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06월[리뷰] “핵가족의 중력”에서 탈주하는 방법: 소설 <디트랜지션, 베이비>

[리뷰] “핵가족의 중력”에서 탈주하는 방법: 소설 <디트랜지션, 베이비>


호영


미국의 트랜스젠더 여성 소설가 토리 피터스가 지은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트랜스젠더와 퀴어들에게 좋게 말해 난감하고 나쁘게 말해 원한을 불러일으키는 주제 두 가지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이다. ‘디트랜지션’이란 지정성별이 아닌 젠더로 트랜지션해 살아가던 사람이 다시 지정 성별로 살아가겠다고 결정해 삶의 형태를 바꾸는 일을 가리킨다.[ref]원작: Torrey Peters, Detransition, Baby, One World, 2021. 한국어판: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디트랜지션, 베이비>, 비채, 2025. 나는 한국어판의 번역 전략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불투명한 말-몸: 퀴어를 번역하(지 않)는 방식들”, 웹진 비유, 2025.09.03. https://www.sfac.or.kr/literature/epi/D0000/epiView.do?epiSeq=1314[/ref]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이 세상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되돌아간다’는 표현은 알맞지 않지만, 트랜스젠더에 적대적인 이들은 디트랜지션을 선택하는 개개인이 있다는 사실을 트랜지션이 이성을 잃은 정신병자의 충동적인 선택일 뿐이라는 주장에 동원하곤 한다. 물론 디트랜지션을 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트랜스 혐오가 만연한 사회다. 2021년 미국에서 발표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젠더 다양성 인구 2만 7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디트랜지션의 크나큰 동인 중 하나가 가족에 의한 압박과 사회적 낙인이라 밝혔다.[ref]Jack L. Turban et al, “Factors Leading to “Detransition” Among Transgender and Gender Diverse People in the United States: A Mixed-Methods Analysis,” LGBT Health. 2021 Jun 1;8(4):273–280.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8213007/[/ref] 놀랍지 않은 결과다. 어쨌든 일부 트랜스/퀴어 공동체 또는 운동 진영은 ‘디트랜지션’이라는 현상이 자긍심 서사, 또는 ‘트랜스젠더가 되면 마침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정치적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디트랜지션에 대해 ‘시스들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굳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미국의 상황도 이러한데, ‘트랜스젠더’가 뭔지 얘기해보려는 시도가 수십년 째 되풀이되고 있는 듯한 대한민국에서 ‘디트랜지션’은 너무 앞서가는 주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리 피터스는 커뮤니티 안에서도 터부시되는 이 주제를 속도감 넘치는 로맨틱 코미디를 즐기는 독자라면 누구나 울고 웃으며 읽을 수 있는 대중소설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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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이미지)


제목에서 드러나는 두 번째 주제인 ‘베이비’는 말 그대로 아기다. 소설 속에서 아기는 주인공 중 한 명이 배태한, 아직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주인공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는 미지의 존재다. 하지만 의료적 트랜지션을 지나오면서 대체로 재생산 능력을 잃게 되는 트랜스젠더에게 아기란 무엇이란 말인가? 퀴어 이론가 리 에델만은 일찍이 이렇게 선언했다. “퀴어성은 ‘아이들을 위해 싸우지’ 않는 편에 있는 이들을 명명한다. [퀴어는] 재생산 미래주의의 절대적인 가치를 확언하는 정치적 합의 바깥에 있다.”[ref]Lee Edelman, No Future: Queer Theory and the Death Drive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04), 3.[/ref] 에델만의 주장이 남성 중심적이라거나 퀴어적 미래에 대한 상상을 차단한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애초에 퀴어들이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이유도 이들이 이성애 핵가족 체제의 근간이 되는 이성애 섹스를 통한 재생산을 하지 않기 때문 아닌가. 이 와중에 트랜스젠더는 재생산에 있어 시스 퀴어들보다도 더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요즘에야 한국에서도 시스 동성애자 양친이 아기를 양육하는 사례가 미디어와 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지만, 국내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과정에서 법원은 여전히 ‘생식능력 제거수술’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폐기하지 않았다.[ref]“트랜스젠더 성별정정 허가한 법원···“수술 강제는 인간 존엄 침해”, 경향신문, 2023. 03. 15 참고. “대법원은 2020년 ‘성전환자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개정하면서 수술 여부를 ‘조사사항’에서 ‘참고사항’으로 개정했다. 수술이 성별재지정의 필수 요건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하급심 법원에선 생식능력 제거수술이나 외부성기 형성수술 하지 않았다고 성별정정 신청을 기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303151528001 박한희, “[국내이슈] 성별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신체를 마주하기 : 법적 성별정정에서의 의료적 기준에 대한 논의와 지향”, 셰어 이슈페이퍼, 2023. 06. 13. https://srhr.kr/issuepapers/?bmode=view&idx=15422507 [/ref] 당사자가 재생산을 희망하는지는 차치하고, 트랜스젠더로서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재생산권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은 심각한 인권 침해다. 이런 상황에서 트랜스젠더가 아기 낳기에 관해 분노나 슬픔이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소설은 트랜스젠더의 재생산이라는 주제를 골때리는 셋업으로 정면 돌파한다. 타칭 “인격장애 종합 선물세트”(188)인 트랜스 여성 리즈는 어느날 헤어진 전 애인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그는 사귀던 당시 트랜스여성 ‘에이미’ 였지만 지금은 디트랜지션한 ‘에임스’. 리즈와 에임스는 수년간 동거하며 한때 함께 가족을 꾸리는 걸 꿈꿨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는 리즈가 시스 남성과 바람을 피우면서 결별해 연락을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임스’가 리즈에게 전화를 걸어 제안을 한다. 자기가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를 임신시켰는데, 셋이서 아이를 키우면 어떻겠냐고. “씨발 이게 무슨 개소리야,” 라고 생각하셨다면, 리즈도, 임신한 에임스의 현 여친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이해해 주시라.(63)


일단 에임스의 입장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비록 지금은 남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을 통해 박멸된 줄 알았던 정자가 난데없이 여자친구를 임신시켜서 아버지가 될 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그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에임스는 엄밀히 말해 남자가 아니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남성성의 정점”(31)처럼 느껴지고 트랜지션을 하면서 정자은행에 정자를 보관할지 고민하던 시기 그랬듯 “그의 젠더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오며,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45) 혼란 속에서 그는 이전에 함께 입양을 통한 가족 만들기를 꿈꿨던, 언제나 엄마가 되기를 바라왔던 리즈를 떠올린다. 자신을 트랜스여성 ‘에이미’로만 알고 있는 리즈는 “아버지가 된 [에임스]를 보아도 그 모습을 믿지 않을 것이다. [...] 어쩌면 그 자신이 아버지가 아님을 일깨우는 존재를 항상 곁에 둔다면 [에임스는] 아버지가 되는 일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61) 에임스는 리즈를 자신이 현재 맺고 있는 커플 관계에 끌어들임으로써 “핵가족의 중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62)


이 무지막지한 제안을 마주한 리즈와 카트리나는, 놀랍게도, 에임스에게 당장 꺼지라고 말하는 대신 그가 그리는 미래에 자신의 욕망을 겹쳐 본다. 에임스에게 쌍욕부터 내지른 리즈지만, 엄마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이 그녀의 마음 한 켠을 늘상 불질러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리즈는 급기야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게 가장 트랜스다운 임신일지도 몰라.”(76)


반면, 얼결에 퀴어 세계에 발을 들인 카트리나는 퀴어성이 자신이 언어화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감각한다. 이혼과 유산 경험이 있는 카트리나는 에임스와 만나기 시작한 시기에 전 남편과의 관계가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남들 보기에 완벽한 한 쌍이었지만, 임신했다가 아기를 유산하자 안도감이 들었다고. 아이를 낳았다면 전 남편과 계속해서 함께 살았어야 할 텐데, 오히려 이혼을 정당화할 반박 불가능한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고. 카트리나가 자신의 아이를 배태했다는 소식에 에임스는 자신이 과거에는 트랜스여성으로 살았다고 밝힌다. 그 말은 에임스가 카트리나가 상상하는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카트리나는 에임스의 커밍아웃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에임스가 제안하는 퀴어한 가족 형태에 매력을 느낀다. 자신이 그동안 경험한 가족과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갈 방법이기 때문이다.[ref]참고로, 저자 토리 피터스는 <디트랜지션, 베이비>를 “시스젠더 이혼녀”들에게 헌사했다. 소설 속 리즈의 대사를 통해 말하자면, 이혼으로 인해 삶을 완전히 재구성해야했던 시스 이혼녀들이야말로 트랜스 여성의 경험과 가장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혼을 통과하며 이성애에 관한 환상을 버리게 된 시스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주어졌던 서사가 자신을 배신했음을 깨닫는다. 그 서사를 완전히 대체할 무언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들은 새로운 환상을 섬기거나 인생에는 쓴맛밖에 없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고, 짜여진 계획 없이 나아가야 한다.(26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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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토리 피터스의 사진. (출처: Hunter Abrams))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가족과 아기는 트랜스젠더에게 원한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에임스라는 매개자 때문에 묶인 리즈와 카트리나는 서로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리즈가 한 트랜스여성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온 날 저녁, 리즈와 카트리나는 처음으로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리즈가 사는 작은 아파트의 비상계단 겸 발코니에 앉아 길가를 내려다보는데, 거리에 고인 물웅덩이 근처를 지나는 엄마와 어린 소녀가 눈에 띈다. 소녀가 웅덩이에 뛰어들자 엄마는 화를 내는 대신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가슴이 에여오는 리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임신한 카트리나에게 질투가 난다고 털어놓는다. “내가 아기를 갖고 싶으면, 다른 여자의 몸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요. 그게 어떤 기분인지는 생각해봤어요?” 리즈는 한탄한다. “방금 내가 장례식에 다녀왔다는 거 기억해요? 난 인생의 반 이상을 이러고 살았어요. 트랜스여성들의 미래가 어떤지 잘 안다고요. 내 말 믿어요. 엄마는 오직 한 명밖에 없어요. 당신도 알게 될 거에요. 엄마의 몸을 가진 사람만이 엄마가 될 거에요.”(368)


엄마의 몸을 가진 사람. 그러나 유산을 경험한 카트리나 역시, 자신의 몸이 ‘엄마의 몸’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유산을 했다는 것은 자신의 몸이 아기가 자라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는 것 아닐까? 유산하고 나서 느낀 안도감이나, 화장실에서 피가 쏟아지던 순간 그 핏덩어리의 정체를 인식하고 변기에 내린 행위는 자신을 엄마 역할에서 탈락시킨 것은 아닐까? 카트리나는 반복해 말한다. 지금 몸 안에서 자라나는 생명이 출산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리즈와의 첫 만남에서도 그녀는 말했다. “모성은 모두가 부적격자라고 느끼게 하도록 고안된 아주 한심한 테스트에요.” (280)


다시 한 번, 리즈의 말로 돌아가보자. “엄마의 몸을 가진 사람.” 이 표현의 원문은 “the one with the right body”, 즉 ‘맞는 몸을 가진 사람’이다.[ref]Torrey Peters, Detransition, Baby, One World, 2021. Ebook.[/ref]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취하는 서사적 지름길 중 하나는 자신이 ‘잘못된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맞는 몸’이 어떤 맥락에서는 여전히  ‘잘못된 몸’으로 남는다. 에임스의 트랜지션과 디트랜지션 서사는 이 ‘잘못된 몸’ 서사의 한계를 드러낸다. 에임스가 제임스였던 시기–즉, 그가 트랜지션하기 전에– 그의 몸은 “착한 개”였다.(493) 몸은 시키는 대로 날쌔게 질주하고 힘을 쓸 줄 알았다. 제임스는 그 몸이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에이미가 되면서 개는 사라졌다. 에이미는 몸과 분리되지 않은 채, 충직한 개 없이 홀로 삶을 경험했다.


그리고 에이미가 여과 없이 경험한 삶은 고통이었다. 물론 좋은 시간도 있었지만, 고통은 삶에서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그래서 에이미는 남성성이라는 갑옷을 다시 입었다. 에임스가 되었지만 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감각이 무뎌졌다. 그런 에임스에게 카트리나는 반복해 묻는다. 아기를 함께 키우고 싶냐고. 리즈를 데려온다는 궁여지책을 생각해내긴 했지만, 에임스는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끔찍하게도 답답한 상황 속에서, 에임스는 트랜지션 전부터 친구로 지낸 존을 불러내 한참 이야기를 나눈다. 몸을 움직이면 뭔가 떠오를 수도 있다는 존에 제안에 따라 야구 연습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활송 장치가 던져주는 공에 맞춰 몸이 움직이게 둔다. 대학 시절 야구 연습을 하던 때처럼, 몸은 아무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체중을 실어 배트를 휘두르는 행위는 명상이자 기도가 된다.


그날 밤 에임스가 카트리나를 찾아가 굶주린 개처럼 섹스를 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섹스 이후 에임스가 카트리나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자신이 지금은 디트랜지션한 상태이지만, 다시 트랜지션 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기를 위해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유지할 거라고 약속하고 싶지만, 삶이, 그리고 자신이 변화함에 따라 그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그는 고백한다.


이 생을 살아가는 ‘나’가 하나일 리 없다. 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해당되지만, 트랜스에게는 몸으로 관통해온 경험이기에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족은 그러한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가? 토리 피터스 식으로 묻는다면, 그런 ‘정신병 종합 선물세트’ 같은 변화를 환영할 수 있는가? 가족이 ‘안정’과 ‘불변’의 무언가를 상징한다면, 추잡한 욕망으로 들끓는 우리는 그 안에서 오래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에임스, 리즈, 그리고 카트리나가 이미 구획되어 있지 않은 무언가를 바랐듯이, 그 욕망에서부터 더듬거리는 몸짓을 시작한다면, 몸이 주는 우연들에 기대어 우리는 가족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영: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번역하고 글을 쓴다. 각주 애독자. 산문집 『전부 취소』를 썼다. 웹사이트: hoyoung.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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