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06월[국제이슈] 성소수자 인권과 정치경제, 그 시차와 긴장 속에서

성소수자 인권과 정치경제, 그 시차와 긴장 속에서


나영


지난 5월 11일,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Kamala Devi Harris 의 남편인 더글러스 엠호프 Douglas Craig Emhoff 가 홍석천과 함께 광장시장 등을 방문한 소식을 전하며 “엠호프의 한국 방문으로 젠더와 LGBTQ 이슈가 전면에 나왔다”고 썼다. 그러나 기사의 제목처럼 그의 방문으로 관련 이슈가 전면에 등장했다고 보기에는 한국은 너무 조용했다. 한국의 언론들은 엠호프와 홍석천의 만남에 거의 관심조차 두지 않다가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가 나가고 나니 그제서야 가십성 단신으로 다루거나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를 인용하는 기사 정도를 내보냈을 뿐이었다. 



이미지 출처:  워싱턴 포스트 기사 화면 https://wapo.st/3O2UhG0


지난 해 2월 바이든은 취임 후 첫 외교정책 관련 연설에서 "우리의 외교 및 해외 조력자들이 성소수자들을 불법화하는 것과 싸우고 난민 및 망명 신청자들을 보호하는 등 이들의 개인 권리를 증진하게 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것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이 문제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깊은 약속을 반영한 것"이라며 "미국은 이러한 권리들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엠호프의 방한 일정 중 투어 가이드로 홍석천을 택한 것도 바이든 정부의 메시지를 보여주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행보를 아주 적극적으로 해석해 준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가 아니었다면 그저 ‘마인드 멋진 어른’을 만난 추억으로 홍석천 개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만 남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 메세지는 매우 우회적이고 파장도 미미했다. 


이 에피소드는 외교 정책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중요한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미국 민주당 행정부의 전략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교묘한 위치를 가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며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고, 이후 민주당은 오바마 정부에서부터 소수자 인권, 특히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을 본격적인 차별화 전략으로 삼았다. ‘성소수자 인권’은 오바마 정부가 내세우는 ‘하나의 미국’에 대한 중요한 상징 중 하나가 되었으며, 미국이 내세우는 새로운 이념적 헤게모니의 지표이자 외교적 무기가 되었다.‘성소수자 인권’이 외교 관계에서 미국의 메시지로 등장할 때, 이는 ‘(민주당 정부의)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규범과 시스템, 새로운 시장 질서를 확인시키는 행위이자, 동시에 외부를 향한 메세지를 통해 다시 미국 내에서 그들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전략이기도 한 것이다.[ref]오바마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유주의 미국과 보수주의 미국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라티노의 미국, 아시안의 미국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합중국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를 공화당의 빨간 주와 민주당의 파란 주로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중략)... 우리에게는 빨간색 주에 사는 게이 친구가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애국자가 있고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애국자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하고 미국을 수호하는 하나의 국민입니다."

이 연설의 내용은 이후 오바마 정부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조가 되었다. 백인도, 흑인도, 라티노도, 아시안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게이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게이도, 이라크 전쟁에 찬성한 사람도 반대한 사람도 ‘하나의 미국’이라는 우산 아래 결집시키고 미국이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할 가치와 질서를 만드는 일. 이러한 기조 하에 오바마는 이후 성소수자 인권을 외교 전략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이를 미국이 상징하는 가치이자 새로운 시장 질서로 구축해 갔다. 한편, 10년 전만 해도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제도 변화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던 바이든은 후보 시절부터 입장을 바꾸어 트럼프 정부와의 대비 속에서 이 기조를 다시금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ref]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엠호프의 행보 또한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을 적극적으로 신장시키고 싶다는 의지라기 보다는 트럼프 이후 다시 민주당의 방향과 영향력을 대내외적으로 확인시킬 필요가 있는 바이든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맞아 다시 한 번  ‘바이든의 미국’을 확인시키고자 했던 우회적 메세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프라이드 마케팅과 새로운 시장, 그 반대편의 우익 포퓰리즘


이런 지형 속에서 퀴어 프라이드를 말한다는 것은 전보다 좀 더 복잡한 문제가 되고 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국제적 시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삶을 기획하고 운동의 요구로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새로운 시장 질서와 마케팅 전략, 외교 전략 사이에서 계속해서 긴장과 굴절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프라이드 마케팅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성소수자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 단위의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서구 1세계가 선취한 ‘성소수자 인권’의 스탠다드로 비춰질 때, 이를 통해 표상되는 프라이드의 모습은 국가를 통해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제도적 인정을 획득하고 기업이 호명하는 소비 주체가 되는 것으로 쉽게 압축되고 만다. 기업을 향해 ‘진정성 있는’ 프라이드 마케팅을 하려면 무엇을 고려하고 어떠한 기여를 해야 하는지를 조언하거나 독려하는 목소리는 높아지지만 정작 해당 기업들이 세계 각국에서 벌이는 노동과 자원의 착취가 성적권리의 불평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이 매년 6월 프라이드 먼스 Pride Month 행사를 열고 심지어 올해는 휴먼라이츠캠페인 HRC, Human Rights Campaign 이 선정하는 ‘성소수자 평등을 위한 최고의 직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18년 영국의 성소수자 인권 단체 스톤월 Stonewall이 프라이마크 Primark와 함께 출시했던 프라이드 에디션을 둘러싼 논란을 보자. 당시 프라이마크는 프라이드 에디션 판매 수익의 20%를 기부하기로 하였지만 이내 관련 제품들이 터키, 중국, 미얀마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세 국가 모두 성소수자 인권을 심각하게 탄압하는 국가이기에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프라이드를 위해 소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프라이드 마케팅을 고려하는 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비즈니스 윤리의 사례로 소개되고는 한다. 그런데 프라이마크는 이미 터키, 중국, 미얀마 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서 최저 임금도 되지 않는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프라이드 에디션이 성소수자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 이전에, 애초에 패스트 패션을 위해 다른 국가의 노동자들을 착취해 온 프라이마크의 생산 시스템에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나의 프라이드가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억압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무엇이 이 불평등한 억압의 조건을 만드는지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직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과 지지’라는 기준이 프라이드 에디션에 뒤따르는 ‘윤리적 소비’, 프라이드 에디션 출시 기업에 대한 ‘비즈니스 윤리’의 초점이 될 때, 오히려 보다 근본적인 비판의 기준점은 애매하게 뒤틀리고 만다. 



이미지 출처 : Smart Insights ‘The problem with Pride Marketing’ https://bit.ly/3tnnlAe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인권’이 외교 전략으로서의 위치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도 그 메세지가 어디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명분이 외교의 무기가 될 때, 이는 오히려 특정 기업과 국가에게는 손쉬운 면죄부로 작동하는 한편 그 사회의 보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성소수자들을 더욱 비가시화된 위치에 남아있게 만들 수 있으며, 다른 곳에서는 군사적 긴장을 일으키기도 하고, 이로 인해 다른 국가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더욱 탄압하는 명분으로 작동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 또한 다양한 변수나 맥락들 속에서 보아야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을 함께 파악해 나가기 위한 관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이 실질적 삶의 배경과 동떨어져 특정한 국가나 자본 시장이 이미 선점한 상징적 가치 기준이 될수록, 이러한 전략이 정확히 반대 방향에서 우익 포퓰리즘의 정치 전략에도 주요한 명분이 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교 관계에서의 압력과 경제 위기가 심화될수록 성소수자, 난민 등을 내부의 불안을 야기하는 적대로 설정하면서 반동적 힘을 얻는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헝가리, 폴란드, 체첸,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적극적으로 성소수자를 삭제해 나가는 작업은 곧 미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시장 질서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작업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즉, 표면적으로는 성소수자를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전통, 문화, 가치관 같은 것들을 내세운 대립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른 방향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대립각으로 구축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 하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이 양측 모두에서 타자화된 상징이자 공격의 무기로만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경계해야할 비극이다. 



인정과 억압의 무수한 틈새에서, 성적권리의 조건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성소수자 인권’이 자칫 국가와 기업의 외교적 무기, 전략적 언어로 전유되어버릴 수 있는 세계에서, 이제는 이 권리를 함께 향유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더욱 세세하게 문제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법•제도적 인정이나 억압이라는 구도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무수한 틈새들이 있다. 


동성결혼을 법적 인정 체계로 들인 미국에서는 ‘성소수자 정상 시민’의 규범이 더욱  강화되는 반면 이주, 인종, 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해 그 범주에 진입하기 어려운 성소수자들이 겪는 경찰의 폭력과 증오범죄는 더욱 열악한 여건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헝가리 오르반 Viktor Mihály Orbán 총리의 정치 방식에서 유래한 Orbanization(오르반화)의 영향과 같이, 성소수자에 대한 금기와 억압을 정치 전략으로 삼는 우익 포퓰리즘이 미국의 우익과 공조하면서 플로리다 주의 이른 바 “Don’t Say Gay” 법 같은 걸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ref] 플로리다 주 의회는 지난 3월 이른 바 “Don’t Say Gay”라고 불리는 ‘교육에 관한 부모의 권리 법안 Parental Rights in Education Bill’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부모의 권리를 명분으로 학교에서 교사나 제3자에 의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수업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라는 연령 기준을 두고 있으나 ‘주의 표준에 따라 연령이나 발달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방식으로’라는 문구를 포함함으로써 얼마든지 확대하여 적용할 여지를 두었고, 부모는 언제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사실상 학교 교육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러시아, 헝가리에서 이미 유사하게 진행된 바 있는 전략을 가지고 온 것이다. [/ref]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르완다 등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들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신자유주의 시장 질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이와 함께 성소수자의 인권을 증진시키는 법•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실업과 빈부격차가 더욱 극심해지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더욱 증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들은 대체로 가치관을 둘러싼 싸움이나 제도와 인식의 간극이 초래한 문제로 분석되고는 하지만 이는 단편적이고 협소한 분석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는 성적권리가 그 자체로 얼마나 정치경제적인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상황들로 보아야 하며, 성적권리의 기반이 정치경제 시스템의 변화 속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고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지를 제대로 분석해야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No Justice No Pride https://www.nojusticenopride.org/about


경제적 능력이 있고 새로운 재생산 시스템에 기여할 수 있는 성소수자만이 인정 체계로 진입할 수 있는 사회, ‘성소수자 인권’이 쉽게 집단적 적대의 상징으로 도구화되어 버릴 수 있는 정치 구도, 서구 1세계에 의한 경제 시스템의 구조조정과 자원의 착취로 인해 일자리를 유지하고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치열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는 성적권리의 조건 자체가 계속해서 불평등하게 영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조건들을 함께 바꾸는 연대의 행동이 새로운 프라이드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행진의 경로는 보다 다양할 수 있다. 누구의 곁에서, 어디를 향해 행진할 것인지 그 경로를 새롭게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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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마무리하던 중 주한미대사관이 웬디 셔먼 Wendy Sherman 국무부 부장관과 성소수자 활동가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간담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은 함께 무지개 깃발을 게양했고, 이에 대해 주한미대사관은 트위터에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오늘 성소수자의 인권을 증진하고자 바이든-해리스 행정부의 의지에 대한 상징으로 주한미대사관저인 하비브하우스에서 프로그레스 플래그(무지개 깃발)를 게양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적었다.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 한국의 정치 현실, 미국의 외교 전략이라는 구도 속에서 이 무지개 깃발은 무엇을 위한 영광의 상징인지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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