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09월[이슈] 퀴어 대안 가족, 재생산정의, 그리고 고향만들기

퀴어 대안 가족, 재생산정의, 그리고 고향만들기


설탕장구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저는 설미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2년 전에 뉴욕에서 왔어요. 내가 태어난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농장에서 부모님이랑 농사도 짓고, 풍물과 한글도 배우고 싶었어요. 또, 퀴어, 트랜스 입양인과 친부모님들이 대화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왔어요.”


이것은 내가 한국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자주 시도하는 자기소개이다. 다양한 변주가 있으며 내 말은 서툴다. 그리고 나는 늘 입양인이란 사실을, 그리고 퀴어인 걸  '커밍아웃' 할 지를 결정해야한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입양 커뮤니티(친가족 구성원과 입양인들)와 SHARE가 참여하는 사회 운동(재생산권 정의, 퀴어 인권, 장애인 인권 운동 등)을 연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시에, 입양인 커뮤니티는 이러한 한국 사회 운동과 깊게 협력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직면한 어려움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꼈다. 이것은 너무나 큰 과제이다. 대신에 난 이 글을 통해 함께 나아가고 배워갈 수 있는 다음 단계에 대한 제안을 하고 싶다.

한국에 사는 입양인으로서 고향과 가족 만들기에 대한 나의 고찰과 함께, 입양정의가 한국의 재생산권 운동 맥락 안에서 어떤 모습이어야할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고향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번역을 도와준 친구들 중에 한명이 ‘Home’ 의 번역을 고향, 가족, 가정이라는 단어 중 어떤 단어로 번역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향’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에게 고향은 자기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장벽도 있고 소속감을 느끼기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한국에서 고향을 만들어 가고 있는 수백 명의 입양인(최근 통계는 알 수 없음) 중 한 사람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살고, 일하고, 공부하고, 예술을 하고, 치유하는 등 많은 것을 하려고 돌아왔다. 우리는 매우 유동적인 커뮤니티이므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 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곳에 온 이전 세대, 현재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 앞으로 이곳에 살며 고향을 만들어 갈 이들을 잇는 계보가 있다. 그런데 고향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국에 사는 입양인으로서 고향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장을 본다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임대차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과 같은 어른이 하는 일을 유아의 어휘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향을 만든다는 것은 셰어와 같은 활동가 조직에서 배울 길을 찾고 한국의 폭넓은 정치적 지형에 익숙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특히 나의 고향을 28년 동안 몰랐던 사람으로서, 고향에서 (강제 이주된) 이십만 명이 넘는 국외입양인들에게 고향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중 대부분이 가질 수 없는 특권이었다. 

한편, 난 어디에서든 열심히 고향 만들기를 해 온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국외 입양인들, 미국 내 아시아인들, 퀴어, 그리고 활동가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이 “고향의 감각"을 대학교와 뉴욕에서도 키워왔으며, 지금은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고향은 나에게 안락함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다. 퀴어 한국 입양인으로서 한국에 나의 고향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내가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은 서로 의지하고, 돌봄과 사랑, 그리고 소속감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 밖에 있는 우리들의 관계는 정부나 더 넓은 사회의 인정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 점이 우리의 관계를 덜 진실되거나 진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필자 설탕장구의 한국 가족의 고향 풍경
필자의 아버지는 이곳에서, 어머니는 산 반대편에서 자랐다. (사진 제공: 설탕장구)


퀴어 재생산정의 운동에서의 입양정의


퀴어 가족의 구성과 퀴어 친족에 관해서는 그간 많은 글이 쓰여졌고, 나는 입양 커뮤니티가 가족을 생각하고 건설하는 방식에서 퀴어 커뮤니티와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LGBTQ+ 커뮤니티가 가족을 만들어가고 갖는 것을 지지하고 원한다. 하지만 ‘자기 자식’과 ‘자기 가족’이란 개념은 사실 이성애중심적인 가치에서 비롯한다. 이성애중심 가부장제는 상상력과 가능성이 제한적인 반면, 퀴어 가족 구축은 가족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상력과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대안적인 가족을 구성하는 것과 우리 공동체들이 어떻게 서로를 돌보고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갔는지에 대한 글은 퀴어라는 언어가 없던 시절부터도 많이 쓰여졌다. 이런 대안가족에 대한 고민은  선택한 가족, 자녀 양육, 그리고 서로를 돌보고 지원하는 비공식적인 네트워크, 상호부조, 기댐에 관한 상상력과 실천으로 이어졌다.

퀴어에게 가족이란 생물학적이든, 시험관을 통해서든, 입양을 통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다섯 명의 엄마가 있다. 한국의 엄마, 입양 엄마, 그리고 나에게 고등학교 때부터 장구를 가르쳐 주고, 한국음식을 먹이는 것으로 돌봄을 전달해 준 “시애틀 엄마”가 있다.  또한 대학교 때부터 그 이후까지, 어려울 때마다 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이웃 퀴어 엄마들이 있다. 시애틀 엄마와 이웃 퀴어 엄마들은 나에게 법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사람은 아니지만 내 생애 내내 가장 가족적인 안내와 돌봄을 제공했다.

뉴욕시로 이사했을 때, 나는 자신들의 고향이나 가족으로 멀리 떨어져 나와 살고 있는 퀴어와 트랜스 친구들에 둘러싸여 살았다. 경찰과 감옥의 부정의함에 맞서 싸우고 싶어 그 커뮤니티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나의 부정의에 대한 증오와 변화에 대한 바람으로 만나게 된 커뮤니티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돌봄이 넘쳤다. 그들은 나에게 서로에 대해 지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봄과 사랑을 받고, 성장하고, 아픔을 치유해 가는 모습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다섯 엄마들과 뉴욕시에서 만났던 사랑하는 퀴어 커뮤니티는 퀴어 가족 만들기의 작은 예가 될 수 있겠다. 이 경험과 감각이 내가 퀴어 가족이 꼭 “자기 아이 갖기"를 통해서만 가족을 만들어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한편, 입양정의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퀴어 커플이 많이 시도하는 보조생식기술을 통한 임신과 출산에 대해 생각하면 앞으로 함께 고민해 가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일례로, 2021년에 설립된 ‘미국 기증 수태자 협의회 US Donor Conceived Council’는 생식 세포와 배아 기증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 기증자와 수혜자, 보조생식 기술을 통해 태어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논의를 이끌고 있다. 보조생식기술을 통해 태어난 사람들이 이끌고 있는 이 단체는 동성애 혐오나 트랜스 혐오를 용인하지 않으며 다양한 가족 구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생식세포와 배아의 기증자, 공급자, 수혜자인 부모와 재생산 기술산업에 관여하는 이들이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인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익명 기증을 지양하며 생식세포나 배아의 기증을 통해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어린이들과 공개적이고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할 것을 장려한다. 이와 함께 보조생식 기술을 통한 임신, 출산을 상품화하며 재정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관행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ref] 이 단체와 이들의 주요 요구에 대한 소개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usdcc.org/about/our-vision/ [/ref]


미국 기증 수태자 협의회 US Donor Conceived Council 홈페이지 


이들의 노력 끝에 지난 해 6월 콜로라도 주에서는 ‘기증 수태 출생자 및 기증 수태 출산 가족 보호법 Donor-Conceived Persons and Families of Donor-Conceived Persons Protection Act’이 처음으로 제정되기도 했다. 2025년 1월 1일 발효되는 이 법은 특정 기증자를 사용할 수 있는 가족 수를 제한하고 생식세포 은행이 기증자의 정보를 영구적으로 유지하도록 했다. 또한 법에 따라 이후에는 기증자의 병력을 기록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익명으로 기증된 생식세포를 통해 태어난 사람들에게 질병이 발생했을 때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료 방법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ref] https://www.denverpost.com/2022/06/01/colorado-donor-conceived-persons-protection-act/ [/ref] 

물론 여기에도 여러 쟁점이 있고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들의 문제의식은 입양인들이 요구해 온 것들이나 입양정의의 문제의식과 많은 부분에서 만난다. 앞으로 이런 일들에 대해 퀴어 커뮤니티는 어떻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입양정의, 재생산정의의 문제의식을 연결해갈 수 있을까? 


글을 마치며


한국의 저출생에 관한 뉴스가 떠오른다. 이십만 명의 해외입양인들의 다수가 여자아이였고 그 입양이 가장 많이 된 시기는 1970, 80년대라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 본다. 입양에 대해 흔히, ‘아이들은 집이 필요하고 입양부모들은 아이가 필요하다’ 고 이야기 한다. 아니다. 사회학자 김호수는 <친생모와 한국의 해외입양: 가상의 어머니 되기>  [ref]  Hosu Kim(2018), "Birth Mothers and Transnational Adoption Practice in South Korea: Virtual Mothering", Palgrave MacMillan [/ref] 에서 21명의 친생 엄마들을 인터뷰 했다. 개개인의 사연은 다르지만,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 정부지원의 부재, 그리고 입양과정에서의 입양기관의 횡행 - 친생모의 동의 없이 입양을 보낸 사실 - 과 정부의 묵인으로 인한 구조적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의 특정 인구집단에 대한 수십년간의 재생산 부정의로 인해 많은 여자아이가 해외로 입양 보내졌으며, 그 죄의 무게는 친생모들의 어깨 위에 실려있다.  


나는 입양인, 친생모 그리고 퀴어 재생산정의 활동가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고 믿는다.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다. 반드시 전통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소중하다. 동시에, 모든 사람은 플랜비나 인공유산같은 임신중지 방법에 대하여 안전하고도 포괄적인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

친생모와 퀴어 트랜스 커뮤니티에 대한 사회적 낙인 또한 중지되어야 한다.  


입양인과 원가족, 그리고 퀴어 권리와 모두를 위한 재생산 정의의 의제는 다 연결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입양인들, 원가족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동료들은 우리 (입양인) 커뮤니티 안에서만 활동을 해 왔다. 그 활동도 매우 중요했고, 많은 변화들을 만들어왔다. 이에 기반하여, 나는 다음 단계로 입양정의의 의제가 한국사회의 사회운동들과 더 폭넓게 연결되길 희망한다.


지난 해 이태원 레스보스에서 진행되었던 ‘퀴어*입양인활동가 첫 만남’ 행사


덧붙이는 글


이렇게 까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지 몰랐다. 그리고 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는 사실도.  입양정의에 관해 글을 써보라고 초청해 주신 셰어에게 감사한다. 

한편, 입양인들의 한국말 실력은 제각각이다. 어떤 입양인들은 전혀 한국말을 못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자기 소개부분을 제외하고는 주변 친구들에게 내 글을 번역해주기를 부탁해야 했다.

우리의 운동을 지지하고, 우리의 활동으로 인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충분히 동참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나와 함께 이야기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인스타그램 @gay_janggu 계정으로 연락을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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