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아픈 여자들’에 대한 적절한 응답
김보영

미셸 렌트 허슈가 쓰고 정은주가 옮긴 책 《젊고 아픈 여자들》은 젊고 아픈 여자들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 책은 ‘젊은 여자’로서 질병을 앓아온 경험을 다룬다. 만 명의 사람이 질병을 앓는다면 만 가지의 경험이 나오겠지만, 이 작가는 젊고 아픈 여자들을 만나면서 공통 경험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찾아낸다.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이자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 책은 여성들의 질병 경험을 통해 고통의 어떤 경향성을 밝혀낸다. 그 경향성이란, 질병과 ‘젊은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 합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체로 그들이 겪는 고통은 사람들의 적절치 못한 반응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나의 상황에 대해 적절하게 응답해주리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이 젊고 아픈 여자들은 너무나 자주 잘못된 반응을 마주한다. 병에 걸린 나의 존재에 대해 부당한 응답을 듣게 되어도 병에 걸린 젊은 여자들은 때때로 항의하지 못한다. 되받아치지 못한 부당한 경험들은 쌓이고 쌓여 다음부터 그런 부당한 응답을 듣지 않기 위해 나를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게끔 단련하거나, 어떤 상황을 애초에 회피하도록 만든다.
고관절 수술을 앞두고 데이트를 하는 상대에게 그 소식을 알리며 고관절 수술이 ‘할머니들만 받는 수술은 아니랍니다.’ 같은 말을 어색한 웃음을 섞어 덧붙이며 젊은 사람이 병을 앓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걸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지 가늠해봐야 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나의 병에 대해 물어올 때, 그 사람이 병을 앓고 있는 나를 이해하고 한 명의 동료, 친구, 파트너로서 수용할 것인지 확신이 없는 채 언제나 병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고 만다. 내가 언제든,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형식으로 거부당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삶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한편, 이 젊고 아픈 여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길 원하지만 아픈 사람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란다. 특히 여기서는 ‘젊다’는 속성이 이 아픈 사람들을 괴롭히는 주요 원인이기도 한데,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활기차게 일상을 살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리길 기대한다. 암에 걸린 젊은 여자는 “아침에 출근할 때 암은 문 앞에 놓고 사무실로 들어오기 바랍니다”라는 상사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들은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너무 건강하지도 너무 아프지도, 너무 똑똑하지도 너무 조리 없지도 않아 보이도록 그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찾기 위해 애썼으며 그러한 균형은 몸과 젠더에 직결되어 있었다”.
병원에서도 오해는 계속된다. 우선 여성이 하는 말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의사는 왜 여자의 말 믿지 않는가》라는 책도 있겠나. 병의 진단은 기계에 의한 측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병의 진단과 치료에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겪고 있는 증상이나 감각을 전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책은 여성의 통증이 통증으로 이해받지 못하고, 여성의 고통이 끊임없이 의심받는 사례를 보여준다. 의심과 불신은 진단을 늦추거나 오진을 불러왔고, 그로 인한 고통은 질병의 당사자인 여성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약물 공급의 문제도 함께 짚는다. 미국의 에스트로겐 주사제 부족 사례를 다루며 트랜스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언급한다. LGBTQ+ 전문 의료 기관에서도 호르몬 주사제를 구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런 상황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이 연구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전국적인 부족 현상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호르몬을 제조한 사기업에 훨씬 더 큰 돈을 지불하고 주사제를 구입하는 것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삶에 필수적인 약물이 제약 회사의 이익 실현을 위한 도구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호르몬 주사제만의 일도 아니다. 언제나 시장성을 중심으로 약물 공급의 가격과 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제약 회사의 자본 축적 구조상 약물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의 절실함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사례와 같이 호르몬 주사제를 투여하다 투여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건강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가 없다면, 제약 회사를 상대로 시민의 건강권을 주장하기란 더욱 난망한 일이 되어버린다.
저자는 HIV 약을 예방적으로 복용해 감염 확률을 낮추는 프렙(PrEP, 노출전예방요법) 요법이 여성 인구군을 빗겨가고 있다는 지점도 이야기한다. 책에 등장하는 연구자 헤일-재러스가 실시한 설문에 성노동자 서른 두 명이 참여했고 이들은 대부분 트랜스 및 시스 여성, 나머지 소수는 남성이었다. 지난 12개월 동안 어떤 형태든 의료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97%였고, HIV 또는 성매개감염 검사를 받았는지 여부에도 90% 이상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프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은 질문에는 53%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자신이 프렙 대상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13% 정도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헤일-재러스는 프렙 마케팅이 시스젠더 백인 동성애자 남성이 약을 복용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통계적으로 가장 위험도가 높은 집단에 속하는 유색인 여성에게는 프렙이 처방되지 않는 경향은 의료진의 편견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헤일-재러스는 특정 집단만을 HIV 감염 위험에 노출된 집단이라고 접근하기보다는 ‘열린 접근’이 낙인을 부여하는 대화를 없애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젠더, 성정체성, 직업에 관계없이 찾아오는 환자마다 프렙에 대해 물어보는 식으로 말이다.
HIV 감염인 여성 국제커뮤니티 북미지부(ICW-NA)는 U=U 캠페인[ref] Undetectable (바이러스 미검출) = Untransmittable (전파 불가) 라는 뜻으로 꾸준히 치료를 받아 HIV를 미-검출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는 HIV 감염인을 통해서는 HIV에 감염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캠페인 메세지
[/ref]이 HIV 감염인들의 삶을 강력하게 변화시키고 있음을 인정하는 한편, 여성들은 U=U 캠페인의 혜택을 체감할 수 없는 구조적 장벽에 대해 이야기한다. ICW-NA는 'U=U: 여성을 잊지 마라' 캠페인을 실시하며 HIV가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신체 자율성, 임신과 수유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HIV를 다룰 때 여성의 이야기와 경험을 중요하게 참조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젊고 아픈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의 질병 경험을 통해 우리가 젊고 아픈 여자들을 때때로 어떤 방식으로 부적절하게 대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젊고 아픈 여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건 고통의 당사자를 괴롭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질병에 대한 이해를 지연시키기도 한다. 여성의 고통이 많은 경우 ‘심인성’이라 여겨지고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젊은 여자는 아플 리가 없다며 노약자석에 앉은 여성에게 일어나라고 호통을 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우리 사회가 질병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젊은 여자들도 아플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간다는 건 서로의 존재에 적절하게 응답하는 일일 것이다.
참고문헌
ICW-NA. (2020). U=U: Not without women. International Community of Women Living with HIV. Retrieved August 27, 2020
‘젊고 아픈 여자들’에 대한 적절한 응답
김보영
미셸 렌트 허슈가 쓰고 정은주가 옮긴 책 《젊고 아픈 여자들》은 젊고 아픈 여자들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 책은 ‘젊은 여자’로서 질병을 앓아온 경험을 다룬다. 만 명의 사람이 질병을 앓는다면 만 가지의 경험이 나오겠지만, 이 작가는 젊고 아픈 여자들을 만나면서 공통 경험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찾아낸다.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이자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 책은 여성들의 질병 경험을 통해 고통의 어떤 경향성을 밝혀낸다. 그 경향성이란, 질병과 ‘젊은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 합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체로 그들이 겪는 고통은 사람들의 적절치 못한 반응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나의 상황에 대해 적절하게 응답해주리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이 젊고 아픈 여자들은 너무나 자주 잘못된 반응을 마주한다. 병에 걸린 나의 존재에 대해 부당한 응답을 듣게 되어도 병에 걸린 젊은 여자들은 때때로 항의하지 못한다. 되받아치지 못한 부당한 경험들은 쌓이고 쌓여 다음부터 그런 부당한 응답을 듣지 않기 위해 나를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게끔 단련하거나, 어떤 상황을 애초에 회피하도록 만든다.
고관절 수술을 앞두고 데이트를 하는 상대에게 그 소식을 알리며 고관절 수술이 ‘할머니들만 받는 수술은 아니랍니다.’ 같은 말을 어색한 웃음을 섞어 덧붙이며 젊은 사람이 병을 앓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걸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지 가늠해봐야 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나의 병에 대해 물어올 때, 그 사람이 병을 앓고 있는 나를 이해하고 한 명의 동료, 친구, 파트너로서 수용할 것인지 확신이 없는 채 언제나 병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고 만다. 내가 언제든,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형식으로 거부당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삶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한편, 이 젊고 아픈 여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길 원하지만 아픈 사람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란다. 특히 여기서는 ‘젊다’는 속성이 이 아픈 사람들을 괴롭히는 주요 원인이기도 한데,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활기차게 일상을 살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리길 기대한다. 암에 걸린 젊은 여자는 “아침에 출근할 때 암은 문 앞에 놓고 사무실로 들어오기 바랍니다”라는 상사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들은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너무 건강하지도 너무 아프지도, 너무 똑똑하지도 너무 조리 없지도 않아 보이도록 그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찾기 위해 애썼으며 그러한 균형은 몸과 젠더에 직결되어 있었다”.
병원에서도 오해는 계속된다. 우선 여성이 하는 말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의사는 왜 여자의 말 믿지 않는가》라는 책도 있겠나. 병의 진단은 기계에 의한 측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병의 진단과 치료에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겪고 있는 증상이나 감각을 전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책은 여성의 통증이 통증으로 이해받지 못하고, 여성의 고통이 끊임없이 의심받는 사례를 보여준다. 의심과 불신은 진단을 늦추거나 오진을 불러왔고, 그로 인한 고통은 질병의 당사자인 여성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약물 공급의 문제도 함께 짚는다. 미국의 에스트로겐 주사제 부족 사례를 다루며 트랜스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언급한다. LGBTQ+ 전문 의료 기관에서도 호르몬 주사제를 구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런 상황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이 연구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전국적인 부족 현상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호르몬을 제조한 사기업에 훨씬 더 큰 돈을 지불하고 주사제를 구입하는 것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삶에 필수적인 약물이 제약 회사의 이익 실현을 위한 도구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호르몬 주사제만의 일도 아니다. 언제나 시장성을 중심으로 약물 공급의 가격과 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제약 회사의 자본 축적 구조상 약물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의 절실함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사례와 같이 호르몬 주사제를 투여하다 투여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건강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가 없다면, 제약 회사를 상대로 시민의 건강권을 주장하기란 더욱 난망한 일이 되어버린다.
저자는 HIV 약을 예방적으로 복용해 감염 확률을 낮추는 프렙(PrEP, 노출전예방요법) 요법이 여성 인구군을 빗겨가고 있다는 지점도 이야기한다. 책에 등장하는 연구자 헤일-재러스가 실시한 설문에 성노동자 서른 두 명이 참여했고 이들은 대부분 트랜스 및 시스 여성, 나머지 소수는 남성이었다. 지난 12개월 동안 어떤 형태든 의료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97%였고, HIV 또는 성매개감염 검사를 받았는지 여부에도 90% 이상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프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은 질문에는 53%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자신이 프렙 대상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13% 정도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헤일-재러스는 프렙 마케팅이 시스젠더 백인 동성애자 남성이 약을 복용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통계적으로 가장 위험도가 높은 집단에 속하는 유색인 여성에게는 프렙이 처방되지 않는 경향은 의료진의 편견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헤일-재러스는 특정 집단만을 HIV 감염 위험에 노출된 집단이라고 접근하기보다는 ‘열린 접근’이 낙인을 부여하는 대화를 없애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젠더, 성정체성, 직업에 관계없이 찾아오는 환자마다 프렙에 대해 물어보는 식으로 말이다.
HIV 감염인 여성 국제커뮤니티 북미지부(ICW-NA)는 U=U 캠페인[ref] Undetectable (바이러스 미검출) = Untransmittable (전파 불가) 라는 뜻으로 꾸준히 치료를 받아 HIV를 미-검출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는 HIV 감염인을 통해서는 HIV에 감염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캠페인 메세지 [/ref]이 HIV 감염인들의 삶을 강력하게 변화시키고 있음을 인정하는 한편, 여성들은 U=U 캠페인의 혜택을 체감할 수 없는 구조적 장벽에 대해 이야기한다. ICW-NA는 'U=U: 여성을 잊지 마라' 캠페인을 실시하며 HIV가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신체 자율성, 임신과 수유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HIV를 다룰 때 여성의 이야기와 경험을 중요하게 참조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젊고 아픈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의 질병 경험을 통해 우리가 젊고 아픈 여자들을 때때로 어떤 방식으로 부적절하게 대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젊고 아픈 여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건 고통의 당사자를 괴롭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질병에 대한 이해를 지연시키기도 한다. 여성의 고통이 많은 경우 ‘심인성’이라 여겨지고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젊은 여자는 아플 리가 없다며 노약자석에 앉은 여성에게 일어나라고 호통을 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우리 사회가 질병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젊은 여자들도 아플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간다는 건 서로의 존재에 적절하게 응답하는 일일 것이다.
참고문헌
ICW-NA. (2020). U=U: Not without women. International Community of Women Living with HIV. Retrieved August 27,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