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의 김보영 사무국장이 2022년 3월부터 한 해 동안 <일다>에 재생산권 관련 글을 연재합니다.
1편: 재생산은 권리이지 ‘인구정치’의 도구가 아니다 / [재생산의 정치] 개인의 선택을 넘은 정의와 사회의 문제(2022.3.29)
"재생산권 운동이 주로 ‘생식’이 아니라 ‘재생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생산의 과정은 특정한 생식기능이 작동하는 시기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임신/중지 및 출산, 양육을 경험하게 되는지는 성별, 나이, 장애, 경제 상태 등 당사자가 딛고 있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복합적으로 결정되며 지속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생식이 아닌, 재생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재생산을 연속적이고 포괄적인 과정으로 인식하고 사회적인 사안으로 다루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아가 재생산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다시’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재생산이 첨예한 문제인 까닭은 무엇이 다시 생산될 만한 것이고, 무엇이 다시 생산되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가치체계가 드러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특정 인구의 재생산은 환영받고 장려되는 와중에 다른 특정 인구의 재생산은 금지되고 비난받는다. 즉 재생산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사회가 어떤 가치의 재생산을 추구해 왔는지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시도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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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낙태죄’ 폐지 활동가들이 장애인 시위에 연대하는 이유 / [재생산의 정치]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2022.4.28)
"세상의 차별과 불평등을 줄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연대’에 기반해 활동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해 겪은 각자의 고통을 나누고, 그 구조를 평등의 방향으로 함께 바꾸기 위해서일 것이다. 연대의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애초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대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기에 ‘당신의 고통은 무엇입니까?’라고 계속해서 물을 수 있기에 연대가 시작되고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계속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살아가고 싶게 하는 마음은 결국 ‘나는 당신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언제까지나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우리는 계속해서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신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함에도 계속해서 그것을 알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함께 겪기 위해 서로에게 가닿고자 하는 시도가 연결을 만들 수 있다. 그 시도가 실패를 이어가더라도,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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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거주할 권리, 재생산의 권리 / [재생산의 정치] 누구나 안전한 집에서 살 권리가 있다(2022.5.28)
"2018년 유엔 적정주거 특별보고관의 대한민국 방문결과 보고서는 고용 및 임금 차별로 인해 여성들이 주거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싱글맘을 기피 세입자로 만드는 문제, 여성 노인의 낮은 연금 액수 등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상속법이나 임대차 관련 법 모두 동거하던 성소수자 파트너가 사망했을 경우 남은 사람에게 거주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문제 또한 짚고 있다. 이는 모두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침해 요인이기도 하다. 안정적으로 충분한 소득을 벌지 못하는 것, 특정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 법·정책적 제도와 지원의 부재는 성과 재생산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주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활동가인 Jen Deerinwater는 “백인들이 우리의 동의 없이 원주민의 땅을 점령하고, 미국 정부가 부족들에 대한 신뢰와 의무를 저버리는 동안, 나는 매달 집세를 내야 한다. 분노스럽다”고 말한다. 엄청난 집세를 부담하면서도, 안전하고 안정적인 집에서 자유롭게 성을 향유하고 재생산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의 땅은 누구에게 귀속되어 있는가, 그 땅 위에 지어진 수많은 집들 사이에서 우리의 권리는 어디를 떠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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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의 김보영 사무국장이 2022년 3월부터 한 해 동안 <일다>에 재생산권 관련 글을 연재합니다.
1편: 재생산은 권리이지 ‘인구정치’의 도구가 아니다 / [재생산의 정치] 개인의 선택을 넘은 정의와 사회의 문제(2022.3.29)
"재생산권 운동이 주로 ‘생식’이 아니라 ‘재생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생산의 과정은 특정한 생식기능이 작동하는 시기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임신/중지 및 출산, 양육을 경험하게 되는지는 성별, 나이, 장애, 경제 상태 등 당사자가 딛고 있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복합적으로 결정되며 지속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생식이 아닌, 재생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재생산을 연속적이고 포괄적인 과정으로 인식하고 사회적인 사안으로 다루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아가 재생산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다시’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재생산이 첨예한 문제인 까닭은 무엇이 다시 생산될 만한 것이고, 무엇이 다시 생산되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가치체계가 드러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특정 인구의 재생산은 환영받고 장려되는 와중에 다른 특정 인구의 재생산은 금지되고 비난받는다. 즉 재생산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사회가 어떤 가치의 재생산을 추구해 왔는지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시도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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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낙태죄’ 폐지 활동가들이 장애인 시위에 연대하는 이유 / [재생산의 정치]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2022.4.28)
"세상의 차별과 불평등을 줄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연대’에 기반해 활동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해 겪은 각자의 고통을 나누고, 그 구조를 평등의 방향으로 함께 바꾸기 위해서일 것이다. 연대의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애초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대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기에 ‘당신의 고통은 무엇입니까?’라고 계속해서 물을 수 있기에 연대가 시작되고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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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거주할 권리, 재생산의 권리 / [재생산의 정치] 누구나 안전한 집에서 살 권리가 있다(2022.5.28)
"2018년 유엔 적정주거 특별보고관의 대한민국 방문결과 보고서는 고용 및 임금 차별로 인해 여성들이 주거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싱글맘을 기피 세입자로 만드는 문제, 여성 노인의 낮은 연금 액수 등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상속법이나 임대차 관련 법 모두 동거하던 성소수자 파트너가 사망했을 경우 남은 사람에게 거주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문제 또한 짚고 있다. 이는 모두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침해 요인이기도 하다. 안정적으로 충분한 소득을 벌지 못하는 것, 특정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 법·정책적 제도와 지원의 부재는 성과 재생산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주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활동가인 Jen Deerinwater는 “백인들이 우리의 동의 없이 원주민의 땅을 점령하고, 미국 정부가 부족들에 대한 신뢰와 의무를 저버리는 동안, 나는 매달 집세를 내야 한다. 분노스럽다”고 말한다. 엄청난 집세를 부담하면서도, 안전하고 안정적인 집에서 자유롭게 성을 향유하고 재생산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의 땅은 누구에게 귀속되어 있는가, 그 땅 위에 지어진 수많은 집들 사이에서 우리의 권리는 어디를 떠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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