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03월[이슈1] 반우생학 비전과 재생산 정의를 잇는 몇 가지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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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1] 반우생학 비전과 재생산 정의를 잇는 몇 가지 질문들

이유림 (기획운영위원)


올해 1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글로벌 반우생학 콜로키움은 우생학이라는 키워드로 다양한 연구와 활동을 만들어 온 전 세계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이었다. 우생학이라는 연결 고리에 접속하는 지역, 주제, 시기의 방대함 속에서 우생학이 일부 극단적 과학자들의 왜곡된 이론이 아니라 인간·문명·사회 안의 위계를 결정론적 사실로 제시하는 사유의 규범, 인식론으로서 구조적으로 작동해왔다는 분석을 공유할 수 있었다. 전 세계의 역사와 법, 제도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분석 축으로서 우생학에 대한 공명과 함께, 동시에 반우생학이라는 비전의 개념적 지향과 실천적 방향성을 둘러싼 긴장도 함께 했다. 이 글은 반-우생학 콜로키움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포착한 몇 가지 주요한 질문들을 공유하고, 재생산 정의 운동이 운동이 반-우생학 비전에 대해서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연결 가능성을 모색함으로서 우생학에 천착해온 연구와 활동, 한국의 인구 정책과 재생산 통제에 대한 담론을 개척해온 재생산 정의 운동의 더 넒은 연대의 생성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글로벌 반-우생학 콜로키움은 각자의 연구와 활동을 공유하는 5일간의 학술대회, 그리고 이틀간 반-우생학 운동과 반-우생학 센터에 대한 비전을 도모하는 여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쉽게 해소되지 않은 채 남은 질문은 "반우생학이라는 비전으로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반우생학의 실천적 비전에 대한 고민은 근본적으로 우생학의 역사적 성격에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우생학적 논리의 영향이 20세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생학이 하나의 사상 체계로 형성되고 제도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관철되었던 것은 지난 세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생학 연구와 비판의 지적 토대는 역사학, 과학사, 법제사에 있으며, 이 방법론들은 우생학을 추적하고 해부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를 제공해 왔다. 콜로키움에 모인 연구자와 활동가들에게도 우생학적 논리를 일정한 시간적 거리 안에서 사유하는 것은 익숙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거리를 걷어내고, 현재의 차별과 폭력 속에서 우생학을 사유하는 것, 즉 우생학을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적 개입의 언어로 전환하는 작업은 여전히 충분히 개척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음을 토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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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생학콜로키움 행사 포스터

반우생학콜로키움과 워크숍에 대한 후기 읽기 


과거의 사안을 연구하고, 알리고, 기록하고, 추모하며, 국가에 책임을 묻는 작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생학을 현재 시제로 가져오려는 시도다. 그러나 그것이 우생학적 논리가 현재의 차별과 폭력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는 질문과 반드시 겹치는 것은 아니다. 우생학적 논리는 청산해야 할 역사이기 이전에 현재의 통치 논리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 논리가 법·복지·의료 체계를 가로질러 현재의 제도 안에 어떻게 내재되어 있는지를 묻는 것은 역사적 작업인 동시에 철저히 현재적인 정치적 작업이다. 반우생학의 비전이 개입해야 할 구체적인 현장과 만나지 않은 채, 우생학의 역사가 현재에 갖는 의의를 찾는 것은, 결국 분석의 정교함과 실천의 방향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남겨둔다. 우생학이 현재 시제에서 누구의 몸에, 어떤 제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증거하는 현장 없이는, 반우생학 비전은 날카로운 분석축으로 남을 수 있어도 진보적 상상력을 생성하는 언어가 되기는 어렵다.

이는 셰어가 현재 함께 꾸리고 있는 강제불임수술진상규명대책위원회(준)(이하 강제불임대책위)의 활동에서도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강제불임대책위는 모자보건법 제9조 하의 강제불임수술 역사에서부터 최근 전남 동명원에서 벌어진 장애여성 강제피임시술 및 강제 자녀입양 사건까지, 집단수용시설에서 지속되어온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침해의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재생산정의운동, 장애여성 운동, 반우생학 연구와 활동의 공동의 노력 속에서 발족되었다. 이 사건들은 한국의 발전주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어떤 몸은 국가 발전의 자원으로, 어떤 몸은 관리되거나 제거되어야 할 부담으로 분류되어왔고, 현재에도 그러하다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와 분리해서 읽을 수 없다. 우생학적 논리는 비단 그 분류를 정당화하며 한국의 정치경제적 구조 안에 내재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적·진보적·시민사회의 발전 서사 안에서도 충분히 문제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점이다. 강제불임대책위의 운동은 그러한 선형적 발전주의적 관점에서 누락된 영역에 대한 개입이며, 집단수용시설에서의 재생산 권리 침해를 구조적 맥락 속에서 읽고 국가의 인구 통치에 대한 새로운 권리의 언어와 진보적 운동을 만들어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반-우생학 비전을 현재 시제로 갱신하는 작업과 맞닿아 있다. 우생학을 어떤 접속점을 통해 현재화할 것인가라는 과제는 바로 이 현장에서 구체화된다.

다시금 "반우생학이라는 비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어떤 사안에 대하여 어떠한 방향성으로, 얼마만큼의 연대를 만들어갈 것인가는 반우생학이라는 개념적 지향으로부터 자동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반우생학이라는 지향을 가지고 활동하고 연구하는 사람들과 그 실천들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수자의 삶과 건강, 재생산을 우생학이라는 더 넓은 역사적·구조적 맥락과 연결하려는 시도들은 그 과정에서 유용한 참조점을 제공한다(A. J. Lowik 2017). 성 정체성에 대한 권리와 성·재생산 건강에 대한 권리가 현실에서 당사자의 이익과 상충하도록 구조화되는 방식을 분석하는 데 제임스 보우먼의 '수동적 우생학' 개념이 활용해서 접근하기도 한다 (Blas Radi 2020). 명시적 강제 없이도 특정 신체적 조건이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재생산이 구조적으로 억제되는 방식을 우생학적 논리의 작동으로 읽어내는 이 시도는, 우생학이라는 분석축이 역사적 사례 연구를 넘어 현재의 소수자 정치와 접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우생학을 현재 시점으로 가져와서 논의를 확장하는 많은 연구들이 개념과 운동으로서의 재생산 정의 프레임과의 적극적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흥미로운 지점이다. 

나아가 반우생학 비전은 재생산 통제가 직접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폭력의 형태들을 인구 통치의 논리 안에서 읽어낼 수 있는 분석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탈시설운동, 이주민 구금 반대, 교도소 체제 반대, 군사 점령이 삶의 재생산 조건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반대는 동일한 맥락의 운동이 아니며, 그것들을 반-우생학이라는 단일한 분석틀로 환원하는 것은 각 운동이 형성되어온 고유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평탄화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 운동들이 국가가 어떤 생명을 취약하거나 위협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그 분류를 통제의 근거로 활용하는가라는 질문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반-우생학적 분석이 각 운동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사이의 연결을 가시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가는 재생산 정의 운동과의 접속 속에서 검토해볼 만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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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든 에커트(18세, 오른쪽)와 다른 참가자들이 2023년 1월 23일 월요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인디애나 생명 행진(Indiana March for Life)에서 인종차별 반대와 임신중지 반대를 함께 외치고 있다. (Jenna Watson/IndyStar)


반우생학 비전과 재생산 정의의 연결은 보다 시급하고 정치적인 대화가 필요한 지점에 서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반우생학이라는 언어와 역사가 임신중지 접근권을 제한하는 보수적 입법의 논거로 활용되는 사례들이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중지를 우생학적 실천으로 규정하고, 임신중지를 선택하는 여성들을 우생학 역사의 장면 속의 가해자와 동일시하는 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재생산 억압 정치의 오래된 양상이다. 하지만 2019년 인디애나주 임신중지 제한법 관련한 Box v. Planned Parenthood 소송과 그 이후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  장애아나 특정 인종 집단의 선택적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방향의 입법이 반우생학의 언어를 전면에 내세우며, 우생학이라는 언어가 사법 체계 안에서 임신중지 제한 입법의 공식 명칭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프로라이프 진영이 발전시키고 있는 이 관점은 우생학의 역사적 피해에 호소하는 언어를 빌려, 그 피해를 가장 집중적으로 받아온 집단의 재생산 자율성을 제한하는 입법을 정당화한다. 이 모순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에서, 재생산 정의에 대한 헌신 없이 반우생학의 언어가 어떻게 전유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반우생학 비전이 현재의 정치적 지형 안에서 재생산 정의 운동과 적극적으로 접속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를 보다 긴급하게 제시한다.

재생산 정의와 반-우생학의 비전은 둘 다 서로를 강하게 전제하고 있어서 겹쳐 보이지만, 특히 한국의 맥락에서 두 지향이 운동과 실천의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교차하고 축적된 경험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 간극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반우생학 비전을 재생산 정의의 언어와 접속시키는 것이 단순히 연대의 범위를 넓히는 문제가 아니라, 반우생학이라는 언어가 분석의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운동의 실천 속에서 그 정치적 방향성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인식론적 전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콜로키움에서 제기된 질문 "반우생학이라는 비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구성 중이다. 반우생학이라는 언어의 정치적 함의를 재생산 정의 운동이 축적해 온 분석과 실천의 맥락 안에서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그 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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