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04월[리뷰] 턴어웨이: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 서평

다른 시선과 목소리로 이루어지는 과학을 기대하며

 

김새롬(시민건강연구소)

“한국에서 지금 낙태가 합법인가요?”

 

2021년 인터뷰를 위해 찾았던 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들었던 질문이다. 답은? 대체로 그렇다. 2019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형법상 낙태죄의 효력은 2020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권고를 어기고 입법시한을 훌쩍 넘기도록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았고, 임신중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소위 “입법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각자 몸으로 겪고 있는 시기라는 의미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유행으로 병원 방문이 쉽지 않은 요즘, 상황은 좋지 않다. 합법화 이후 공개적으로 임신중지에 드는 비용을 안내·홍보하는 병원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이전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고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원(돈, 지식, 시간, 권한)이 있고 임신 초기에 임신을 깨달은 사정이 좋은 사람들의 얘기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채거나, 어떻게 대처할지 재빠르게 대처하지도 주변의 도움을 받지도 못한 여성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어찌 보면 상황은 더 나빠졌다. 병원에서 임신중지 시술에 요구하는 의료비는 가파르게 오르는 와중에 후기 임신중지를 포함해 여성들의 다양한 사정을 배려하며 돕는 의료인을 만날 길은 너무 좁다.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 안심하고 안전하게 복용해야 할 유산유도제를 자력으로 어렵게 구해 삼키고 몸의 반응을 홀로 감당할 여성들의 형편도 위태롭다. 적어도 유산유도제와 관련해서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그레셤의 법칙(Bad money drives out good)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다. 미국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형성된 임신중지 비용[ref] 책에서는 병원에 내는 금액만 고려했을 때 1분기 임신중지 평균 비용이 500달러, 14주~20주 사이의 임신중지 평균 비용이 750달러로 20주 이후에는 1,750달러였다고 말한다. 최근 한국에서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임신 1분기 수술적 임신중지에 드는 총 의료비는 약 70만원~120만원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20주 이후의 후기 임신중지 비용은 응답자 수가 적고 임의비급여로 책정되는 만큼 상황에 따라 변동이 크지만 300~7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보편적 건강보장을 자랑하는 한국의 건강보험은 임신중지 서비스를 “의료시장”에 방치한다. 결국 이로 인한 위험과 부담은 가장 약하고 자원 없는 여성에게 돌아가고 있다(☞관련 사건에 대한 셰어의 성명).

 

사정이 이러한 데에는 임신중지의 특수성이 작동한다. 여성들이 가장 흔히 하게 되는 의료시술임에도 오랫동안 비공식·비합법 상태였고, 여성의 성에 대한 낙인은 많은 여성이 자신의 임신중지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만들어 왔다. 용감하게 나서 현실을 바꾸자고 요구하는 여성들이 나타날 즈음부터 안티 페미니즘 정치가 횡행하는 배치는 사실 국제적으로 나타나는 일관적 현상이기도 하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몸과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겠다고 나서는 현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가부장적 젠더 권력의 보편성을 입증한다고나 할까.

 

셰어의 사무국장 김보영이 번역한 『턴어웨이: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은 한국에서 임신중지와 관련한 논의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인구로 치환되는 몸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지배를 넘어, 각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성적 권리와 재생산 건강을 다루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이 책의 결론을 미리 소개하면 이는 아래와 같다.

 

“임신중지는 단순히 태아 대 여성의 권리, 개인의 사적인 출산 결정에 관한 국가의 역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임신중지는 여성의 경제적 안정, 건강과 신체적 통합성, 현재 키우는 아이들을 돌보는 능력, 건강한 관계에 대한 전망, 미래 계획에 관한 것이다. 임신중지는 여성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관한 문제다(463pp.)”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추적하여 분석한 이 책은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의 논쟁들을 담고 있다. 한국의 반대자들은 대부분 임신중지 “금지”가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극적 피임을 위한 임신중지(소위 “월경조정술”)와 고용량 호르몬제를 국가가 나서 권장하던 가족계획정책에서도 출산율 제고를 위한 “임신중지 처벌”을 정책으로 내어놓을 때도 여성의 건강은 한 번도 핵심이었던 적이 없다. 중요한 결과가 국가의 “인구”인 마당에, 임신중지를 하는 데에 성공했거나 하지 못한 여성들이 겪게 될 이후의 삶역시 관심 밖이다. 예기치 못하게 임신을 하게 된 여성은 어떤 삶을 맞이할지, 그녀를 아끼고 도움을 주고받는 가족들의 안전과 평화는 어떠한지를 살피는 정책은 없었다.

 

『턴어웨이: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에서는 여성들의 사정에 눈높이를 맞춘다. 다이애나 그린 포스터를 필두로 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다학제 연구팀은 전 세계에서 의료비는 가장 비싸고 불평등은 심각한 미국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2007년부터 구상을 시작한 이 연구는 미국의 임신중지 클리닉을 방문한 여성들에게 연구 참여를 제안했다. 연구자들은 연구참여자를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들(turnaway group, 이 책의 제목은 여기에서 왔다)과 기간 제한에 빠듯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었던 여성들, 그리고 임신 초기에 클리닉을 방문해 수월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었던 여성들로 구분했다. 약 1,000명의 여성이 등록했고, 연구진은 8여 년에 걸쳐 6개월마다 면담을 위해 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책은 위에서 설명한 엄청난 규모의 조사에서 파악한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다. 왜 어떤 상황에서 임신중지를 하거나 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임신중지가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했는지, 남성 파트너와의 관계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이미 키우고 있던 아이와의 관계나 부모와의 관계는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등. 턴어웨이 연구는 임신중지가 여성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의 편향된 연구 결과를 기각하는 강건한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긴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연구가 여성들의 시선에서 임신중지 이후의 삶의 궤적을 좇는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본인의 삶과 가족사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를 톺아보며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임신중지의 다채로운 양상에 대한 그림을 그려낸다. 그 그림이 보여주는 전경은 또렷하다. “여성들은 임신중지에 관해 숙고하고 사려깊은 결정을 한다. 임신중지는 여성의 건강과 안녕을 해치지 않는 반면 임신중지를 거절당하는 것은 건강과 삶의 경로에 부정적이 영향을 미친다. 임신중지는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건이기 보다는 많은 여성과 그 가족이 경험하는 평범한 일상 중 하나로,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경우가 더 많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은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인권으로 옹호하는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근거인 동시에 여성의 시선에서 과학을 탐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좋은 지침서다. 이런 점에서 글의 시작을 열었던 질문은 재설정되어야 한다. 우리의 질문은 언제나 당사자들의 고통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마도 시작은 “한국에서 임신중지를 하거나 하지 못한 여성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에 꼼꼼하게 답하는 것이다. 이어질 질문은 실타래처럼 길고 복잡하다. 애초에 왜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법적 공백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지를 더 안전하고 원활하게 안내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기존에 임신중지를 했던 한국의 여성들은 그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회상하는지, 가족계획사업이 배포했던 고용량 호르몬 제재가 여성의 의료이용에 미친 영향은 어떤지.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는 과정은 이제껏 국가와 전문가의 관점에서 쓰여왔던 인구에 대한 통치를 여성의 역사와 과학으로 다시 쓰는 운동으로서 의미가 있다.

 

사실 여성의 권리와 이를 백안시하는 정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삼는 연구자로서 나는 저자의 위치설정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책의 저자인 다이애나 포스터 박사는 스스로를 객관적, 실증적 근거를 탐색하는 중립적인 과학자의 자리에 위치짓는다-37pp. 저자가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지만 턴어웨이 연구는 페미니스트 실증주의 인식론에 입각한 전형적인 연구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끈질김과 성실함, 이를 통해 도달한 여성들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과학이 오래된 예단을 극복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의 주체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다소 감동적이다. 정말로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후회하는지, 여성들이 겪을 죄책감과 고통을 생각하면 국가가 나서 임신중지를 규제해야 하는지, 가부장적 국가와 관습이 속단하는 고통받는 여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날조된 구속복인지.

 

고루한 상상 속의 여성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경험을 토대로 편견과 지레짐작을 세세하게 기각하는 지적 여정은 그 자체로 해방적이다. 놀라움이나 의외성의 정도는 아마, 읽는 이의 위치에 따라 크게 다르겠지만 말이다. 다른 시선과 다른 목소리로 여성의 역사와 과학을 새로 쓰는 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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