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특별법 제정 이후 20년, 현장에서의 고민
나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들어가며
한국 사회의 성매매 ‘문제’는 어디에서도 편히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여성주의 운동 진영뿐 아니라, 시민사회 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매매가 논의의 화두로 등장할 때, 그 공간은 묘한 긴장감 속에 놓인다. 성매매를 얘기할 때 ‘어떤 입장’을 요구받기도 하고, ‘어떤 입장’을 견지하냐에 따라 날이 선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는 성매매에 대한 ‘어떤 입장’을 견지하더라도 성매매 여성의 협력적 착취성, 매끄러운 구매자-알선자-판매자 도식이 아닌 성매매 여성들이 경험하는 관계의 복합성,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 여성이게끔 하는 빈곤 산업인 성산업의 메커니즘을 충분한 언어로 설명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성매매 ‘문제’를 페미니즘적 시각과 빈곤 문제로 사유한다는 것, 이 과정은 결코 ‘착취’, ‘피해’, ‘자발’의 간명한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과정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나는 동안, 법의 언어로만 담아낼 수 없는 성매매 여성 개인을 만나는 현장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이 글은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고민을 다룬 글이기도 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다짐을 담은 글이기도 하다.
성매매 특별법 제정, 그러나
2000년대 군산에서 두 차례 발생한 성매매 업소 화재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당시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 인해 20여 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사망하였고, 이들이 감금과 감시 속에서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착취적 상황이 낱낱이 밝혀졌다. 여성운동 단체는 이 사건을 그저 몇 번 회자되며 끝내는 사건이 아니길 바랐다. 성매매를 ‘타락’한 개인 여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로 짚고, 페미니즘적 사건으로 의미화하고자 하였다.
여성운동 단체들은 성매매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입법 운동을 전개하였고,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성매매 특별법의 성과로 성매매 ‘피해자’ 개념이 도입되었고, 이는 성매매가 여성 폭력의 한 형태임이 일부 인정되었음을 의미한다. 더불어 성매매 여성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성매매 ‘피해’ 지원체계로 ‘지원’할 수 있는 국가 자원이 확보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사진 출처 https://www.jbpresscenter.com/news/articleView.html?idxno=500496
성매매 특별법은 성매매 ‘피해자’와 ‘행위자’를 이분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 성판매 여성이 ‘자발’적으로 성매매 광고를 했기 때문에 ‘성매매 알선 행위’로 처벌받고 있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으며, 윤락행위등방지법 시절과 동일하게 성판매 여성이 집중적으로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판매 여성이 처벌 대상으로 집중되는 이 현상은 한국 사회가 성산업에 대한 책임을 성판매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성적 규범에 걸맞지 않은 ‘일탈적 존재’를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의지를 보여준다.
‘반성매매’ 현장 활동에서의 관계 맺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성매매 특별법은 자발적으로 성산업에 인입한 여성을 처벌하고 있다. 이는 자발적인 ‘음란’한 여성을 처벌하겠다는 가부장적 법리 기조를 반영한다. 더불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도 협소한 의미로 탈정치화되어 있는 ‘피해자’의 개념과,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지원’받는 대상이라는 낙인이 ‘창녀’ 낙인과 더해져 억압이 더욱 중첩된다.
기본적인 성매매 피해 지원 체계의 운영지침은 여성들의 ‘탈업’을 전제하여 지원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현장 단체의 일부 활동가는 여성에게 ‘탈업’을 얘기하고, ‘선별’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나 애초에 성매매 행위자와 피해자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구분선이 명확하지 않으며, 자발과 비자발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태도 또한 가부장적이며 게으른 인식론에 불과하다. 이에 대항하여 많은 현장단체 활동가는 법률 및 지침 개정 활동을 하고, 모순을 넘나들며 분투했다. 그러나 이미 법과 지원체계의 기조가 ‘탈업’을 전제하고 있는 한, 성산업 경계에 있는 여성들은 지원체계에 온전히 포섭되지 못한다. 또한 가부장적 국가의 복지제도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장 활동에서는 ‘지원’ 관계에만 매몰되지 않는 성판매 여성들과의 관계 맺음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이는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복지의 ‘수혜자’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규범에 균열을 내는 활동이다. 지원체계의 한계를 인지하고, ‘지원자-내담자’의 위계를 끊임없이 성찰한다는 것. ‘창녀 혐오’의 근간인 행위자/피해자의 구분을 균열 내기 위해, 성판매 여성 삶의 서사를 깊숙이 들여다본다는 것. 더 나아가 성판매 여성과 이 세계를 함께 살고 있는 동료이자 동지가 되어가는 활동을 지향한다는 것. 이는 성판매 여성들의 언어로 성산업에 대한 ‘문제’를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시도 중 하나이다.
견고한 ‘창녀 혐오’ 속에서
성매매 여성과 활동가가 관계를 맺을 때, 제3자의 시선과 개입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긴다. 주로 같이 병원에 가거나, 함께 집회를 나가게 되는 경우인데, 나이 불문하고 대부분 여성은 자신이 성판매 경험이 있음을 밝히기 꺼린다. 상황에 따라 활동가는 딸이 되기도 하고, 아는 언니가 되기도 하고, 아는 동생이 되며 다양한 위치를 오간다. 어떤 관계로 활동가를 소개하고 싶은지 먼저 물을 수 있을 땐 묻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눈치’ 껏 어떻게 하고 싶은지 파악한다. 이 자체가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처벌과 ‘성녀-창녀’ 프레임이 견고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선득하다. 여성에 대한 성적 규범과 ‘성녀-창녀’ 프레임이 여전히 견고한 사회에서 성판매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개인 서사 중 어느 한 부분이 잘려 나가는 건 부당하다.
2015년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성매매에 대한 문제의식이 넓혀진 듯하였으나, 납작한 ‘피해자’ 담론에 기반한 것이고, 최근에는 그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되려 유명 여캠 bj가 나이 많은 남성과 함께 걸었다는 이유로 ‘스폰’ 관계라는 비난을 받고, 여캠 bj들이 대중가수로 데뷔하였을 때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지 말라는 비난이 거셌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고, 반페미니즘 정서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쉽게 손가락질 할 수 있는 대상은 성매매 여성이다. 페미니스트조차도 성매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성매매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무관심마저도 혐오의 근간이다. 반성매매 활동가들은 지구 끝까지 ‘창녀 혐오’ 균열을 위해 싸우지 않을까.
성매매 담론에 다양화된 여성 빈곤 서사 기입하기
많은 여성주의 학자, ‘반성매매’ 현장 지원 활동가들은 성판매 여성들이 성산업에 인입되는 이유가 빈곤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의 빈곤은 ‘물질적’으로 어려운 존재의 모습만 상상하고 있다. 따라서 성판매를 하는 이유가 경제적 빈곤이라고만 퉁쳐서 설명하게 되면, ‘요즘은 대학생들도 성매매 하고’, ‘명품백 사려고 성매매 한다’는 공격에 쉽게 부딪히게 된다.
우리는 ‘늙고, 아픈 몸’을 가진 여성이 경험하는 빈곤과 ‘젊기에, 전망이 있다’고 여겨지는 성판매 여성의 빈곤은 또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룸은 세대별로, 시대별로 경험하는 빈곤을 다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 빈곤에서 더 나아가, 관계와 소속감으로부터의 빈곤, 자원으로부터의 박탈에서 이루어지는 빈곤 등 성판매 여성의 다양한 빈곤의 얼굴을 어떻게 여성주의적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끔 성판매 여성들이 경험하게 되는 빈곤을, 현재 구성되어 있는 언어 체계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음에 답답해지기도 한다. 성판매 여성의 빈곤을, 여성화된 빈곤의 다양한 얼굴이 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사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자발’에 대해 복잡하게 사유하기. ‘반성매매’ 운동의 새로운 언어 찾기.
지난 십수년 간 반성매매 활동가들이 해석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디지털 공간이 발달함에 따라 ‘극악무도’한 업주와 알선자, 구매자, 일수업체 등 기존 성산업 행위자 담론으로 불충분한 성산업이 많아졌다. 업종도 조건만남, 섹계, 나체 사진·영상 판매, 벗방 bj 등 다양하다. 이렇듯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자발적’으로 활용하여,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성판매 여성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 동안 반성매매 운동은 성판매 여성을 향한 사회적 처벌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업종을 불문하고고 그들의 자발이 자발이 아니었음을, ‘사실 알선조직이 있었다.’, ‘개인 간의 거래로 보이지만 개인 간의 거래가 아니다’라는 방식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과연 그 수사만으로 현재의 성산업과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거래되는 산업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폭력·착취·강압 등에 의해 성판매를 하는 여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은 성판매 여성의 성산업 인입의 가장 많은 동기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적인 언어 체계 속에서 성판매 여성을 비난하는 여론에 맞서기 위해, 똑같은 수사로 대응하는 건 소모적이다. 반성매매 운동은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한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그 ‘많은 돈’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많은 소비를 하고 싶어서인지, 무엇 때문인지. 만약 많은 소비가 필요하다면, 소비를 부추기는 이 사회에 대해서 어떻게 진단하고 문제 제기할 것인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성판매 여성의 생존 욕구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성판매 여성의 소비를 추동시키는 성산업의 전략은 무엇인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성산업으로의 문제 제기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이들이 선택한 자발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성매매 여성이 정말 불처벌 되는 사회를 위해
흔히들 성판매 여성의 불처벌은, 여성이 처벌받지 않는 법적인 불처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성판매 여성의 법적 불처벌은 너무도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법적인 불처벌만으로 근본적인 성산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성매매 여성이 ‘정말’ 불처벌 되는 사회를 위한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한국의 성매매 시장이 이미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오가며,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는 성매매의 현실 속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활용하여 이윤을 취하고 있는 ‘산업’에 대해 페미니즘 시각에서 정치경제적 개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현장에 발을 딛고, 성판매 여성의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성판매 여성이 ‘자발’적으로 들어갔고, ‘동의’했기에, 그 산업은 괜찮은 것인지, 여성들은 성산업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싶은지. 성매매 과정에서 젠더폭력을 당하더라도 이를 ‘재수없는 하루’, ‘진상손님’으로 의미화하게 되는 성산업의 역동은 과연 무엇인지. 성판매 여성이 성산업 내에서 경험하는 다종다양한 피해를 개별화하지 않고, 어떻게 정치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더불어 성판매 여성이 이야기하는 ‘자발’과 성판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적 처벌로서의 ‘자발’이 다름을 드러내야 한다.
성매매 특별법 제정 이후 20년, 현장에서의 고민
나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들어가며
한국 사회의 성매매 ‘문제’는 어디에서도 편히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여성주의 운동 진영뿐 아니라, 시민사회 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매매가 논의의 화두로 등장할 때, 그 공간은 묘한 긴장감 속에 놓인다. 성매매를 얘기할 때 ‘어떤 입장’을 요구받기도 하고, ‘어떤 입장’을 견지하냐에 따라 날이 선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는 성매매에 대한 ‘어떤 입장’을 견지하더라도 성매매 여성의 협력적 착취성, 매끄러운 구매자-알선자-판매자 도식이 아닌 성매매 여성들이 경험하는 관계의 복합성,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 여성이게끔 하는 빈곤 산업인 성산업의 메커니즘을 충분한 언어로 설명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성매매 ‘문제’를 페미니즘적 시각과 빈곤 문제로 사유한다는 것, 이 과정은 결코 ‘착취’, ‘피해’, ‘자발’의 간명한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과정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나는 동안, 법의 언어로만 담아낼 수 없는 성매매 여성 개인을 만나는 현장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이 글은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고민을 다룬 글이기도 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다짐을 담은 글이기도 하다.
성매매 특별법 제정, 그러나
2000년대 군산에서 두 차례 발생한 성매매 업소 화재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당시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 인해 20여 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사망하였고, 이들이 감금과 감시 속에서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착취적 상황이 낱낱이 밝혀졌다. 여성운동 단체는 이 사건을 그저 몇 번 회자되며 끝내는 사건이 아니길 바랐다. 성매매를 ‘타락’한 개인 여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로 짚고, 페미니즘적 사건으로 의미화하고자 하였다.
여성운동 단체들은 성매매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입법 운동을 전개하였고,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성매매 특별법의 성과로 성매매 ‘피해자’ 개념이 도입되었고, 이는 성매매가 여성 폭력의 한 형태임이 일부 인정되었음을 의미한다. 더불어 성매매 여성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성매매 ‘피해’ 지원체계로 ‘지원’할 수 있는 국가 자원이 확보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사진 출처 https://www.jbpresscenter.com/news/articleView.html?idxno=500496
성매매 특별법은 성매매 ‘피해자’와 ‘행위자’를 이분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 성판매 여성이 ‘자발’적으로 성매매 광고를 했기 때문에 ‘성매매 알선 행위’로 처벌받고 있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으며, 윤락행위등방지법 시절과 동일하게 성판매 여성이 집중적으로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판매 여성이 처벌 대상으로 집중되는 이 현상은 한국 사회가 성산업에 대한 책임을 성판매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성적 규범에 걸맞지 않은 ‘일탈적 존재’를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의지를 보여준다.
‘반성매매’ 현장 활동에서의 관계 맺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성매매 특별법은 자발적으로 성산업에 인입한 여성을 처벌하고 있다. 이는 자발적인 ‘음란’한 여성을 처벌하겠다는 가부장적 법리 기조를 반영한다. 더불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도 협소한 의미로 탈정치화되어 있는 ‘피해자’의 개념과,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지원’받는 대상이라는 낙인이 ‘창녀’ 낙인과 더해져 억압이 더욱 중첩된다.
기본적인 성매매 피해 지원 체계의 운영지침은 여성들의 ‘탈업’을 전제하여 지원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현장 단체의 일부 활동가는 여성에게 ‘탈업’을 얘기하고, ‘선별’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나 애초에 성매매 행위자와 피해자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구분선이 명확하지 않으며, 자발과 비자발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태도 또한 가부장적이며 게으른 인식론에 불과하다. 이에 대항하여 많은 현장단체 활동가는 법률 및 지침 개정 활동을 하고, 모순을 넘나들며 분투했다. 그러나 이미 법과 지원체계의 기조가 ‘탈업’을 전제하고 있는 한, 성산업 경계에 있는 여성들은 지원체계에 온전히 포섭되지 못한다. 또한 가부장적 국가의 복지제도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장 활동에서는 ‘지원’ 관계에만 매몰되지 않는 성판매 여성들과의 관계 맺음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이는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복지의 ‘수혜자’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규범에 균열을 내는 활동이다. 지원체계의 한계를 인지하고, ‘지원자-내담자’의 위계를 끊임없이 성찰한다는 것. ‘창녀 혐오’의 근간인 행위자/피해자의 구분을 균열 내기 위해, 성판매 여성 삶의 서사를 깊숙이 들여다본다는 것. 더 나아가 성판매 여성과 이 세계를 함께 살고 있는 동료이자 동지가 되어가는 활동을 지향한다는 것. 이는 성판매 여성들의 언어로 성산업에 대한 ‘문제’를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시도 중 하나이다.
견고한 ‘창녀 혐오’ 속에서
성매매 여성과 활동가가 관계를 맺을 때, 제3자의 시선과 개입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긴다. 주로 같이 병원에 가거나, 함께 집회를 나가게 되는 경우인데, 나이 불문하고 대부분 여성은 자신이 성판매 경험이 있음을 밝히기 꺼린다. 상황에 따라 활동가는 딸이 되기도 하고, 아는 언니가 되기도 하고, 아는 동생이 되며 다양한 위치를 오간다. 어떤 관계로 활동가를 소개하고 싶은지 먼저 물을 수 있을 땐 묻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눈치’ 껏 어떻게 하고 싶은지 파악한다. 이 자체가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처벌과 ‘성녀-창녀’ 프레임이 견고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선득하다. 여성에 대한 성적 규범과 ‘성녀-창녀’ 프레임이 여전히 견고한 사회에서 성판매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개인 서사 중 어느 한 부분이 잘려 나가는 건 부당하다.
2015년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성매매에 대한 문제의식이 넓혀진 듯하였으나, 납작한 ‘피해자’ 담론에 기반한 것이고, 최근에는 그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되려 유명 여캠 bj가 나이 많은 남성과 함께 걸었다는 이유로 ‘스폰’ 관계라는 비난을 받고, 여캠 bj들이 대중가수로 데뷔하였을 때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지 말라는 비난이 거셌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고, 반페미니즘 정서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쉽게 손가락질 할 수 있는 대상은 성매매 여성이다. 페미니스트조차도 성매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성매매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무관심마저도 혐오의 근간이다. 반성매매 활동가들은 지구 끝까지 ‘창녀 혐오’ 균열을 위해 싸우지 않을까.
성매매 담론에 다양화된 여성 빈곤 서사 기입하기
많은 여성주의 학자, ‘반성매매’ 현장 지원 활동가들은 성판매 여성들이 성산업에 인입되는 이유가 빈곤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의 빈곤은 ‘물질적’으로 어려운 존재의 모습만 상상하고 있다. 따라서 성판매를 하는 이유가 경제적 빈곤이라고만 퉁쳐서 설명하게 되면, ‘요즘은 대학생들도 성매매 하고’, ‘명품백 사려고 성매매 한다’는 공격에 쉽게 부딪히게 된다.
우리는 ‘늙고, 아픈 몸’을 가진 여성이 경험하는 빈곤과 ‘젊기에, 전망이 있다’고 여겨지는 성판매 여성의 빈곤은 또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룸은 세대별로, 시대별로 경험하는 빈곤을 다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 빈곤에서 더 나아가, 관계와 소속감으로부터의 빈곤, 자원으로부터의 박탈에서 이루어지는 빈곤 등 성판매 여성의 다양한 빈곤의 얼굴을 어떻게 여성주의적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끔 성판매 여성들이 경험하게 되는 빈곤을, 현재 구성되어 있는 언어 체계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음에 답답해지기도 한다. 성판매 여성의 빈곤을, 여성화된 빈곤의 다양한 얼굴이 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사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자발’에 대해 복잡하게 사유하기. ‘반성매매’ 운동의 새로운 언어 찾기.
지난 십수년 간 반성매매 활동가들이 해석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디지털 공간이 발달함에 따라 ‘극악무도’한 업주와 알선자, 구매자, 일수업체 등 기존 성산업 행위자 담론으로 불충분한 성산업이 많아졌다. 업종도 조건만남, 섹계, 나체 사진·영상 판매, 벗방 bj 등 다양하다. 이렇듯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자발적’으로 활용하여,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성판매 여성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 동안 반성매매 운동은 성판매 여성을 향한 사회적 처벌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업종을 불문하고고 그들의 자발이 자발이 아니었음을, ‘사실 알선조직이 있었다.’, ‘개인 간의 거래로 보이지만 개인 간의 거래가 아니다’라는 방식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과연 그 수사만으로 현재의 성산업과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거래되는 산업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폭력·착취·강압 등에 의해 성판매를 하는 여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은 성판매 여성의 성산업 인입의 가장 많은 동기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적인 언어 체계 속에서 성판매 여성을 비난하는 여론에 맞서기 위해, 똑같은 수사로 대응하는 건 소모적이다. 반성매매 운동은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한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그 ‘많은 돈’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많은 소비를 하고 싶어서인지, 무엇 때문인지. 만약 많은 소비가 필요하다면, 소비를 부추기는 이 사회에 대해서 어떻게 진단하고 문제 제기할 것인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성판매 여성의 생존 욕구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성판매 여성의 소비를 추동시키는 성산업의 전략은 무엇인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성산업으로의 문제 제기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이들이 선택한 자발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성매매 여성이 정말 불처벌 되는 사회를 위해
흔히들 성판매 여성의 불처벌은, 여성이 처벌받지 않는 법적인 불처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성판매 여성의 법적 불처벌은 너무도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법적인 불처벌만으로 근본적인 성산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성매매 여성이 ‘정말’ 불처벌 되는 사회를 위한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한국의 성매매 시장이 이미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오가며,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는 성매매의 현실 속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활용하여 이윤을 취하고 있는 ‘산업’에 대해 페미니즘 시각에서 정치경제적 개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현장에 발을 딛고, 성판매 여성의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성판매 여성이 ‘자발’적으로 들어갔고, ‘동의’했기에, 그 산업은 괜찮은 것인지, 여성들은 성산업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싶은지. 성매매 과정에서 젠더폭력을 당하더라도 이를 ‘재수없는 하루’, ‘진상손님’으로 의미화하게 되는 성산업의 역동은 과연 무엇인지. 성판매 여성이 성산업 내에서 경험하는 다종다양한 피해를 개별화하지 않고, 어떻게 정치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더불어 성판매 여성이 이야기하는 ‘자발’과 성판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적 처벌로서의 ‘자발’이 다름을 드러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