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조이풀 인터뷰] 16화 : “안녕하세요. 결혼하지 않고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노은아입니다.”

2024-05-02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16화] 노은아 조이님 인터뷰 :

“안녕하세요. 결혼하지 않고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노은아입니다.”



셰어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셰어의 조이가 되신 계기도 궁금해요. 


노은아  비혼여성으로서 아이를 키우고 있고요, 노래운동을 했어요. 여전히 노래를 하고 싶지만 양육을 핑계로 게을리하고 있는 셰어 조이 노은아입니다. 


셰어 노래운동이 뭔가요?


노은아  제가 어쩌다보니 태어나면서부터 기독교에 의도치 않게 발을 들이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찬양이 저에게는 참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저의 삶과 와닿지 않는 가사들이고. 그래서 그냥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생각만 하고 지내다가 소위 말하는 기독노래운동을 하는 작곡가의 노래를 접하면서 거기에 확 꽂혔어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합창단도 해왔던 터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기독노래운동을 하러 왔어요. 그때 임보라 목사님도 만났고요. 그 뒤로 계속 활동하면서 노래하고, 직장도 다니고, 그렇게 지냈어요. 그 덕에 노래를 더 배우고 싶어서 성악과에 뒤늦게 진학하기도 하고요. 투쟁 현장에 가서도 노래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어요. 


셰어 노은아 조이님은 성소수자 운동이나 여성주의 활동에도 많이 참여해 오셨는데 이런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노은아  노래패 활동하러 서울에 왔는데, 서울에 오자마자 다니게 된 교회가 향린교회였어요. 그 때 향린교회에 임보라 목사님이 부목사로 계시면서 여성의 눈으로 보는 성서 공부를 진행해 주셨거든요. 여성의 눈으로 보는 성서는 처음 접해봐서 낯설기도 했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됐어요. ‘성서도 그런 시각으로 볼 수 있구나’, ‘성서에 이물감이 느껴진 것 중 하나가 내 이야기는 없는 거 같아서였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거기서부터 가지를 뻗어 관심을 갖게 된 거에요. 그래서 여성인권 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사적 모임이었는데 그게 교회 안에서 조직이 되었죠. 그리고 그 모임을 계속 하다가 보니까 시야가 확장되었어요. 기독교 내에서 특히 더 차별받는 사람들이 누가 있지? 생각하다 보니까  성소수자들이 보인거죠. 저는 진짜 성소수자 하나도 몰랐고, 당연히 일상적으로 접하지 못했었는데 점차 알고 공부하게 되면서 우리 교회에도 성소수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내가 차별당해 온 것과 같이 가장 열악한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으면 나도 똑같이 차별받지 않는다는 연계성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퀴어문화축제도 참여하게 되고, 조금씩 확장이 된 거에요.

저는 원래 확 덤비는 사람이 아니에요. 되게 여러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움직이는 사람이거든요. 관찰의 시간이 길어요. 하지만 성소수자 관련해서 그 이슈가 맞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정의라고 생각하니까 일단 행동해야지가 첫번째였어요. 그러니까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계속 참여한거죠.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소수자 친구들이 조금씩 생기고, 얘기하다보니까 동의하는 부분, 공감하는 부분도 점점 늘어나게 된 거예요. 물어봐서 안 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스미는 그런 것이었지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사실 지금도 여전히 낯선 부분은 낯설어요. 제가 당사자가 아니니까요. 막 끼부리고 이런 모습들도 처음에는 친근한 느낌은 아니었거든요.(웃음) 근데 현장에 가보면 그런 친구들이 많은 거에요. 그게 낯설었어요. 퀴어 친구들은 다 저래야 하나 생각했는데 더 넓게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죠. (웃음) 



비혼으로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셰어 셰어의 조이가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노은아 여성주의가 제 안에 자리잡게 된 과정이 천천히 길게 있었는데 저의 경험을 말해주는 언어를 많이 찾았어요. 그러면서 셰어도 만나게 되었는데, 저도 20대에 임신중지의 경험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때의 경험을 생각하면 너무나 위축되었고, 죄책감이 남아있었던 거예요. 제가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 때문에 더욱 감정적으로 숙제가 남아있는 느낌이었는데 낙태죄 폐지 운동의 과정에서 셰어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활동을 보면서 해방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여성주의를 접했을 때 가장 중요했던 게 해방되는 느낌이었거든요. 수많은 복잡한 감정으로부터 해방되는 느낌. 근데 셰어가 그런 역할을 해줄 것 같았어요. 셰어가 활동하는 모든 것이 나의 공부거리라고 생각했어요. 결국은 제가 좀 더 자유롭기 위해서 제 스스로에게 위해서 하는 거죠. 배우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언어를 찾을 것이고 제가 좀 더 자유로워지면 딸에게도 영향이 될 것이고, 연결이 되는 거 같아요. 


셰어 셰어의 사무실 집들이 행사 때 해주신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자신의 의지로 비혼으로 살아가는 여성이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셰어의 활동을 참여하고 있고,  딸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하셔서요. 원래 비혼주의의 지향을 가지고 있었나요? 


노은아 비혼주의였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결혼을 하면 여성이 불리한 위치가 되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이런 문제에 대해 공감을 하고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이라면 결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을 기대할만한 상황이 안 만들어졌어요.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결혼하는 것 자체가 나를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문화 속에 던지는 느낌이었달까. 저는 여성으로서 살아오면서 그런 상황에 놓였던 게 너무 부당하다고 느꼈고, 그걸 스스로 내재화 해버렸던 그 시간도 너무 아까웠거든요. 그래서 다시는 그런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결혼을 안한거죠.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된 것도 결혼 상태에서는 제가 행복할 것 같지가 않고 오히려 혼자 키우는 게 훨씬 행복할 것  같아서였어요.


셰어 그래도 임신이 되었을 때는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임신을 유지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 과정에서의 고민이 궁금해요.


노은아 일단은 전부터 여성으로서 아이를 낳고 싶은 욕망은 있었던 거 같아요. 입양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비혼인 나에게도 기회가 있을 수 있을까 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럴 수 없었고.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던 차에 우연하게 아이가 생긴거죠. 그래도 당장 내가 혼자 키우겠다고 할 땐 두려웠죠. 걱정되는 것도 많고.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근데 그냥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결정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크게 고민을 하지는  않았어요. 상대방이 임신을 이유로 결혼하자고 하게 될까봐, 오히려 그러면 임신중지를 해야할 것 같았어요. 결혼은 도저히 못하겠고 아이는 낳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더 크게 들어서  상대방과 어떤 합의 과정을 거치고 아이를 낳게 된거죠. 제가 40대 초반이라서 그런 결심을 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기가 스스로 더 잘 알고 무서운 게 좀 줄어들었을 때니까요.  20-30대에는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그런 적당한 시기라 결심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셰어 낙태죄 폐지가 셰어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하셨지만 또 이렇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을 경험하시면서 이런 부분에서도 셰어 활동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신 게 있을까요? 


노은아  비혼여성으로서 아이를 낳아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커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돌봄 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여성의 임금 격차, 불평등 이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요. 내가 주체적으로 감당을 하고 싶은데 사회 시스템은 안 되어 있고, 그래서 불안하고 어려웠어요. 혼자서 아이를 키우니까 파트타임을 해야 했고요. 그래도 수입이 적다 보니 아이돌봄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 부분은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게 아니면  다른 기관 서비스를 이용해야 되고, 비용이 많이 발생하니까. 그러면 직장을 다시 구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출산 후 아이를 키우다가 직장으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고, 여성의 임금이라는 게 경력이 쌓였으면 그만큼 노동의 대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요. 저도 제 직종 자체가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직종인데 기본 임금이 높지 않아요. 거기서 생기는 어려움이 있죠. 계속 생계를 유지해야하는데 급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부모가족 지원의 경우에는 그걸 받으려면 소득기준 이하여야 하는데 제 소득은 그것보다는 높거든요. 그래서 지원 사각지대가 되는 거에요. 한부모 지원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소득이 더 낮으면 사실상 아이를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지거든요. 그것 때문에 일부러 일을 안하거나 덜 하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2인 양육자 기준의 공동육아협동조합에 변화를 만들기까지


셰어 셰어 활동을 보면서 따님에게도 어떤 영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노은아 여성으로서 경계가 많은데 그 경계를 허무는 과정, 여성으로서 느끼는 자부심이 있으면 좋겠어요. 자기 존재, 여성으로 태어난 거 자체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고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경계를 편하게 넘나드는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셰어 근데 셰어는 경계를 좀 심하게 넘나들잖아요. (웃음)


노은아 오히려 역치를 높여놓으면 작은 경계를 넘는 게 큰 일이 아니라는 걸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요? 


셰어 공동육아도 하셨는데, 그런 지향을 함께 만들거나 담아보는 시도도 해보신 적이 있나요? 


노은아 사실 제가 한부모 가정으로 공동육아 협동조합에 들어간 첫 케이스거든요. 협동조합이라 부모들이 같이 운영에 참여해야 하고 참여 점수가 있는데 그 동안 모든 활동이 2인 (부모) 조합원을 기준으로 정해져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제가 들어가면서 1인 조합원 가족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논의가 시작된 거죠. 결국 점수 기준을 반으로 낮춰서 1인 조합원 가족도 어려움이 없도록 바꿔냈지만 그걸 토론하는 과정에서 1인 양육자 가족을 가장한 동성애 부부가 있을 수 있지 않냐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한 학부모가 저한테 성소수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라고 그래 가지고 엄청난 갈등이 생기면서 조합원의 1/3 정도가 조합을  나가는 상황이 됐어요. 그 과정에서 저도 공황장애 비슷한 상황이 생겼고요. 하지만 그게 또 새로운 계기가 되면서 협동조합을 세운 선배부터 졸업하신 분들이 이 뜻을 함께해서 성명서를 내주셨어요. 우리가 지금 당장 돈이 문제가 아니라 가치가 문제다, 더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어떤 가정이든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고  힘을 모아서 확인해주시고 해서 제가 남아있게 된거죠. 

아이들 성교육에 대해서도 “여자랑 여자랑 결혼할 수 있어?” 이런 질문이 있을 때, 교사들이 어떻게 답할지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독실한 기독 가정들이 “어떻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냐. 여성과 남성이라고 해야지.” 하면서 그런 것들이 소소하게 갈등이 되기도 했거든요. 그 때는  교사들이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해 주셔서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요. 조합 정관에 있는 엄마, 아빠 같은 용어도 다양한 가정을 포괄할 수 있도록 양육자로 바꿨어요. 그리고 가족형태와 성적지향의 차별금지를 포함한 조항까지 만들게 되었죠. 모두에게 힘들고 상처가 많았던 과정이 있었지만 멋진 조합원들 덕분에 저희 가정이 잘 졸업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가 언젠가 경험할 수 있는 차별을 줄여주는 것이 부모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이를 키우면 장담할 일이 줄어들어요. 조심스러워지고. 내가 부모로서 언제나 아이를 넉넉히 받아주기 위해 단련하는 과정이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체험하고 있는 거 같아요.


셰어 자녀분이 성에 대해 어떤 생각, 감각을 가지기를 바라시나요?


노은아 이중 감정이 있는 거 같아요. 양육자로서 걱정되는 것과 여성으로서 자유롭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는. 결국엔 불안함이 기본이 되는 거겠죠. 일단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책임질 수 있다면 저는 뭐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거 같아요. 안전했으면 하는 마음은 기저에 있고 근데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영역은 즐겼으면 좋겠고.


셰어 자유로우면서도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노은아  일단 여성으로서 자존감이 컸으면 좋겠고. 앎도 중요한 거 같아요. 그런 걸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지만. 그것도 어떤 과정이 있겠죠. 


셰어  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중적인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성적 지식을 알면 더 잘못될까봐 걱정하잖아요. 알게 되면 시도해 볼까봐 걱정하고요. 


노은아  안다고 다 시도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는 것과 본인이 하고 싶은 것과는 차이가 있잖아요. 하고 싶은지 안하고 싶은지도 본인이 알아야죠. 자기가 어떤 마음인지, 원하는 게 뭔지 이걸 알면서 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본인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단단하게 가져갈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어가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셰어의 활동을 응원하며


셰어 그런 방향의 활동으로 셰어에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노은아 에브리바디 플레져북 봤을 때 그 키트를 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기독교 안에서는 성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도 없고 어렵잖아요. 우리 섬돌향린교회 40-50대 여성들부터 모여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섬돌향린교회 교인들은 성평등이나 성정의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생각은 가지고 계신데 주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이야기해보면 좋겠고, 자기 몸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안해보셨을 거 같아요. 그래서 같이 해보면 좋겠어요. 왜 이런게 필요한지, 어떤 부분에서 부대낌이 있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도 나누고요. 그리고 아이들 성교육도요. 


셰어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노은아 셰어의 조이가 된다면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에요. 어렵지만 공부하는 과정이 생길 것이고. 여성으로서 느끼게 되는 마지노선이 많은데 그걸 넘어서는 경험들을 조금씩 하면서 자기자신을 더 잘 알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셰어의 모든 활동들이 그걸 기반하는 활동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많았어요. 임신중지에 관한 <곁에 함께>  사이트(https://www.byyourside-share.org/ )도 들어가보고 나서 되게 섬세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20대에 임신중지 할 때 이런 게 있었으면 도움이 많이 되었겠다, 의지가 많이 됐었을 거 같아요. 혼자 두려움에 떨지 않고. 그랬다면 좋았을텐데. 무엇보다 낙태죄 폐지 역할에 크게 기여를 해주셔서 감사하죠. 여러분 조이 많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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