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의 달 맞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작가 이반지하 인터뷰
퀴어는 버티고, 헤테로는 겸양을!
“플러스 플러스 헤테로 프라이드, 하지 말자.
마이너스 마이너스로, 프라이드적인 해피를 조금 마이너스 부탁드린다는 말씀”
자긍심의 달 Pride Month 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그런데 해가 갈수록 자긍심의 달에 제일 신나는 건 왠지 기업들인 것 같다. 온갖 글로벌 기업들이 프라이드 에디션을 내놓는 와중에 올해 휴먼라이츠캠페인(HRC)은 삼성전자 미국법인을 ‘성소수자 평등을 위한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프라이드여, 어디로 가는가. 이 혼돈의 와중에 ‘성적권리는 어떻게 프라이드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6월 이슈페이퍼의 주제로 잡은 셰어는 아무래도 현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단식 농성이 46일차를 맞이하고 농성을 마무리하는 문화제가 예정되어 있던 5월 26일 아침, 이반지하를 만났다.
만난 날: 5월 26일
만난 사람: 셰어(나영, 타리), 이반지하
셰어
시작을 해볼까요. 우선 감태(이반지하의 팬)들로서, 인터뷰를 하게 된 것에 설레고 뻐렁치는(가슴이 두근두근 뛰며 기쁘고 왠지 자랑스러워 주체할 수 없다) 마음을 감출 수 없으며… 프라이드의 달이라고 하는 6월을 앞두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투쟁과 윤석열과의 투쟁과 전쟁과 기후위기에 대한 근심걱정을 모아… 인터뷰 질문을 드려봅니다.
이반지하
허. 그래요. 근데 저는 질문지를 받고 깜짝 놀랐어요. 이런 엄청 되게 큰 걸 물어보면서 말야. 염가로 퉁칠려고 했어. 진짜. 정때매 하는 인터뷰여. 징그러.
셰어
아니~ 뭐, 오호호호. 우리는 이반지하를 인터뷰하려면 질문의 수준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해가지구.
아무튼 우리가 이번 호 이슈페이퍼는 프라이드를 주제로 해보자 이런 얘기를 하다가 무슨 얘기를 할까 했는데 딱 이반지하가 떠올랐거든요. 왜냐면 이반지하는 너무 그 자체로 프라이드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너무나 제대로 보여주는, 그런 느낌이기 때문에.
이게 사실은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책에서도 그렇고 우리가 사실 프라이드를 설명하기가 곤란할 때가 많은데요, 사실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이런 말 되게 많이 하잖아요. 퀴어퍼레이드하고 그러면 너네가 뭔데 그렇게 나와서 나대고 자랑을 하냐 이러죠. 그런데 사실 정말 이 프라이드라는 게 그냥 자랑하는 게 아니라 응축된 애환이 있는 거잖아요? 실은 이 존재와 삶을 구구절절한 언어로 설명하기 보다 “우린 이래” 하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 걱정하는 자와 걱정시키는 자의 위치를 전복시키는 것 같은 거죠. 그런 태도가 이반지하를 통해서 나올 때, 우리가 집회나 다른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기억해라. 너희들이 광대를 볼 때 광대도 너희를 보고 있다” 같은 말들도 그렇고요. 이반지하가 생각할 때 이 프라이드의 의미에 담고 싶은 얘기들은 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이반지하
저는 처음에 그 질문지를 보고서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또 굉장히 또 논쟁적인 말이 될 수 있겠는데, 저는 이제 프라이드는 기본적으로 양나라 것이다, 수입된 개념이다 이거지, 그래서 프라이드 요런 거는 약간 백인 애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 문화권은 내리고 내리고 겸양하고 물러나고 이런 문화권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우리 쪽의 프라이드 보다는 어떤, 헤테로의 겸양이 아닌가. 우리 쪽 애들은 그냥 살면 돼.
헤테로라고 뭐 대단하게 사는 거 아니잖아요? 100년 못 살 거 아니야. 그러면서 지구도 망하게 하고 죽는 거 아니에요. 그걸 좀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도 이제 미니멀리즘 쪽으로 가고 있잖아요? 플러스 플러스 헤테로 프라이드 하지 말자 마이너스 마이너스로, 프라이드적인 해피를 조금 마이너스 부탁드린다는 말씀, 부탁 좀 드릴게요.
저는 사실 그런 마음이 더 커요. 공연을 할 때나 뭔가를 할 때 당연히 저도 이 사회에 발 붙이고 있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되게 사사로운 여러 차별 상황들이나 그런 상황에서 프라이드적 행동, “시발 뭔데. 조까” 이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게 그냥 나한테는 소위 말하는 ‘노말’인데. 별거 아니야. 내 삶이 뭐 그렇게 남들보다 위에 있지 않듯이 헤테로들도 별거 없다, 그게 저는 사실 핵심이에요.
남자로서 여자 좋아하고 여자인데 남자 좋아하고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거를 오히려 좀 헤테로 쪽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아닌가. 지금 그 헤테로 프라이드가 너무 심해요. 그럴 거 아니거든요. 내리라고 자기를 좀.
셰어
어우 진짜. 너무 너무 와닿는 말이네요. 그 헤테로 프라이드가 제도화되어 권력으로 작용하는게 핵심인 것 같아요.
이반지하
그러니까. 지금 지구도 너무 아프고, 기후 위기 왔고. 우리 헤테로 친구들의 입장도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 좀 그 프라이드를 좀 없애셔야 돼. 그건 정말 아니다.
셰어
그럼 헤테로는 겸양이 필요하고, 퀴어는 어떻게 할까요?
이반지하
일단 ‘프라이드’라는 게 여전히 전략으로 또 필요하기는 하지만 한국말로 ‘자긍심’ 이러면 또 좀 의미나 느낌이 다르고 좀 더 좋은 말을 좀 개발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의 개념에서 우리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계속 로컬의 언어를 좀 개발해야 될 필요는 있는거지.
요즘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이런 걸 통해서 서양의 프라이드적 모먼트나 행사 이런 것들을 보게 되니까 그거를 우리도 갖고 와서 비슷한 효과를 얻기도 하죠. 근데 조금 다른 접근도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저도 이제 팬들에게 자긍심을 가지라고 하기보다는 버티라는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버티기 위해서는 자긍심을 갖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경우일 때도 있긴 하겠죠. 어쨌든 모두가 버티는 것인데, 다만 헤테로들이 너무 지금 과한 자부심으로 버티고 있어.
우리가 일상을 버티는 것도 왜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워서 버티는 거보다 휴가 한번 갔다 와서 또 좀 버텨보고, 그런 것들을 구심점으로 버티는 거잖아요. 사실 퀴어퍼레이드 같은 것을 했을 때는 군중이 주는,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되게 큰 에너지를 받죠. 그런데 그것만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계속 그런 모먼트를 서로 일상적으로 만들어주면서 버텨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셰어
아까 프라이드에 대해 양나라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에 있는 ‘데이에게’[ref]『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에 실린 글. 영어권에서 이분법적 성별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들의 주어를 she나 he가 아닌 they로 지칭하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에 대해 이야기한다[/ref]를 보면서 정말 현재의 어떤 시차나 간극을 절묘하게 잘 묘사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번 호 이슈페이퍼에 들어가는 두 번째 글도 성소수자 인권의 제도화를 거치면서 나타나는 국제적인 간극에 대한 리포트인데요, 서구에서 새로운 용어들이 계속 나오면서 우리도 빠르게 영향을 받고, 또 이제 어딘가에서는 동성결혼이나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퀴어 가족과 소비 시장이 연구되고, 성소수자 인권이 외교적인 힘으로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상황들에 계속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작년에 북미 투어도 다녀오셨잖아요? 이런 시차와 간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시대에 필요한 우리의 자세라든지.
이반지하
그거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가 막 퀴어문화축제나 이런 데 오는 주로 서구 대사관 친구들을 보면, 물론 그게 한편으로는 도움이 되죠. 이게 진짜 국제적으로 공식적인 서포트가 있는 거네, 이게 뭔가 우리도 좀 받아들여야 되는 것인가 보네 이런 식의, 좀 구리지만 그런 인상을 줄 수 있는 거는 맞는 것 같아요. 근데 현실로서는 또 좀 재수 없죠.
‘데이에게’도 제가 너무 통렬히 느꼈던 것이었는데, 저는 한 때 생계를 위해서 영어 강사를 꽤 오래 했었거든요. 우리가 특히 스피킹 같은 거 연습을 할 때 단수, 복수 주어 동사 숫자를 맞추는 게 우리한테 없는 개념이기 때문에 정말 어렵잖아요. 그게 걔네한테는 너무 강력한 부분이어서 항상 지금도 a를 빼먹었다, 복수 명사인데 단수 대명사로 받았다 어쨌다가 되게 중요하고 그런 거죠. 근데 어느 날 진짜 딱 그 해외 영화제에 가서 거기서 알게 된 친구들을 만났더니 데이 they라는 말을 쓰는데 난 그게 너무 얄밉고 진짜 너무 원망스러운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they를, 얼마나 이거를 얘네 어법에 맞추고 견뎌왔는데, 갑자기 지금 뭐라고?
제가 그 책을 집필할 당시에는 they를 주어로 쓰면서 동사는 단수로 쓰는 걸 봤는데, 작년 12월에 미국 가서 들은 얘기로는 요즘엔 또 they에 동사도 복수로 맞춰 쓰는데 그러면서 단수(1명)로 취급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진짜 ‘지랄’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지. 그래서 내가 욕을 했어. 그랬더니 걔네도 지금 되게 혼란스러운 와중이라고 하더라고. 어쨌든 언어라는 건 움직이는 거니까, 계속 이렇게 진화를 하고 있다라는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문제는 지네가 진화하면, 우리는? 그 영어를 따라잡아야하는 입장에 있는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힘들고, 영어를 어거지로 ‘학습’한 사람으로서 다양성 맞춰서 말을 하려니까 진짜 쉽지 않다. 근데 그게 또 한국에도 그 개념이 어중간하게 그대로 들어오니까 참 어렵죠.
그래서 ‘젠더 쫓김이’라는 말을 자체적으로 제가 만들었던 것 같아요.진짜 계속 젠더에 쫓기는 그 느낌. 그게 우리 사회에서 지정한 어떤 그 젠더일 수도 있고 혹은 젠더라는 개념에도 쫓기는 느낌일 수도 있죠. 젠더라는 영어 개념에 쫓기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젠더 쫓김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앞으로도 그런 말을 만드는 거에 저는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셰어
그러게요. 그게 주는 되게 유레카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뭔가 말하기 어렵거나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탁 와닿게 말해주는 느낌! 그걸 예술가가 딱 말해준다! 그런.
이반지하
그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사실 어떤 면에서 저의 존재가 그냥 단순히 퀴어 이런 걸 떠나서 되게 많은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쟤는 활동가냐 예술가냐 음악가냐 미술가냐 퍼포머냐 글쟁이냐 그 모든 게 혼재되어서 제 이메일에 쌓이죠.
근데 그것 자체가 저인 것 같고 사실은 그게 매 순간 되게 어렵고 각각의 사람들한테 내가 가진 이 비전을 어떻게 말을 해야 되지 하는 생각은 계속 들긴 하는데, 어쨌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고 있고. 니들 활동가 분들도 활동가분들의 일이 있으신 거니까요.
셰어
책에서 ‘젠더 쫓김이’나 ‘데이they에게’를 읽고, 또 오늘 이야기도 들으면서 좀 위로받는 느낌 같은 것도 들었어요. 항상 우리가 외부에서 먼저 온 것을 가지고 그게 어느 새 절대적인 어떤 원칙이 돼버리니까, 이제는 또 항상 젠더에 대해서도 매번 설명해야 될 것 같은데 이 자체가 외부에서 주어진 개념과의 사이에서 계속되는 쫓김일수도 있고, 우리한테 바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어떤 시간을 주는 거. 프라이드도 좀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이반지하
어쨌든 한국 동성애 운동 역사, 혹은 퀴어 운동 역사가 아직은 역사가 좀 짧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당연히 어려움이 있고, 또 어떤 말은 정말 영어로 써야 사람들이 더 빨리 알아듣는 것도 있긴 하죠
그치만 예를 들어 해외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통과되고 그런 게 물론 감동적이고 되게 큰 일이지만 그게 지금 우리에겐 어떤 이슈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되거든요. 그것 덕분에 우리도 어떤 논의를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작금의 우리는 차별금지법도 통과가 안 되고 이러고 있는 게 사실 너무 기가 막히잖아요. 무슨 이거를 단식까지 해야 하고. 그러니까 각 사회마다 특성이 있는데 지금 젊은 퀴어들이 뭐를 절박하게 생각하고 뭘 고민을 하고 있는지, 지금 절박하게 느끼는 것들 사이에 간극이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쩔 때는 동성결혼 보다 청소년 알바 임금 투쟁해야 될 것 같은데, 그게 사실 집을 나와서 살게 되는 청소년들에게는 더 핵심적인 운동일 수도 있고 막 그러니까. 그런 생각 해요. 되게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요.
물론 동성결혼이 인정된다면 나비 효과처럼 또 어떤 영향이 있겠죠. 근데 아시다시피 정답은 없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그 중에 하나라도 얻어 걸려가지고 이제 사회 변화가 일어나는 건데.
그래서 사실 셰어가 표방하고 있는 태도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기존의 묶음 단위가 아니라 새로운 단위를 개발해서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연대를 만들고 이슈를 묶어내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대충 본거라 칭찬도 대충 드립니다만. 우리도 그냥 ‘퀴어’만으로 묶이는 한 덩어리가 아니잖아요. 그 안에도 되게 많은 계층이 있고, 노동권 문제가 있고, 그러니까 뭔가 좀 더 포괄적인 시선을 갖고 있고 그런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셰어
그런 의미에서, 독서신문 인터뷰[ref]송석주, [명사에게 듣다] 이반지하 “인생? 힘들지만 견뎌야지, 뭐 별수 있나”, 독서신문, 2021.08.15. https://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864[/ref]에서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는 『전태일 평전』의 ‘21세기 퀴어 버전’이라 할만하다.”는 평을 한 것도 저는 되게 인상적이었는데요, 우리가 교차성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이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드러내고 대중적으로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반지하의 글을 통해 이게 굉장히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다가간 것 같습니다. 어떤 하나의 정체성으로서가 아니라 여성, 퀴어, 생존자, 정병러, 예술가로서의 위치가 경제적, 사회적 상황들과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가지는 힘이 있어요. 이 점이 ‘퀴어’라는 쉽지 않은 키워드가 전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반지하를 읽고, 듣고, 접하는 사람들의 폭을 넓혀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좀 더 가능해질 수 있을까요?
이반지하
저는 그 전태일 평전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제법인데’ 하는 쾌감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끝까지 그 책을 쓰면서 하지 않았던 것이 퀴어가 뭔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설득하는 거였거든요.
계속해서 요구받았지만 끝까지 해주지 않은 게 그거예요. 앞으로도 절대 해주지 않을 거고. 그건 니들 활동가랑 연구 쪽 애들이 하세요.
제가 아쉽게 느끼는 것은, 이게 결국 동성애, 이성애 프레임으로 우리가 먼저 규정지어졌고, 사회에서 우리를 그렇게 불러서 우리가 그걸 가지고 토대로 운동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마치 정말 우리가 성 sex 밖에 없는 인간인 것처럼 보여지는 것, 그게 좀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 얘기는 우리는 계속 분류되기만 하고 인간이 되지 못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그 책을 통해서 그냥 이것이 퀴어라고도 불리는 어떤 사람의 ‘삶’이다라는 얘기를 입체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셰어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퀴어로서도 이 책에서 굳이 퀴어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이반지하
그게… 그게 그런 갈등이 계속 좀 있어요. 예술가로서. 사람들은 계속 좀 쉬운 언어를 원하고. 앞에 나와 있는 사람이니까, 답해주기를 원하고.
셰어
그렇죠. 연결된 얘기지만 그런 식으로 자꾸 성소수자 하면 ‘성’에만 그 의미가 붙어 있는데 이 책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생존자, 생존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얘기가 나오는데, 그 말에 다들 힘을 많이 받는 것 같더라구요. 버티라는 말에 그렇게들 또 많이들 울고. 그래서 참 이 퀴어들한테 ‘생존’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걸까 이런 생각도 들고. 저는 책의 첫 부분에 나오는 “생존자 조심해라”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이 얘기를 좀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반지하
그게 저도 자꾸 까먹지 않으려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저도 살면서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 마주하잖아요. 근데, 야, 너는 부모도 떠났어, 시발 천륜도 끊었어, 하면 차라리 그런 게 주는 힘이 있어요. 그게 내가 생각하는 생존자인 거예요.
<퀸스 갬빗>에서도 그렇고, 사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게 취약점이잖아요. 고아다, 얘는 기댈 데도 없어, 사람들은 그걸 흠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것 때문에 얘가 여기 있는 거거든요. 그것 때문에 질 수 없고. 그런 거죠. 더 이상 이제 돌아갈 곳도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안 무섭다면 안 되죠.
근데 그렇게 뭐든 안 무섭고 비장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많아져야 되는가, 그건 모르겠어요. 그건 슬픈 일이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그런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되면 더 좋겠다. 안전망이든 그게 뭐든.
셰어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퀴어에게 프라이드는 약간 역설적으로 그렇게 생존을 하기 때문에 나오는 거 같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이반지하
그리고 제가 느끼는 거는 주변 일상에 퀴어 친구들, 그런 애들이 많아질수록 프라이드라는 개념 자체를 많이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프라이드라는 건 정말 사회에 대항 하기 위한 개념이니까. 그래서 소위 말하는 헤테로 정상사회 안에 있으면 프라이드가 있어야지 버틸 수 있지만 조금만 비정상적으로 나와버리면은, 시발 프라이드고 나발이고. 반찬이나 나눠 먹고 이런 거지.
셰어
앜ㅋㅋㅋㅋ 너무 중요한 말이다. 그렇지 반찬이나 나눠 먹는 게 더 중요하지. 진짜 이 인터뷰 보람이 있네요. 다들 진짜 들어야 된다. 오늘 해준 얘기들 정말 너무 동의하고, 그 동안 참 이런 이야기들, 문제의식들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많이 얘기되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 작업하고 계신 차기작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반지하
일단 6월 11일 3시 고양레지던시에서 라이브 드로잉 토크쇼가 있어요. 5월 27일부터 예매 가능하고 20명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그리고 6월 1일부터 문학동네에서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독파 챌린지가 있어요. 독려 메세지도 받고 편집자가 뒷얘기도 풀어주고, 14일에는 챌린지 도전자들 대상으로 북토크도 합니다.
6월 22일 2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이반지하를 주제로 한 공개 세미나가 열려요. 예매 없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또, 7월 첫째 주에 문학잡지를 통해 신작 글을 하나 발표할 예정이고, 두번째 에세이집을 준비 중입니다. 아마 올해 안에 보실 수 있을거에요.
그렇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결국 ‘반찬을 나눠 먹는 것’ 아니겠는가. 애초에 퀴어 프라이드란 죽음과 위험, 일상적인 낙인과 단속을 함께 경험했던 변태들의 공동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지개로 장식한 프라이드 에디션 보다는 일상의 반찬, 그리고 반찬을 함께 나눠 먹을 비정상 친구들, 그 관계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프라이드임을 잊지 않는 것. 혼돈의 프라이드 시대를 버티며 살아가는 현명한 성소수 시민의 자세일 것이다.
프라이드의 달 맞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작가 이반지하 인터뷰
퀴어는 버티고, 헤테로는 겸양을!
“플러스 플러스 헤테로 프라이드, 하지 말자.
마이너스 마이너스로, 프라이드적인 해피를 조금 마이너스 부탁드린다는 말씀”
자긍심의 달 Pride Month 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그런데 해가 갈수록 자긍심의 달에 제일 신나는 건 왠지 기업들인 것 같다. 온갖 글로벌 기업들이 프라이드 에디션을 내놓는 와중에 올해 휴먼라이츠캠페인(HRC)은 삼성전자 미국법인을 ‘성소수자 평등을 위한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프라이드여, 어디로 가는가. 이 혼돈의 와중에 ‘성적권리는 어떻게 프라이드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6월 이슈페이퍼의 주제로 잡은 셰어는 아무래도 현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단식 농성이 46일차를 맞이하고 농성을 마무리하는 문화제가 예정되어 있던 5월 26일 아침, 이반지하를 만났다.
만난 날: 5월 26일
만난 사람: 셰어(나영, 타리), 이반지하
셰어
시작을 해볼까요. 우선 감태(이반지하의 팬)들로서, 인터뷰를 하게 된 것에 설레고 뻐렁치는(가슴이 두근두근 뛰며 기쁘고 왠지 자랑스러워 주체할 수 없다) 마음을 감출 수 없으며… 프라이드의 달이라고 하는 6월을 앞두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투쟁과 윤석열과의 투쟁과 전쟁과 기후위기에 대한 근심걱정을 모아… 인터뷰 질문을 드려봅니다.
이반지하
허. 그래요. 근데 저는 질문지를 받고 깜짝 놀랐어요. 이런 엄청 되게 큰 걸 물어보면서 말야. 염가로 퉁칠려고 했어. 진짜. 정때매 하는 인터뷰여. 징그러.
셰어
아니~ 뭐, 오호호호. 우리는 이반지하를 인터뷰하려면 질문의 수준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해가지구.
아무튼 우리가 이번 호 이슈페이퍼는 프라이드를 주제로 해보자 이런 얘기를 하다가 무슨 얘기를 할까 했는데 딱 이반지하가 떠올랐거든요. 왜냐면 이반지하는 너무 그 자체로 프라이드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너무나 제대로 보여주는, 그런 느낌이기 때문에.
이게 사실은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책에서도 그렇고 우리가 사실 프라이드를 설명하기가 곤란할 때가 많은데요, 사실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이런 말 되게 많이 하잖아요. 퀴어퍼레이드하고 그러면 너네가 뭔데 그렇게 나와서 나대고 자랑을 하냐 이러죠. 그런데 사실 정말 이 프라이드라는 게 그냥 자랑하는 게 아니라 응축된 애환이 있는 거잖아요? 실은 이 존재와 삶을 구구절절한 언어로 설명하기 보다 “우린 이래” 하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 걱정하는 자와 걱정시키는 자의 위치를 전복시키는 것 같은 거죠. 그런 태도가 이반지하를 통해서 나올 때, 우리가 집회나 다른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기억해라. 너희들이 광대를 볼 때 광대도 너희를 보고 있다” 같은 말들도 그렇고요. 이반지하가 생각할 때 이 프라이드의 의미에 담고 싶은 얘기들은 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이반지하
저는 처음에 그 질문지를 보고서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또 굉장히 또 논쟁적인 말이 될 수 있겠는데, 저는 이제 프라이드는 기본적으로 양나라 것이다, 수입된 개념이다 이거지, 그래서 프라이드 요런 거는 약간 백인 애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 문화권은 내리고 내리고 겸양하고 물러나고 이런 문화권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우리 쪽의 프라이드 보다는 어떤, 헤테로의 겸양이 아닌가. 우리 쪽 애들은 그냥 살면 돼.
헤테로라고 뭐 대단하게 사는 거 아니잖아요? 100년 못 살 거 아니야. 그러면서 지구도 망하게 하고 죽는 거 아니에요. 그걸 좀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도 이제 미니멀리즘 쪽으로 가고 있잖아요? 플러스 플러스 헤테로 프라이드 하지 말자 마이너스 마이너스로, 프라이드적인 해피를 조금 마이너스 부탁드린다는 말씀, 부탁 좀 드릴게요.
저는 사실 그런 마음이 더 커요. 공연을 할 때나 뭔가를 할 때 당연히 저도 이 사회에 발 붙이고 있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되게 사사로운 여러 차별 상황들이나 그런 상황에서 프라이드적 행동, “시발 뭔데. 조까” 이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게 그냥 나한테는 소위 말하는 ‘노말’인데. 별거 아니야. 내 삶이 뭐 그렇게 남들보다 위에 있지 않듯이 헤테로들도 별거 없다, 그게 저는 사실 핵심이에요.
남자로서 여자 좋아하고 여자인데 남자 좋아하고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거를 오히려 좀 헤테로 쪽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아닌가. 지금 그 헤테로 프라이드가 너무 심해요. 그럴 거 아니거든요. 내리라고 자기를 좀.
셰어
어우 진짜. 너무 너무 와닿는 말이네요. 그 헤테로 프라이드가 제도화되어 권력으로 작용하는게 핵심인 것 같아요.
이반지하
그러니까. 지금 지구도 너무 아프고, 기후 위기 왔고. 우리 헤테로 친구들의 입장도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 좀 그 프라이드를 좀 없애셔야 돼. 그건 정말 아니다.
셰어
그럼 헤테로는 겸양이 필요하고, 퀴어는 어떻게 할까요?
이반지하
일단 ‘프라이드’라는 게 여전히 전략으로 또 필요하기는 하지만 한국말로 ‘자긍심’ 이러면 또 좀 의미나 느낌이 다르고 좀 더 좋은 말을 좀 개발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의 개념에서 우리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계속 로컬의 언어를 좀 개발해야 될 필요는 있는거지.
요즘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이런 걸 통해서 서양의 프라이드적 모먼트나 행사 이런 것들을 보게 되니까 그거를 우리도 갖고 와서 비슷한 효과를 얻기도 하죠. 근데 조금 다른 접근도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저도 이제 팬들에게 자긍심을 가지라고 하기보다는 버티라는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버티기 위해서는 자긍심을 갖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경우일 때도 있긴 하겠죠. 어쨌든 모두가 버티는 것인데, 다만 헤테로들이 너무 지금 과한 자부심으로 버티고 있어.
우리가 일상을 버티는 것도 왜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워서 버티는 거보다 휴가 한번 갔다 와서 또 좀 버텨보고, 그런 것들을 구심점으로 버티는 거잖아요. 사실 퀴어퍼레이드 같은 것을 했을 때는 군중이 주는,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되게 큰 에너지를 받죠. 그런데 그것만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계속 그런 모먼트를 서로 일상적으로 만들어주면서 버텨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셰어
아까 프라이드에 대해 양나라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에 있는 ‘데이에게’[ref]『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에 실린 글. 영어권에서 이분법적 성별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들의 주어를 she나 he가 아닌 they로 지칭하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에 대해 이야기한다[/ref]를 보면서 정말 현재의 어떤 시차나 간극을 절묘하게 잘 묘사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번 호 이슈페이퍼에 들어가는 두 번째 글도 성소수자 인권의 제도화를 거치면서 나타나는 국제적인 간극에 대한 리포트인데요, 서구에서 새로운 용어들이 계속 나오면서 우리도 빠르게 영향을 받고, 또 이제 어딘가에서는 동성결혼이나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퀴어 가족과 소비 시장이 연구되고, 성소수자 인권이 외교적인 힘으로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상황들에 계속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작년에 북미 투어도 다녀오셨잖아요? 이런 시차와 간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시대에 필요한 우리의 자세라든지.
이반지하
그거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가 막 퀴어문화축제나 이런 데 오는 주로 서구 대사관 친구들을 보면, 물론 그게 한편으로는 도움이 되죠. 이게 진짜 국제적으로 공식적인 서포트가 있는 거네, 이게 뭔가 우리도 좀 받아들여야 되는 것인가 보네 이런 식의, 좀 구리지만 그런 인상을 줄 수 있는 거는 맞는 것 같아요. 근데 현실로서는 또 좀 재수 없죠.
‘데이에게’도 제가 너무 통렬히 느꼈던 것이었는데, 저는 한 때 생계를 위해서 영어 강사를 꽤 오래 했었거든요. 우리가 특히 스피킹 같은 거 연습을 할 때 단수, 복수 주어 동사 숫자를 맞추는 게 우리한테 없는 개념이기 때문에 정말 어렵잖아요. 그게 걔네한테는 너무 강력한 부분이어서 항상 지금도 a를 빼먹었다, 복수 명사인데 단수 대명사로 받았다 어쨌다가 되게 중요하고 그런 거죠. 근데 어느 날 진짜 딱 그 해외 영화제에 가서 거기서 알게 된 친구들을 만났더니 데이 they라는 말을 쓰는데 난 그게 너무 얄밉고 진짜 너무 원망스러운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they를, 얼마나 이거를 얘네 어법에 맞추고 견뎌왔는데, 갑자기 지금 뭐라고?
제가 그 책을 집필할 당시에는 they를 주어로 쓰면서 동사는 단수로 쓰는 걸 봤는데, 작년 12월에 미국 가서 들은 얘기로는 요즘엔 또 they에 동사도 복수로 맞춰 쓰는데 그러면서 단수(1명)로 취급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진짜 ‘지랄’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지. 그래서 내가 욕을 했어. 그랬더니 걔네도 지금 되게 혼란스러운 와중이라고 하더라고. 어쨌든 언어라는 건 움직이는 거니까, 계속 이렇게 진화를 하고 있다라는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문제는 지네가 진화하면, 우리는? 그 영어를 따라잡아야하는 입장에 있는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힘들고, 영어를 어거지로 ‘학습’한 사람으로서 다양성 맞춰서 말을 하려니까 진짜 쉽지 않다. 근데 그게 또 한국에도 그 개념이 어중간하게 그대로 들어오니까 참 어렵죠.
그래서 ‘젠더 쫓김이’라는 말을 자체적으로 제가 만들었던 것 같아요.진짜 계속 젠더에 쫓기는 그 느낌. 그게 우리 사회에서 지정한 어떤 그 젠더일 수도 있고 혹은 젠더라는 개념에도 쫓기는 느낌일 수도 있죠. 젠더라는 영어 개념에 쫓기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젠더 쫓김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앞으로도 그런 말을 만드는 거에 저는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셰어
그러게요. 그게 주는 되게 유레카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뭔가 말하기 어렵거나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탁 와닿게 말해주는 느낌! 그걸 예술가가 딱 말해준다! 그런.
이반지하
그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사실 어떤 면에서 저의 존재가 그냥 단순히 퀴어 이런 걸 떠나서 되게 많은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쟤는 활동가냐 예술가냐 음악가냐 미술가냐 퍼포머냐 글쟁이냐 그 모든 게 혼재되어서 제 이메일에 쌓이죠.
근데 그것 자체가 저인 것 같고 사실은 그게 매 순간 되게 어렵고 각각의 사람들한테 내가 가진 이 비전을 어떻게 말을 해야 되지 하는 생각은 계속 들긴 하는데, 어쨌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고 있고. 니들 활동가 분들도 활동가분들의 일이 있으신 거니까요.
셰어
책에서 ‘젠더 쫓김이’나 ‘데이they에게’를 읽고, 또 오늘 이야기도 들으면서 좀 위로받는 느낌 같은 것도 들었어요. 항상 우리가 외부에서 먼저 온 것을 가지고 그게 어느 새 절대적인 어떤 원칙이 돼버리니까, 이제는 또 항상 젠더에 대해서도 매번 설명해야 될 것 같은데 이 자체가 외부에서 주어진 개념과의 사이에서 계속되는 쫓김일수도 있고, 우리한테 바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어떤 시간을 주는 거. 프라이드도 좀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이반지하
어쨌든 한국 동성애 운동 역사, 혹은 퀴어 운동 역사가 아직은 역사가 좀 짧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당연히 어려움이 있고, 또 어떤 말은 정말 영어로 써야 사람들이 더 빨리 알아듣는 것도 있긴 하죠
그치만 예를 들어 해외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통과되고 그런 게 물론 감동적이고 되게 큰 일이지만 그게 지금 우리에겐 어떤 이슈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되거든요. 그것 덕분에 우리도 어떤 논의를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작금의 우리는 차별금지법도 통과가 안 되고 이러고 있는 게 사실 너무 기가 막히잖아요. 무슨 이거를 단식까지 해야 하고. 그러니까 각 사회마다 특성이 있는데 지금 젊은 퀴어들이 뭐를 절박하게 생각하고 뭘 고민을 하고 있는지, 지금 절박하게 느끼는 것들 사이에 간극이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쩔 때는 동성결혼 보다 청소년 알바 임금 투쟁해야 될 것 같은데, 그게 사실 집을 나와서 살게 되는 청소년들에게는 더 핵심적인 운동일 수도 있고 막 그러니까. 그런 생각 해요. 되게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요.
물론 동성결혼이 인정된다면 나비 효과처럼 또 어떤 영향이 있겠죠. 근데 아시다시피 정답은 없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그 중에 하나라도 얻어 걸려가지고 이제 사회 변화가 일어나는 건데.
그래서 사실 셰어가 표방하고 있는 태도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기존의 묶음 단위가 아니라 새로운 단위를 개발해서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연대를 만들고 이슈를 묶어내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대충 본거라 칭찬도 대충 드립니다만. 우리도 그냥 ‘퀴어’만으로 묶이는 한 덩어리가 아니잖아요. 그 안에도 되게 많은 계층이 있고, 노동권 문제가 있고, 그러니까 뭔가 좀 더 포괄적인 시선을 갖고 있고 그런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셰어
그런 의미에서, 독서신문 인터뷰[ref]송석주, [명사에게 듣다] 이반지하 “인생? 힘들지만 견뎌야지, 뭐 별수 있나”, 독서신문, 2021.08.15. https://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864[/ref]에서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는 『전태일 평전』의 ‘21세기 퀴어 버전’이라 할만하다.”는 평을 한 것도 저는 되게 인상적이었는데요, 우리가 교차성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이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드러내고 대중적으로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반지하의 글을 통해 이게 굉장히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다가간 것 같습니다. 어떤 하나의 정체성으로서가 아니라 여성, 퀴어, 생존자, 정병러, 예술가로서의 위치가 경제적, 사회적 상황들과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가지는 힘이 있어요. 이 점이 ‘퀴어’라는 쉽지 않은 키워드가 전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반지하를 읽고, 듣고, 접하는 사람들의 폭을 넓혀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좀 더 가능해질 수 있을까요?
이반지하
저는 그 전태일 평전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제법인데’ 하는 쾌감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끝까지 그 책을 쓰면서 하지 않았던 것이 퀴어가 뭔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설득하는 거였거든요.
계속해서 요구받았지만 끝까지 해주지 않은 게 그거예요. 앞으로도 절대 해주지 않을 거고. 그건 니들 활동가랑 연구 쪽 애들이 하세요.
제가 아쉽게 느끼는 것은, 이게 결국 동성애, 이성애 프레임으로 우리가 먼저 규정지어졌고, 사회에서 우리를 그렇게 불러서 우리가 그걸 가지고 토대로 운동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마치 정말 우리가 성 sex 밖에 없는 인간인 것처럼 보여지는 것, 그게 좀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 얘기는 우리는 계속 분류되기만 하고 인간이 되지 못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그 책을 통해서 그냥 이것이 퀴어라고도 불리는 어떤 사람의 ‘삶’이다라는 얘기를 입체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셰어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퀴어로서도 이 책에서 굳이 퀴어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이반지하
그게… 그게 그런 갈등이 계속 좀 있어요. 예술가로서. 사람들은 계속 좀 쉬운 언어를 원하고. 앞에 나와 있는 사람이니까, 답해주기를 원하고.
셰어
그렇죠. 연결된 얘기지만 그런 식으로 자꾸 성소수자 하면 ‘성’에만 그 의미가 붙어 있는데 이 책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생존자, 생존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얘기가 나오는데, 그 말에 다들 힘을 많이 받는 것 같더라구요. 버티라는 말에 그렇게들 또 많이들 울고. 그래서 참 이 퀴어들한테 ‘생존’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걸까 이런 생각도 들고. 저는 책의 첫 부분에 나오는 “생존자 조심해라”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이 얘기를 좀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반지하
그게 저도 자꾸 까먹지 않으려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저도 살면서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 마주하잖아요. 근데, 야, 너는 부모도 떠났어, 시발 천륜도 끊었어, 하면 차라리 그런 게 주는 힘이 있어요. 그게 내가 생각하는 생존자인 거예요.
<퀸스 갬빗>에서도 그렇고, 사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게 취약점이잖아요. 고아다, 얘는 기댈 데도 없어, 사람들은 그걸 흠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것 때문에 얘가 여기 있는 거거든요. 그것 때문에 질 수 없고. 그런 거죠. 더 이상 이제 돌아갈 곳도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안 무섭다면 안 되죠.
근데 그렇게 뭐든 안 무섭고 비장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많아져야 되는가, 그건 모르겠어요. 그건 슬픈 일이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그런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되면 더 좋겠다. 안전망이든 그게 뭐든.
셰어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퀴어에게 프라이드는 약간 역설적으로 그렇게 생존을 하기 때문에 나오는 거 같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이반지하
그리고 제가 느끼는 거는 주변 일상에 퀴어 친구들, 그런 애들이 많아질수록 프라이드라는 개념 자체를 많이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프라이드라는 건 정말 사회에 대항 하기 위한 개념이니까. 그래서 소위 말하는 헤테로 정상사회 안에 있으면 프라이드가 있어야지 버틸 수 있지만 조금만 비정상적으로 나와버리면은, 시발 프라이드고 나발이고. 반찬이나 나눠 먹고 이런 거지.
셰어
앜ㅋㅋㅋㅋ 너무 중요한 말이다. 그렇지 반찬이나 나눠 먹는 게 더 중요하지. 진짜 이 인터뷰 보람이 있네요. 다들 진짜 들어야 된다. 오늘 해준 얘기들 정말 너무 동의하고, 그 동안 참 이런 이야기들, 문제의식들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많이 얘기되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 작업하고 계신 차기작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반지하
일단 6월 11일 3시 고양레지던시에서 라이브 드로잉 토크쇼가 있어요. 5월 27일부터 예매 가능하고 20명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그리고 6월 1일부터 문학동네에서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독파 챌린지가 있어요. 독려 메세지도 받고 편집자가 뒷얘기도 풀어주고, 14일에는 챌린지 도전자들 대상으로 북토크도 합니다.
6월 22일 2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이반지하를 주제로 한 공개 세미나가 열려요. 예매 없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또, 7월 첫째 주에 문학잡지를 통해 신작 글을 하나 발표할 예정이고, 두번째 에세이집을 준비 중입니다. 아마 올해 안에 보실 수 있을거에요.
그렇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결국 ‘반찬을 나눠 먹는 것’ 아니겠는가. 애초에 퀴어 프라이드란 죽음과 위험, 일상적인 낙인과 단속을 함께 경험했던 변태들의 공동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지개로 장식한 프라이드 에디션 보다는 일상의 반찬, 그리고 반찬을 함께 나눠 먹을 비정상 친구들, 그 관계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프라이드임을 잊지 않는 것. 혼돈의 프라이드 시대를 버티며 살아가는 현명한 성소수 시민의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