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업 안팎의 청소년, 교차성과 경계에 대한 고민들
다른 청소년성/노동연대 부라자(준)
들어가며
한국 사회가 상상하는 청소년의 삶과 욕망은 단순하다.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학교에선 대학 진학을 위해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이다. 가족으로부터 용돈을 받기에 일을 할 필요는 없을 테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의 연애‧섹스는 -도저히- (동성 간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 이로부터 어긋나는 서사를 가진 이들은 그야말로 골칫거리다. 성인 중심의 세계는 이 존재들을 보통 ‘문제아’, ‘중2병’, ‘비행 청소년’이라 부르며,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이로 취급한다. 그렇게 ‘감히’ 가족을 뛰쳐나오거나, 학교를 거부하거나, 노동을 하거나, 연애‧섹스를 하는 청소년들의 삶의 맥락은 왜곡되거나 낙인의 대상이 되기 쉽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낙인들이 사회에 한 겹씩 축적되는 동안, ‘골칫거리’들의 목소리를 한없이 지워내는 시스템이 공고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낙인 논리에 내재한 타자화의 폭력은 필연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을 만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가른다. 이러한 기준이 선명해질수록, 누군가가 다층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현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기울이거나, 문제 해소를 위한 사회적 자원을 충분히 투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사회 한편에서 끊임없이 정당화된다. 당연하게도, 이와 같은 논리의 작동 아래 기획된 사회현실은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글을 통해 그러한 논리와 현실의 연결성을 확인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하여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한 힘의 고리를 발견해내신다면, 청소년성/노동연대 부라자(준)의 이야기에 함께 주목해주시기를 긴히 요청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https://www.youngfeminist.eu/beijing25-gef/young-feminist-hub/
‘홀로’ 존재하는 성산업, ‘홀로’ 선 청소년은 없다
성인-남성-이성애 가족 중심 사회는 청소년 개인에게 미성숙 프레임을 씌워 관리/통제를 전제한 ‘보호’ 아래 있기를 주문한다. 이로부터 파생되는 법‧제도‧문화‧인식 등은 한 데 얽혀 가족-시설-학교-소년원(보호처분)이라는, 일종의 ‘보호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어준다. 이 때, 단순히 ‘안전’하게 ‘보호’받으면 모두에게 좋지 않은가라는 생각은 청소년의 생활세계에 교차하는 복잡한 권력관계의 역동을 매끈하게 지워낸다. 또한 이러한 인식은 해당 장소를 이탈한 이들이 생존의 주체로서 경험하는 현실과 불안정성에 대해 더 정교한 질문을 던지고 대화해나갈 여지를 순식간에 좁힌다. 결과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주류적 시각-보호/안전주의에 기반한 정상가족‧시설‧이성애‧시스젠더‧비장애‧선주민 중심의 관점과 제도정책으로는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이 겪는 복합적인 차별‧불평등‧억압‧폭력을 총체적으로 경청해낼 수 없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욕망과 서사를 단편적으로 재현하거나 왜곡하는 힘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기가 어려워지므로, 이를 거스를 대안의 모색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성산업 경계를 넘나드는 청소년들의 현실에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면 이들을 성급히 ‘요보호대상’으로 판단‧평가하기보다, 성산업도, ‘미성년’-청소년이라는 범주도 온갖 사회적 모순/부정의와 뚝 떨어져 ‘홀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망각할 때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불안정성은 폭넓게 사유 되지 못하고, 심지어 그에 따른 해결책이 청소년들을 평가절하해온 논리들에 의도찮게 포섭될 위험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청소년을 포함해 어떤 존재를 끝도 없이 주변화하고 배제해온 한국의 가부장자본주의 체제가 씌워놓은 두꺼운 혐오‧차별의 레이어를 섬세하게 인지하고, 이를 한꺼풀씩 벗어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현실의 복잡성/사회적 맥락을 인지한, 입체적인 경청의 중요성
예컨대 가부장체제가 십대-청소년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순결/음란이라는 이분화된 코드로 해석해온 역사가 성매매를 ‘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지닌 취약성을 심화시키는 조건과 어떻게 맞물려 작동해왔는지 탐색해볼 수 있겠다. 순결성은 십대-청소년 여성이라면 지켜야 할 일종의 정상규범으로 작동하면서, 섹슈얼리티에 대해 탐색하거나 성적실천을 하는 청소년들을 검열/통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가족을 포함해 청소년에 대한 훈육‧교정의 책임이 맡겨진 각 사회 단위들은 자신의 자녀‧학생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상벌이나 통금과 같은 일상적인 단속 장치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엇나갔다’ 여겨지는 이들에 대한 폭력‧폭언‧모욕은 자연스레 정당화되고, 처벌로부터 오는 수치심‧죄책감‧낙인감 등은 고스란히 청소년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겨진다. 결국 ‘순결’의 기준에 따라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보호’할 사회적 명분을 강력히 세워둘수록, ‘음란’의 기준에 따라 ‘처벌’할 사회적 명분-금기 역시 강력해지게 된다. 이는 십대-청소년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실천 경험이나 성폭력 피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이다.
성‧재생산 권리를 충분히 사유하거나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경로,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자본주의 체제가 청소년의 성을 경제적 자원으로 이용‧거래하는 행태는 지속되었으며, 성산업 시장은 그 규모와 유형을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다양해졌다. 그 가운데 ‘잘 곳’과 ‘먹을 것’, 관계적 필요 등 생존을 위한 자원 확보가 어려운 십대-청소년 여성들은 성산업 경계를 넘나들며 생활상의 불안정이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증폭된다. 이때 십대-청소년 여성들은 순결/음란으로 이분화된 범주에 따라 스스로의 ‘피해자 됨’을 검열하거나, 각종 사회서비스 지원체계로부터 ‘피해자’의 조건에 들어맞는지 검열 ‘당하는’ 위치에 놓이기 쉽다. 이는 섹슈얼리티의 위계화가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이 통과하는 현실과 얽혀 어떠한 물적 조건을 형성하는지 보여주는 일례다.
여성가족부 ‘2016 성매매 실태조사’ 통계 그래프
출처 https://www.segye.com/newsView/20170501002514
또한 한국 사회는 성인-남성-비장애인-선주민의 ‘임금노동’을 ‘정상’의, 생산적 경제 활동으로 전제해왔다. 그에 따라 여성‧장애인‧이주민‧청소년 등의 노동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 부차적 노동 취급을 하고, 저임금의 불안정한 지위에 놓였다. 노동에서의 위계가 만들어낸 현실은 성차별‧채용차별‧임금꺾기 등을 비롯한 불합리한 노동 여건으로 이어져 자원 확보가 어려운 조건을 만들었고, 그로 인한 불안정성의 심화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먹여 살리고 싶고, 그래야 함에도, 이를 어렵게 했다. 이러한 조건 속에 청소년들은 성매매를 월급날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빠른 자원 확보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이처럼 ‘성매매 청소년’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이나 ‘성매매 행위’에 주목하기보다 그와 연결된 사회적 맥락까지 초점을 확장할 때, 청소년을 둘러싼 현실에 교차하는 권력 작동방식은 더욱 명료하게 파악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성/노동에서의 위계 구조로부터 파생되는 억압 논리나 모순이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이 가진 고유한 서사를 왜곡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상황을 경계하면서, 이들을 둘러싼 ‘현실 조건’에 균열을 낼 대안을 전략적으로 모색할 수 있게 된다.
‘피해자화’를 넘어 교차하는 범주들이 형성하는 울퉁불퉁한 현실(들)에 주목하기
복지 영역에서 전제하는 ‘성매매 청소년’의 서사/삶의 경로는 대개 ‘성매매 시도-불행한 성매매 피해자-성매매 피해 치유 회복-건강하고 행복한 청소년으로의 복귀’라는 경로를 따른다. 사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청소년’의 자리를 보통 ‘가족’으로 전제하므로, 주거 지원체계의 목표는 가정 복귀에 맞춰져 있고, 그 외의 공식적이고도 보편적인 선택지로는 시설을 마련해두었다. 두 장소의 사이에는 권리의 황무지가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이 공백 사이에서 십대-청소년 여성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위험과 불안정성은 극대화된다. ‘원래’ 복귀해야 할 장소를 정해놓은 현 시스템은, 가부장자본주의 체제가 재생산하는 권력관계에 주목해서 이들이 ‘지금’ 직면한 문제의 해소를 어렵게 하는 구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에너지를 투여하기보다, 청소년에 대한 ‘정상 규범’으로 복귀시키는 장치들을 구축‧유지하는데 집중한다. 이에 사회구조가 기획한 불안정성을 통과하면서 성매매 중단-탈출을 무 자르듯 명확히 나눌 수 없는 이들의 욕망과 서사는 되려 사회서비스 제공 기준에 맞지 않아 배제되거나, ‘힘’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기획된 사회구조에 의해 차별받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때 성별‧장애‧계급‧성적지향‧성정체성‧질병유무‧인종 등에 따른 다층의 소수자성이 교차할 경우, 이들이 경험하는 고유한 현실은 보이지 않거나 오독될 가능성이 커진다.
즉 성산업과 연결된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울퉁불퉁한 현실을 섬세하게 포착하기 위해선 동시다발적으로 얽혀있는 억압축이 어떻게 교차하며 현실의 폭력/불안정성의 수준과 위험도를 심화시켰는가에 관한 질문이 동반되어야 한다. 소수자를 사회로부터 분리‧감금하고 서열화해온 역사와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이 당장 ‘오늘’ 직면하는 현실은 서로 무관한,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이를 고려해볼 때 청소년들이 성산업 내‧외부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은, 이들이 지닌 온갖 권리가 총체적으로 박탈된 현실이 오랫동안 축적되면서 발생한 ‘사회적 결과’다. 따라서 여기에 어떤 구조적 힘이 교차하고 있는지 구체화하고 규명할 수 없다면, 그 힘에 균열을 낼 논리 역시 만들어낼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이 연관성을 기억하여,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행위성이나 서사의 편집을 강제하지 않으면서 가족구성권‧노동권‧성‧재생산권‧주거권‧탈시설권리 등이 총체적으로 박탈된 현실을 읽어내고 이를 변혁할 수 있는 언어를 시급히 찾아가야 한다.
흐르고 유동하는 삶의 주체들 간의 연대를 상상하며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경제문화적 배경만큼, 성산업을 둘러싼 현실도 한결같이 고정되고 천편일률적일 수 없다. 다만 낙인과 배제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를 주변화하며 이들이 가진 권한을 약화 시켜온 한국 사회의 역사와 사회구조에 주목한다면,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과 얽힌 사회적 맥락에 대한 두터운 이해가 가능해진다. 성매매/청소년의 속성에 대한 고정된 이해에 안정적으로 머무르기보다, 흐르고 유동할 수 밖에 없는 삶 그 자체가 지닌 불확실성과 취약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 가운데 생존을 가능케 한 물적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면밀히 듣고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보장할 대안 기획의 과정은 한 존재를 낙인찍는 논리에 따르지 않으면서, 사회-관계와 상호의존하며 삶의 주체로 생존해온 시민 개인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 유대 정서의 사회적인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성노동 전, 후, 과정 중에 있는 청소년들을 수동적 위치로 격하하기보다, 구조적 부정의를 함께 찾고 이에 균열을 내어갈 사회적 존재이자 사회를 지탱하는 주체들로 인정하여, 이들의 현실 인식을 인권‧사회운동 차원에서 적극 경청‧수렴해가는 시도도 요구된다. 이로써 십대-청소년 여성들의 관점과 그에 연대하는 목소리들이 사회구성원 간의 분리‧서열화를 부추겨온 사회적 조건과 낙인 논리에 선명히 균열을 내고, 깊은 돌봄의 관계들을 지켜내어 평등한 사회로 다가서는 길을 활짝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 교차성과 경계에 대한 고민들
다른 청소년성/노동연대 부라자(준)
들어가며
한국 사회가 상상하는 청소년의 삶과 욕망은 단순하다.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학교에선 대학 진학을 위해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이다. 가족으로부터 용돈을 받기에 일을 할 필요는 없을 테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의 연애‧섹스는 -도저히- (동성 간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 이로부터 어긋나는 서사를 가진 이들은 그야말로 골칫거리다. 성인 중심의 세계는 이 존재들을 보통 ‘문제아’, ‘중2병’, ‘비행 청소년’이라 부르며,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이로 취급한다. 그렇게 ‘감히’ 가족을 뛰쳐나오거나, 학교를 거부하거나, 노동을 하거나, 연애‧섹스를 하는 청소년들의 삶의 맥락은 왜곡되거나 낙인의 대상이 되기 쉽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낙인들이 사회에 한 겹씩 축적되는 동안, ‘골칫거리’들의 목소리를 한없이 지워내는 시스템이 공고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낙인 논리에 내재한 타자화의 폭력은 필연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을 만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가른다. 이러한 기준이 선명해질수록, 누군가가 다층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현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기울이거나, 문제 해소를 위한 사회적 자원을 충분히 투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사회 한편에서 끊임없이 정당화된다. 당연하게도, 이와 같은 논리의 작동 아래 기획된 사회현실은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글을 통해 그러한 논리와 현실의 연결성을 확인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하여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한 힘의 고리를 발견해내신다면, 청소년성/노동연대 부라자(준)의 이야기에 함께 주목해주시기를 긴히 요청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https://www.youngfeminist.eu/beijing25-gef/young-feminist-hub/
‘홀로’ 존재하는 성산업, ‘홀로’ 선 청소년은 없다
성인-남성-이성애 가족 중심 사회는 청소년 개인에게 미성숙 프레임을 씌워 관리/통제를 전제한 ‘보호’ 아래 있기를 주문한다. 이로부터 파생되는 법‧제도‧문화‧인식 등은 한 데 얽혀 가족-시설-학교-소년원(보호처분)이라는, 일종의 ‘보호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어준다. 이 때, 단순히 ‘안전’하게 ‘보호’받으면 모두에게 좋지 않은가라는 생각은 청소년의 생활세계에 교차하는 복잡한 권력관계의 역동을 매끈하게 지워낸다. 또한 이러한 인식은 해당 장소를 이탈한 이들이 생존의 주체로서 경험하는 현실과 불안정성에 대해 더 정교한 질문을 던지고 대화해나갈 여지를 순식간에 좁힌다. 결과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주류적 시각-보호/안전주의에 기반한 정상가족‧시설‧이성애‧시스젠더‧비장애‧선주민 중심의 관점과 제도정책으로는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이 겪는 복합적인 차별‧불평등‧억압‧폭력을 총체적으로 경청해낼 수 없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욕망과 서사를 단편적으로 재현하거나 왜곡하는 힘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기가 어려워지므로, 이를 거스를 대안의 모색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성산업 경계를 넘나드는 청소년들의 현실에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면 이들을 성급히 ‘요보호대상’으로 판단‧평가하기보다, 성산업도, ‘미성년’-청소년이라는 범주도 온갖 사회적 모순/부정의와 뚝 떨어져 ‘홀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망각할 때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불안정성은 폭넓게 사유 되지 못하고, 심지어 그에 따른 해결책이 청소년들을 평가절하해온 논리들에 의도찮게 포섭될 위험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청소년을 포함해 어떤 존재를 끝도 없이 주변화하고 배제해온 한국의 가부장자본주의 체제가 씌워놓은 두꺼운 혐오‧차별의 레이어를 섬세하게 인지하고, 이를 한꺼풀씩 벗어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현실의 복잡성/사회적 맥락을 인지한, 입체적인 경청의 중요성
예컨대 가부장체제가 십대-청소년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순결/음란이라는 이분화된 코드로 해석해온 역사가 성매매를 ‘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지닌 취약성을 심화시키는 조건과 어떻게 맞물려 작동해왔는지 탐색해볼 수 있겠다. 순결성은 십대-청소년 여성이라면 지켜야 할 일종의 정상규범으로 작동하면서, 섹슈얼리티에 대해 탐색하거나 성적실천을 하는 청소년들을 검열/통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가족을 포함해 청소년에 대한 훈육‧교정의 책임이 맡겨진 각 사회 단위들은 자신의 자녀‧학생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상벌이나 통금과 같은 일상적인 단속 장치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엇나갔다’ 여겨지는 이들에 대한 폭력‧폭언‧모욕은 자연스레 정당화되고, 처벌로부터 오는 수치심‧죄책감‧낙인감 등은 고스란히 청소년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겨진다. 결국 ‘순결’의 기준에 따라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보호’할 사회적 명분을 강력히 세워둘수록, ‘음란’의 기준에 따라 ‘처벌’할 사회적 명분-금기 역시 강력해지게 된다. 이는 십대-청소년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실천 경험이나 성폭력 피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이다.
성‧재생산 권리를 충분히 사유하거나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경로,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자본주의 체제가 청소년의 성을 경제적 자원으로 이용‧거래하는 행태는 지속되었으며, 성산업 시장은 그 규모와 유형을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다양해졌다. 그 가운데 ‘잘 곳’과 ‘먹을 것’, 관계적 필요 등 생존을 위한 자원 확보가 어려운 십대-청소년 여성들은 성산업 경계를 넘나들며 생활상의 불안정이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증폭된다. 이때 십대-청소년 여성들은 순결/음란으로 이분화된 범주에 따라 스스로의 ‘피해자 됨’을 검열하거나, 각종 사회서비스 지원체계로부터 ‘피해자’의 조건에 들어맞는지 검열 ‘당하는’ 위치에 놓이기 쉽다. 이는 섹슈얼리티의 위계화가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이 통과하는 현실과 얽혀 어떠한 물적 조건을 형성하는지 보여주는 일례다.
여성가족부 ‘2016 성매매 실태조사’ 통계 그래프
출처 https://www.segye.com/newsView/20170501002514
또한 한국 사회는 성인-남성-비장애인-선주민의 ‘임금노동’을 ‘정상’의, 생산적 경제 활동으로 전제해왔다. 그에 따라 여성‧장애인‧이주민‧청소년 등의 노동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 부차적 노동 취급을 하고, 저임금의 불안정한 지위에 놓였다. 노동에서의 위계가 만들어낸 현실은 성차별‧채용차별‧임금꺾기 등을 비롯한 불합리한 노동 여건으로 이어져 자원 확보가 어려운 조건을 만들었고, 그로 인한 불안정성의 심화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먹여 살리고 싶고, 그래야 함에도, 이를 어렵게 했다. 이러한 조건 속에 청소년들은 성매매를 월급날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빠른 자원 확보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이처럼 ‘성매매 청소년’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이나 ‘성매매 행위’에 주목하기보다 그와 연결된 사회적 맥락까지 초점을 확장할 때, 청소년을 둘러싼 현실에 교차하는 권력 작동방식은 더욱 명료하게 파악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성/노동에서의 위계 구조로부터 파생되는 억압 논리나 모순이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이 가진 고유한 서사를 왜곡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상황을 경계하면서, 이들을 둘러싼 ‘현실 조건’에 균열을 낼 대안을 전략적으로 모색할 수 있게 된다.
‘피해자화’를 넘어 교차하는 범주들이 형성하는 울퉁불퉁한 현실(들)에 주목하기
복지 영역에서 전제하는 ‘성매매 청소년’의 서사/삶의 경로는 대개 ‘성매매 시도-불행한 성매매 피해자-성매매 피해 치유 회복-건강하고 행복한 청소년으로의 복귀’라는 경로를 따른다. 사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청소년’의 자리를 보통 ‘가족’으로 전제하므로, 주거 지원체계의 목표는 가정 복귀에 맞춰져 있고, 그 외의 공식적이고도 보편적인 선택지로는 시설을 마련해두었다. 두 장소의 사이에는 권리의 황무지가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이 공백 사이에서 십대-청소년 여성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위험과 불안정성은 극대화된다. ‘원래’ 복귀해야 할 장소를 정해놓은 현 시스템은, 가부장자본주의 체제가 재생산하는 권력관계에 주목해서 이들이 ‘지금’ 직면한 문제의 해소를 어렵게 하는 구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에너지를 투여하기보다, 청소년에 대한 ‘정상 규범’으로 복귀시키는 장치들을 구축‧유지하는데 집중한다. 이에 사회구조가 기획한 불안정성을 통과하면서 성매매 중단-탈출을 무 자르듯 명확히 나눌 수 없는 이들의 욕망과 서사는 되려 사회서비스 제공 기준에 맞지 않아 배제되거나, ‘힘’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기획된 사회구조에 의해 차별받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때 성별‧장애‧계급‧성적지향‧성정체성‧질병유무‧인종 등에 따른 다층의 소수자성이 교차할 경우, 이들이 경험하는 고유한 현실은 보이지 않거나 오독될 가능성이 커진다.
즉 성산업과 연결된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울퉁불퉁한 현실을 섬세하게 포착하기 위해선 동시다발적으로 얽혀있는 억압축이 어떻게 교차하며 현실의 폭력/불안정성의 수준과 위험도를 심화시켰는가에 관한 질문이 동반되어야 한다. 소수자를 사회로부터 분리‧감금하고 서열화해온 역사와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이 당장 ‘오늘’ 직면하는 현실은 서로 무관한,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이를 고려해볼 때 청소년들이 성산업 내‧외부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은, 이들이 지닌 온갖 권리가 총체적으로 박탈된 현실이 오랫동안 축적되면서 발생한 ‘사회적 결과’다. 따라서 여기에 어떤 구조적 힘이 교차하고 있는지 구체화하고 규명할 수 없다면, 그 힘에 균열을 낼 논리 역시 만들어낼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이 연관성을 기억하여,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행위성이나 서사의 편집을 강제하지 않으면서 가족구성권‧노동권‧성‧재생산권‧주거권‧탈시설권리 등이 총체적으로 박탈된 현실을 읽어내고 이를 변혁할 수 있는 언어를 시급히 찾아가야 한다.
흐르고 유동하는 삶의 주체들 간의 연대를 상상하며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경제문화적 배경만큼, 성산업을 둘러싼 현실도 한결같이 고정되고 천편일률적일 수 없다. 다만 낙인과 배제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를 주변화하며 이들이 가진 권한을 약화 시켜온 한국 사회의 역사와 사회구조에 주목한다면, 성산업 안팎의 청소년들과 얽힌 사회적 맥락에 대한 두터운 이해가 가능해진다. 성매매/청소년의 속성에 대한 고정된 이해에 안정적으로 머무르기보다, 흐르고 유동할 수 밖에 없는 삶 그 자체가 지닌 불확실성과 취약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 가운데 생존을 가능케 한 물적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면밀히 듣고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보장할 대안 기획의 과정은 한 존재를 낙인찍는 논리에 따르지 않으면서, 사회-관계와 상호의존하며 삶의 주체로 생존해온 시민 개인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 유대 정서의 사회적인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성노동 전, 후, 과정 중에 있는 청소년들을 수동적 위치로 격하하기보다, 구조적 부정의를 함께 찾고 이에 균열을 내어갈 사회적 존재이자 사회를 지탱하는 주체들로 인정하여, 이들의 현실 인식을 인권‧사회운동 차원에서 적극 경청‧수렴해가는 시도도 요구된다. 이로써 십대-청소년 여성들의 관점과 그에 연대하는 목소리들이 사회구성원 간의 분리‧서열화를 부추겨온 사회적 조건과 낙인 논리에 선명히 균열을 내고, 깊은 돌봄의 관계들을 지켜내어 평등한 사회로 다가서는 길을 활짝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