 감각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축산동물의 상황만이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체 과정을 아는 것이 많은 연결감을 회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제주에 살면서 조금 더 몸으로 알게 되기도 했거든요. 조금 더 가까이에서 순환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중요한 거 같아요. 어떻게든 바빠도 4월엔 고사리를 따러 가야 한다는 감각 같은 거요(웃음).
셰어 오후 네시의 요가에 참여하면서 하고 싶었던 얘기도 궁금해요!
화용 나영이랑 요가를 하고 싶기도 했고요. 하길 잘한 것 같아요(웃음) 그냥 나 살자고 하는 요가인데 여기서 뭘 말할 수 있을까 처음엔 고민했어요. 제가 아로마테라피도 되게 오래 공부했었거든요. 비건을 하면서 식물의 힘에 매료되고 아유르베다식 아로마테라피까지 연결되었고, 요가에서는 바닥을 치더라도 스스로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나의 무기 같은 것이 되었어요. 이걸 계속하면 살 수 있겠다, 의지를 놓지 않을 수 있겠다 이런 거. 일이 많고 바빠도 숨쉬고 밥 먹는 것처럼 삶의 루틴으로 요가를 하는 게 제 삶을 되게 많이 지켜줬어요. 역시나 공부하다보니 요가와도 불화가 있긴 하지만.(웃음) 요가는 최종 목적이 에고를 지우는 것을 수련하는 거 잖아요. 근데 이걸 다른 의미로 이야기 해보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감정을 흘려보내고 오롯이 그 본질을 바라보게 하는 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후 네시의 요가를 한 후 삶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과 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더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적어도 전문가까지는 아니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셰어 조이로서 셰어 활동을 보시면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세요.
화용 이미 중간에 이야기 했는데 저에게 셰어의 가장 의미있는 부분은 구체적인 하나보다도 종횡을 횡단하면서 만나는 방식으로 함께 하는 것, 감각적인 것들을 존중하는 것이에요.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과 횡단하면서 만나는 방식이 제가 작업해온 방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사안이라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삐뚤어져 있어요.(웃음) 단순히 열려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죠. 이게 전복이 되고 새로운 의제와 만나게 해줄거라 기대해요. 이런 셰어의 태도는 다음 세대로 갔을 때 셰어가 하는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룰 수 있겠다 싶어요. 어떤 단체들은 볼 때 올드해졌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셰어의 이런 방식은 계속 전복하고 탈주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부분에서 가장 응원합니다.
셰어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화용 제가 불화와 의절의 아이콘인데요. 세상과 불화하는 존재들에게 한마디를 해보자면, 내가 다른 데 가면 불화 가득인데 여기 오면 편하다!!!(웃음)
후원하는 단체들을 한 번 정리하고 새로 가입한 단체 중 가장 첫 번째가 셰어였어요. 큰 단체들은 기부금 영수증도 받을 수 있고 안정적이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것보다 작은 단체들이 자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던 차였어요. 저의 작업도 사실 지원/공공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거든요. 근데 매번 정산할 때마다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느낌인 거예요. 셰어의 활동을 제가 예술적이라고 표현했지만,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라서 지원을 받기 어려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동물권 이야기할 때 딱딱 개, 고양이 이렇게 이야기해야 쉬운데, 염생 식물, 곰팡이, 박테리아 이런 걸로 이야기하면 이해되기 어렵죠. 셰어가 연대하는 존재들도 누군가는 외면하고 보기 싫은 부분일 것 같고 거 하니까 계속 미끄러지고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점이 아까도 말했지만 셰어가 몇 년이 지나도 낡지 않는 단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더 바깥의 존재와 만나고, 확장되고, 변화하고, 트랜스 되는 방식으로 운동하는 활동 단체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모양이 규정되지 않은 활동들이 자립해야 되는 이유가 더 있다는 걸 깨닫고 있고, 이런 활동들이 중요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셰어 불화의 아이콘들이 셰어 오면 편하다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어요. 미끄러지는 존재들이 더 많이 연결되고 이야기될 수 있도록 화용님과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14화] 김화용 조이님 인터뷰 :
불화하고 미끄러지는 존재들과 관계 맺고 연결하는 운동에 함께하는 김화용 조이님의 이야기!
셰어 자기소개와 함께 그 동안 해왔던 일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것, 최근에 주로 고민하거나 다루고 있는 주제와 작업 등을 이야기해 주세요.
화용 저는 미술작가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화용이에요.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은 고정관념이나 이데올로기, 관습, 규범, 정상성처럼 견고하게 인식되고, 관성적으로 몸어 배어있어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사실 억압인 것들에 대해 고민해온 것 같아요.이런 것들이 다 다른 주제들 같지만 균열을 내고 질문하며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 이야기를 찾고 잇는 작업을 계속해 왔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울 혹은 수도권 밖에서 발화되는 예술 실천에도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던 것 같고요. 인천의 변두리에서 나고 자란 경험때문도 있겠지만요.
셰어 작업에서 주로 어떤 현장이나 주제, 소재를 다루셨나요?
화용 초기에는 페미니즘 관련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제 작업은 스튜디오 안에서 물리적인 형태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누군가를 만나는 여행을 간다거나, 워크숍을 열어 누군가를 초대하고 대화를 나누거나, 청취의 장을 만들고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매체가 고정된 것은 아니었고 프로젝트를 만드는 방식이라 자연스럽게 기획도 하게 된 거에요. 문화예술교육을 매개로 다른 세대와 만나기도 하고요. 이런 프로세스는 방식이 열려있기에 액티비즘과 함께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까이 있던 페미니스트 친구들 주변에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다양한 이들은 만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활동가들을 비롯 많은 이들을 직접 만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것 같아요. 초기 작업들과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어요.
사실 아무리 공공적인 의도를 담고 사회적인 주제를 이야기해도 예술이라는 것에 항상 자괴감이 들거든요. 작품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꼭 돈이나 자본주의적 자원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작가 개인의 크레딧이 생기고 작품이 되는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그래서 현장의 활동을 자원삼는다거나 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다행히도 작업을 위해 만났다기 보다는 저의 일상에 항상 절 깨워주는 이들이 있었어요. 현장의 당사자들, 활동가 친구들, 그들을 통해 배웠던 것들… 내가 연대자가 되거나 주변에 있었기에 내 작업에 초대할때도 자연스러웠고 지지를 해주셨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런 현장의 지지로 성장한 것이 큽니다.
성장이라는 것이 작업성과가 늘어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긴급한 현장의 운동이나 정치나 제도가 해결하는 실질적인 것에 비하자면 무력하게도 느껴졌지만 점점 ‘예술’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된 것이에요. 학문의 영역이라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들을 섣부르게 이야기할 수 없어요. 이론화가 될 때까지 다소 긴 시간이 필요하고요. 하지만 ‘예술'이라는 틀에서는 다소 무모하고 하구 같은 질문도 가능하죠. 조금 웃기게 얘기하자면 예술가는 아무거나 가져와도 예술이라고 막 퉁치고 그러자나요. (웃음) 하지만 이 덕에 모호하거나 위험하거나 혹은 교차되는 복잡한 것들을 상상력으로 포용할 수 있는 거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예술활동이라기 보다는 연대와 운동인가, 혹은 리서치나 연구인가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그 사이 틈이나 저기 구석에 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의 가능성 같아요.
현장에서도 보면 용역이 들어온다거나 하는 시급한 상황도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느린 시간을 버텨낼 때 문화예술적 방식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이 밴드를 만들어서 직접 연주를 한다거나,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말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서로를 연결하고 간극을 이어주는 지보이스 활동 같이 문화예술은 현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무대를 위해 연습하면서 즐거움도 있을 테고요. 이런 시간은 공식적으로는 기록되지 못하거나 중요한 날로 기억되지는 않아도 무거운 시간을 버틸 때 가장 중요한 날들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과 또 예술과 계속 불화를 하다가도 그리고 몇 번의 예술가로서 삶의 위기 안에서도 계속 이것을 하고 있는 건, 이런 예술적인 방식이 빛나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입시미술을 준비하고 또 전통적 미술가로 교육받고 성장한 작가가 아니었어요. 공대생이었는데 친구들은 여성운동 주변과 마이너한 음악을 듣는 커뮤니티에서 만났죠. 그러면서 문화 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이런 것이 예술이라면 나도 예술을 하고싶다 생각하고 전공을 바꾸게 되었어요. 하지만 막상 내부로 들어와 보니 어릴 때부터 특정 매체를 수련해온 이들, 폐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써클문화나 제도화된 것들이 많았고 저는 계속 거기에서 미끄러졌던 것 같아요. 그 자체가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네요.
셰어 셰어도 제도화된 운동과 불화하고,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영역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전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고 싶지 않고, 그 방식으로는 우리의 얘기를 충분히 할 수 없고, 계속 미끄러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운동을 계속 하고 동료를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고민하는데요, 그러다보니까 화용같은 예술가나 연구자들과 계속 만나게 되고, 그 분들도 셰어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화용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시를 셰어에게 제안했을 때도 그렇고, 운동에는 촉각을 다투는 시급한 문제, 대표해야 할 상징적 이야기들이 항상 있어요. 하지만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개개인의 다양한 말을 과연 누가 들었을까? 생각하면 그 자리에 항상 있던 활동가들이라고 생각했기에 꼭 그들을 전시에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예술 영역에서도 주제전의 형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한 작품 한 작품 다른 시/공간에서 감상하는 형태이고, 한 공간 안에 여러 작품이 동시에 놓이고 또 관계하며 만들어지는 기획전은 현대미술 전시의 고유 특징일 텐데요. 그리고 음악에 속하기 애매한 사운드 작업, 전통적 무대 위의 공연이라 할 수 없는 퍼포먼스 그런 것들이 현대미술에는 쉽게 포섭되죠. 엄청 폐쇄적인 미술계가 어떤 관점, 어떤 위치에서는 매우 포용력 있고 관대하기도 해요. 이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 주제에서 꼭 들어야 할 말을 누가 할 수 있을지 작가로 한정하지 않고 생각하려 했어요. 전시는 전시 기간이 끝나면 휘발되는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 이 순간이 변화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맥락들이나 ‘연결되지 못하는 것들’을 봉합하는 일들을 만들 때 창작에 대한 믿음이 한 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특강에서 같이 작업한 많은 분들을 어떻게 설득했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이 없더라고요. 이런 작업을 해야지 생각해서 그들과 만났던 것이 아니었고, 적당한 거리에서 주변에서 함께 한 시간들이 있거나 연결감이 가졌던 분들과 함께 했던 것이라, 무언가를 함께 해야겠다고 판단할 때는 이미 함께한 분들이 나를 신뢰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 질문이 저를 돌아보게 되면서 좀 힘이 됐어요. 그냥 그 자리에 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 싶은.
셰어의 활동들도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되게 납작해질 수 있는데 방법론이 충분히 예술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플레져북, 섹스빙고를 만들고 진행하는 방식도, 이야기를 꺼낼 때 기존 회고의 방식이 아니라 카드나 프로그램 같은 매개를 만든 것이잖아요. 감각을 이끌어내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균열을 내고 재구성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이런 활동들이 되게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요.
셰어 셰어와 중요한 협업을 했던 경험이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시인데요, 이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한 경험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주제와 작가를 선정하는 큐레이션에 대해서도 지금 다시 짚어봐도 의미가 깊을거 같아요. 더불어 셰어가 최근에 접근성 활동을 하고 있어서 전시와 접근성에 대한 고민도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화용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할 때 들었던 여러가지 말들도 있을 것이고, 나중에 역사에 기록될 너무 중요한 포인트들도 있지만, 개인/활동가/당사자들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다 이야기되지 못했던 것들을 꺼내보고 싶었어요.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미루다 발표한 정부의 입법 예고안에 예외 조항을 추가하는 일이 있었고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하고 동료들과 전시를 준비했어요. 근데 전시가 열리기 전 예외 조항 없이 입법이 되면서 다행이었지만 급변하는 상황에 전시의 내용이 뒷북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오히려 그동안 ‘낙태죄' 뒤에 가려져왔던 문제들이나 미뤄졌던 논의를 나누며 담론의 장을 확장할 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준비 막바지에 폴란드 작가들에게 참여를 제안을 했던 이유도 그때 한참 여러 운동들이나 교차성을 고민하는 문제들에서 상처를 받는 시기이기도 했잖아요. 그래서 폴란드의 블랙시위, 임신중지 비범죄화 운동이 어떤 운동과 만나고 또 확장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예술적 실천이 운동에 어떻게 협력하고 기여하는지도 그렇고요. 만약에 정부가 예외조항 꼼수를 계속 쓰면서 입법을 더 미뤘다면 ‘낙태죄 전면 폐지’가 너무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욕심을 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급하게 새로운 작가를 찾고 맥락을 더 확장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서 고민해야할 문제를 다룰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의미있었습니다. 폴란드의 블랙시위는 상징적이잖아요. 그래서 예술가를 비롯한 창작자들이 운동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찾기 시작하다가 APP도 알게 되었고요. APP의 멤버들 중에는 예술계 안에서도 개인적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더라고요. 개인의 창작과 더불어 공공적 실천적 의미로 작업을 어떻게 환원하고 있는지, 블랙시위가 다른 소수자 운동과 연대하고 확장해 가는 것을 목격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개인의 몸의 이야기나 임신중지 경험을 다루는 작품은 소중하고 의미있지만 전시의 전체 큐레이션으로 생각하면 몇 개의 개인 이야기로만 수렴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셰어의 작업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위한 긴 운동의 역사를 모은 것이기도 했고, 참여 작가의 작업이 이 역사의 부분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결망으로서도 중요했어요. 그래서 셰어가 바빠도 꼭 해야한다. (웃음) 작가 활동을 돌이켜 성장한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사실 큰 미술관에서 한 전시 이런 것 보다는 내 작업이 이런 맥락과 만날 수 있구나, 이렇게 확장될 수 있구나 생각하게 해준 의미있는 주제를 가진 기획전이나 프로젝트였다. 더 깊고 넓게 연구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으니까. 이 전시가 그런 의미이길 바랐어요.
셰어 전시 제안을 받고 작품이 전시되는 과정을 보면서 작가가 활동을 매개로 작품에 담아내는 것과 다르게 셰어는 단체로서 전시에 참여한 거잖아요. 작가도 아니고 우리가 그래서 뭘 할 수 있지 생각을 했었고, 연표와 현수막들이 어떻게 작품이 되는거지? 어떻게 보면 그냥 텍스트로 보이는 것이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고, 전시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지만 궁금하기도 했어요. 조이풀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은 아마 전시에 왔던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을텐데 <몸이 선언이 될 때>를 제안하고 진행했던 기획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주세요!
화용 공공 영역에 선언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사실 쉽게 허용되지 않고, 사적인 공간에 거는 건 많이 읽히지 않을 수 있죠. 근데 전시를 하는 꽤 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매니페스토 문장이 붙어 있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어요. 그곳이 세대나 정치적 입장이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했고. 예술이라는 방식을 핑계삼아 일정 기간 동안 발언을 붙여놓을 수 있다는 것이 아까 말한 빈틈의 방식을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동료 작가가 셰어 작업을 좋게 보고 짧게 후기를 썼던 글이 있었는데요. 연표는 책<배틀그라운드>에도 있잖아요. 근데 어두운 전시장에서 그 글을 읽는 건 또 책으로 쭉 읽는 거랑은 달랐던 것 같아요. 과거가 되어버린 역사는 잘 보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 윗부분에 있는 게 감각적으로 이제 우리가 저걸 싸워서 이기고 이미 지나간 기억들로 느껴지기도 했다고 해요. 이걸 고려해서 디스플레이를 한건가 하더라고요. 어떤 부분은 맞지만 어떤 부분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재해석되는 것이 예술적인 포착이기도 했죠. 사적인 얘기들로 수렴되어 읽히지 않도록 이 작품들을 역사에 연결할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는 것도 있었죠. 셰어의 작업은 전시에 놓은 작업과 작업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는 작업이었어요. 연표 끝이 빈 채로 길게 뺐는데 여기에는 앞으로 쓰여질 역사를 이야기하는 걸까? 이런 여러 가지 상상들을 하는 분도 있었고요. 그것이 셰어의 연표가 작품이 된 이유 같습니다.
셰어 전시 배치를 엄청 고민했잖아요. 이런 예술적 감각의 가능성, 접근성 키워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전시 기획과 접근성과 관련해서 어떤 생각을 하셨었나요?
화용 극장에 휠체어 좌석이 생겼지만, 예술 공간 접근성은 0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건축할 때부터 접근성을 고려한 건물도 없고, 물론 이런 고민이 이제 시작이기도 하고요. 지을 때부터 고민을 하지 않은 건물에서 이제 뭔가 접근성을 실천하려고 하니까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희도 전시 장소를 두 번이나 바꿨잖아요. 특히 미술 공간은 몇 개의 크고 유명한 아트센터들 빼고 어렵게 분투하면서 운영하는 공간들이 많으니 더 열악한 공간에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 전시에 임신중지 문제만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 장애, 난민, 소수자 문제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전시를 하는데, 전시가 만들어 지는 조건이나 뒤에서 생기는 일들이 이율배반적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어요. 그래서 접근성을 최대한 해보려고 공을 많이 들였어요.
전시를 만들 때 관성적으로 하는 일들이 있어요. 전시 내용이 환경적인 부분을 다루진 않았지만 실천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데 관성적으로 하는 건 하지 말자 이게 제일 컸거든요. 예를 들어 전시 타이틀 같은 걸 보여주려고 시트지를 쓴다거나 하지 않았고요. 화학 접착제도 거의 쓰지 않았어요. 모든 가벽과 프레임은 칠하지 않고 사용하고 그대로 재활용할 수 있게 하고요. 사진 설치는 철판을 설치해 모두 자석으로 붙였어요.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실험, 실천의 시간이기도 했죠.
비인간 동물이나 비거니즘 고민들을 오래 해왔지만 이런 발언이 이전에는 윤리 지상주의로 치부되고 좌절한 적이 많아요. 최근에 기후위기나 인류세를 맞딱드렸잖아요. 근데 이런 상황이 발언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기도 했죠. 내 삶에 중요한 운동이 중요한 언어가 되어 어떤 시간과 만나게 되는 거 같아요. 작년까지 이런 주제로 많은 프로젝트를 만들었는데 이제 큰 거시적 이야기는 나는 그만해도 되겠다 생각해요. 재작년 연구 프로젝트로 ‘비거니즘 전시 매뉴얼’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https://0makes0.com/pdf/비거니즘_전시_매뉴얼_ver1.pdf)
친환경적 전시 매뉴얼이 아니라 ‘비거니즘’을 이야기한 것도 정치적인 태도였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이런 고민을 하는 거면 아크릴 쓰는 작가들이랑 작업 안할거냐,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까지 들었어요. 모든 것에 완벽한 순수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세세하게 나열해보고 여러 결정의 순간에 환경에 덜 빚지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매뉴얼로 만들었죠. 전시의 주제나 의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 정도라도 관성적인 것들은 덜 해보자는 취지로요. 하지만 이것이 디폴트가 되길 바라죠. 2년 전에 만들어 오픈소스로 공개해 뒀고 확장되고 활용되기를 기대해요. 그 사이에 환경에 대해 관심이 높아져서 이미 새롭지 않은 내용들도 있을 거에요. 이런 활동이 작업이기도 하지만 실천이라는 생각을 합니요.
최근 미세플라스틱 이야기도 많이 하잖아요. 예술가의 삐딱하고 엉뚱한 질문인데, 플라스틱 덜 쓰는 거 중요하죠. 하지만 갑자기 플라스틱이 안쓰러운 거에요. 펜데믹 때 환경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역으로 백신이나 마스크 같이 플라스틱은 우리의 위생과 건강을 지키주고 있었거든요.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생태계를 망치는 존재라고만 환원하는 것도 인간 중심적인 거에요. 저는 환경 비거니즘과 동물권이 제 삶에 들어온 지 오래됐지만 늘 고민이 많았어요. 여성운동이나 퀴어링 이런 것들이 기존의 제도를 오염시키고 흔들고 그러면서 전복하는 게 중요했는데 생태나 동물권 문제는 너무 도덕적으로 보이거나 순수하게 정화시키고 이렇게만 수렴되는 것 같아서 이런 첨예한 부분을 어떤 언어로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축산동물의 많은 문제가 대량생산을 하고 ‘재생산’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잖아요. 근데 단순히 재생산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차원을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고요.
<제로의 책> (공동기획 / 강민형 김화용 전유진, 출판 / 돛과닻)을 기획했는데 거기에 퀴어 자손이라는 이도 실려있어요. 긴 논문인데 축약한 버전이에요. 이 글을 처음 만났을 때 저의 이런 해소되지 않은 질문을 이야기하고 있어 반가웠어요. 해양생태계에는 인간이 미세 플라스틱을 걱정하기 훨씬 전부터 생겨난 미생물들이에요. 미세플라스틱 분해하거나 거기에 흡착해서 살아가는 미생물, 박테리아, 바이러스들이 많아졌거든요. 이걸 정상성 기준으로 현재의 분류학으로는 돌연변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미 비인간동물이나 생태는 우리가 문제라고 파악하기 전에 변화를 감지하고 어떻게 생존하고, 변태하고, 생식하고 나아갈 것인지 이미 감각하고 있었다고 읽혔어요. 그리고 이 미생물의 생식의 방식은 암수 구분이 아니잖아요. 플라스틱과 친족이 된 이 존재는 생물학적 재생산성의 관점을 완전히 다르게 환기하게 했어요. 이 작은 존재가 이미 (비)생산, 재생산, 퀴어링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해요. 그래서 이 글을 만났을 때 큰 해방감을 느꼈고 <제로의 책>에 꼭 싣고 싶었어요.
제가 환경문제에서 계속 발견하고 싶은 것들이 이른 존재들 같아요. 갯벌도 그래요. 간척 사업이나 신공항의 주 타켓이 되는 땅으로 쉽게 타자화 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생태공원이나 람사르 습지 같은 말로 보호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죠. 이곳은 땅도 바다도 아닌 장소에요. 이렇게 남도 여도 아닌, 좌도 우도 아닌 것들을 생태 안에서 찾고,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넓은 의미로 퀴어링과 만나고, 약자가 배제 포섭되는 이야기와도 교차되요. 우리 주변의 존재들이랑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환경, 소수자 문제들의 이야기가 서로 떨어진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더 인식하게 되고 예술의 상상력으로 이런 틈의 이야기들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셰어 비건과 요가 이야기도 안들어볼 수 없는데요?!
화용 채식을 한 지 23년 쯤 되었네요. 완전 비건을 잘 못할 때도 있었지만요. 비건 레시피를 찾기 어려울 때 막 실험도 하고 그러다보니 오래 쌓여 창작 과정이 된 것 같아요. 요리도 매일 하고 스무디를 매일 마시는데 계절에 따라 재철 재료 탐색도 하게 되고, 비건식을 실천하면서 제 삶을 재구성하게 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하루에 12시간 앉아서 명상하는 수련을 다녀오면서 내가 몰랐던 내 몸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서울과 서귀포를 오가면서 살고 있는데 오가면서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경계를 오가거나 전혀 다른 환경에 날 두면 보이는 것들이요. 이런 연습이 거리를 두고 상황을 보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삶의 방식을 확 바꾸면 내 봄에 밴 편견이나 관성이 보이는 것 그게 저의 영감이기도 해요. 하루하루 매일 일상의 실천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 기후변화, 계절감을 알게 해주고 이것은 생애주기와 연결되기도 하고요. 먹는 것들을 바꾸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내가 만들면서 만나거나 보이는 것들이 많아요.
셰어 이런 관계, 주변과 관계를 새롭게 맺는 방식이 되는 거 잖아요. 사실 재생산정의 기후정의 이런 얘기들을 계속 하고있는데, 조금 크게 얘기하자면 지금의 사회나 체제에서 위기라고 느끼는 부분들을 뭔가 화용님이 해보신 관계 맺기를 가지고 좀 새롭게 해볼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면, 제안해주실 수 있는 게 있다면 어떤 걸까요?
화용 동문서답일 수 있는데, 저는 처음에 대중화된 비건 음식이 반가웠어요. 때로는 노동자나 학생들이나 요리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중화가 되는 것도 중요하죠.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화 된 자본주의 상품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축산업도 마찬가지고요. 고기를 먹고 안 먹고의 문제를 넘어 예전에 마을에서 닭이나 돼지를 키울 때와 완전히 단절된 지금은 감각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축산동물의 상황만이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체 과정을 아는 것이 많은 연결감을 회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제주에 살면서 조금 더 몸으로 알게 되기도 했거든요. 조금 더 가까이에서 순환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중요한 거 같아요. 어떻게든 바빠도 4월엔 고사리를 따러 가야 한다는 감각 같은 거요(웃음).
셰어 오후 네시의 요가에 참여하면서 하고 싶었던 얘기도 궁금해요!
화용 나영이랑 요가를 하고 싶기도 했고요. 하길 잘한 것 같아요(웃음) 그냥 나 살자고 하는 요가인데 여기서 뭘 말할 수 있을까 처음엔 고민했어요. 제가 아로마테라피도 되게 오래 공부했었거든요. 비건을 하면서 식물의 힘에 매료되고 아유르베다식 아로마테라피까지 연결되었고, 요가에서는 바닥을 치더라도 스스로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나의 무기 같은 것이 되었어요. 이걸 계속하면 살 수 있겠다, 의지를 놓지 않을 수 있겠다 이런 거. 일이 많고 바빠도 숨쉬고 밥 먹는 것처럼 삶의 루틴으로 요가를 하는 게 제 삶을 되게 많이 지켜줬어요. 역시나 공부하다보니 요가와도 불화가 있긴 하지만.(웃음) 요가는 최종 목적이 에고를 지우는 것을 수련하는 거 잖아요. 근데 이걸 다른 의미로 이야기 해보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감정을 흘려보내고 오롯이 그 본질을 바라보게 하는 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후 네시의 요가를 한 후 삶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과 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더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적어도 전문가까지는 아니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셰어 조이로서 셰어 활동을 보시면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세요.
화용 이미 중간에 이야기 했는데 저에게 셰어의 가장 의미있는 부분은 구체적인 하나보다도 종횡을 횡단하면서 만나는 방식으로 함께 하는 것, 감각적인 것들을 존중하는 것이에요.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과 횡단하면서 만나는 방식이 제가 작업해온 방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사안이라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삐뚤어져 있어요.(웃음) 단순히 열려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죠. 이게 전복이 되고 새로운 의제와 만나게 해줄거라 기대해요. 이런 셰어의 태도는 다음 세대로 갔을 때 셰어가 하는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룰 수 있겠다 싶어요. 어떤 단체들은 볼 때 올드해졌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셰어의 이런 방식은 계속 전복하고 탈주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부분에서 가장 응원합니다.
셰어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화용 제가 불화와 의절의 아이콘인데요. 세상과 불화하는 존재들에게 한마디를 해보자면, 내가 다른 데 가면 불화 가득인데 여기 오면 편하다!!!(웃음)
후원하는 단체들을 한 번 정리하고 새로 가입한 단체 중 가장 첫 번째가 셰어였어요. 큰 단체들은 기부금 영수증도 받을 수 있고 안정적이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것보다 작은 단체들이 자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던 차였어요. 저의 작업도 사실 지원/공공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거든요. 근데 매번 정산할 때마다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느낌인 거예요. 셰어의 활동을 제가 예술적이라고 표현했지만,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라서 지원을 받기 어려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동물권 이야기할 때 딱딱 개, 고양이 이렇게 이야기해야 쉬운데, 염생 식물, 곰팡이, 박테리아 이런 걸로 이야기하면 이해되기 어렵죠. 셰어가 연대하는 존재들도 누군가는 외면하고 보기 싫은 부분일 것 같고 거 하니까 계속 미끄러지고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점이 아까도 말했지만 셰어가 몇 년이 지나도 낡지 않는 단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더 바깥의 존재와 만나고, 확장되고, 변화하고, 트랜스 되는 방식으로 운동하는 활동 단체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모양이 규정되지 않은 활동들이 자립해야 되는 이유가 더 있다는 걸 깨닫고 있고, 이런 활동들이 중요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셰어 불화의 아이콘들이 셰어 오면 편하다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어요. 미끄러지는 존재들이 더 많이 연결되고 이야기될 수 있도록 화용님과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