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05월[국제이슈] 이동권-물리적 접근을 넘어 이동 정의(mobility justice)로

이동권-물리적 접근을 넘어 이동 정의(mobility justice)로


최한별(한국장애포럼)


-휠체어 이용 장애인인 A 씨는 어렵사리 입구에 턱이 없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를 이용하기엔 내부가 좁아 위험하다’는 이유로 나갈 것을 요구받았다. 입구쪽 테이블에 앉아서라도 먹겠다고 하였으나, 식당 측이 “휠체어가 너무 커서 다른 손님들이 불편하다”며 재차 거부해 A 씨는 결국 식사를 하지 못한 채 나와야 했다. 


-장애여성 B 씨는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몸도 불편한 여자가 위험하게 왜 늦게까지 다니느냐,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하는 남자를 만났다. 남자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뇌병변장애인인 B 씨는 붐비는 지하철 막차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가기가 어려웠다. B 씨는 결국 집에서 두 정거장 전에 내려 택시를 타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남자는 택시를 타기 전까지 B씨를 따라왔다.


놀랍게도 위 두 사례는 모두 나의 친구들이 직접 경험한 일이다. 심지어 A가 찾은 식당은 내가 추천한 곳이었다. 담백하고 정갈한 음식이 나오고, 응대도 친절해 누군가와 함께 다시 오고싶다고 생각하던 식당이었다. 물론 내부가 조금 좁긴 하지만, 입구가 넓었고 턱도 아주 낮아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A도 ‘접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판단은 완전히 틀렸다. B의 집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5분도 안 걸리는 ‘초역세권’이었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B는 조금 비싸지만 대중교통 환승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집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B는 ’초역세권’ 집에 지하철이 아닌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그날, B에게 지하철을 타고 집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A와 B에게 식당과 지하철은 정말 ‘접근가능한’ 공간이었는가? 두 사람에게 ‘이동권’은 정말로 보장되고 있는가? 



‘접근성'의 진정한 의미와 ‘이동 정의(Mobility Justice)’


이 글에서는 사회적 위계를 드러내고 또다시 그 위계를 공고히하는 이동 체계를 비판함으로써 이동권의 교차성을 분석하는 해외 연구 동향을 소개하고, 이에 기반해 장애여성이 이동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차별을 이동권/접근권의 범주에서 읽어보고자 한다. 


최근, 장애인 이동권 이슈가 우리 사회에서 급부상했다. 이동권은 접근권(Right to accessibility)의 한 범주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UN CRPD)은 접근성을 “장애인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고, 사회에 완전히, 그리고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규정한다. CRPD 제9조(접근성)에 관한 일반논평 2는 “접근성이야말로 장애인권리협약의 바탕이 되는 기본 원칙”이며, “장애인에게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당사국의 의무는 평등과 비차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에 근거하여 접근성을 (1) 물리적 접근성 (2) 정보 접근성 (3) 인식적 접근성으로 분류했다. (3)은 통상 ‘서비스 접근성'으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재화나 정보,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아선 안된다는 원칙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인식적 접근성'으로 부르고자 한다. 


A의 경우, 물리적/정보적 접근이 가능한 식당을 찾았으나, 식당 주인이 ‘장애인 보장구는 위험하다'는 차별적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가게에 접근할 수 없었다. B의 경우에도 지하철은 물리적으로나 정보적으로나 접근가능했음에도, ‘장애여성은 성폭력에 저항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범죄적(!) 인식으로 인해 결국 이용을 중단해야 했다. 


장애인 이동권은 통상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성’ 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이동의 목적은 수송 그 자체가 아니라, 어딘가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비장애 시민과 마찬가지로 안전하고 빠르게 학교에, 일터에, 영화관에, 야구장에 도달할 수 있는 교통수단과 거리(street)를 요구하는 것이 이동권 투쟁의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이동권’이란 필연적으로 ‘사회에 유의미하게/안전하게 참여할 권리’를 전제로 한다. 아무리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지하철이, 버스가, 택시가 생겨난다 한들 장애인에게 갈 곳이 없다면, 도달한 장소에서 평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동 과정이 안전하고 통합적이지 않다면 교통수단에 대한 완전한 물리적 접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BIPOC(Black Indigenous People of Color) 집단으로서,

모든 지역사회에 이동 정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심는 활동을 하는 단체의 로고 이미지

https://www.peopleformobilityjustice.org/ 



이런 맥락에서, 해외에서는 교통수단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을 넘어서는 이동 정의(Mobility Justice)가 논의되고 있다. 미미 쉘러(Mimi Sheller) 우스터 공과대학(Worcester Polytechnic Institute) 글로벌 스쿨 학장은 바로 이 ‘이동 정의' 연구가이다. 쉘러 교수는 이동 정의를 논하며 다음 질문을 던진다.[ref] Sheller, Mimi. “Theorising mobility justice.” Tempo Social, 2018[/ref]


- 이동권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특정 상황에서 이동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이동할 수 있고 누가 이동할 수 없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누가 이동 체계를 관할하고 통제하는가? 통치와 규율 체계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다른 몸들을 동등하지 않은 이동 대상으로 만들어왔는가?

- 어떤 대항세력과 체제전복적 이동수단들이 이러한 이동 체계에 저항, 전복, 도전 또는 탈출하기 위한 움직임들을 드러낼 수 있는가?

- 우리는 어떻게 더 큰 이동 정의를 구축할 수 있는가? 

- “불균등한 이동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쉘러 교수는 “(질문을 통해 얻어진) 개념들은 다양한 이동을 통제하는 과정을 통해 인종, 민족,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또는 손상에 계급을 발생시키는 불균등한 이동성과 접근성을 고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쉘러 교수에 따르면 이동(mobility)은 사회의 권력 구조를 반영한다. 이성애자/백인/비장애인/성인/남성에 가까울수록 이동권은 안전하고 다양하게 보장된다. 그러나 성소수자/유색인/장애인/미성년자/비-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될수록, 이동 범위는 좁아지고, 불안정해지고, 위험해진다.


이제 이동권은 단순히 교통수단에 접근할 수 있느냐(때로는 이 자체도 유의미한 지표이다)뿐만 아니라 교통수단을 이용해 어딘가로 이동하는 일련의 프로세스에서 개개인 고유의 정체성이 존중 되는지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길을 걷다 혐오 공격을 당하는 트랜스젠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불편한 존재'로 인식되곤 하는 자폐성 장애인, 국경간 이동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써야 하는 난민, 이스라엘이 구축한 장벽에 둘러싸인 팔레스타인을 떠올려 보자.


로자 팍스(1913~2005)는 199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버스에서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를 거부하여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민권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사진: https://centerforblackliterature.org/rosa-parks-bus-boycott-civil-rights-facts/)



안전하지 못한 이동, 배제되는 장애여성


정체성에 따른 이동권 침해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그 안에서도 불균등하다. 예를 들어, 남성인 A씨는 B씨처럼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경험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은 동일하지만, B씨는 장애여성이라는 교차적 정체성으로 인해 더 높은 이동권 침해를 경험한다. 


앞서 살펴본 B의 사례는 많은 장애여성들에게 결코 새롭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여성혐오와 장애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장애여성은 너무나 자주, 너무 쉽게 폭력의 대상이 되곤 한다. 매끄럽지 못한 대중교통 물리적 접근성으로 인해 장애인, 특히 보장구를 사용하는 이들은 종종 타인의 조력을 받게 되는데(때로는 본인이 원치 않음에도!), 이 과정에서 장애여성은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경험하기도 한다.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때도 성폭력은 발생한다 특별교통수단의 경우, 인력과 차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해자를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당사자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ref] 장애인콜택시 내 성범죄, 예방 교육 이뤄져야, https://theindigo.co.kr/archives/8103,  2020.8.11.[/ref]


이러한 경험은 장애여성의 사회참여를 위축시키게 된다. 때로는 자기 스스로, 때로는 타인에 의해, 장애여성은 혼자/너무 늦은 시간에/너무 멀리/너무 오래 이동하고 외부에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는 곧 장애여성의 사회 참여를 저하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가나에서 진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대중교통에 대한 접근성이 곧 장애여성과 그 자녀들의 건강, 직장 및 자영업 등 경제활동과 직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ref]Naami, A., R. Hayashi, and H. Liese, The unemployment of women with physical disabilities in Ghana, Disability and Society,  2012[/ref] [ref] Ganle, J.K., E. Otupiri, B. Obeng, A.K. Edusie, A. Ankomah, and R. Adanu, Challenges women with disability face in accessing and using maternal healthcare services in Ghana: A qualitative study, 2016[/ref] 장애여성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없는 시스템은 그 자체로 이 사회의 위계를 드러내면서도, 또다시 위계를 공고히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동권'이 더이상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만의 문제가 아님을 안다. ‘서울시 저상버스 도입률 50%’,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율 97%’같은 숫자가 곧 이동권 보장을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동권과 접근권은 곧 사회에 (안전하게) 드러날 권리, 사회에 차별없이 참여할 권리이며, 따라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차별하고 배제했던 몸들이 드러나고 퍼져나가도록 경로를 쟁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이동권 투쟁을 물리적 평등에 대한 이해가 아닌, 이 사회가 어떤 존재들이 이 사회에 ‘흐르지' 못하도록 막아왔는지 고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동권 투쟁에 대한 공격이 탈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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