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후기] <휘말린 날들 -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북토크

2024-02-01


사진: (왼쪽부터) 최여름, 권소리, 타리, 수어통역 수진, 서보경, 권미란, 수어통역 보석


1월 30일,  HIV 감염인 인권운동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서보경 님의 저서, <휘말린 날들 -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이틀만에 신청 마감이 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는데요, 사회를 맡은 타리 팀장이 셰어와 출판사가 함께 북토크를 공동주최하고 기획한 이유를 소개하며 북토크를 시작하였습니다. 

 

셰어는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다루는 활동을 하면서 HIV/AIDS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가 가진 중요한 의미를 자주 마주합니다. HIV/AIDS는 성매개감염병 중에서도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낙인에 더 많이 연결되어 왔습니다. 국가가 특별히 관리하여 환자의 권리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또한 예방을 명분으로 감염인의 성행동을 범죄화 해왔던 질병이기도 합니다. 장기요양의 측면에서는 돌봄 이슈가 담겨있으며, 세계적으로 경제 격차와 문화 차이에 따라 질병 경험이 매우 다른 양상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이에 못지않게 이 질병을 둘러싼 사회운동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졌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초기에 에이즈라는 질병은 유색인, 이주민, 게이남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로 의학적 연구나 치료제 개발이 되지 않았고, 시작된 이후에도 여성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매개 감염병이라는 이유로 ‘문란함’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덧씌워서 사회에서 추방하고 고립시켰습니다. 치료제 개발과 접근성을 요구하고 사회적 고립에 맞서는 운동은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에이즈운동은 PL (People Living with HIV/AIDS , HIV 감염인을 일컫는 말로, ‘HIV/AIDS 감염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의 존엄한 삶을 위해서 싸우며, 초국적 제약회사의 폭력과 건강불평등에 함께 맞서고,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낙인찍힌 사람들과 연대하며 성적권리를 증진하는 대표적인 운동입니다. 



그래서 북토크에 저자와 함께 여러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책이 어떤 현장과 맞닿아있는지 알 수 있도록 구체적인 얼굴과 이야기를 만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우선 저자인 서보경님에게 이 자리를 빌어 특히 6장 휘말림의 감촉에 대해서 소개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서보경님은 6장이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이론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장이라고 했는데요, “휘말림”, “감염하다”라는 말로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제기하는 주장을 드러냅니다. 인간의 존재 조건 상, 감염이라는 것은 일방적인 의지에 따라 가해지는 것도,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중심에 놓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전하기 위해서 “중동태”라는 어법을 환기합니다. 접촉이라는 것은 타인이 필요하지만 닿는 순간 상호적으로 감각하는 것을 통해서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6장의 제목도 “휘말림의 감촉”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습니다. 이런 개념적 진전을 통해서 HIV/AIDS 운동이 지향하고있는 방향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PL을 범죄화하는 것에 맞서서 우리가 만들어내고 싶은 세계와 관계는 상호적으로 침투하고 얽혀서 살아가는 단단한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이어서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를 함께 창립하고 오랫동안 에이즈 운동에 몸담고 있다가 최근 초국적 제약회사의 특허 등 지적재산권 독점 문제를 다루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권미란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란님은 에이즈 운동을 해오면서 감염인을 부르는 말이 보균자, 감염자, 감염인에서 ‘HIV/AIDS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 PL’로 변화하는 걸 지켜봐 왔지만 여전히 감염된 상태 자체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지, “에이즈 종식”이라는 세계적인 목표는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 “감염하다”라는 인식을 통해  PL로서 살아가는 것을 긍정하는 방식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초기 여성  PL로 알려진 정민숙 씨 이야기를 전하며 저자가 “HIV가 감염한 사람들에게 어떤 공통성을 부여한다면, 그리하여 감염한 사람들 모두를 하나의 계보로 엮어줄 수 있다면, 지금 새롭게 생겨나는 모든 이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바로 자신이 이 진실하고 굳건한 여성의 후예라는 걸, 꼭 알아야 한다”라고 쓴 부분을 보고 큰 힘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HIV/AIDS 역사의 계보를 어떻게 그리느냐는 매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여성  PL들의 존재와 그들의 용기, 그들이 커뮤니티에 기여했던 역사를 기억할 수 있어서 매우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청소년청년커뮤니티 알에서 활동하는 권소리님은 최근 집중하고 있는  PL의 노동권 이슈를 중심으로 책과 현장을 이어주었습니다. 최근 알에서  PL의 노동권을 제한하는 법 조항을 모두 검토하고, 명시적으로 직업을 제한하는 것은 유흥업소 종사자, 직업 군인, 항공기 조종사 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실제로는 관행에 따라, 혹은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해고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직장 건강검진에 포함되어 있을 경우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사례를 접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동안 국가가  PL이 동등한 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대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PL의 노동권을 보장할 것인가는 더욱 논의되기 어려웠습니다. 사회를 보호하고 비감염인을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마치 노동권 보장과 상충하는 것처럼 만들어진 부당한 구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질문하면서 노동권을 제기하는 중입니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에서 활동하는 최여름님은 한국의 성병관리 정책이 일제시기부터 시작되었으며 공창의 접대부, 유흥업소의 접대부 등 취약한 조건에 있는 이들을 통제하고 배제하고 토벌하는 방식으로 이루져왔던 역사 속에서 에이즈라는 질병이 80년대 한국사회에 도착했을 때 유사한 방식으로 억압이 일어났다는 것을 짚어주었습니다. 특히나 성노동자 대상의 강제검진이 현장에서는 노동자 뿐만 아니라 고객의 건강과 안전을 확인하거나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전하며, 성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일터에서 권한을 갖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수 있고 결국엔 고객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권미란님과 서보경님은 HIV/AIDS 운동의 역사에서 의약품 접근권 이슈가 매우 중요했다고 전하면서, 현재 한국에는 에이즈 치료제의 대부분 신약이 들어와있고 건강보험 적용이 되고 있지만 이것으로 접근성이 완료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약이 있어도 차별과 낙인으로 인해서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건강보험이 없는 미등록이주민의 경우 치료제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계속해서 왜 에이즈 치료제를 국가가 문란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냐면서 혐오하는 사람이 있고 세금도둑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건강권을 공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의약품 접근성은 ‘얼마나  PL의 권리가 단단하게 보장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누구의 필요로 약이 개발되고, 유통되는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논리인가, 당사자의 건강권인가? 당사자로부터 누락되는 이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초기 HIV/AIDS 운동이 제기한 덕분에 보건의료운동에 중대한 획을 그엇는데요. 이 모든 것들은 재생산정의 운동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습니다. 단지 임신중지를 합법화하고, 유산유도제를 도입하면 권리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적격한 자격을 심사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사회적 규범과 보수적 흐름에 맞서낼 힘이 있어야만 모두에게 의약품 접근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떠올립니다. 



권소리님과 최여름님은  PL과 성노동자가 처한 국가의 성적 통제와 노동권 박탈에 대응하기 위해서 서로의 현장을 더 이해하고 연대해나갈 필요성에 공감하였습니다. 취약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권한을 합법적으로 제한하고 박탈하면 성적인 행위에서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이 파괴되기 때문에 결국엔 누구의 성적 건강도 온전히 지켜낼 수 없고 권리를 옹호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구체적인 현장과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 PL이 예방의 주체가 될때 모두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오래된 운동의 명제가 펄펄 살아있는 것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여자 중에서 누군가 “보갈갈보연대투쟁"이라는 의견을 전하자 두 사람은 팔뚝을 겹쳐서 연대를 표했고, 이에 공감한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었습니다. (보갈, 갈보 용어에 대한 설명은 책 398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질의응답을 나눈 후 “HIV의 현존 속에서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최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아쉬운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권미란: 제가 상상을 잘 못 하겠더라도, 그게 가능할까라고 생각이 드는 말이라도 HIV/AIDS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과  PL분들이 했다면 그 말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서보경: HIV 감염한 사람이 이모도 되고 삼촌도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될 수 있는 미래. 그래서 다음, 다음 세대에 태어나는 사람들이 내 친족 안에 내 가까운 사람 세계 안에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미래, 그런 미래가 옵니다!


권소리: HIV가 되게 안부 인사 같은, 별거 아닌. 밥 먹었어? 이런 이야기처럼 나 이번에 검사했는데 HIV 양성이래.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미래가 왔으면 좋겠다, 올 것이다라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최여름: 지금 집결지 강제 폐쇄에 맞서는 용주골에서 투쟁을 하다가 왔는데요. 더이상 우리가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고 보갈, 갈보가 떳떳함을 넘어서 한국을 점령하는 사회까지 갔으면 좋겠습니다.


바이러스와 감염에 대해서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주는 <휘말린 날들>을 많은 이들이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앞으로도 곳곳에서 만들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셰어도 작년에 진행한 <HIV 감염인의 젠더, 이주 요인에 따른 차별 요인 분석과 건강권 증진 방안 연구>를 발판삼아서  PL의 권리와 재생산 정의 운동을 계속 연결시켜나가겠습니다. 투쟁!


🌈연구보고서 읽으러 가기-> https://bit.ly/484gL2V  


일시: 2024년 1월 30일 저녁 7~9시

장소: 서교생활문화센터 강의실

주최: 도서출판 반비 X 셰어


사회: 타리/나영정(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활동가)

패널: 

권미란(정보공유연대 IPLeft, 활동가)

권소리(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활동가)

서보경(<휘말린 날들> 저자,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최여름(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수어통역: 한국농인LGBT 보석, 수진

문자통역: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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