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의료의 장벽, 모자보건법
김정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연구위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전, 임신중지는 형법을 통해 전면 금지되고, 모자보건법을 통해 일부 허용되었다. 모자보건법은 제14조에서, 낙태죄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지가 허용되는 사유와 요건을 정했다. 임신한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 강간이나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일 때, 혼인할 수 없는 친족간의 임신일 때, 임신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에 한하여, 의사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면 낙태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면서, 당연하게도 이 조항을 함께 검토했다. 그 결과,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라 일정한 임신중지가 허용되기는 하지만, 그 허용 범위가 좁다는 점을 낙태죄 위헌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므로 낙태죄가 더이상 적용되지 않는 지금, 낙태죄의 부속 조항인 모자보건법 제14조 역시 효력을 잃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임신중지의 금지와 처벌을 되살리고자 하는 시도에 따라, 낙태죄가 사라진 자리를 모자보건법이 메꾸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모자보건법 제14조를 여전히 각종 정책의 기준점으로 활용 중이며, 의료 현장에서도 이 조항이 임신중지의 법적 기준인 것처럼 사용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되기 전날인 2020년 12월 31일,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종래와 같이 유지하되 향후 법률 개정에 맞추어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1년 이후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모자보건법 제14조가 허용하는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었고 그 기준은 아직 그대로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에 변화가 없으니 의료 현장에서도 의사가 낙태죄로 처벌받던 불법 시기의 관행이나 인식을 바꿀 뚜렷한 동인이 없다.
몇 년 뒤 시행된 ‘위기임신’ 상담에서도 이 조항은 기준점이 되었다.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지 한참이 지난 2023년 10월 말,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위기임신보호출산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사유 등으로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산부 및 분만 6개월 미만의 여성’을 ‘위기임산부’로 정의하고, 지역상담기관이 ‘위기임산부’에게 제공하는 정보 중에 모자보건법 제14조를 끼워넣었다. 지역상담기관이 제공하는 상담은 ‘위기임산부’가 ‘자녀인 아동을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하는 상담으로, ‘자녀인 아동을 양육할 경우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급여 및 지원 사항’ 중 ‘모성 및 영유아 건강 증진을 위한 사항’에 모자보건법 제14조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사회보장급여도, 양육 지원 사항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단지 낙태죄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를 정하고 있을 뿐이다. 위기임신보호출산법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위기임산부가 임신중지 상담을 요청하면 지역상담기관에서는 ‘원가정, 양육, 입양, 보호출산 관련 정보’와 함께 ‘모자보건법 제14조 등 인공임신중절 관련 법, 제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결국 위기임신보호출산법에 따라 제공하는 ‘위기임신’ 상담이란, 임신중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미 실효된 임신중지의 제한 요건을 고지하고 출산 및 양육을 유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향성은 정부가 ‘위기임신’ 상담 수행기관을 어디로 지정했는지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재 지역상담기관은 ‘미혼모자 기본형 시설’에서 운영한다. 서울지역상담기관은 FAQ에서 한국위기임신출산지원센터가 ‘출산을 장려’하며 ‘낙태숙려상담’을 한다고 안내한다.
여성가족부도 모자보건법 제14조에 기초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성폭력 피해로 인한 의료 지원 및 의료비 지원을 하는데, 여기에는 임신중지도 포함되어 있다. 성폭력 피해자 의료 지원 근거법령에 따르면 지원 대상은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중지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가족부는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전반이 아니라, 모자보건법 제14조가 허용하는 성폭력, 즉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으로 임신중지 지원 범위를 제한하고 있었다. 의료 지원 대상인 ‘성폭력’의 범위는 ‘강간, 준강간’보다 더 넓기 때문에 임신중지 외의 의료 지원은 강간이나 준강간에 해당하지 않는 성폭력 피해여도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유독 임신중지에 대해서만큼은 모자보건법의 제한을 적용하고자 했다. 이렇게 지원 범위가 좁아지자, 여성가족부에서는 다른 요건을 가져와 그 공백을 메꾸고자 시도했다. 피해자에게 정신장애가 있어서 성폭력 피해 입증이 어려우면, 모자보건법의 낙태죄 적용 예외 중 ‘임신한 본인이나 배우자가 일정한 장애나 질환이 있는 경우’라는 장애차별적인 우생학적 사유를 적용하여 임신중지 의료 및 의료비 지원을 하도록 안내한 것이다.
임신중지 지원 대상 성폭력의 범위는 제한하고, 우생학적 사유를 보조적으로 적용하여 정신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임신중지 지원은 허용한다는 차별적 지침은,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다가 2025년에야 삭제되었다. 그러나 완전한 삭제는 아니었다. 성폭력 피해상담소의 운영지침에서는 지워졌지만, 피해자를 진료하고 직접 의료를 제공하는 해바라기센터의 지침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 지원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임신중지 지원은 다른 의료 지원과 달리 위축된 양상을 보인다. ‘강간, 준강간’이라는 모자보건법의 한계 속에 갇힌 임신중지 지원 과정은 여러 제약이 따르고, 증빙의 부담이 있다. 지원기관에 따라서는 임신중지 지원을 위해 경찰 신고, 유전자 일치, 강간 피해 등의 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성폭력 신고나 고소를 하지 않으면 임신중지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안내하고,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던 사례로 지원 범위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태아와 성폭력 가해자의 유전자가 일치하는지 확인한 뒤에야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낙인을 경험하게 하고 임신중지 시기를 늦추며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지원하기 또는 지원받기를 포기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여러 제약들은 관련 법령, 여성가족부, 지방자치단체, 경찰, 성폭력 피해 상담소, 해바라기센터, 병원 등 성폭력 피해로 인한 임신중지 지원에 관련된 여러 기관들의 상호작용에 따른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문제인데, 낙태죄가 사라진 이후에는 모자보건법 제14조가 법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더구나 모자보건법 제14조에는 임신중지를 위해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요건이 있다. ‘배우자’는 임신한 여성의 법률혼 또는 사실혼 배우자를 의미한다. 이 요건은 애초에 현실에 부합하지 않았지만 변형되어 실효적으로 작동했다. 임신이 현재의 배우자와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므로, 낙태죄가 적용되던 과거에도 의료 현장에서는 ‘배우자’가 아니라 ‘애기 아빠’의 동의를 요구했다. 물론 태아의 생부가 맞는지는 확인하지 않았고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이 법적 요건 아닌 요건은 수술에 대하여 환자의 상태나 이해 능력, 의료적 필요와 무관하게 보호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병원의 오랜 관행, 여성의 재생산건강 관련 결정에서 남편과 가족의 의견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의료의 역사와 결합하면서 여전히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가정폭력으로 이혼 예정인 여성에 대해서도 임신중지에 배우자의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현금으로 결제하라고 하면서 의료 기록을 거부하는 병원, 성폭력 피해 상담소에서 성폭력에 의한 임신임을 알리며 임신중지 의뢰를 했음에도 파트너, 즉 성폭력 가해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병원, 남자친구의 동행이 어려우면 전화로라도 동의하라고 하는 병원, 성인은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청소년은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병원, 자연유산으로 수술이 필요한 청소년에 대하여 부모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하는 병원 등, 모자보건법은 병원들의 이렇게나 다양한 제3자 동의 요구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한때 낙태죄 처벌의 예외였던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지금은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을 유지하고 임신중지 의료의 정상화를 저해하는 장벽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처벌의 범위를 설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법이 임신중지 정책의 기준이 되는 것은 타당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죄 위헌 판단에 따라 삭제되어야 하며, 앞으로는 임신중지에 대한 금지와 규제가 아닌, 재생산 건강 보장의 원칙 위에서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임신중지 의료의 장벽, 모자보건법
김정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연구위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전, 임신중지는 형법을 통해 전면 금지되고, 모자보건법을 통해 일부 허용되었다. 모자보건법은 제14조에서, 낙태죄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지가 허용되는 사유와 요건을 정했다. 임신한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 강간이나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일 때, 혼인할 수 없는 친족간의 임신일 때, 임신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에 한하여, 의사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면 낙태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면서, 당연하게도 이 조항을 함께 검토했다. 그 결과,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라 일정한 임신중지가 허용되기는 하지만, 그 허용 범위가 좁다는 점을 낙태죄 위헌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므로 낙태죄가 더이상 적용되지 않는 지금, 낙태죄의 부속 조항인 모자보건법 제14조 역시 효력을 잃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임신중지의 금지와 처벌을 되살리고자 하는 시도에 따라, 낙태죄가 사라진 자리를 모자보건법이 메꾸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모자보건법 제14조를 여전히 각종 정책의 기준점으로 활용 중이며, 의료 현장에서도 이 조항이 임신중지의 법적 기준인 것처럼 사용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되기 전날인 2020년 12월 31일,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종래와 같이 유지하되 향후 법률 개정에 맞추어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1년 이후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모자보건법 제14조가 허용하는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었고 그 기준은 아직 그대로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에 변화가 없으니 의료 현장에서도 의사가 낙태죄로 처벌받던 불법 시기의 관행이나 인식을 바꿀 뚜렷한 동인이 없다.
몇 년 뒤 시행된 ‘위기임신’ 상담에서도 이 조항은 기준점이 되었다.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지 한참이 지난 2023년 10월 말,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위기임신보호출산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사유 등으로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산부 및 분만 6개월 미만의 여성’을 ‘위기임산부’로 정의하고, 지역상담기관이 ‘위기임산부’에게 제공하는 정보 중에 모자보건법 제14조를 끼워넣었다. 지역상담기관이 제공하는 상담은 ‘위기임산부’가 ‘자녀인 아동을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하는 상담으로, ‘자녀인 아동을 양육할 경우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급여 및 지원 사항’ 중 ‘모성 및 영유아 건강 증진을 위한 사항’에 모자보건법 제14조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사회보장급여도, 양육 지원 사항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단지 낙태죄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를 정하고 있을 뿐이다. 위기임신보호출산법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위기임산부가 임신중지 상담을 요청하면 지역상담기관에서는 ‘원가정, 양육, 입양, 보호출산 관련 정보’와 함께 ‘모자보건법 제14조 등 인공임신중절 관련 법, 제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결국 위기임신보호출산법에 따라 제공하는 ‘위기임신’ 상담이란, 임신중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미 실효된 임신중지의 제한 요건을 고지하고 출산 및 양육을 유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향성은 정부가 ‘위기임신’ 상담 수행기관을 어디로 지정했는지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재 지역상담기관은 ‘미혼모자 기본형 시설’에서 운영한다. 서울지역상담기관은 FAQ에서 한국위기임신출산지원센터가 ‘출산을 장려’하며 ‘낙태숙려상담’을 한다고 안내한다.
여성가족부도 모자보건법 제14조에 기초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성폭력 피해로 인한 의료 지원 및 의료비 지원을 하는데, 여기에는 임신중지도 포함되어 있다. 성폭력 피해자 의료 지원 근거법령에 따르면 지원 대상은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중지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가족부는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전반이 아니라, 모자보건법 제14조가 허용하는 성폭력, 즉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으로 임신중지 지원 범위를 제한하고 있었다. 의료 지원 대상인 ‘성폭력’의 범위는 ‘강간, 준강간’보다 더 넓기 때문에 임신중지 외의 의료 지원은 강간이나 준강간에 해당하지 않는 성폭력 피해여도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유독 임신중지에 대해서만큼은 모자보건법의 제한을 적용하고자 했다. 이렇게 지원 범위가 좁아지자, 여성가족부에서는 다른 요건을 가져와 그 공백을 메꾸고자 시도했다. 피해자에게 정신장애가 있어서 성폭력 피해 입증이 어려우면, 모자보건법의 낙태죄 적용 예외 중 ‘임신한 본인이나 배우자가 일정한 장애나 질환이 있는 경우’라는 장애차별적인 우생학적 사유를 적용하여 임신중지 의료 및 의료비 지원을 하도록 안내한 것이다.
임신중지 지원 대상 성폭력의 범위는 제한하고, 우생학적 사유를 보조적으로 적용하여 정신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임신중지 지원은 허용한다는 차별적 지침은,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다가 2025년에야 삭제되었다. 그러나 완전한 삭제는 아니었다. 성폭력 피해상담소의 운영지침에서는 지워졌지만, 피해자를 진료하고 직접 의료를 제공하는 해바라기센터의 지침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 지원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임신중지 지원은 다른 의료 지원과 달리 위축된 양상을 보인다. ‘강간, 준강간’이라는 모자보건법의 한계 속에 갇힌 임신중지 지원 과정은 여러 제약이 따르고, 증빙의 부담이 있다. 지원기관에 따라서는 임신중지 지원을 위해 경찰 신고, 유전자 일치, 강간 피해 등의 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성폭력 신고나 고소를 하지 않으면 임신중지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안내하고,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던 사례로 지원 범위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태아와 성폭력 가해자의 유전자가 일치하는지 확인한 뒤에야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낙인을 경험하게 하고 임신중지 시기를 늦추며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지원하기 또는 지원받기를 포기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여러 제약들은 관련 법령, 여성가족부, 지방자치단체, 경찰, 성폭력 피해 상담소, 해바라기센터, 병원 등 성폭력 피해로 인한 임신중지 지원에 관련된 여러 기관들의 상호작용에 따른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문제인데, 낙태죄가 사라진 이후에는 모자보건법 제14조가 법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더구나 모자보건법 제14조에는 임신중지를 위해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요건이 있다. ‘배우자’는 임신한 여성의 법률혼 또는 사실혼 배우자를 의미한다. 이 요건은 애초에 현실에 부합하지 않았지만 변형되어 실효적으로 작동했다. 임신이 현재의 배우자와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므로, 낙태죄가 적용되던 과거에도 의료 현장에서는 ‘배우자’가 아니라 ‘애기 아빠’의 동의를 요구했다. 물론 태아의 생부가 맞는지는 확인하지 않았고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이 법적 요건 아닌 요건은 수술에 대하여 환자의 상태나 이해 능력, 의료적 필요와 무관하게 보호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병원의 오랜 관행, 여성의 재생산건강 관련 결정에서 남편과 가족의 의견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의료의 역사와 결합하면서 여전히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가정폭력으로 이혼 예정인 여성에 대해서도 임신중지에 배우자의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현금으로 결제하라고 하면서 의료 기록을 거부하는 병원, 성폭력 피해 상담소에서 성폭력에 의한 임신임을 알리며 임신중지 의뢰를 했음에도 파트너, 즉 성폭력 가해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병원, 남자친구의 동행이 어려우면 전화로라도 동의하라고 하는 병원, 성인은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청소년은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병원, 자연유산으로 수술이 필요한 청소년에 대하여 부모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하는 병원 등, 모자보건법은 병원들의 이렇게나 다양한 제3자 동의 요구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한때 낙태죄 처벌의 예외였던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지금은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을 유지하고 임신중지 의료의 정상화를 저해하는 장벽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처벌의 범위를 설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법이 임신중지 정책의 기준이 되는 것은 타당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죄 위헌 판단에 따라 삭제되어야 하며, 앞으로는 임신중지에 대한 금지와 규제가 아닌, 재생산 건강 보장의 원칙 위에서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