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06월[이슈1] 무엇을 말하고, 또 말하지 못했을까? :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

무엇을 말하고, 또 말하지 못했을까? :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


진석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면 많은 이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임신과 출산 또는 난임 시술이나 정자·난자 보존과 같은 기술적 문제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에게 재생산은 오랫동안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를 가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전에 국가가 먼저 재생산 권리를 포기하도록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변경을 위한 법령은 만들어져 있지 않으나, 법원의 판단에 따라 법적 성별 변경이 가능하다. 현재는 대법원에서 만든 가족관계등록예규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 및 과거 판례를 참고하여 담당 판사의 재량에 따라 독자적으로 법적 성별 변경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해당 사무처리지침에 따르면, 법원은 법적 성별을 변경하고자 하는 신청인의 ‘성전환수술의 결과 신청인이 생식능력을 상실하였고, 향후 종전의 성으로 재 전환할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한지’ 여부를 조사할 수 있다. 비록 2020년부터 법적 성별 변경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과, 법원에서 신청인에 대해 조사하는 내용들이 모두 ‘참고사항’으로 용어가 변경되었으나, 일선 판사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기준으로 성별정정을 허가하고 있다. ‘생식능력 상실’은 법적 성별을 변경하고자 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에게 사실상 의무적으로 요구되어 온 셈이다. 그 결과 많은 트랜스남성 스펙트럼의 당사자들은 성별정정을 위해 포궁(자궁)적출 수술을, 트랜스여성 스펙트럼의 당사자들은 고환 절제수술을 의료적 트랜지션과 법적 성별 변경에서 필수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은 사회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기 이전에 이미 제도적으로 박탈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현실은 트랜스젠더 당사자 커뮤니티 내부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가 처음 트랜스남성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발을 들였을 때, 포궁적출 수술은 의료조치와 성별정정을 마치고 ‘완전히 남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언젠가 단체 대화방에서 포궁적출 수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별 생각 없이 “재생산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수술 없이 성별정정을 준비해보고 싶다”라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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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Jess Dugan, Taan, 2012. 탑수술의 흔적이 남아있는 '남성적인' 외양의 사람이 임신한 배를 보이며 침대에 앉아있다. (출처: https://museemagazine.com/features/2022/12/1/from-our-archives-jess-t-dugan-variations-on-a-theme )


당시 나는 당장 아이를 낳고 싶었던 것도, 임신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미래의 선택지를 남겨두고 싶기에 수술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주제로 해당 채팅방의 구성원과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은 나를 향해 “임신한다는 XX이” 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욕설 그 자체보다도 트랜스남성이 재생산을 고려한다는 사실이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공격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트랜스젠더의 재생산이 단지 법과 제도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커뮤니티 안에서도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한 주제임을 체감하게 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트랜스남성의 성기 재건수술을 둘러싼 과거 트랜스 커뮤니티 내부의 인식과도 닮아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부 트랜스남성 커뮤니티에서는 성기 재건수술까지 해야 ‘진짜 남자’라는 인식이 존재했고, 경제적 이유에서 당장 수술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수술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진정성이 없단 소릴 듣기 일쑤였다. 그러다 2013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트랜스남성에 대한 성별정정 허가 요건으로서 외부성기 형성 수술을 요구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합치하지 않음을 근거로, 성기 재건수술 없이 처음으로 트랜스남성의 법적 성별 변경을 허가하는 판례가 등장했다. 이후로 트랜스남성의 경우에는 외부 성기 재건을 진행하지 않고 포궁적출 수술까지만 진행한 후 성별정정을 시도하는 것이 점점 일반화되었고, ‘성기 재건’의 유무로 트랜스남성 정체성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분위기는 점차 약해졌다. 법·제도의 변화가 당사자 커뮤니티 내부에서 그리는 ‘트랜스젠더의 삶의 모습’에 대한 상상력 또한 변화시킨 셈이다. 


그리고 약 10여년 뒤, 2021년 수원가정법원에서 트랜스남성의 생식능력 제거 없이도 성별정정을 허가한 판례가 생겨났다. 이후 포궁적출 수술 없이도 법적 성별 변경을 진행하는 사례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법적 남성’이 포궁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으며, 임신·출산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트랜스젠더의 재생산’, 내지는 ‘법적 남성의 임신과 출산’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사례가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되며 드러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트랜스남성인 토마스 비티(Thomas Beatie)는 임신 사실을 공개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법적으로 남성이었지만 포궁·난소 등 재생산 기관을 유지한 상태였으며 임신이 어려웠던 여성 파트너를 대신해 임신·출산을 경험했다. 당시 그의 인터뷰 중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남성이나 여성의 욕망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인상깊게 남기도 했다.


토마스 비티의 사례는 임신과 출산이 반드시 ‘여성’ 또는 ‘여성성’에 기반한다는 통념에 질문을 던졌다. 트랜스젠더의 재생산 권리는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이슈로서 계속해서 이야기되고 있다. 또한 트랜스젠더 건강권과 관련하여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WPATH(World Professional Association for Transgender Health)에서는 최근 표준진료지침(SOC8)을 통해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에서 향후 재생산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정자·난자 보존 등 재생산 관련 상담을 제공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2023년 일본에서도 최고재판소가 법적 성별정정을 위해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강제하는 규정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더 이상 국가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로 하여금 법적 성별의 인정과 생식능력 보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재생산권’은 종종 여성 의제로만 그려지고는 한다. 물론 그동안 국가가 억압하고 통제해왔던 재생산권, 그리고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는 ‘여성’이라는 키워드와 떼놓을 수 없는 이슈이다. 그러나 재생산권, 그리고 임신·출산의 당사자로서의 모습을 ‘여성’으로만 한정짓는 순간 여성이 아님에도 같은 경험을 겪을 수 있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쉽게 지워져 버린다. 반대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에도 재생산권은 종종 후순위로 밀려나고는 한다.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의료적·법적인 성별 전환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부모가 되고 싶은지, 아이를 낳거나 양육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심지어 당사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거의 나누어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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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트랜스깃발 배경에 MY BODY MY CHOICE라고 쓰인 피켓을 두 손으로 받쳐든 모습. 뒤편엔 하늘이 보이고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깃발이 날리고 있다. (사진 제공: 진석) 


낙태죄 폐지 운동에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었던 “내 몸은 나의 것(My Body, My Choice)”이란 구호가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기 전 열렸던 검은 시위에서, 트랜스젠더 깃발 위에 이 구호를 적고 피켓을 만들어 들고 나갔던 때를 기억해본다. 재생산정의 운동의 중요한 외침이었던 이 말이, 나는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재생산정의 운동은 재생산권을 단순히 임신중지나 출산의 선택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1994년 미국의 유색인종 여성 활동가들이 제안한 재생산정의는 ‘아이를 낳을 권리’,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 그리고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재생산정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만드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조건까지 함께 살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재생산 문제는 단지 의료기술이나 개인적 욕망의 문제가 아니다. 법적 성별을 인정받기 위해 생식능력 포기를 강요받고 있는 현실, 트랜스젠더의 임신과 출산을 상상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법적 남성의 임신·출산 그리고 트랜스젠더 부모에 대한 제도적 지원의 부재 모두 재생산정의의 문제로 연결된다. 


또한 트랜스젠더의 재생산정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임신·출산의 당사자임을 거쳐 양육자가 된 이후의 삶까지 질문한다. 트랜스젠더가 부모가 되었을 때, 우리의 법과 제도는 그 가족을 어떻게 인정하게 될까? 법적 남성이 출산을 했을 때에 비혼부로서 출생신고가 가능할까? 사회는 그 가족을 안전하게 지지할 수 있을까? 재생산정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은 단순히 임신과 출산의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가 양육자가 될 수 있는 삶을 상상하고, 실제로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것까지 포함하는 과제이다.


결국 트랜스젠더의 재생산권, 그리고 재생산정의는 단지 ‘아이를 낳을 권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과 삶,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국가와 사회는 물론, 당사자 커뮤니티 역시 더 이상 특정한 전환의 경로나 가족의 형태만을 정상적인 삶으로 상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부모가 되기를 원할 것이고, 누군가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생식능력을 유지하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선택도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정체성과 삶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법적 인정을 받기 위해 지금까지 스스로의 재생산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는 그 반대의 질문을 던질 차례다. 트랜스젠더가 어떤 몸으로 살아갈지, 부모가 될지 말지, 어떤 가족을 꾸릴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회는 가능한가? "내 몸은 나의 것(My Body, My Choice)"이라는 선언은 바로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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