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써니
지난 4월 26일에 성노동자와 함께 보는 <세가지 안부>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기억하며 용주골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옴니버스 다큐 <그레이존>, <흔적>, <드라이브97>을 보고 토크를 진행했어요. 관객, 용주골 종사자, 주민 등 100여명이 함께 보았습니다.
올해 초 연분홍치마가 <세가지 안부>의 공동체 상영을 요청했고 응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와 이런 마음을 나누던 중, 마침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오윤이라는 문화예술단체에서 협업을 제안해주셔서 함께 상영회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보면 가장 의미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국가폭력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 ‘아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며 혐오와 낙인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 살아가며 일하는 터전이 위태로운 이들과 함께 보면서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완수되지 않았고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이 공백으로 남겨져 있는 상황에서 유가족은 여전히 싸우고 있고, 지난 10년간의 투쟁속에 참여한 이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주목하면서 용주골에서 싸우는 종사자들과 함께 보고 싶었습니다. 60여명의 관객들도 이런 마음으로 찾아오신게 아닌가 합니다. 성노동자들 지킴이 농성장 옆 성매매 집결지 한가운데 차려진 야외 상영장에서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역시나 서울과는 다른 기온을 보여준 파주의 공기를 느끼면서도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했습니다. 영화상영을 마치고는 셰어 타리 팀장의 사회로 연분홍치마 활동가이자 <세가지 안부> 총괄피디인 김일란님, 연분홍치마 활동가이자 <흔적>을 연출한 한영희님, 오윤의 큐레이터 최다미님, 주홍빛연대 차차의 활동가 최여름님, 용주골 여종사자모임 자작나무회 회장인 별이님을 모시고 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사진: 써니
먼저 별이님과 여름님이 현재 용주골이 처한 상황과 이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간략한 경과를 공유해주셨습니다. 파주시가 집결지 강제폐쇄를 밀어붙이면서 종사자들의 의견을 무시한채 진행하고 있는 자활지원조례의 문제점, 여행길 캠페인을 통해서 종사자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함부로 침입하고 CCTV 등을 설치하면서 일상적인 감시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레이존>을 보면서는 참사 당일의 기억을 나누고 언론의 역할과 영상기록활동의 의미 등을 나누었습니다. 급격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어떻게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요.
별이님은 참사 당시 일을 쉬었던 기억을 공유하셨어요. 유흥업소 사장도 추모 행사는 못해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며칠 문을 닫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별이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국가적으로 슬픈 사건이 일어났으니 작은 추모를 하는 차원에서 그러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많은 언론을 접해왔던 경험도 전해주셨어요. 대면하면 기자가 집결지 종사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고, ‘일반인’의 시각을 거론하면서 성노동자를 특수하고 차별을 당해더 어쩔 수 없다는 시각을 그대로 내비치는 경우가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여름님은 용주골에 대한 기사를 종사자의 시각에서 담으려고 하는 기자들의 노력이 번번이 좌절되거나, 어떤 진보언론사의 기자는 직장내 괴롭힘을 당해서 퇴사한 경우도 있었다는 점을 전해주었어요. 대중들이 바라지 않는 프레임으로 기사를 쓰면 조회수도 나오지 않고, 외부적으로도 지지를 받지 못해서 데스크 차원에서 거부되는 사례도 많았다고 합니다.
베를린에서 문화예술공간을 운영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지활동을 하다가 시정부로부터 약속되어있던 모든 지원이 중단된 상황을 겪고 있는 오윤은 독일 사회가 얼마나 시오니즘을 지지하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언론이 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팔레스타인 지지를 반유대주의로 프레임하면서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는 언론사나 데스크의 문제도 있지만 개별 기자들이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일란 총괄피디는 재난 참사 보도를 해야 하는 기자들의 고충이 잘 드러나는데 기록활동가의 고민과 연결되는 지점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자와 영상활동가들의 차이점은 자신이 가진 편견과 싸우고 도전하는가를 직업윤리에 포함하는가가 큰 차이를 가지는것 같다는 점을 짚어주었습니다.
<흔적>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유가족 활동가의 면모들을 볼 수 있었고, 활동하면서 어떻게 변화해나가는지, 또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식과의 관계를 재조정해나가는지에 대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기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식들이 상영회에 모인 사람들이 공통점일 수도 있을것 같고, 유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사진: 홍지연
한영희 감독은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때 “저는 창현이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걸 보고 다큐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희생자들이 효자였다는 말이 강조될 수록 그렇지 못한 이들은 희생된 자녀 혹은 형제자매 자녀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어려워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여름님은 유가족 운동을 보면서 성노동자들을 많이 떠올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노동자 혐오 범죄로 죽었을때 나서서 진상규명을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가족을 가진 이들이 있을까 질문했을 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옐로우하우스 폐쇄 과정에서 지병으로 인해서 사망한 성노동자가 있었는데 무연고인 상황에서 업주까지 사망보험금을 가로챈 뒤 장례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동료 성노동자들이 안타까워하며 각자 고인을 애도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가족의 연이 없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애도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미님은 작년 10월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시위를 베를린시에서 금지하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가족이 사망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작은 집회를 열었는데 30명정도 되는 사람을 300명 이상의 경찰이 에워싸고 10살 정도 되는 아동에게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고 연행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미님은 영화를 보면서 가족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싸워야 하는 어린이들과 가족이 없는 어린이를 위해서 누가 같이 싸울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드라이브97>을 보면서 힘든 사건을 겪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그 기억을 통해서 오히려 삶의 동력을 얻는 걸 보면서 생존자와 생존자의 곁을 지키는 관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관계들을 좀더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 홍지연
여름님은 성노동을 하게 된 초기에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돈도 없고, 낙태죄도 있던 시절이라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멘붕을 겪고 있었더니 그 이야기를 들은 성노동자 친구들이 수술 비용을 마련해주고 회복하는 시기에도 일하지 않고 쉴 수 있도록 돌봐주었던 기억을 나눠주었습니다. 일을 쉬고 있던 친구가 일부러 일을 나가기도 하고, 좋은 손님을 만나서 번 돈이니 너가 써도 될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일란 피디는 <드라이브97>을 연출한 오지수 감독이 생존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인데, 초기에는 유가족이 중심이 된 운동이었다면 이제는 생존자들이 주체가 되면서 또다른 운동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이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세월호 영화에 대한 소개도 덧붙여 주었는데요. 유가족이 연출한 <바람의 세월>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고, 최초의 극영화인 <목화솜 피는 날>이 개봉을 준비합니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려요! (텀블벅 펀딩 참여하기 : https://tumblbug.com/whenwebloomagain)
상영회 토크를 마무리하면서 소감을 나누었어요. 김일란 총괄피디는 용산 참사를 언급하면서 용주골에서 벌이고 있는 생존권 투쟁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다시는 그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힘을 모으자고 했어요. 용주골에서 상영회가 열려서 큰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여름님의 목소리가 소음을 뚫고 나가 멀리까지 잘 들린다면서 용주골의 목소리가 사회 바깥으로 잘 들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별이님은 소수라도 연대자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시청과 경찰의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곳에 계속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전했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가 제 시간에 출발하기 위해서 돌아갈 준비를 하려던 즈음 꼭 이야기를 전하고자하는 종사자분이 혜성처럼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용주골은 내 땅이고 내 새끼다. 당신들처럼 내 살길을 찾고 내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용주골 땅에 뿌리내린게 70년인데 언제부터 당신들이 내 몸을 관리했느냐”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육성으로, 온몸으로 답답함을 전하신 이야기의 울림이 매우 컸습니다.
사진: 써니
<세가지 안부>라는 프로젝트의 이름을 통해서 여러 생각과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안부를 묻고 나눌 수 있는 장소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이곳에서 누구의 안전이 무엇에 의해서 위협받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현장에 방문하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 용주골의 종사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안부를 제대로 묻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을 존중하고, 어떤 지향 속에서 제도가 움직이도록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계속 질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사진: 홍지연
사진: 써니
지난 4월 26일에 성노동자와 함께 보는 <세가지 안부>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기억하며 용주골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옴니버스 다큐 <그레이존>, <흔적>, <드라이브97>을 보고 토크를 진행했어요. 관객, 용주골 종사자, 주민 등 100여명이 함께 보았습니다.
올해 초 연분홍치마가 <세가지 안부>의 공동체 상영을 요청했고 응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와 이런 마음을 나누던 중, 마침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오윤이라는 문화예술단체에서 협업을 제안해주셔서 함께 상영회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보면 가장 의미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국가폭력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 ‘아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며 혐오와 낙인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 살아가며 일하는 터전이 위태로운 이들과 함께 보면서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완수되지 않았고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이 공백으로 남겨져 있는 상황에서 유가족은 여전히 싸우고 있고, 지난 10년간의 투쟁속에 참여한 이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주목하면서 용주골에서 싸우는 종사자들과 함께 보고 싶었습니다. 60여명의 관객들도 이런 마음으로 찾아오신게 아닌가 합니다. 성노동자들 지킴이 농성장 옆 성매매 집결지 한가운데 차려진 야외 상영장에서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역시나 서울과는 다른 기온을 보여준 파주의 공기를 느끼면서도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했습니다. 영화상영을 마치고는 셰어 타리 팀장의 사회로 연분홍치마 활동가이자 <세가지 안부> 총괄피디인 김일란님, 연분홍치마 활동가이자 <흔적>을 연출한 한영희님, 오윤의 큐레이터 최다미님, 주홍빛연대 차차의 활동가 최여름님, 용주골 여종사자모임 자작나무회 회장인 별이님을 모시고 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사진: 써니
먼저 별이님과 여름님이 현재 용주골이 처한 상황과 이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간략한 경과를 공유해주셨습니다. 파주시가 집결지 강제폐쇄를 밀어붙이면서 종사자들의 의견을 무시한채 진행하고 있는 자활지원조례의 문제점, 여행길 캠페인을 통해서 종사자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함부로 침입하고 CCTV 등을 설치하면서 일상적인 감시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레이존>을 보면서는 참사 당일의 기억을 나누고 언론의 역할과 영상기록활동의 의미 등을 나누었습니다. 급격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어떻게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요.
별이님은 참사 당시 일을 쉬었던 기억을 공유하셨어요. 유흥업소 사장도 추모 행사는 못해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며칠 문을 닫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별이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국가적으로 슬픈 사건이 일어났으니 작은 추모를 하는 차원에서 그러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많은 언론을 접해왔던 경험도 전해주셨어요. 대면하면 기자가 집결지 종사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고, ‘일반인’의 시각을 거론하면서 성노동자를 특수하고 차별을 당해더 어쩔 수 없다는 시각을 그대로 내비치는 경우가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여름님은 용주골에 대한 기사를 종사자의 시각에서 담으려고 하는 기자들의 노력이 번번이 좌절되거나, 어떤 진보언론사의 기자는 직장내 괴롭힘을 당해서 퇴사한 경우도 있었다는 점을 전해주었어요. 대중들이 바라지 않는 프레임으로 기사를 쓰면 조회수도 나오지 않고, 외부적으로도 지지를 받지 못해서 데스크 차원에서 거부되는 사례도 많았다고 합니다.
베를린에서 문화예술공간을 운영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지활동을 하다가 시정부로부터 약속되어있던 모든 지원이 중단된 상황을 겪고 있는 오윤은 독일 사회가 얼마나 시오니즘을 지지하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언론이 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팔레스타인 지지를 반유대주의로 프레임하면서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는 언론사나 데스크의 문제도 있지만 개별 기자들이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일란 총괄피디는 재난 참사 보도를 해야 하는 기자들의 고충이 잘 드러나는데 기록활동가의 고민과 연결되는 지점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자와 영상활동가들의 차이점은 자신이 가진 편견과 싸우고 도전하는가를 직업윤리에 포함하는가가 큰 차이를 가지는것 같다는 점을 짚어주었습니다.
<흔적>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유가족 활동가의 면모들을 볼 수 있었고, 활동하면서 어떻게 변화해나가는지, 또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식과의 관계를 재조정해나가는지에 대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기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식들이 상영회에 모인 사람들이 공통점일 수도 있을것 같고, 유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사진: 홍지연
한영희 감독은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때 “저는 창현이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걸 보고 다큐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희생자들이 효자였다는 말이 강조될 수록 그렇지 못한 이들은 희생된 자녀 혹은 형제자매 자녀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어려워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여름님은 유가족 운동을 보면서 성노동자들을 많이 떠올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노동자 혐오 범죄로 죽었을때 나서서 진상규명을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가족을 가진 이들이 있을까 질문했을 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옐로우하우스 폐쇄 과정에서 지병으로 인해서 사망한 성노동자가 있었는데 무연고인 상황에서 업주까지 사망보험금을 가로챈 뒤 장례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동료 성노동자들이 안타까워하며 각자 고인을 애도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가족의 연이 없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애도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미님은 작년 10월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시위를 베를린시에서 금지하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가족이 사망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작은 집회를 열었는데 30명정도 되는 사람을 300명 이상의 경찰이 에워싸고 10살 정도 되는 아동에게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고 연행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미님은 영화를 보면서 가족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싸워야 하는 어린이들과 가족이 없는 어린이를 위해서 누가 같이 싸울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드라이브97>을 보면서 힘든 사건을 겪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그 기억을 통해서 오히려 삶의 동력을 얻는 걸 보면서 생존자와 생존자의 곁을 지키는 관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관계들을 좀더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 홍지연
여름님은 성노동을 하게 된 초기에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돈도 없고, 낙태죄도 있던 시절이라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멘붕을 겪고 있었더니 그 이야기를 들은 성노동자 친구들이 수술 비용을 마련해주고 회복하는 시기에도 일하지 않고 쉴 수 있도록 돌봐주었던 기억을 나눠주었습니다. 일을 쉬고 있던 친구가 일부러 일을 나가기도 하고, 좋은 손님을 만나서 번 돈이니 너가 써도 될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일란 피디는 <드라이브97>을 연출한 오지수 감독이 생존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인데, 초기에는 유가족이 중심이 된 운동이었다면 이제는 생존자들이 주체가 되면서 또다른 운동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이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세월호 영화에 대한 소개도 덧붙여 주었는데요. 유가족이 연출한 <바람의 세월>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고, 최초의 극영화인 <목화솜 피는 날>이 개봉을 준비합니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려요! (텀블벅 펀딩 참여하기 : https://tumblbug.com/whenwebloomagain)
상영회 토크를 마무리하면서 소감을 나누었어요. 김일란 총괄피디는 용산 참사를 언급하면서 용주골에서 벌이고 있는 생존권 투쟁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다시는 그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힘을 모으자고 했어요. 용주골에서 상영회가 열려서 큰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여름님의 목소리가 소음을 뚫고 나가 멀리까지 잘 들린다면서 용주골의 목소리가 사회 바깥으로 잘 들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별이님은 소수라도 연대자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시청과 경찰의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곳에 계속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전했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가 제 시간에 출발하기 위해서 돌아갈 준비를 하려던 즈음 꼭 이야기를 전하고자하는 종사자분이 혜성처럼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용주골은 내 땅이고 내 새끼다. 당신들처럼 내 살길을 찾고 내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용주골 땅에 뿌리내린게 70년인데 언제부터 당신들이 내 몸을 관리했느냐”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육성으로, 온몸으로 답답함을 전하신 이야기의 울림이 매우 컸습니다.
사진: 써니
<세가지 안부>라는 프로젝트의 이름을 통해서 여러 생각과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안부를 묻고 나눌 수 있는 장소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이곳에서 누구의 안전이 무엇에 의해서 위협받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현장에 방문하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 용주골의 종사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안부를 제대로 묻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을 존중하고, 어떤 지향 속에서 제도가 움직이도록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계속 질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사진: 홍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