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정의 운동이 내게 가르쳐 준 것
김현숙
나는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신생아 시절 내가 자란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선구적인’ 국제 입양의 나라이자,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한 해외입양 제도의 본거지로서, 지난 70년 동안 20만 명이 넘는 한국 아동들을 해외, 특히 서양으로 입양보내왔다. 나는 2014년에 한국에 살기 위해 이사를 왔고, 이전부터 한국에서 커뮤니티를 꾸리며 살아온 나와 같은 입양된 한국인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입양정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입양 제도의 본거지가 되었나?
입양된 성인 한국인들은 1980년대부터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가고 있으며, 입양 산업을 만들어낸 제도와 사회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조직해 오고 있었다. 그 시기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인 입양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왜, 어떻게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입양 제도의 본거지가 되었을까? 지난 70년 동안 한국에서 국제 입양이 어떻게 멈추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을까? 한국의 입양 제도는 정말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아동복지 실천일까?
내가 입양되기 위해 해외로 보내어졌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아이구, 한국 전쟁 이후에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국 전쟁 이후 폐허가 되었던 1950년대에 해외입양이 시작된 것이기에 관련은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해외로 보내진 아동들의 숫자는 198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었다.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해외 입양의 건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시행한 시기와 맞닿는다.
이와 같이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입양이 어떤 인도주의적 실천이나 국내 빈곤 이슈에 대응하는 아동복지적 실천으로 기능했다기보다 또 다른 목적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입양은 한국 정부가 국가가 지출해야 할 사회복지 비용을 입양 부모에게 전가하면서 고가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이는 국내 사회복지의 발달을 저해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입양 산업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다. 정확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입양으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오늘날의 가치로 따지면 33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약 4조 350억원)[ref]Kwon Dobbs, J. (2011). “Ending South Korea’s Child Export Shame.”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https://ips-dc.org/ending_south_koreas_child_export_shame [/ref].
또한 인종, 장애, 혹은 법률상 혼인관계가 아닌 관계에서 태어나 사회적으로 낙인 찍힌 아동들을 입양보내면서, 국가의 인구수를 설계하고 여성의 재생산권과 성적 결정을 통제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입양은 한국이 서양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한국 아동들은 자신들이 입양된 서양 국가들에서 냉전 반공 국가 건설에 활용되며 ‘자비롭고 민주적이며 반인종주의적인’ 서양 국가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서양 국가에서 한국 아동의 입양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입양은 국내외 정치적 필요와 국가 건설의 목적에 부응했고, 입양 기관은 아동을 위한 가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필요한 가족"을 찾기에 나섰다.[ref]Kim, E. (2009). “The Origins of Korean Adoption: Cold War Geopolitics and Intimate Diplomacy.” Working Paper Series, U.S.-Korea Institute at SAIS. October 2009, 1-26. Retrieved from https://escholarship.org/uc/item/78q9q34d [/ref]
입양 기관들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부동산 투자, 분만 클리닉, 아기 접수 센터, 위탁 가정, 젊은 미혼모들을 위한 미혼모자시설 등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미혼모자시설은 입양 가능한 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한 시설 중 하나다.[ref]Hübinette, T. (2004). “Korean adoption history.” Kim, E. (Eds.), Community: Guide to Korea for Overseas Adopted Koreans. Seoul: Overseas Korea Foundation, 25-47.[/ref] 임산부들은 보호소에 격리된채로 임신한 상태에서 자식을 포기하는 각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받았다. 가족의 지원도, 재정적, 사회적 지원도 부족했던 많은 한국 여성들은 입양을 통해 아이를 포기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입양 산업이 비정치적인 인도주의적 실천이라기보다는 여성, 아동, 장애인, 가난한 가정의 삶을 이윤, 국가 건설, 정치적·외교적 필요에 따른 재생산 도구로 기능해 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입양연대회의
사진 출처 :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입양정의를 위한 입양인 활동가들의 운동
입양인 활동가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대거 귀국하기 시작하면서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해오고 있다.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입양 산업을 뒷받침하는 제도와 조건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어떤 활동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입양인 활동가들의 대답은 활동의 ‘조직’에 있다. 지난 30년 동안 입양된 한국인들과 앨라이들은 한국에서 입양정의 운동에 앞장섰고, 이는 한국의 물질적, 사회적 변화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국제적, 국내적 입양정의 운동을 이끌었다. 입양인 활동가들은 입양특례법 개정, 미혼모와 미혼부 지원, 보편적 출생신고, 입양인의 출생기록 접근권, 입양과 아동의 권리에 대한 개인과 국가의 관점과 접근 방식을 바꾸기 위해 활동해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입양인 활동가들은 한국 역사의 대안적인 서사를 발견하고 이를 고양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여성, 아동, 장애인, 가난한 가족들이 국가 발전에 생명정치적 권력의 원천으로 사용된 방식에 대해 입양 기관과 국가에 책임을 묻고 있다.
이렇게 입양인 운동은 정치적, 물질적 변화뿐만 아니라 가족, 친족, 재생산 권리, 재생산 미래에 대한 사고 방식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입양인 활동가들은 “입양에 찬성하나요, 반대하나요?”, “가족이 필요한 고아들은 어떻게 하나요?”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런 질문들은 흑백논리이기도 하고, 입양과 입양인 활동의 기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입양인들의 운동은 궁극적으로 입양정의라는 더 넓은 틀을 통해 운동과 사회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입양정의(adoption justice)는 입양을 '찬성' 또는 '반대'할 수 있는 고립된 하나의 문제로 보는 대신에, 입양과 입양 산업의 실천을 만들고 유지해 온 시스템과 조건을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입양정의가 어떻게 재생산 정의, 경제적 정의, 장애 정의, 인종 정의, 젠더 및 퀴어 해방의 이슈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주거권 접근성, 공정한 임금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도의 임금, 성과 재생산의 권리, 의료 서비스 접근성, 성평등, 그리고 폭력, 차별, 따돌림의 위협 없이 살아가고, 일하고, 사랑할 수 있는 역량 이 모든 것이 입양정의의 일부이다. 아동의 권리, 자본주의 하 인간의 상품화, 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또한 입양정의가 다루는 문제다. 가족의 분리, 이주 그리고 출신지와 언어, 문화, 가족에 대한 권리 역시 입양정의의 이슈이다. 우리의 가족, 곁의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돌봄을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입양정의의 이슈이다. 어떤 이들은 입양정의에 대한 이 같은 비전이 너무 광범위하고, 마치 ‘그림의 떡’ 같이 낭만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양이 생명정치적 권력, 외교적 전략, 수익원, 한 가족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다른 가족을 파괴하는 재생산 도구로 기능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이러한 것들을 함께 달성하지 않고서 정의는 불가능하다.
입양정의의 새로운 가능성
2023년에도 입양에 대해 등장하는 질문들은 새롭고, 또 익숙하다. 최근에 한 친구는 나에게 입양정의와 입양권(아동을 입양할 수 있는 법적 권리)의 교차점에 대해 질문했다. 나처럼 퀴어인 그 친구는 입양정의, 가족 만들기를 위한 입양, 재생산 기술의 실용성과 권리 기반의 정치적 활동이라는 세 가지 교차성에서 떠오르는 복잡한 질문과 씨름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에 오래된 질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했다. 아이를 가지는 것은 인권인가? 누구에게 아이를 가질 권리가 있는가? 성소수자에게 아이를 가질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가? 아동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사회적 혐오와 제도화된 차별은 법적으로 보호되는 특정 형태의 가족 구성권을 비롯해 비퀴어에게 부여되는 여러 권리들을 역사적으로 결혼과 입양권을 통해 퀴어가 누리지 못하도록 배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친족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법들은 항상 존재해왔고, 특히 페미니스트들과 퀴어들은 제도화된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능력주의, 가부장제에 맞서 자본주의와 핵가족 구조 밖에서 친족 구조를 만들며 사랑, 연결, 돌봄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천해왔다. 이러한 일들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살고, 일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한편, 퀴어들의 입양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입양인 운동과 입양정의 운동은 입양이 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다른 가족을 분리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퀴어 커뮤니티 또한 현재의 입양 제도가 한부모를 차별하는 제도, 재생산 정의의 결여, 성 불평등, 미국 제국주의, 소득 불평등, 아동의 불충분한 권리 등과 함께 작동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입양 제도가 아동의 이익을 최선으로 하기 보다는 핵가족 가치관에 따라 인간을 상품화하는 제도로서 기능해 온 측면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입양정의의 틀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다시 생각해보면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들이 가족, 친족 관계,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갈 때 다른 가족을 해체하지 않는 방식은 어떤 모습일까? 자녀를 소유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자본주의적 핵가족의 틀을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이, 노인, 성소수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나이와 섹슈얼리티, 혼인 여부에 관계 없이 전 생애에 걸친 돌봄을 받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런 질문들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종류의 가족을 구성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애 중심주의, 자본주의, 핵가족 가치관, 아동의 상품화를 넘어서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세상을 추구하는 퀴어 입양인으로서 다른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이다. 가족을 만들고 아동의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나는 이러한 질문과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함께 그런 세상으로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질문들에 대한 쉽고 즉각적인 답은 없고, 어쩌면 지금은 더 많은 질문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입양정의 운동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가 질문을 시작할때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고 대답할 것이다.
입양정의 운동이 내게 가르쳐 준 것
김현숙
나는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신생아 시절 내가 자란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선구적인’ 국제 입양의 나라이자,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한 해외입양 제도의 본거지로서, 지난 70년 동안 20만 명이 넘는 한국 아동들을 해외, 특히 서양으로 입양보내왔다. 나는 2014년에 한국에 살기 위해 이사를 왔고, 이전부터 한국에서 커뮤니티를 꾸리며 살아온 나와 같은 입양된 한국인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입양정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입양 제도의 본거지가 되었나?
입양된 성인 한국인들은 1980년대부터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가고 있으며, 입양 산업을 만들어낸 제도와 사회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조직해 오고 있었다. 그 시기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인 입양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왜, 어떻게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입양 제도의 본거지가 되었을까? 지난 70년 동안 한국에서 국제 입양이 어떻게 멈추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을까? 한국의 입양 제도는 정말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아동복지 실천일까?
내가 입양되기 위해 해외로 보내어졌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아이구, 한국 전쟁 이후에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국 전쟁 이후 폐허가 되었던 1950년대에 해외입양이 시작된 것이기에 관련은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해외로 보내진 아동들의 숫자는 198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었다.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해외 입양의 건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시행한 시기와 맞닿는다.
이와 같이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입양이 어떤 인도주의적 실천이나 국내 빈곤 이슈에 대응하는 아동복지적 실천으로 기능했다기보다 또 다른 목적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입양은 한국 정부가 국가가 지출해야 할 사회복지 비용을 입양 부모에게 전가하면서 고가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이는 국내 사회복지의 발달을 저해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입양 산업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다. 정확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입양으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오늘날의 가치로 따지면 33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약 4조 350억원)[ref]Kwon Dobbs, J. (2011). “Ending South Korea’s Child Export Shame.”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https://ips-dc.org/ending_south_koreas_child_export_shame [/ref].
또한 인종, 장애, 혹은 법률상 혼인관계가 아닌 관계에서 태어나 사회적으로 낙인 찍힌 아동들을 입양보내면서, 국가의 인구수를 설계하고 여성의 재생산권과 성적 결정을 통제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입양은 한국이 서양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한국 아동들은 자신들이 입양된 서양 국가들에서 냉전 반공 국가 건설에 활용되며 ‘자비롭고 민주적이며 반인종주의적인’ 서양 국가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서양 국가에서 한국 아동의 입양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입양은 국내외 정치적 필요와 국가 건설의 목적에 부응했고, 입양 기관은 아동을 위한 가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필요한 가족"을 찾기에 나섰다.[ref]Kim, E. (2009). “The Origins of Korean Adoption: Cold War Geopolitics and Intimate Diplomacy.” Working Paper Series, U.S.-Korea Institute at SAIS. October 2009, 1-26. Retrieved from https://escholarship.org/uc/item/78q9q34d [/ref]
입양 기관들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부동산 투자, 분만 클리닉, 아기 접수 센터, 위탁 가정, 젊은 미혼모들을 위한 미혼모자시설 등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미혼모자시설은 입양 가능한 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한 시설 중 하나다.[ref]Hübinette, T. (2004). “Korean adoption history.” Kim, E. (Eds.), Community: Guide to Korea for Overseas Adopted Koreans. Seoul: Overseas Korea Foundation, 25-47.[/ref] 임산부들은 보호소에 격리된채로 임신한 상태에서 자식을 포기하는 각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받았다. 가족의 지원도, 재정적, 사회적 지원도 부족했던 많은 한국 여성들은 입양을 통해 아이를 포기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입양 산업이 비정치적인 인도주의적 실천이라기보다는 여성, 아동, 장애인, 가난한 가정의 삶을 이윤, 국가 건설, 정치적·외교적 필요에 따른 재생산 도구로 기능해 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입양연대회의
사진 출처 :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입양정의를 위한 입양인 활동가들의 운동
입양인 활동가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대거 귀국하기 시작하면서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해오고 있다.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입양 산업을 뒷받침하는 제도와 조건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어떤 활동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입양인 활동가들의 대답은 활동의 ‘조직’에 있다. 지난 30년 동안 입양된 한국인들과 앨라이들은 한국에서 입양정의 운동에 앞장섰고, 이는 한국의 물질적, 사회적 변화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국제적, 국내적 입양정의 운동을 이끌었다. 입양인 활동가들은 입양특례법 개정, 미혼모와 미혼부 지원, 보편적 출생신고, 입양인의 출생기록 접근권, 입양과 아동의 권리에 대한 개인과 국가의 관점과 접근 방식을 바꾸기 위해 활동해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입양인 활동가들은 한국 역사의 대안적인 서사를 발견하고 이를 고양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여성, 아동, 장애인, 가난한 가족들이 국가 발전에 생명정치적 권력의 원천으로 사용된 방식에 대해 입양 기관과 국가에 책임을 묻고 있다.
이렇게 입양인 운동은 정치적, 물질적 변화뿐만 아니라 가족, 친족, 재생산 권리, 재생산 미래에 대한 사고 방식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입양인 활동가들은 “입양에 찬성하나요, 반대하나요?”, “가족이 필요한 고아들은 어떻게 하나요?”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런 질문들은 흑백논리이기도 하고, 입양과 입양인 활동의 기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입양인들의 운동은 궁극적으로 입양정의라는 더 넓은 틀을 통해 운동과 사회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입양정의(adoption justice)는 입양을 '찬성' 또는 '반대'할 수 있는 고립된 하나의 문제로 보는 대신에, 입양과 입양 산업의 실천을 만들고 유지해 온 시스템과 조건을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입양정의가 어떻게 재생산 정의, 경제적 정의, 장애 정의, 인종 정의, 젠더 및 퀴어 해방의 이슈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주거권 접근성, 공정한 임금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도의 임금, 성과 재생산의 권리, 의료 서비스 접근성, 성평등, 그리고 폭력, 차별, 따돌림의 위협 없이 살아가고, 일하고, 사랑할 수 있는 역량 이 모든 것이 입양정의의 일부이다. 아동의 권리, 자본주의 하 인간의 상품화, 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또한 입양정의가 다루는 문제다. 가족의 분리, 이주 그리고 출신지와 언어, 문화, 가족에 대한 권리 역시 입양정의의 이슈이다. 우리의 가족, 곁의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돌봄을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입양정의의 이슈이다. 어떤 이들은 입양정의에 대한 이 같은 비전이 너무 광범위하고, 마치 ‘그림의 떡’ 같이 낭만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양이 생명정치적 권력, 외교적 전략, 수익원, 한 가족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다른 가족을 파괴하는 재생산 도구로 기능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이러한 것들을 함께 달성하지 않고서 정의는 불가능하다.
입양정의의 새로운 가능성
2023년에도 입양에 대해 등장하는 질문들은 새롭고, 또 익숙하다. 최근에 한 친구는 나에게 입양정의와 입양권(아동을 입양할 수 있는 법적 권리)의 교차점에 대해 질문했다. 나처럼 퀴어인 그 친구는 입양정의, 가족 만들기를 위한 입양, 재생산 기술의 실용성과 권리 기반의 정치적 활동이라는 세 가지 교차성에서 떠오르는 복잡한 질문과 씨름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에 오래된 질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했다. 아이를 가지는 것은 인권인가? 누구에게 아이를 가질 권리가 있는가? 성소수자에게 아이를 가질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가? 아동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사회적 혐오와 제도화된 차별은 법적으로 보호되는 특정 형태의 가족 구성권을 비롯해 비퀴어에게 부여되는 여러 권리들을 역사적으로 결혼과 입양권을 통해 퀴어가 누리지 못하도록 배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친족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법들은 항상 존재해왔고, 특히 페미니스트들과 퀴어들은 제도화된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능력주의, 가부장제에 맞서 자본주의와 핵가족 구조 밖에서 친족 구조를 만들며 사랑, 연결, 돌봄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천해왔다. 이러한 일들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살고, 일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한편, 퀴어들의 입양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입양인 운동과 입양정의 운동은 입양이 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다른 가족을 분리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퀴어 커뮤니티 또한 현재의 입양 제도가 한부모를 차별하는 제도, 재생산 정의의 결여, 성 불평등, 미국 제국주의, 소득 불평등, 아동의 불충분한 권리 등과 함께 작동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입양 제도가 아동의 이익을 최선으로 하기 보다는 핵가족 가치관에 따라 인간을 상품화하는 제도로서 기능해 온 측면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입양정의의 틀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다시 생각해보면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들이 가족, 친족 관계,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갈 때 다른 가족을 해체하지 않는 방식은 어떤 모습일까? 자녀를 소유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자본주의적 핵가족의 틀을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이, 노인, 성소수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나이와 섹슈얼리티, 혼인 여부에 관계 없이 전 생애에 걸친 돌봄을 받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런 질문들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종류의 가족을 구성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애 중심주의, 자본주의, 핵가족 가치관, 아동의 상품화를 넘어서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세상을 추구하는 퀴어 입양인으로서 다른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이다. 가족을 만들고 아동의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나는 이러한 질문과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함께 그런 세상으로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질문들에 대한 쉽고 즉각적인 답은 없고, 어쩌면 지금은 더 많은 질문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입양정의 운동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가 질문을 시작할때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고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