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09월[이슈] 해외입양과 보호출산제라는 거울에 비친 재생산 정의의 현실

해외입양과 보호출산제라는 거울에 비친 재생산 정의의 현실


신필식 입양의 공공성강화와 진실규명을 위한 연대회의 (입양연대회의) 전 사무국장 


불과 두 달 만에…

보호출산제가 8월 25일 국회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였다. 6월 초 셰어의 이슈페이퍼 기고를 의뢰받을 당시 보호출산제에 대한 우려를 담는 글을 제안받았다. 그러나 지난 6월 22일 감사원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생 기록이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출생 후 미등록 아동이 2천1백23명에 이르고 그 가운데 2백49명이 이미 숨졌다는 발표를 계기로 불과 일주일 후인 6월 30일 출생통보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는 다시 보호출산제의 병행 도입론을 점화시켰다. 그리고 두 달이 되지 않아 보호출산제가 국회 해당 소위를 통과하기에 이른 것이다. (편집자주 : 이 글은 8월 말에 작성한 글입니다. 9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기 임신 및 보호 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제)이 통과되었으며, 21일과 25일 본회의에 상정되었으나 국회 상황으로 다뤄지지 못하여 다음 본회의에서 다시 상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1) 입양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입양인과 미혼모, 친생부모, 입양부모, 아동권리옹호단체의 보호출산제 도입 반대 기자회견) 출처


출생 미등록 아동 보도 이후, 보건복지부와 여당은 당장 내년에 출생통보제가 발효되면 병원 외 출산, 영아유기, 영아살해가 늘 것인데 어린 생명은 어떻게든 보호할 방안을 찾겠다며 합동 TF를 구성해 관계 기관과 당사자를 만나 보호출산제 도입 필요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보호출산제 도입 이외의 어떤 종합적인 파악이나 대안이 모색된 바가 없다. 무엇이 저토록 정부를 급히 움직이게 했을까? 정부와 여당은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지 이십 년 넘게 수천 명의 출생 미등록 아동을 방임해오다가 고작 두 달 만에 태도를 바꾸었다. 1년 후면 시행될 출생통보제로 인해 병원 밖에서 태어나 죽을지 모를 아이들을 위한다는 말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한편 한국은 1953년 한국전쟁 휴전이 되던 해부터 작년까지 70년간 17만 명의 자국 아동을 해외로 입양보낸 나라다.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 이전까지는 해외입양은 친생부모의 존재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을 고아로 만들어져 해외로 입양 보냈고, 국내입양의 경우 아이의 친생부모 존재 자체를 지우고 입양부모의 입양 자녀가 아닌 직접 낳은 친생자로 입양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그래서 많은 해외입양인은 친생부모가 없거나 자신을 버렸다고 알고서 살아가며, 국내입양인은 자기가 부모의 친생자로 알고 살아가거나, 성인이 된 후 입양된 사실을 아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후의 수단을 맨 처음으로(?)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제출한 국가보고서 심의 후, “익명으로 아동 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해 아동이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없게 된다는 것에 우려를 표하였으며 “익명출산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 도입을 ‘오직 최후의 수단(a as last resort)으로만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때 ‘최후의 수단’의 의미는 아동의 유기를 막기 위해 위기 임신‧출산에 대한 국가의 충분한 지원과 보호,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 명시된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 받을’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의 마련과 정착 등이 모든 노력이 이루어진 이후를 의미한다.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피임, 임신, 임신중지, 출산, 양육, 친권중지[ref]공식적으로 자녀를 출생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기 어려울 경우 자녀의 양육을 사회나 정부에 위탁하는 것에 대한 공식적 용어는 과거 입양기관에서는 친권포기라고 지칭했으나, 친권은 박탈되거나 상실할 수 있으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관계로 공식 용어가 될 수 없다. 그 결과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자녀를 다시 찾아올 의사가 없이 두고 온다는 의미에서 행정상 유기라고 분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친권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 부모나 그 자녀와 관련된 개념과 용어의 부재는 연관된 제도와 행정, 통계의 전반적 혼란과 공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f], 입양으로 이어지는 가족구성권과 재생산권 전반과 연결되는 여러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교육, 정보제공, 상담, 지원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그런 절차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에 익명출산(보호출산) 제도가 도입될 경우 결국 보호출산을 유도하는 것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입법이 결정된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가 잘 운용되어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와 부모를 알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이 가능한 한 원가정에서 부모에게 양육 받을 권리를 보장할 방안을 먼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때, 관련 제도 중 어느 것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지, 또 지금이라도 논의되고 있는 것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ref]현재 정부는 미혼 상태의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출산 기간 모든 기혼의 유배우 여성과 같이 1백만 원의 바우처 금액만을 지원하고 있고, 출산 이후에는 20만 원 상당의 한부모 가정 수당이 더 나올 뿐이다.[/ref] 그러면서 정부와 여당은 최후의 수단을 마치 유일한 대안인 듯 서둘러 도입해 생명을 보장한다며 보호출산제 도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2) 베이비박스 운영 교회와 친입양기관 성향의 입양부모단체,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의 보호출산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 출처


보호출산이 당장 최우선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겐 재생산 부정의의 결과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에 이른 과정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러한 시선에서 어머니가 양육을 통해 자녀와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도, 헤어지는 자녀와의 기록조차 두려워 남기기를 망설이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도 상관없거나 변하지 않을 상수인 듯하다. 바꿀 수 없으니 당장 아이라도 구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권리 공백의 뫼비우스 위 모(母)와 자녀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 결과는 당초 보도에서 추정된 것과 달랐다.[ref]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출생 미신고 아동 2,123명 전수조사 결과 1,025명 생존 확인, 249명 사망, 814명 수사 중”https://www.mohw.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3&page=1&CONT_SEQ=377321[/ref] 감사원의 발표 이후 미등록 아동의 많은 수가 죽었을 수 있다는 보도와 달리 2천백 23명 중 실제 사망 아동은 2백 49명이었으며, 이중 사망진단서, 사체검안서로 사망이 확인된 경우가 2백 22명, 경찰의 수사로 사인이 확인되지 않아 조사를 받는 경우는 27명, 그중 영아살해 등 범죄 사실이 확인된 경우는 7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771명은 단순 누락과 착오에 의한 것으로 원가정에서 양육되고 있으며, 미등록 아동 중 601명이 베이비박스로 유기되었고, 이번 발표에서 정작 국내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 의무가 없는 외국인 부모의 자녀 약 4천 명은 발표에서 아예 제외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출생 미등록이란 현상이 단순히 출산한 기록을 숨기기 위해 아이를 죽이는 현상이 아니며, 혼인 여부, 나이, 계층, 국적 등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사회적 조사와 대책이 절실한 것임을 보여준다.

영아유기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은 한 여성은 임신 사실을 21주에 알게 되었다며 “먼저 임신중절수술부터 알아봤지만, 아기가 너무 커서 수술비로 병원에서 5백만 원을 요구해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ref]“신생아가 더 이상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보호출산제 필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12142[/ref]고 진술했고,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의 친모는 임신중지 비용 부담할 수 없어 두 자녀를 출산하자마자 살해한 것으로 밝혀지는 등 대부분의 출생 미등록 후 아동살해 및 유기 사례의 대부분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의한 것이었다.

여성에게 먼저 보장되어야 할 것은 임신의 유지와 종결을 할 권리를 보장받고, 임신‧출산‧양육을 결정한 여성에게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성의 선택권과 실질적 지원, 의료보험을 통해 임신, 임신중지, 출산에서 상담 정보제공 긴급지원을 위한 공적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보호출산제가 먼저 도입될 경우,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 의료지원을 받기 위해 보호출산을 택하는 경우가 생길 우려가 크다.

최후의 수단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앞선 조건과 선행 요건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최후의 수단은 최초의 선택지이자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다른 사전의 선택과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게 억제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2019년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이후 정체된 임신중지권리와 보호출산제의 관계는 특히 우려스럽다.

보호출산제의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하고 명확하다. “기르지 못하겠으면 익명으로 해줄 테니 (죽이지 말고) 두고 가라. 단, 양육지원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기대하지 말고, 자기 힘으로 기를 수 있는 사람은 기르고 아니면 두고 가라. 그리고 임신중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마라.”이다. 해외입양 역사 속에서 아동의 권리와 모(母)의 권리는 교묘하게 상충하도록 위치 지워지며 양쪽이 자리 잡지 못하게 했다. 어느 한쪽이든 강화하면 다른 한쪽이 개선되는 관계임에도 양쪽을 서로 핑계 삼아 대며 계속 제자리걸음과 뒷걸음치기를 반복해 왔다. 필요 이상의 의도치 않은 너무나 많은 가족 분리, 대체적 보호‧지원체계의 부재, 헤어짐의 과정에서 입양이 쉽게 권해지는 만큼 권리의 주체로서 어머니의 위치는 여전히 좁다. 그러한 상황 속에 아동(자녀)의 권리가 들어설 자리 또한 넓어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늦었지만 가야 할 한 길, 재생산 정의

대규모의 손쉬운 원가족 분리에 이은 해외‧국내 입양가족으로의 이동,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둔 가부장적 가족 정상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강박, 재생산 부정의로 인한 어려움을 사적 책임으로 돌리고 지원이 필요한 여성에 대한 비가시화와 배제, 한국 어머니의 가족 구성 및 유지에 관한 권리의 부재, 빈곤‧한부모‧미혼모 가족 모성 지원 공백 등이 켜켜이 쌓여 구성된 역사사회적・제도적 구성물이 바로 해외입양이었다.



(사진 3) 해외입양을 통한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조사를 신청한 해외입양인  375명에 대한 조사 개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보호출산제는 재생산권, 가족구성권, 여성권리, 아동권리의 복합적 맥락 속에 위치한다. 그래서 보호출산제가 실제로도 최후의 선택지가 될지, 그 대신 앞선 도입이 시급한 정책을 대체하고 후퇴시키면서 우선적-유일한 수단으로 쓰이게 될지는 한국 사회 고유의 맥락과 경로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보호출산제 도입에서 자주 거론되는 독일의 신뢰출산제의 경우 가족구성권, 재생산권이 (상대적으로) 잘 갖추어진 이후 아동의 권리를 중심으로 추가적 대안으로 도입된 것이지만, 한국은 재생산권과 가족구성권이 기본적 권리로서 여전히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보호출산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여성권리의 보완이나 아동권리의 확대 측면이 아니라 해외입양 70년에 걸쳐 누적‧지속되어 온 친생가족, 특히 친생모의 취약성이 또 다른 형태의 변형과 확대된 형태로 봐야 한다.

아동의 생명을 살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일생을 뿌리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베이비박스 아이들의 이야기, 자신이 고아로 버려진 아이로 알고 살아가는 해외입양인의 채울 길 없는 정체성의 공백과 씨름하는 삶의 고통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선 가족이 헤어지는 슬픔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어쩔 수 없는 슬픔을 피할 수 없다면 서로를 지우고 만나지 못하게 하거나, 정부가 그들을 침묵하고 숨게 만들어선 안 될 것이다. 또한, 새로운 가족과 부모를 얻게 해주었으니 지난날은 모두 잊으라고 강요해선 안 될 것이다.

변화해야 할 조건의 핵심인 재생산권, 가족구성권, 여성복지의 현실을 외면한 채, 아무런 노력 없이 어려움 속의 여성과 아동을 구한다고 믿는 보호출산제는 누구도 보호하지 않고, 어떤 개선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며 또 다른 악화의 시작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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