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19화] "비폭력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팔레스타인인들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에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새라 조이님의 인터뷰
셰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올해 상반기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새라 저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이하 팔연대) 12년차 활동가 새라입니다. 음. 상반기는 어떻게 보냈지?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돌보고 치유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아직 과정 중에 있어요.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이라고 뭉뚱그려서 말씀드리긴 했지만, 그 안에서 많은 좌절과 낙담과 갈등, 연대와 감동과 배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침 작년 10월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생계를 위해 일했던 직장에서의 폭력을 경험했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의 신이 팔레스타인 활동에 집중하라는 뜻인가 했지만, 이 일이 저에겐 굉장히 힘든 일이었고, 소화해내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상담도 받고, 약물 치료도 하면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활동가들이 아픈 티 안 내고 그러잖아요(웃음). 저도 그래서 활동가인가 봐요.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12년 해왔는데 너무 힘들어서 행사 사회도 못 보겠고, 성명서도 못 쓰겠고, 아무것도 못하겠는 거예요. 자기 객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팔레스타인과 나를 연결하는 것과 별개로 나를 투사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저는 혼자서는 잘 못 우는데, 팔레스타인 얘기하면 눈물이 무조건 나요. 올해 서울인권영화제 팔레스타인 토크 프로그램 때 그냥 숫자만 말해도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도 울까 봐 말을 못하겠어요. 누가 이렇게 길게 갈 줄 알았겠어요. 팔레스타인 뉴스도 잘 못 보겠더라고요. 동료들도 이게 안 힘들진 않을 거거든요. 다들 정말 힘들 거라는 걸 아는데 계속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팔연대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단체들이 같이 긴급 행동 활동을 하고 있고, 또 여러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이야기들을 하는 걸 보며 의지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국에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집회에 못해도 100명씩은 오잖아요. 제가 감사할 일은 아니지만 정말 감사하고, 거기에 기대고 있는 것 같아요. 집단학살로 인해서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생겼다는 것이 항상 아이러니하고 가장 마음이 아프고, 또 이럴 때 아니면 못 모이고 이야기가 안 되는 게 마음 속에 부담이자 짐이자 아픔인 것 같아요. 학살의 순간, 죽어가는 순간에만 사람들이 주목한다는 게요. 근데 이건 팔레스타인 이슈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힘들고, 거리가 먼 팔레스타인 이슈보다 당장 내 생계, 내 앞에 부당한 것들과 맞서 싸우는 절박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급 행동을 함께 하고 팔레스타인을 이어보는 시선들과 마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에 힘을 얻고 위로를 받아요.
나를 팔레스타인으로 이끈 멋진 팔레스타인 여성 활동가들
셰어 새라님은 어떻게 팔연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나요?
새라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웃음). 저는 활동하기 이전에 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해서 그래도 좀 알고 있었어요. 예전에 한국에서 활동했던 텀이라는 친구가 팔연대 반상근 활동가였는데, 팔연대에서 하는 상영회에 오라고 초대했어요. <레일라 칼리드: 하이재커 Leila Khaled: Hijacker>라는 투사, 프리텀 파이터 관련 다큐멘터리였어요. 최초로 여성이 비행기 납치한 사건에 관한 내용인데, 당시에 제가 테러, 평화, 비폭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할 때였어요. 레일라 칼리드 사진 보면 여러분도 반할 만한 멋있는 분이세요(웃음). 비행기를 납치하면 당연히 테러라고 생각하는데 이 다큐는 왜 그런 전략을 택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사건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다루죠. 당시 기장과 승객도 만났어요. 저는 여전히 평화를 중요하고 핵심적인 가치라고 생각하지만, 무장 투쟁이라든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가 왜 이걸 테러라고 부르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환기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면 이거에 대한 해답은 뭘까, 마냥 평화에 대해서 비폭력적인 방법을 이 사람들한테 강요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러면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이 될 때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여러 생각의 계기를 이 영화가 만들어줬어요. 그게 2012년도였는데, 그해 12월에 가자 폭격이 있었어요. 그때 촛불문화제를 같이 했었고요. 이후에 제가 학교를 들어가게 됐는데 수업 끝나는 길에 팔연대 활동가들을 마주친 거예요. 그때 활동가 한 분이 ‘왜 안 나오세요?’ 막 이러는 거야. 저희 집이랑 팔연대 사무실이랑 도보 2분 거리라는 이유로 학교 끝나고 저녁 시간이나 할 일이 없을 때 그냥 갔던 것 같아요.
보통 제가 3명의 여성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첫번째가 레일라 칼리드였고, 두번째 여성이 라피프 지아다 활동가예요. 팔레스타인 분이시고, 한국에 방문하셨는데 저희 사무실로 찾아오신 거예요. 이 분이 스포큰 워드 Spoken Word 라고 우리나라로 말하면 약간 시낭송과 랩처럼 말을 읊는 거 자체가 공연이에요. 이 분 작품 중에 <We teach life, sir>라고 저희가 번역본을 만들기도 한 게 있어요. 이 분이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의 언론 담당으로 활동하던 당시에 쓴 내용이에요. ‘대화로 하면 되지 왜 무장 투쟁을 하느냐, 왜 증오를 가르치냐. 아니요, 우리는 삶을 가르쳐요.’ 거의 절규에 가까운 공연이에요. 이거 지금 들어도 너무나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여러분도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 분을 사무실에서 뵙게 되었어요. 2013년에 현지 활동 계획이 있었거든요. 팔연대 활동은 한국에서 알리는 활동도 중요하지만 현지 활동도 중요한데 현지 활동을 지원받아 가려면 몇 개월 이상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저희 내부 규정이 있어요. 그냥 가서 보고 오는 게 아니라 다녀와서 후속 활동을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당시에 제가 팔연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너무너무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라피프 지아다 활동가에게 제가 가도 될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가서 보고 오라고, 가서 보고 오는 게 너무 중요하다. 그러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얘기를 해 주셨어요. 또 하나 제가 질문했던 거는 이렇게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해오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나를 낙담시키는 말이나 사람들도 많은데 어떻게 버텨내느냐, 어떻게 아직도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느냐고 여쭤봤거든요. 그랬더니 자기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계속 나는 상황에서 집 안에서 숨어 있을 때 어떤 여성분이 여자아이들을 다 불러모아서 폭탄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법을 가르쳐줬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이 소리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건 우리가 춤을 출 수 있게 땅을 구르는 소리다.”라고요. 활동하면서 정말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나를 좌절시키는 상황도 많고, 팔레스타인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게 “We teach life”인거죠. 폭탄이 떨어지는 가장 절망적이고 두려운 상황에도 꺾이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상상력이기도 하고, 무서워서 숨어있는 소녀들에게 그걸 가르쳐줬다는 게 저에겐 충격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무조건 가야겠다 해서 팔레스타인을 방문했고, <점령의 그림자>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팔레스타인 가서 일단 사람 만나면 끝이에요. 여러분도 각자 연대하는 이유가 있을 거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을 텐데, 모든 사람에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한테는 팔레스타인이 너무 아름답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저에게 많은 영감과 힘을 주었어요. 좋은 사람들이 저를 팔레스타인으로 이끌었죠. 팔연대 활동가들도 그래요. 자원 활동으로 이어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팔레스타인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이 있고, 팔레스타인 연대를 통해 만들어온 유대감과 연대감들이 활동을 이어올 수 있게 해줬던 것 같아요. 팔레스타인은 보면 볼수록 모든 이슈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 같은 느낌이 들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지속하게 됐습니다.
셰어 세 번째 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새라 세 번째는 팔레스타인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에요. (셰어 멋있다) (웃음) 그 중에 한 여성 활동가는 사실 제 친구이기는 해요. 한국에서 처음 만났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검색을 해서 저희에게 연락 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한국에 단체가 많지 않으니까. 그 친구가 한국에 온 김에 팔연대도 만나고 뭔가 발표라도 하고 싶다고 해서 알게 됐어요. 꽤 오랜 시간동안 일상을 함께하며 활동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냥 친구로서 친밀하게 지내면서 솔직한 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지,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나 팔레스타인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무력하게 살고 있는 사람, 돈 많이 벌고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 마지못해 살고 있는 사람 등 이 친구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총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친구예요. 팔레스타인에 대한 낭만화, 이상화 하지 않게 도와줬던 친구이고요.
셰어 정말 멋진 여성 활동가들이 새라와 팔레스타인을 깊게 연결해주고 단단하게 엮어주고 있네요! BDS 운동(이스라엘이 국제법과 보편인권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보이콧∙투자철회∙제재하는 운동)도 그렇고, 왜 한국에서 보이콧 방식의 활동, 지금 같은 상황에서 행사에 이스라엘이 참여를 한다거나,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이콧하는 게 우선시되어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새라 BDS 운동은 이스라엘과의 거리두기를 결정하는 거잖아요. 여기에 동참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 시오니즘을 표명하는 조직, 인물, 행사를 보이콧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도 모두 팔레스타인 식민지배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죠. 그리고 그러한 연결 자체가 일종의 부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거예요. 그렇게 조직 차원에서 이스라엘과 모든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산 과일이 들어간 음료를 사지 않는 것과는 또 다른 부담이 있잖아요.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게 쉽지 않아요. BDS 운동에 함께 하는 것은 이런 부담을 감내하고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다른 단체나 개인에게 용기를 준다는 게 저에게는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활동이기도 해요. 그러나 이 운동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시민들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에요. 절대로 개인을 보이콧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스라엘 정부를 비롯해 각종 단체들이 엄청난 돈을 쓰고 노력하는 이유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처럼, 이 학살이 정당하게 보이게 하기 위함이잖아요. BDS 운동은 그렇지 않다는 인식을 계속 환기시켜요. 이스라엘이 지금 학살을 하고 있는 국가라는 것을요. 이게 논란이 되더라도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거죠. 논란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논란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생각하게 하는 전략이기도 해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억압하는 한 우리는 보이콧하겠다고 이야기할 거예요. 학살을 멈춘다면 그 때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셰어 그래서 두 가지 질문을 이어서 하고 싶은데, 시민사회, 인권운동단체가 BDS 운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엮이면 좋을 게 없다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라면 이걸 함께 할 책무 같은 것이 있는지요. 지금은 미국, 영국, 독일까지 더 확대되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거부감이나 낯선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미국 대사관 까지 보이콧 해야 한다고? 이스라엘 반대까지는 알겠는데’라고 하기도 하고요. 결국 반 제국주의 반 식민 투쟁이라고 할 때 미국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퀴어 운동과도 좀 더 초점을 맞춰서 얘기해봐도 좋겠는데요. 각 영역의 운동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제국주의까지 좀 더 연결해서 어떻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요?
새라 시민사회 운동 단체들에서 이스라엘이랑 연결된 적도 없고 될 일도 없는 곳도 많죠. 처음에는 팔연대만 혼자 다 이야기 할 수 없고, 연대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퀴어 단체에서 퀴어 운동의 언어로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하거나, 여성 운동에서 페미니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노동 운동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각 활동가들을 먼저 설득시키기 위해 다 만나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다 만나고 다닐 수도 없는 거예요. 자원활동가들이었고, 다들 직장생활을 하며 돈도 벌고 하니까요. 그러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을 경험하게 되었고, 핑크워싱에 대한 BDS 운동을 함께 하면서 서울인권영화제도, 저도 같이 배우게 된거죠. 제국주의나 인종이나 종교 혐오 문제, 가부장제나 퀴어 이슈 등 모든 문제를 아우르는 것들이 팔레스타인 땅 안에서, 식민지배하에서 다 응축되어 있고, 더 악랄하고 극심하고 적나라하게 결합되어 나타나요. 팔레스타인이 해방되어도 저는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할 일이 너무 많잖아요. 팔레스타인 퀴어들, 여성들, 청소년들, 노동자들과 연대를 해 나가야 하고요. 저는 핑크워싱이 퀴어 운동 안에서 무슬림 혐오나 퀴어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다른 퀴어들, 존재들, 그리고 혐오를 더 강화시키는 방식이라고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런 틀이 퀴어 해방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기만적인 방식으로 작동했을 때는 이만큼 행복하고 중요하고 해방적인 게 어딨냐고 착각하게 하면서 다른 억압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거든요. 실제 학살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는 논리가 정말 끔찍해요. 재생산 뿐만아니라 억압의 구조는 사실 조각조각 나눠지고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잖아요. 팔레스타인 퀴어 여성에게 일어나는 사회 내에서의 차별과 혐오, 배제만이 아니라 식민지배 아래서 당장 학살을 당하는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제도적인 걸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가 있어요. 군사주의가 일상적인 부분까지 들어와있고 그 사람들은 그런 억압과 폭력을 매일 당하고, 어린이들이 저항하기 위해 무기를 들어야하고, 이게 끔찍하게 위험하고 슬픈 일이긴 하지만요.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에 평화를 강요할 게 아니라 누구에게 평화를 설득하고 이야기해야 하는가 너무나도 명백해요. 양비론으로 생각하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셰어 리베 팔레스티나 가사를 보다가 그 가사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사람들이 그냥 농사짓고 우리가 여기서 살아왔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는 맥락을 이해하느냐. 이것에 대한 태도로 갈리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새라 저도 가사 너무 좋아해요. 이스라엘은 무기 보내달라, 돈을 달라고 하잖아요. 무기 보내주면 끝내겠다고. 근데 그 무기로 팔레스타인을 초토화시키고 말살시키는 거잖아요. 근데 팔레스타인에서는 무기 달라고 한 적이 있냐, 반문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못봤어요. 팔레스타인은 휴전, 생존을 말했죠. 이스라엘에게 무기 주지 말라고도요. 10월 7일을 왜 저항으로 보지 못하는지 답답한 부분이기도 해요. 최근에 가자 폭격 지도 보셨나요? 저 한복판에서 비폭력을 외칠 수 있나 묻고 싶기도 해요. 우리가 저 한복판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총을 들어라 말아라 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팔연대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투쟁하고 싶은 방법대로, 자신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고, 논쟁하고 결정한 방법으로 하길 바라요. BDS 운동도 팔레스타인의 민중이 요청하고 호소한 방법이니까 함께하는 것이고요. 우리가 비폭력으로 하라 말아라가 아니라, 비폭력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팔레스타인인들의 몫이 아니에요. 우리의 몫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더이상 죽어나가지 않도록, 식민지배라는 억압 아래에서 비폭력이 통한다는 것을 연대를 통해 증명해내야 해요. 팔레스타인과 우리가 함께 해낼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연대하는 이유는 구조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미국 영국 독일도 학살의 동조자라는 것을 말해야 해요.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니까 연대하는 것이겠죠. 얼마나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지, 공감하는지, 체감하는지는 다 다르겠지만요. 저는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함께 겪은 핑크워싱과 BDS 운동이 저의 이슈가 되었어요. 서울인권영화제 토크 때 타리 님이 울부짖는 게 인상적이었고요. 우리는 함께 느낀거죠. 아, 이건 나와 뗄 수 없다.
미국, 영국, 독일 이야기로 넘어가보자면, 마크 스미스라는 영국 외교관이 사직하면서 편지를 쓴 게 있어요. 무기수출 전문가인데, "영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계속 판매하는 데는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계속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거든요. 이스라엘이 대놓고 학살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데 어떻게 옹호를 할 수 있죠? 이 사람조차도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직접적으로 전쟁에 공모하고 있는 게 보이는 국가가 미국, 영국, 독일이에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 서구 제국주의로 인해 만들어진 문제이기도 하지만, 저는 이제는 굳이 과거의 역사까지 들여다 보아야 연대를 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아요. 지금 순간만 봐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지금의 상황만 보더라도 시온주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참하고 있잖아요. 이스라엘은 그 무기들로 학살을 하며 퀴어를 응원한다는 모양을 취하는 거고요.
다시 돌아와서 팔연대의 역할, 제가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역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열매, 나무, 지역의 무언가를 계속 찾아서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렇게 투쟁해. 서로를 지지하고 지탱하고 있어.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나를 발견하고, 왜 함께 해야하는지 결국 각자가 찾아갈 수 있도록요. 그래야 오래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셰어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새라 활동가가 아니라 셰어의 조이인 ‘새라’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셰어를 후원하게 된 계기와 셰어 활동 중에 관심이 있거나 주목하는 이슈가 무엇인가요?
새라 저는 요즘 자기 돌봄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 그러면서 요리도 하고, 집도 꾸미면서 회복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집에 꼭 초대하고 싶고요. 제가 셰어를 후원하게 된 계기는 1.5개인데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활동가들의 활동비가 잘 나가야 한다는 마음이기도 하고, 혜원 사무국장님을 오래 본 사람으로서도요. 예전에 정기후원 모집 홍보물을 봤는데 거기에 몇 번째 조이가 되면 책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후원가입 신청서에 혜원이 맛있는 밥 많이 사주세요를 썼어요. 그래서 저는 혜원이 밥 먹으라고 조이가 되었다(웃음). 나영, 타리 님의 활동도 오래 전부터 봐오면서 응원해왔고요.
셰어에서 최근에 재생산정의와 평화 세미나에서 팔레스타인과 재생산정의가 어떻게 연결되는가 세미나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저도 발제자의 간단한 요약 특강을 들으며 재생산과 관련된 이슈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흥미로웠어요. (재생산평화세미나 후기 보기) 저도 재생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나누는데 왜 팔레스타인 운동과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지도 고민하게 되었고요. 이렇게 셰어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마치 유레카! 같은 느낌이었어요. 또한, 핑크워싱을 통해 퀴어 운동에 대해 더 넓게 보는 계기가 있었는데, 이번 집단학살에 들어서서 저도 팔레스타인 운동과 퀴어 운동의 연대가 어떻게 더 확장되고 깊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과 더불어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함께 이 뿌리 깊은 억압과 혐오의 고리들을 찾아내고, 풀어내고, 끊어낼 수 있는지 셰어에서도 저에게 많이 알려주셨고요.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여태까지보다 앞으로의 조이로서의 활동이 저 스스로에게 더 기대되네요!
셰어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새라 음. 그런거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활동의 오르가즘’을 셰어에서!
* 조이풀 인터뷰는 한 달에 한 번 셰어 활동가와 조이(후원회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곳곳에서 멋진 삶을 짓고 있는 조이를 소개하며 우리의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조이의 이야기를 통해 셰어의 활동은 확장되고, 조이의 일상과 셰어가 연결될수록 셰어의 활동은 풍요로워질 거예요. 조이라면 누구나 조이풀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셰어는 조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19화] "비폭력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팔레스타인인들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에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새라 조이님의 인터뷰
셰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올해 상반기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새라 저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이하 팔연대) 12년차 활동가 새라입니다. 음. 상반기는 어떻게 보냈지?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돌보고 치유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아직 과정 중에 있어요.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이라고 뭉뚱그려서 말씀드리긴 했지만, 그 안에서 많은 좌절과 낙담과 갈등, 연대와 감동과 배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침 작년 10월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생계를 위해 일했던 직장에서의 폭력을 경험했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의 신이 팔레스타인 활동에 집중하라는 뜻인가 했지만, 이 일이 저에겐 굉장히 힘든 일이었고, 소화해내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상담도 받고, 약물 치료도 하면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활동가들이 아픈 티 안 내고 그러잖아요(웃음). 저도 그래서 활동가인가 봐요.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12년 해왔는데 너무 힘들어서 행사 사회도 못 보겠고, 성명서도 못 쓰겠고, 아무것도 못하겠는 거예요. 자기 객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팔레스타인과 나를 연결하는 것과 별개로 나를 투사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저는 혼자서는 잘 못 우는데, 팔레스타인 얘기하면 눈물이 무조건 나요. 올해 서울인권영화제 팔레스타인 토크 프로그램 때 그냥 숫자만 말해도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도 울까 봐 말을 못하겠어요. 누가 이렇게 길게 갈 줄 알았겠어요. 팔레스타인 뉴스도 잘 못 보겠더라고요. 동료들도 이게 안 힘들진 않을 거거든요. 다들 정말 힘들 거라는 걸 아는데 계속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팔연대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단체들이 같이 긴급 행동 활동을 하고 있고, 또 여러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이야기들을 하는 걸 보며 의지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국에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집회에 못해도 100명씩은 오잖아요. 제가 감사할 일은 아니지만 정말 감사하고, 거기에 기대고 있는 것 같아요. 집단학살로 인해서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생겼다는 것이 항상 아이러니하고 가장 마음이 아프고, 또 이럴 때 아니면 못 모이고 이야기가 안 되는 게 마음 속에 부담이자 짐이자 아픔인 것 같아요. 학살의 순간, 죽어가는 순간에만 사람들이 주목한다는 게요. 근데 이건 팔레스타인 이슈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힘들고, 거리가 먼 팔레스타인 이슈보다 당장 내 생계, 내 앞에 부당한 것들과 맞서 싸우는 절박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급 행동을 함께 하고 팔레스타인을 이어보는 시선들과 마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에 힘을 얻고 위로를 받아요.
나를 팔레스타인으로 이끈 멋진 팔레스타인 여성 활동가들
셰어 새라님은 어떻게 팔연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나요?
새라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웃음). 저는 활동하기 이전에 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해서 그래도 좀 알고 있었어요. 예전에 한국에서 활동했던 텀이라는 친구가 팔연대 반상근 활동가였는데, 팔연대에서 하는 상영회에 오라고 초대했어요. <레일라 칼리드: 하이재커 Leila Khaled: Hijacker>라는 투사, 프리텀 파이터 관련 다큐멘터리였어요. 최초로 여성이 비행기 납치한 사건에 관한 내용인데, 당시에 제가 테러, 평화, 비폭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할 때였어요. 레일라 칼리드 사진 보면 여러분도 반할 만한 멋있는 분이세요(웃음). 비행기를 납치하면 당연히 테러라고 생각하는데 이 다큐는 왜 그런 전략을 택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사건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다루죠. 당시 기장과 승객도 만났어요. 저는 여전히 평화를 중요하고 핵심적인 가치라고 생각하지만, 무장 투쟁이라든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가 왜 이걸 테러라고 부르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환기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면 이거에 대한 해답은 뭘까, 마냥 평화에 대해서 비폭력적인 방법을 이 사람들한테 강요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러면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이 될 때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여러 생각의 계기를 이 영화가 만들어줬어요. 그게 2012년도였는데, 그해 12월에 가자 폭격이 있었어요. 그때 촛불문화제를 같이 했었고요. 이후에 제가 학교를 들어가게 됐는데 수업 끝나는 길에 팔연대 활동가들을 마주친 거예요. 그때 활동가 한 분이 ‘왜 안 나오세요?’ 막 이러는 거야. 저희 집이랑 팔연대 사무실이랑 도보 2분 거리라는 이유로 학교 끝나고 저녁 시간이나 할 일이 없을 때 그냥 갔던 것 같아요.
보통 제가 3명의 여성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첫번째가 레일라 칼리드였고, 두번째 여성이 라피프 지아다 활동가예요. 팔레스타인 분이시고, 한국에 방문하셨는데 저희 사무실로 찾아오신 거예요. 이 분이 스포큰 워드 Spoken Word 라고 우리나라로 말하면 약간 시낭송과 랩처럼 말을 읊는 거 자체가 공연이에요. 이 분 작품 중에 <We teach life, sir>라고 저희가 번역본을 만들기도 한 게 있어요. 이 분이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의 언론 담당으로 활동하던 당시에 쓴 내용이에요. ‘대화로 하면 되지 왜 무장 투쟁을 하느냐, 왜 증오를 가르치냐. 아니요, 우리는 삶을 가르쳐요.’ 거의 절규에 가까운 공연이에요. 이거 지금 들어도 너무나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여러분도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 분을 사무실에서 뵙게 되었어요. 2013년에 현지 활동 계획이 있었거든요. 팔연대 활동은 한국에서 알리는 활동도 중요하지만 현지 활동도 중요한데 현지 활동을 지원받아 가려면 몇 개월 이상 활동을 해야 한다는 저희 내부 규정이 있어요. 그냥 가서 보고 오는 게 아니라 다녀와서 후속 활동을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당시에 제가 팔연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너무너무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라피프 지아다 활동가에게 제가 가도 될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가서 보고 오라고, 가서 보고 오는 게 너무 중요하다. 그러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얘기를 해 주셨어요. 또 하나 제가 질문했던 거는 이렇게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해오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나를 낙담시키는 말이나 사람들도 많은데 어떻게 버텨내느냐, 어떻게 아직도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느냐고 여쭤봤거든요. 그랬더니 자기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계속 나는 상황에서 집 안에서 숨어 있을 때 어떤 여성분이 여자아이들을 다 불러모아서 폭탄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법을 가르쳐줬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이 소리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건 우리가 춤을 출 수 있게 땅을 구르는 소리다.”라고요. 활동하면서 정말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나를 좌절시키는 상황도 많고, 팔레스타인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게 “We teach life”인거죠. 폭탄이 떨어지는 가장 절망적이고 두려운 상황에도 꺾이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상상력이기도 하고, 무서워서 숨어있는 소녀들에게 그걸 가르쳐줬다는 게 저에겐 충격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무조건 가야겠다 해서 팔레스타인을 방문했고, <점령의 그림자>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팔레스타인 가서 일단 사람 만나면 끝이에요. 여러분도 각자 연대하는 이유가 있을 거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을 텐데, 모든 사람에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한테는 팔레스타인이 너무 아름답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저에게 많은 영감과 힘을 주었어요. 좋은 사람들이 저를 팔레스타인으로 이끌었죠. 팔연대 활동가들도 그래요. 자원 활동으로 이어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팔레스타인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이 있고, 팔레스타인 연대를 통해 만들어온 유대감과 연대감들이 활동을 이어올 수 있게 해줬던 것 같아요. 팔레스타인은 보면 볼수록 모든 이슈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 같은 느낌이 들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지속하게 됐습니다.
셰어 세 번째 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새라 세 번째는 팔레스타인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에요. (셰어 멋있다) (웃음) 그 중에 한 여성 활동가는 사실 제 친구이기는 해요. 한국에서 처음 만났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검색을 해서 저희에게 연락 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한국에 단체가 많지 않으니까. 그 친구가 한국에 온 김에 팔연대도 만나고 뭔가 발표라도 하고 싶다고 해서 알게 됐어요. 꽤 오랜 시간동안 일상을 함께하며 활동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냥 친구로서 친밀하게 지내면서 솔직한 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지,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나 팔레스타인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무력하게 살고 있는 사람, 돈 많이 벌고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 마지못해 살고 있는 사람 등 이 친구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총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친구예요. 팔레스타인에 대한 낭만화, 이상화 하지 않게 도와줬던 친구이고요.
셰어 정말 멋진 여성 활동가들이 새라와 팔레스타인을 깊게 연결해주고 단단하게 엮어주고 있네요! BDS 운동(이스라엘이 국제법과 보편인권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보이콧∙투자철회∙제재하는 운동)도 그렇고, 왜 한국에서 보이콧 방식의 활동, 지금 같은 상황에서 행사에 이스라엘이 참여를 한다거나,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이콧하는 게 우선시되어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새라 BDS 운동은 이스라엘과의 거리두기를 결정하는 거잖아요. 여기에 동참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 시오니즘을 표명하는 조직, 인물, 행사를 보이콧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도 모두 팔레스타인 식민지배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죠. 그리고 그러한 연결 자체가 일종의 부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거예요. 그렇게 조직 차원에서 이스라엘과 모든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산 과일이 들어간 음료를 사지 않는 것과는 또 다른 부담이 있잖아요.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게 쉽지 않아요. BDS 운동에 함께 하는 것은 이런 부담을 감내하고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다른 단체나 개인에게 용기를 준다는 게 저에게는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활동이기도 해요. 그러나 이 운동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시민들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에요. 절대로 개인을 보이콧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스라엘 정부를 비롯해 각종 단체들이 엄청난 돈을 쓰고 노력하는 이유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처럼, 이 학살이 정당하게 보이게 하기 위함이잖아요. BDS 운동은 그렇지 않다는 인식을 계속 환기시켜요. 이스라엘이 지금 학살을 하고 있는 국가라는 것을요. 이게 논란이 되더라도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거죠. 논란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논란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생각하게 하는 전략이기도 해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억압하는 한 우리는 보이콧하겠다고 이야기할 거예요. 학살을 멈춘다면 그 때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셰어 그래서 두 가지 질문을 이어서 하고 싶은데, 시민사회, 인권운동단체가 BDS 운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엮이면 좋을 게 없다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라면 이걸 함께 할 책무 같은 것이 있는지요. 지금은 미국, 영국, 독일까지 더 확대되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거부감이나 낯선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미국 대사관 까지 보이콧 해야 한다고? 이스라엘 반대까지는 알겠는데’라고 하기도 하고요. 결국 반 제국주의 반 식민 투쟁이라고 할 때 미국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퀴어 운동과도 좀 더 초점을 맞춰서 얘기해봐도 좋겠는데요. 각 영역의 운동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제국주의까지 좀 더 연결해서 어떻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요?
새라 시민사회 운동 단체들에서 이스라엘이랑 연결된 적도 없고 될 일도 없는 곳도 많죠. 처음에는 팔연대만 혼자 다 이야기 할 수 없고, 연대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퀴어 단체에서 퀴어 운동의 언어로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하거나, 여성 운동에서 페미니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노동 운동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각 활동가들을 먼저 설득시키기 위해 다 만나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다 만나고 다닐 수도 없는 거예요. 자원활동가들이었고, 다들 직장생활을 하며 돈도 벌고 하니까요. 그러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을 경험하게 되었고, 핑크워싱에 대한 BDS 운동을 함께 하면서 서울인권영화제도, 저도 같이 배우게 된거죠. 제국주의나 인종이나 종교 혐오 문제, 가부장제나 퀴어 이슈 등 모든 문제를 아우르는 것들이 팔레스타인 땅 안에서, 식민지배하에서 다 응축되어 있고, 더 악랄하고 극심하고 적나라하게 결합되어 나타나요. 팔레스타인이 해방되어도 저는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할 일이 너무 많잖아요. 팔레스타인 퀴어들, 여성들, 청소년들, 노동자들과 연대를 해 나가야 하고요. 저는 핑크워싱이 퀴어 운동 안에서 무슬림 혐오나 퀴어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다른 퀴어들, 존재들, 그리고 혐오를 더 강화시키는 방식이라고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런 틀이 퀴어 해방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기만적인 방식으로 작동했을 때는 이만큼 행복하고 중요하고 해방적인 게 어딨냐고 착각하게 하면서 다른 억압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거든요. 실제 학살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는 논리가 정말 끔찍해요. 재생산 뿐만아니라 억압의 구조는 사실 조각조각 나눠지고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잖아요. 팔레스타인 퀴어 여성에게 일어나는 사회 내에서의 차별과 혐오, 배제만이 아니라 식민지배 아래서 당장 학살을 당하는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제도적인 걸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가 있어요. 군사주의가 일상적인 부분까지 들어와있고 그 사람들은 그런 억압과 폭력을 매일 당하고, 어린이들이 저항하기 위해 무기를 들어야하고, 이게 끔찍하게 위험하고 슬픈 일이긴 하지만요.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에 평화를 강요할 게 아니라 누구에게 평화를 설득하고 이야기해야 하는가 너무나도 명백해요. 양비론으로 생각하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셰어 리베 팔레스티나 가사를 보다가 그 가사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사람들이 그냥 농사짓고 우리가 여기서 살아왔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는 맥락을 이해하느냐. 이것에 대한 태도로 갈리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새라 저도 가사 너무 좋아해요. 이스라엘은 무기 보내달라, 돈을 달라고 하잖아요. 무기 보내주면 끝내겠다고. 근데 그 무기로 팔레스타인을 초토화시키고 말살시키는 거잖아요. 근데 팔레스타인에서는 무기 달라고 한 적이 있냐, 반문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못봤어요. 팔레스타인은 휴전, 생존을 말했죠. 이스라엘에게 무기 주지 말라고도요. 10월 7일을 왜 저항으로 보지 못하는지 답답한 부분이기도 해요. 최근에 가자 폭격 지도 보셨나요? 저 한복판에서 비폭력을 외칠 수 있나 묻고 싶기도 해요. 우리가 저 한복판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총을 들어라 말아라 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팔연대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투쟁하고 싶은 방법대로, 자신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고, 논쟁하고 결정한 방법으로 하길 바라요. BDS 운동도 팔레스타인의 민중이 요청하고 호소한 방법이니까 함께하는 것이고요. 우리가 비폭력으로 하라 말아라가 아니라, 비폭력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팔레스타인인들의 몫이 아니에요. 우리의 몫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더이상 죽어나가지 않도록, 식민지배라는 억압 아래에서 비폭력이 통한다는 것을 연대를 통해 증명해내야 해요. 팔레스타인과 우리가 함께 해낼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연대하는 이유는 구조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미국 영국 독일도 학살의 동조자라는 것을 말해야 해요.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니까 연대하는 것이겠죠. 얼마나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지, 공감하는지, 체감하는지는 다 다르겠지만요. 저는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함께 겪은 핑크워싱과 BDS 운동이 저의 이슈가 되었어요. 서울인권영화제 토크 때 타리 님이 울부짖는 게 인상적이었고요. 우리는 함께 느낀거죠. 아, 이건 나와 뗄 수 없다.
미국, 영국, 독일 이야기로 넘어가보자면, 마크 스미스라는 영국 외교관이 사직하면서 편지를 쓴 게 있어요. 무기수출 전문가인데, "영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계속 판매하는 데는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계속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거든요. 이스라엘이 대놓고 학살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데 어떻게 옹호를 할 수 있죠? 이 사람조차도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직접적으로 전쟁에 공모하고 있는 게 보이는 국가가 미국, 영국, 독일이에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 서구 제국주의로 인해 만들어진 문제이기도 하지만, 저는 이제는 굳이 과거의 역사까지 들여다 보아야 연대를 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아요. 지금 순간만 봐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지금의 상황만 보더라도 시온주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참하고 있잖아요. 이스라엘은 그 무기들로 학살을 하며 퀴어를 응원한다는 모양을 취하는 거고요.
다시 돌아와서 팔연대의 역할, 제가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역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열매, 나무, 지역의 무언가를 계속 찾아서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렇게 투쟁해. 서로를 지지하고 지탱하고 있어.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나를 발견하고, 왜 함께 해야하는지 결국 각자가 찾아갈 수 있도록요. 그래야 오래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셰어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새라 활동가가 아니라 셰어의 조이인 ‘새라’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셰어를 후원하게 된 계기와 셰어 활동 중에 관심이 있거나 주목하는 이슈가 무엇인가요?
새라 저는 요즘 자기 돌봄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 그러면서 요리도 하고, 집도 꾸미면서 회복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집에 꼭 초대하고 싶고요. 제가 셰어를 후원하게 된 계기는 1.5개인데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활동가들의 활동비가 잘 나가야 한다는 마음이기도 하고, 혜원 사무국장님을 오래 본 사람으로서도요. 예전에 정기후원 모집 홍보물을 봤는데 거기에 몇 번째 조이가 되면 책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후원가입 신청서에 혜원이 맛있는 밥 많이 사주세요를 썼어요. 그래서 저는 혜원이 밥 먹으라고 조이가 되었다(웃음). 나영, 타리 님의 활동도 오래 전부터 봐오면서 응원해왔고요.
셰어에서 최근에 재생산정의와 평화 세미나에서 팔레스타인과 재생산정의가 어떻게 연결되는가 세미나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저도 발제자의 간단한 요약 특강을 들으며 재생산과 관련된 이슈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흥미로웠어요. (재생산평화세미나 후기 보기) 저도 재생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나누는데 왜 팔레스타인 운동과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지도 고민하게 되었고요. 이렇게 셰어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마치 유레카! 같은 느낌이었어요. 또한, 핑크워싱을 통해 퀴어 운동에 대해 더 넓게 보는 계기가 있었는데, 이번 집단학살에 들어서서 저도 팔레스타인 운동과 퀴어 운동의 연대가 어떻게 더 확장되고 깊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과 더불어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함께 이 뿌리 깊은 억압과 혐오의 고리들을 찾아내고, 풀어내고, 끊어낼 수 있는지 셰어에서도 저에게 많이 알려주셨고요.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여태까지보다 앞으로의 조이로서의 활동이 저 스스로에게 더 기대되네요!
셰어 마지막으로 셰어의 다른 조이(후원회원)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아직 조이가 아닌 분들께 조이되기를 추천하는 한 마디를 해 주세요 🙂
새라 음. 그런거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활동의 오르가즘’을 셰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