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퀴어*입양인 활동가 첫 만남 행사 후기

2022-11-03


지난 10월 13일, 이태원 레스보스에서 매우 뜻 깊은 자리가 진행되었습니다.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여기로> 제작팀 현숙, 지연 님의 제안으로 입양인 활동가와 퀴어 활동가들이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열렸거든요. 

셰어와 함께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 가족구성권연구소,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가 모여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퀴어 입양인 활동가들은 한국의 퀴어활동가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고, 한국의 퀴어활동가들도 가족구성권, 이주민/난민 인권, 재생산권리에 대한 고민을 하며 활동하면서도 입양인 활동가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이 자리는 더욱 의미있는 만남이 되었습니다. 

이 날 모인 퀴어 활동가와 입양인 활동가 30여 명은 처음으로 해외 입양의 역사와 이에 대한 문제의식, 입양 관련 법과 제도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퀴어이자 입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맞닿는 지점, 가족구성권과 재생산권리에 대한 생각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프로그램은 먼저 이 자리를 제안한 현숙 님의 단편 다큐멘터리 <여기로>를 함께 보고, 입양인 활동가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참가자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로>를 만든 감독 현숙님은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퀴어 입양인 활동가로, 한국에서 태어나 국가 간 입양을 통해서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활동하고 있는 여러 입양인 활동가들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현숙님은 영화 <여기로>에서 퀴어라는 정체성을 통해서 입양인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입양인 활동가 크리스, 제니, 한분영은 그간 국가 간 입양의 역사를 볼 때 입양은 거대한 산업이자, 사회복지 시스템, 여성과 아동의 권리에 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식민주의와 국가 건설, 부패와 강압에 관한 문제까지 엮여 있는 복잡한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한국 정부는 입양 산업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였고, 원가정에서 자녀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 체계와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대신 입양 산업을 확대했습니다. 미혼모 시설에서 임신 중인 여성들은 임신 중에 미리 입양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하거나, 때로는 동의도 없이 출산한 자녀를 입양보내게 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일부 입양 기관에서는 수수료를 받고 친척이나 지인 등의 아이를 납치해서 판매를 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 법적으로 고아인 아동만이 입양이 될 수 있었기에 출생기록을 위조하거나 아동끼리의 기록을 바꾸는 일도 있었지요.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한국으로 돌아온 입양인들은 자신에 대해 제대로 기록된 서류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역사로 인해서 미국에서 입양인이라는 이유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입양인들은 미국에서도 미등록 상태로 살아가며 구직이나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한국에 와도 태어난 당시의 기록을 찾기가 어려워 신분이 확인되기 어려운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입양인 활동가들은 이런 역사를 규명하고, 한국에 돌아온 입양인들이 정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장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밖의 다양한 돌봄 관계들을 보장하는 대신 이를 쉽게 입양 산업으로 대체하는 폭력과 부정의가 지속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숙 감독은 영화 <여기로>의 마지막 부분에서 퀴어와 입양인들은 같은 지점에서 싸우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영화에 출연한 한분영과 크리스 박/이영숙을 포함해 리아 니콜스, 제니 나, 그리고 감독인 현숙까지  다섯 명의 입양인 활동가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잠깐 패널을 소개하면, 

한분영은 입양인 국제 네트워크와 한국 입양인 입양 연구 네트워크의 창립자이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복지 박사과정에 있고, 현재 2011년 입양특례법의 수정을 주측으로 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박/이영숙은 국외입양인연대 Adoptee Solidarity Korea (ASK)에서 활동하고 한국입양인참여연대  Solidarity and Political Engagement of Adoptees in Korea (SPEAK)를 공동으로 창립했습니다. 

리아 니콜스는 샌프란시스코/서울에 기반을 둔 예술가입니다. 리아는 입양에 영향을 받은 한국인들 Koreans Impacted by Adoption (KIBAN)의 멤버입니다. 현재 친족 관계 모델을 확장하고 집단 역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기쁨과 외상의 양립성을 옹호하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니 나는 국외입양인연대 ASK의 창립 멤버이자 뿌리의 집 입양인자문위원회 멤버로 오랫동안 한국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패널들은 ‘입양인정의 adoptee justice ’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 자리에 참여한 비입양인 한국인 활동가들에게 어떤 연대를 제안하고 싶은지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선, 입양인정의가 결국은 가족의 구성과 자녀 양육, 나아가 어떤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관계를 그대로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인지의 문제라는 점에서 재생산정의와 입양인정의는 매우 맞물려 있는 주제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는 입양 산업 시스템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정의라는 말이 크고 추상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지점들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서 운동을 만들어갈 필요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는데요, 가령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과거 입양산업의 역사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에서도 그저 국가의 잘못을 확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실제 개개인의 이야기와 관련 정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공적으로 꺼내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당사자 본인의 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공적 루트가 만들어지게 할 것, 이를 위해 사설 기관들이 소유하고 있던 기록들을 공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 등을 나누었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위해 입양 이슈에 대해 입양인들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생기고 여러 사회운동과 만나는 활동들도 필요하겠지요.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고 참가자들은 소모임으로 나누어서 각자의 생각을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국가 간 입양의 역사와 입양 제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 사람도 있었고, 퀴어의 재생산권과 가족구성권에서 입양에 관한 이슈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소모임 토론 중에 A조에서 나눈 이야기 일부를 옮겨봅니다. 


크리스 박(이영숙) : 한국을 비롯해서 모든 사회가 가족을 법적으로 너무 강조하고 있어요. 가족의 지위가 체류자격, 이민 등에 너무 큰 영향을 주고 있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존재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에요. 그렇다면 먼저 근본적으로 정상성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도 그런 정상성 모델만을 따라가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기무라 별(김포김, 조미희) : 퀴어들의 가족을 생각하면 여럿이 함께 공동 양육을 하는 개념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한국사회에서는 발전되지 않았고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혼한 커플들이 많이 생기면서 부모가 넷이 되기도 하고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입양인들의 경험을 보면 공동 양육 같은 걸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원가족이 나에게 없는 상황이라도 나중에 나타날 수도 있고 이런 상황들을 생각하면 나중에  공동양육과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양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인종 간 입양이 발생하는 것이고,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인종차별 등에 대한 교육도 받으면서 어떻게 접근을 해야하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한만큼 퀴어 가족도 비슷하게 퀴어 가족으로서 여러 차별에 대한 층위를 생각할 수 있는 준비와 교육도 필요하죠. 이런 컨셉으로 정서적, 경제적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키울 수 있다면 아이에게 좋은 양육환경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고 생각해요. 자녀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오히려 활짝 피어날 수 있을 것이고요. 

홀트가 아이들은 사랑받을 때 좋다고 하는데 더 많은 양육자가 있다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더 잘 자라게 되지 않겠어요?


리아 :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이들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에 대한 소유권을 거기에 많이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가족을 만드는 일에 대한 생각을 확장해서 소유권으로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랑을 줄 수 있으면 더 좋은 환경에서 클 수 있을 거에요.


주어진 시간이 좀 더 길었다면 아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겠지만 첫 만남인 만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이어질 시간을 기대하며 조별 토론 이후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번 ‘첫 만남’은 입양과 퀴어 이슈를 교차하는 이슈들은 정말 많은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들어갈수록 쟁점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대안의 방향도 더 많이 논의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넓혀주는 자리였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함께 만나며 연대하고, 다음 자리에서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만나 새로운 제안을 시작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기를 약속해 봅니다. 


‘첫 만남’의 자리를 제안해 주신 <여기로> 제작팀의 현숙, 지연님, 공동주최로 함께한 단체와 활동가 여러분,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준 입양인 활동가 여러분, 통역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연결해 준 이진화, 조이스 님과, 이 만남이 편안하고 즐겁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맛있는 먹거리와 맘껏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신 레스보스 윤김명우 님께 연대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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